민의 추리는 점점 더 급격해지고 그녀의 심리는 점점 더 급박해진다. 오직 자신의 아이였던 '은수' 생각에 그 석연치 않은 죽음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 보니 믿을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더 줄어들어가고 의지할 사람들은 점점 더 사라져간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에 검은 모자를 쓰게 되는데...
읽는 내내 <누런 벽지> 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필경사 바틀비> 라는 제목의 창비에서 나온 단편집 안에 속해 있던 작품으로 샬롯 퍼킨스 길먼 이라는 여성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필경사 바틀비> 단편집을 읽으며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이 <누런 벽지> 였다. 한 여성의 심리적 분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작품이었는데 벽지에 대한 묘사가 벽지를 보며 말하는 화자의 심리가 절묘하게 공감이 되어서 나조차 잠시 내자아가 분열된건가 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옛날 흔한 벽지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보며 이런저런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이 이토록 심리묘사와 잘 어울리다니 싶어서... 여하튼, <검은 모자> 가 그 <누런 벽지> 같은 것이었다. 차츰차츰 화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잠식해가는...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p. 263)' 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꼬리를 물기 위해 맴을 돌듯 사는 삶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직선형이든 나선형이든 어찌됐든 어디로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삶이 더 보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다만 가끔은 멈춰 서서 내가 내 꼬리를 물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