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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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처럼 살기 싫지만 부모만큼 되기도 어려운 세대, 밀레니얼

욕 좀 그만 먹고 싶은 밀레니얼의 정당한 변명

내게 '요즘 애들'이란 십대후반 부터 20대 그러니까 90년대후반부터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을 의미한다. 사춘기 청소년 시절을 지나고서도 (철들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의)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이나 직업에 대한 마인드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것을 느끼곤 했다. 내가 아직 꼰대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건만 너무나 세대차이를 느끼곤 했기에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1981~1996' 출생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내 기준에선 '애들'이 아닌 셈이다. 애들이라기 보다는 '어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현 30~40대초반 세대의 삶에 대해 저자는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로서의 고충을 토로한다. 그냥 '못하겠다' 정도가 아니라 뭔가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현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연령은 이십대가 아니라 3~40대를 지칭함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이 책의 원제는 본문 내용에 부합하는 Can't even 이다.

백인 중산층 밀레니얼은 자신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서사를 믿지 못하게끔 길러졌다. 앞선 세대처럼 우리도 능력주의와 예외주의를 먹고 자랐다. 우리 모두는 각자 흘러넘치는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그 잠재력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건 오로지 노력과 전념뿐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현재 인생에서 어떤 지위에 있든, 결국엔 안정성을 쟁취할 거라고 믿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밀레니얼 세대는 이 서사가 얼마나 공허하고 심히 환상적인지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중략)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미국이 기회의 땅이자 자애로운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후렴구는 결론적으로 틀렸다. (p. 6)

저자는 미국에 사는 3~40대 백인계층의 불안정한 삶에 대해 조목조목 풀어낸다. 미국의 기득권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백인계층이 이러할진대 다른 계층은 더 악조건에 처해 있는 셈이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철저히 미국사회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이 책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어쩌면 십년 후쯤의 우리사회 모습이 저러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것들을 뒤따라온 한국사회의 미래를 이 책에서 예감한다면 그 슬픈예감이 틀리도록 우리는 지금현재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반복해 주장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반드시 이럴 필요는 없다. (p. 8)'라는 문장정도로 위안 받을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사회의 현실이 십년후쯤 한국사회의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좀더 행동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퓨리서치센터에 의하면 1996년생인 최연소 밀레니얼은 2021년에 25세가, 1981년생인 최연장 밀레니얼은 40세가 된다. 인구추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밀레니얼은 인구 7천3백만 명으로 최대 다수를 차지하는 세대다. (p. 22) 우리는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반면 직업윤리 수준은 바닥이라고 꾸짖음을 받았다. 우리는 온실 속 화초였고, 순진해 빠진 데다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지 못했다. 이는 우리 세대에 대해 굳어진 합의들로, 우리가 대침체를 어떻게 맞서고 견뎠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학자금 부채를 떠안고 있는지, 성년기의 수많은 이정표가 우리에게 얼마나 도달 불가능한 것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p. 23)

하면되는 세대에 의해 양육되어진 밀레니얼 세대는 하면된다는 믿음을 갖고 성장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부딪힌 현실은 하면된다 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얻은 좌절감을 부모세대는 나약함이라고 치부한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지 않은가?! '이 책은 저자의 번아웃 경험을 바탕응로 하되, 번아웃이라는 느낌에 대한 이해를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 온 부르주아 계급의 경험 너머로까지 확장하려 했다. (p. 29)' 안정적 직업도 못얻고 학자금대출도 못갚은 게으르고 나약하다고 평가받는 밀레니얼 세대가 어쩌다 번아웃 상태가 되었는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부조리를 분석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중산층 백인 밀레니얼의 경험 위주에서 벗어나 밀레니얼 전체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것이 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p. 30)' 쉽게 얘기하자면 밀레니얼 세대의 경험은 개인적 무능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 라는 말이다.

