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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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도 부정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아버지야말로 그런 존재지"

-이승우 장편 소설 <한낮의 시선>

표지를 꾸민 산뜻하면서도 묘하게 외로운 느낌의 그림은 어떻게 보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그림이었다. 쨍한 빛의 채도로 보아 한낮은 분명한데 해가 보이지 않으니 시각은 추정할 수 없는, 그러니까 한낮일 수도 있고 백야일수도 있는 이 '쨍함'과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의 제목은 기묘한 우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느낌은 첫문장부터 전해오는 듯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말테는 수기의 첫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가난하고 병약한 외돌토리인 데다가 과거에 대한 기억에 유난히 민감한 이 젊은이는 도착한 지 3주밖에 되지 않은 낯선 도시의 공기에서 불안과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p. 7)

[말테의 수기]라는 소설의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한낮의 시선>은 말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스물아홉 한명재 라는 청년의 독백이다. [말테의 수기]라는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한낮의 시선>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작품의 인용들로 미루어보건대 <한낮의 시선>은 [말테의 수기]를 오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말테의 수기]라는 작품은 <<삶의 본질을 냉철하게 바라본 릴케의 유일한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 작가 지망생인 스물여덟 살의 덴마크 청년 말테는 화려한 문화의 중심지 파리에 오지만, 오히려 곳곳에 가득한 죽음과 불안의 냄새를 맡는다. 지독한 가난과 소외, 죽음마저 규격화된 도시의 비정함. 그는 예민한 감성으로 대도시의 허상을 기록하는 한편, 자신의 내면으로 점점 깊이 침잠해 들어가 실존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철저한 고독을 깨달아 간다.>> 라고 소개되는데, <한낮의 시선>의 줄거리와 흐름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감성적인 시로 유명한 릴케의 소설인만큼 문장도 남다를 것 같은데, <한낮의 시선> 또한 줄거리 자체보다는 문득문득 여운을 주는 문장이 좋았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릴케의 감성이 스며든 소설이 아닐까 싶다.

당신이 우울할 때 세상은 빛을 잃는다. 당신 내부의 우울이 세상 외부의 빛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p. 9)

어둠은 늘 자기 속에 무엇인가를 담고 있었다. 어둠이 어두운 것은 그 안에 담고 있는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열려 있는 것 같지 않았다. (p. 11)

청년은 휴전선에서 가까운 인구3만의 작은 도시에 한밤중에 도착했다. 폐결핵 판정을 받고 황당해하면서도 어머니가 마련해준 거처에서 요양하다가 갑작스럽게 향한 곳이었다. 그 이유또한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각성이었다.

정작 필요로 할 때는 필요한 줄 모르니까 원하지 않고, 어찌어찌하여 원치 않았던 필요가 충족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닫느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산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p. 30)

어머니가 소유한 부동산 중 한 곳이었던 전원주택은 요양하기 좋은 곳이었다. 자연속에 고즈넉히 위치해 있었고 가까운 숲길도 산책하기 좋았으며 도심으로 나가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청년이 불편해진 이유는 요양중에 찾아온 '불안' 때문이었다. 비슷한 꿈에 시달리며 불면증을 겪기도 했고 산책길에서 환영 비슷한 것도 보게 된 이후 청년은 깨달았다. '나는 내가 이제까지 접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문 앞에 서 있다는 걸 알았다. 할 수만 있다면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정신을 멍멍하게 했다. (p. 55)' 그러니까 청년은 그 '문'이 있는 곳을 찾아간 거였다.

어머니는 결핍감을 느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제공해주었다. 어머니는 따뜻했고 의젓했다. (중략) 어머니는 나에게 울타리였고 동시에 울타리 안의 정원이었다. 나는 양친의 보호를 받는 어떤 아이보다 더 만족스럽게 지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존재를 상기시킬 만한 어떤 언행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필요를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없이도 책임 있는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데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도대체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단 말인가. (p. 69)

청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존재감은 없었다. 하지만 스물아홉이 되도록 단 한번도 그 '부재감'을 느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핵판정으로 혼자서 오랜 시간 딱히 할일 없이 지내면서 너무나 편안한 조건에서 너무나 급작스레 느껴진 불안감은 그 부재감을 무시하려 애썼고 무시하는 만큼 점점 더 크게 청년을 잠식해 들어왔다. '아늑한 집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쉬운 일이었다. 어려운 것은 어머니의 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p. 74)' 결국 청년은 어머니의 집을 처음으로 나오는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꼭 열어봐야 할 문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

"한명재는 몰라도 한길숙은 모르지 않을걸. 모를 수가 없을걸. 아니, 한길숙을 모르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렇지 않아?" 그 말을 하는데 가슴이 뜨거우지면서 코끝에 싸한 기가 맴돌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눈물을 억누르기 위해 더 소리 질렀다. "한길숙이 내 어머니란 말이야. 내 어머니라고! 나는 한명재고 내 어머니는 한길숙이란 말이야!" (p. 134)

청년은 악몽속에서 아버지의 비석에 쓰여진 이름을 읽곤 했다. 읽었는데 읽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도통 알수가 없었다. 꿈에서 그랬던 이름을 외딴 지역 작은 도시의 신문에서 자치단체장 선거유세에서 읽었을 때 청년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스스로를 빠뜨린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침전되어 갔다.

사랑의 있고 없음과 상관없이 추구하는 자가 아들이다. 아버지가 왜 나를 찾아왔느냐고 묻는 것이 그 증거이다. 아버지는 왜 나를 사랑하느냐, 혹은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하다'가 아들에게 속한 동사가 아님을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찾는 자, 찾도록 운명 지어진 자가 아들이다. (p. 178)'

일반적인 부자관계에는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는 위 문장에 때로는 절묘하게 맞아들어간다는 걸 다양한 문학작품에서 보아왔던 것 같다. 하다못해 고구려 신화속 유리왕도 자신의 아버지를 찾도록 운명지어진 자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증표를 남겨놓은 아버지와 아무런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아버지를 찾는 과정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나를 왜 찾아왔느냐는 확인 작업은 사랑하다 라는 동사가 아들에게도 속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후자의 경우 찾도록 운명지어진 아들은 무엇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찾을 운명은 아들의 운명일뿐 찾아질 운명은 아버지의 운명이 아니었기에.

대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지만, 어떤 것들은 알게 된 후에도 설명할 길을 찾지 못한다. (p. 151)

두렵고 불안한 '있음'보다 두렵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은 '없음'이 더 두렵고 더 불안했을 것이다. (p. 190)

긍정하기 위해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거나 조금밖에 필요하지 않은 정당화의 논리가 부정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 안전하니까. (p. 193)

벗어나려면 빛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야 하고, 맞서려면 어둠을 털어내며 빛이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p. 202)

그래서 한명재는 어둠을 향해 걸어갔을까 빛을 향해 걸어갔을까. 어느 쪽으로 향해갔던 한낮의 시선에서 벗어났을까... 어머니의 집을 나오고 아버지의 문을 열고 난 후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 청년은 휴전선 근처의 작은 소도시를 벗어나며 '막 떠오른 신생의 태양이 연한 빛을 지상에 퍼뜨리기 시작(p. 213)' 하는 것을 보았다.

서른을 앞둔 청년의 성장통 같은 이 소설은 '한낮의 시선'에 시달리던 청년이 자신의 내면을 헤매는 작품으로,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내용에 푹 빠져들기 보다는 내눈에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할 때가 더 좋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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