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조리함 사이에서 그것을 '신앙의 신비'로 믿고 살아가는 인간이 저는, 질문하는 인간에게는 분명히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답이 온다는 것을 믿으며, '나는 어떠한가' 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아니면 법학자 출신의, 최초의 라틴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160?~220?)의 저서 <그리스도의 육신>에 언급된 그의 말로 답을 대신해야 할까요?
Credo quia absurdum est 크레도 퀴아 압수르둠 에스트
부조리(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p.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