80~90년대 베이비붐 세대의 정신은 우리 유년기의 배경에 스며들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품었던 기대들의 토대에도 녹아들었고, 그 미래를 쟁취하기 위한 로드맵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리를 만든 베이비붐 세대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번아웃에 빠졌는지 이해해야 한다. (p. 41) 베이비붐 세대는 1946년에서 1964년 사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회복기에 시작되어 군인들의 귀가 기간에 가속화된,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세대를 이루었다. (p. 42)

전쟁후 베이비붐 세대는 성인기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경험했고 그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노동현실은 열악했어도 실업률이 높진 않았고 대학을 나온 경우는 그야말로 탄탄대로 였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서 교육열은 과열됐고 자신들의 피와땀을 갈아넣은 자식세대에게 그만큼의 희망을 심어주며 키웠기에 성공가능성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자식세대의 불안정한 직업과 실패는 곧 실망과 배은망덕함으로 이해되곤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밀레니얼은 자신을 걸어다니는 이력서로 완전히 개념화한 최초의 세대다. 부모와 사회, 교육자들의 보조 아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적 자원'으로 여겼으며, 경제 활동에서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압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대학에 가기만 하면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중산층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인식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략) 대학은 우리 부모들의 경제적 불안을 낮춰주지 못했다. 중산층 지위를 보장하지도 않았고, 많은 경우엔 취업 시장에 현실적으로 대비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p. 104)

저자는 '당연한 교육이 가져온 부당한 결과'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절대 다수의 밀레니얼에게 대학 학위는 우리와 우리 부모들에게 약속했던 '중산층의 안정'을 안겨주지 않았다. (p. 128)' 그런데 교육은 너무나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효율적인 노동자를 빚어내는 데' 있어왔다. 실용적이리라 믿었던 교육을 받았으나 써먹을데가 없는 현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살아남는 법은 더 열악하게 더 많이 일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번아웃의 토대가 마련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좋아하는 것' 이 '직업'이고 '일'이 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착각 혹은 '일을 좋아하라'는 강박에 대한 무지이다.

소명을 따를 때 돈과 보상은 부차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 소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초기 계율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략) 문화이론학자 막스 베버는 이런 해석이 모든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노동을 단지 넓은 관점에서 의미 있을 뿐 아니라 가치 있는 것으로 심지어는 신성한 것으로 보도록 장려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p. 149) 성공할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희망 배양은 회사의 사업 전략이 되었다. 인턴과 펠로들은 정직원 급여의 일부만 받으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노동을 제공한다. (중략) 나 자신과 남에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꺼이 더 적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이 일하는 과다한 수의 노동자들을 딛고서 산업 전체는 번창한다. (p. 153)

고용의 불안정성은 실업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과로를 하게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리라는 희망때문에 악조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는게 누구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역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두가 성공했다는 것(p. 162)' 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잘못된 논리인지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특별한 존재라고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 들으며 자라온 세대가 하찮은 존재로 흔하디흔한 인력으로 취급되는 직업사회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부모세대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큰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지는 이유는 그렇게 얻은 일자리마저도 너무나 열악하다는 현실이다.

자유 시장이 모든 것을 고치리라는 약속은 설득력이 있었기에, 80년대와 90년대에 모든 층위의 정치인들이 노동조합 보호 장치를 철회하고 정부 규제를, 특히 금융시장과 관련된 규제를 극적으로 줄여나갔다. (p. 174) 다운사이징, 구조조정, 풀타임 직원 해고 배후의 논리는 근본적으로 간단하다. 회사의 불필요한 부분을 솎아내면 단기 이익이 발생한다. 단기 이익은 주가 상승과 주주의 만족을 가져왔다. (p. 179)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건, 그냥 자본주의가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자본주의다. 이는 제품이나 제품 뒤의 노동자들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이들을 위해, 단기 이익 창출을 취우선의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다. 자신의 투자금이 다른 노동자의 생계와 근무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난데없는 보상이 돌아가는 자본주의다. (p. 183)

