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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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약한 외피가 깨졌을 때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실재와 허구, 현실과 비현실, 그 경계를 뒤흔드는 미스터리 심리 환상극

'검은 모자를 쓴 여인' 이라고 검색하면 키스 반 동겐 이라는 화가의 그림이 검색되지만,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떠올랐던 그림은 모딜리아니의 그림이었다. 찾아보니 '검은 모자를 쓴 잔느' 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모딜리아니 특유의 그 텅 빈 듯한 눈과 커다란 검은 모자가 묘한 느낌이라서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내겐 이 소설도 키스 반 동겐 이라는 화가의 그림보다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더 가까운 분위기로 읽혔다. 실재와 허구, 현실과 비현실, 그 경계를 뒤흔드는 미스터리 적인 분위기가.

지금도 민은 그날 보았던 검은 모자를 똑똑히 기억한다. 낯선 존재를 감싸고 있던 외피의 특징 중에서 유달리 검은색 모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모자의 검은 후광이 한 존재의 전체를 압도해버릴 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p. 7)

새벽 2시 잠이 오지 않아 베란다에 나갔던 민이 자신의 집을 쳐다보고 있는 '검은 모자'를 발견한 이후 그녀의 심리는 현실과 망상을 넘나들기 시작한다. 이유는 분명했다. 자신의 아이를 허무하게 잃었던 3년전 그날 이후 민의 외양은 평온을 찾은 듯 보였으나 심리는 급격한 곡선으로 출렁대고 있었다. '몇 달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우울증으로 인해 매번 약을 지어 먹고, 약으로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애써 받은 걸 쓰레기통에 처박는 삶.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삼십대였다. (p. 28)' 행복했던 그 평온이 깨진 것은 검은 모자의 등장 그 이전 집근처 약수터에서 세살 밖에 안된 어린 은수가 죽던 그날부터였다.

"누군가 있었다고! 분명 누군가 근처에 숨어서 아이를 해친 거야!" (p. 48)

민의 호소는 어느 곳에도 통하지 않았다. 다들 그저 사고라고 했다. 남편까지도.

시간이 흐르면서 민은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눈이 많이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세상에, 아기잖아"

"어라, 고양이도 있네? 같이 버린 건가..."

신생아는 아니었다. 은수 또래로 보이는 아이였다. 누군가 아이를 낳아 기르다 이곳에 버린 것 같았다. (p. 58, 59 中)

집근처 교회앞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한다. 바구니속에 검정 고양이와 함께 들어있는 아이를 부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렵게 입양을 했고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다정다감하게 살기만 하면 좋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민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그 이유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고양이도 동수도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부 사이에 끼어 들어온 타자였다. 상처를 덮기 위해 급조된 환경이었다. 지금의 평화는 봄이면 무너진 축대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곤 하는 개나리처럼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축대가 무너지는 순간 노란 꽃들은 언제든 비명을 지르며 뭉개질 것이다. (p. 70)

민은 무지라는 개를 입양하여 큰 위안을 얻었던 터였다. 거기에 갑작스레 두 식구가 더 늘어났다. 동수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검은 고양이 까망이는 언제부턴가 민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혼란 속에서 힘들어하던 민에게 남편은 여행을 권하고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지 파리에서 민은 갑작스런 친정엄마의 부고를 듣는다. 동수를 돌보러 잠시 와 계시던 친정엄마가 화재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이제 더는 약해지지 말아야 했다. 우연히 가족의 일원으로 틈입해 들어온 동수와 민의 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상쩍은 일들에 대하여, 충분히 증거를 모으고 범인을 찾아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시간이 다소 걸린다고 해도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p. 125)

민은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편집교정 일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부탁한 원고중에 '아하스 페르츠'를 탐구한 논문 수준의 글이 있었다. 친구는 그 방대한 원고를 한권의 책으로 축약하는 작업을 민에게 맡겼다. 민은 그 원고를 읽어나가며 '아하스 페르츠'가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이고 지혜로운 존재임을 깨달았다. (사실 나는 '아하스 페르츠' 라는 이름도 예수에 대한 세가지 시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였기에 이 부분을 읽으며 호기심이 일었다.) 민의 의지와 생각의 흐름은 읽다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보였다.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가 겪은 갑작스런 친정엄마의 죽음, 민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었고 거부하고 싶은 현실들이었다.

"그날 나는 너를 시험코자 하였다."

"나는 네 마음속에 자리한 심문관, 너는 내 존재를 익히 알고 있다. 나를 꺼낸 것도 너고, 내 질문과 너의 대답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란 걸 너는 잘 알고 있어" (p. 138)

민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예수의 세가시 시험에 빗대어 분석하기도 한다.

민의 집 근처에는 사이비교회라고 소문한 빈 교회와 치매할아버지가 홀로 운영하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다. 약수터와 교회와 가게 그리고 민의 집, 그녀에게 세상은 이만큼의 범위로 좁혀져 있었다.

"글쎄, 난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내가 거기 있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했을 뿐이니까.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민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이해해요, 할아버지" (p. 143)

민의 추리는 점점 더 급격해지고 그녀의 심리는 점점 더 급박해진다. 오직 자신의 아이였던 '은수' 생각에 그 석연치 않은 죽음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 보니 믿을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더 줄어들어가고 의지할 사람들은 점점 더 사라져간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에 검은 모자를 쓰게 되는데...

읽는 내내 <누런 벽지> 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필경사 바틀비> 라는 제목의 창비에서 나온 단편집 안에 속해 있던 작품으로 샬롯 퍼킨스 길먼 이라는 여성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필경사 바틀비> 단편집을 읽으며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이 <누런 벽지> 였다. 한 여성의 심리적 분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작품이었는데 벽지에 대한 묘사가 벽지를 보며 말하는 화자의 심리가 절묘하게 공감이 되어서 나조차 잠시 내자아가 분열된건가 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옛날 흔한 벽지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보며 이런저런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이 이토록 심리묘사와 잘 어울리다니 싶어서... 여하튼, <검은 모자> 가 그 <누런 벽지> 같은 것이었다. 차츰차츰 화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잠식해가는...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p. 263)' 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꼬리를 물기 위해 맴을 돌듯 사는 삶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직선형이든 나선형이든 어찌됐든 어디로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삶이 더 보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다만 가끔은 멈춰 서서 내가 내 꼬리를 물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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