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실버포크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어도어 훅(1788~1841) 의 초상이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혈통적 특권은 없었으나 타고난 수완으로 인맥을 쌓아 조지4세의 측근이 된 그는 '목표에 도달한, 궁정광대라는 호칭보다 더 나은 직함을 지니지 못한, 속물근성의 완성자'로 불린다고 한다. 채무자감옥에서 쓴 소설로 데뷔한 그는 지속적으로 실버포크 소설을 써냈고 큰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아무도 그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시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반영하는가에 따라 문학의 수명이 정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행과 통찰은 분명 다를 것이므로.
'초창기 실버포크 소설에는 당대 귀족계급의 삶에 대한 묘사와 함께 이들 계급에 대한 비판과 사회개혁의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었다. (p. 55)' 그러나 사람들이 열광했던 부분은 '메시지'가 아니었다. 귀족들의 생활방식과 패션양식과 소비패턴이었다. 당연히 이후 실버포크 소설은 점점 더 대중들이 원하는 내용을 구체화하게 된다. '문화자본을 이용한 승부는, 귀족계급에게 남은 유일한 전략이었다. (p. 86)' 따라잡힐 것 같은 위기감은 점점더 극단적인 댄디즘을 추구하게 된다.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댄디의 '반항'은 더욱 격렬해졌고, 세기말의 흐름 속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1891년에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p. 112)' 오스카 와일드(1854~1900)도 귀족계층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속에서 그가 추구하는 무위와 권태와 사치의 모습은 댄디 그 자체였다. 아마도 그가 추구한 '유미주의'는 댄디들에 대한 선망이자 댄디가 되고싶은 욕망의 표출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