미국사회에서 노동조합과 복지는 굉장히 생소해진 개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노동자가 맞서기는 무척 힘들다. (p. 183)' 시스템적인 사회구조적인 문제엔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개개인의 노동자들이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덮어버리는 이데올로기들이 넘쳐난다. '그릿' 이라던가 '시크릿' 같은 온전히 개인의 열정과 개인의 믿음으로 환원시킨 생각들이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어려운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우버'같은 새로운 분야의 등장은 또다른 노동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동의 유연성'은 말이 좋아 유연성이지 따지고 보면 '불안정성'과 동의어인 시대가 된 것 같다. 여기에 온라인에서 경험하게 되는 '디지털 피로'까지 쌓이고 있다. '디지털이 더 많은 업무를 가능하게 했다. (p. 273)' 수시로 울리는 이메일과 톡알람은 일터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번아웃을 해결하려면, 당신의 하루를 채우는 것들이-당신의 인생을 채우는 것들이- 당신이 살고 싶은 인생, 당신이 찾고 싶은 삶의 의미와 결이 다르다는 착각을 지워야 한다. 번아웃 상태가 단순한 일중독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번아웃은 자아로부터, 욕구로부터의 소외다. 당신에게서 일할 능력을 뺐는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중략) 자신에게 다시금 전념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이기적이지도, 자기중심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이는 가치의 선언이다. 당신이 일을 하고 소비하고 생산해서 가치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p. 316)

책의 마지막 챕터는 '엄마처럼 살기 싫은 엄마들' 이라는 제목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하는 육아현실고충에 대한 내용이었다. 본문의 흐름에서 조금은 겉도는 이 부분은 일종의 부록처럼 읽히기도 한다. 여하튼,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미국사회에서 직업전선의 핵심층인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번아웃에 빠지게 하는 직업현실의 고충을 구조적으로 찾아야한다면서도 번아웃의 해결방법을 '개인의 존재가치 상기'로 정리하는 것은 아쉬웠다. 물론, '당신은 행동해야 한다. 투표해야 한다. (p. 367)' 라는 현실지침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이 말은 대단한 해방감을 준다. (p. 380)' 라는 저자의 깨달음이 월세와 학자금대출금을 갚아주는 것은 아니기에 여전한 현실에 대한 좌절감은 그닥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당신을 망가뜨린 게 우리 사회일 때, 나는 당신을 고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려 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을 살펴보라. 일에 대한 생각을, 아이들과의 관계를, 당신의 두려움과 핸드폰과 이메일 계정을 살펴보라. 당신의 피로를 직시하고, 그 피로를 덜어줄 앱이나 자기계발서나 밀키트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피로는 오늘날 세상에서 밀레니얼로 살아가는 것의 증상이며, 인종·계급·직업·부채·이민자 지위에 따라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에겐 이 증상을 바꿀 힘이 있다. 자신을 적절히 고쳐 증상을 이기거나,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빠르게 쫓아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당신과 비슷한-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감정을 느끼는 너무나 많은 사람과 유대감을 나누고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382~383)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우리는 힘을 합하여 지금 이 상태에 저항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지치지 않고 변화를 주장할 정치인들에게 집단으로 투표해야 한다. (p. 383)' 이 책이 쓰여진 때는 트럼프집권기 였다. 과거보다 더 열악해진 노동환경 속에서 다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은 아마도 '투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장기적인 관점과 구체적인 연대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큰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은 아마도 '투표'일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트럼프같은 대통령을 뽑으면 안된다는 깨달음을 기억해야 한다고나 할까.

'요즘 애들' 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궁금하여 선택한 책이었지만 '요즘 애들'에게 닥쳐올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많은 책들이 (문제가 어떤 분야이건 간에) 해결점으로 제시하는 것이 '연대' 다. 나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연구한 사람들이 고민해서 낸 결론이 '연대'라면 우리는 진지하게 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요즘 애들'과 연대하는 방법도 찾게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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