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 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박정호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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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제학의 쓸모 X 인문학의 사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그 프레임은 살면서 쌓아온 경험들과 배워익힌 지식과 지혜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따라서 각자의 프레임은 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때로는 다른 이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경제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역사, 문학, 예술, 문화, 정치, 사회 등 다른 분야들을 경제학적 프레임으로 풀어낸 책이다. 경제학자가 아닌 내가 경제학자의 시선을 따라가보는 것은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내용들이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1장에서는 경제학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나 정치경제등 다른 사건들을 예로 들었다면 2장부터는 역사와 예술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경제학적 개념들을 인용해 설명해주고 있다.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어렵지 않아서 읽기 무난했고 딱히 순서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읽어도 괜찮을 내용들이었다. 경제상식도 높이고 지대넓얕식의 인문학 상식도 높일 수 있는 책이랄까.

정확히 말하자면 빌 게이츠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자유재'를 '경제재'로 바꾸어 돈을 번 인물이다. (p. 35)

자유재와 경제재 이야기를 하며 예로 든 인물이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IT업계의 거부 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돈을 받고 팔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새로 창조해낸 것도 아니었다. 그가 위대한 것은 프로그램의 개발자여서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사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시작한 인물이 그였다.

함무라비 법전의 조항들은 4,000년 전부터 정부의 가격통제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경제학 이론에서는 자원배분을 자유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에 개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 44)

함무라비 법전에 경제 관련 조항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수메르 토판들이나 이집트 기록들에서 기록의 시작은 재물이 들고나는 것을 위해서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책을 읽을 수록 사람사는 건 참 수천년간 별로 변한게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경제에서도 그랬네...

 

그 누구도 기축통화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p. 53)

 

스위스가 세계대전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국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위스 화폐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나면 물자의 수송이 더 중요해지지만 경제적 교류는 원활할 수가 없다. 누가 승전국 패전국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나라의 돈을 받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누구도 침범하지 않을 교류의 장소 교류의 수단이 필요했고, 그 조건을 충족시킨 나라가 스위스였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는 자국의 통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어느쪽으로부터도 침공받지 않는 완벽한 안전지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정교한 금융기법이 절실했던 금융회사들의 필요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게 된 시대 상황이 맞물리면서 현재의 금융공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p. 62)

냉전시대 경쟁적인 우주산업은 많은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을 필요로 했으나 냉전이 종식되자 그들은 실업자가 되었다. 그들을 받아준 곳은 금융계였다. 금융이 커져가던 시대에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공급과 수요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다니. 많이 배운이들은 여전히 많이 벌 수 있게 되었다.

개성상인들은 이러한 복식부기의 간편함을 깨닫고 자신들만의 회계장부인 사개치부법에 이를 활용해왔다. 이는 복식부기의 원리를 처음 생각해낸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오늘날 재무회계 처리방법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회계 역사나 기술이 서양의 그것에 비해 결코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p. 93)

무역하면 유럽이므로 회계도 유럽에서 엄청 발달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거래처가 세계곳곳의 여러나라가 아니라고 해서 그 관리방법까지 미약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서양의 회계처리 방식이 전래되기 전까지 사개치부법은 유사한 방식으로 잘 활용되어 왔었다.

원래 주식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때로는 주식이 위험을 줄이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p. 99)

주식 하면 투기 가 떠오른다. 하지만 주식회사의 처음은 위험분산이었다. 가장 위험한 투자처가 된 주식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투자방식이었던 주식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찍부터 서구 열강들과 교역해야 했던 상하이의 상인들이나 동남아 여러 지역을 비롯해 멀리 중동 지역까지 교류했던 광저우 지역의 상인들이 모두 유대인과 비슷한 거래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권과 접촉해야 했던 상인들은 어느 국가이든 상관없이 모두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을 따랐다. (p. 110)

다양한 거래처와 교류한다는 것은 오히려 표준화된 거래방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다 비슷한거다.

순장 문화는 절대왕권이 공고히 다져지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국왕들이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낸 위험회피 전략이었다. (p. 117)

순장에 대해 그저 권력의 과시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순장문화는 경제적 용어로 말하자면 위험회피 전략이 맞았다. 왕이 죽었을때 측근들이 다 살아있다면 왕의 자손이 위협을 받게 되고, 왕이 죽을때 같이 죽는 다는 것을 아는 이상 어떻게든 왕을 오래 그리고 잘 보필해야 하므로, 순장은 일석이조의 왕권강화방법이었다.

과거 영미권 국가에서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 바 있다. 소작농에게 지주계층과 동일한 형태의 선거권이 부여된 시기는 19세기 말에 들어서였다. 또한 비록 귀족은 아니지만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마치 귀족처럼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흔히 이러한 계층을 젠트리라 부른다. (p. 124)

옛날엔 땅을 가진자만이 귀족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받았다. 지금은 건물을 가진자가 권력을 갖는다. 젠트리피케이션?!

신대륙에 끌려와 노예가 된 수십만 명의 흑인들이 소수의 유럽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같다. 유럽인에게 저항했을 때 돌아오는 대가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 얻게 되는 결과는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에서 다소간의 휴식 내지는 안락함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신대륙에 남아 있으면 또 다른 유럽인들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은 저항으로 인해 얻게 될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p. 137)

저자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은 선택을 이야기하며 흑인노예들의 상황을 예로 들지만, 이러한 상황을 경제적인 면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합리성으로만 따지기엔 역사는 희생과 용기로 점철된 시간들이 분명한 획을 긋고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조공은 만주족과 명나라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중계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p. 141)

역사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대개 무리한 조공의 요구로 힘들어하는 우리민족의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조선시대 조공은 흑자무역이었다. 형님국에 아우국이 조공을 바치면 형님국은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이 주어야 했기에 조선은 1년에 3번 조공을 원할때 명나라는 3년에 1번 조공을 원할 정도였다. 조공에 대한 실리성은 분명 알아둬야 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이러한 전략을 현대에는 미국이 계승하고 있다. 미국은 포로가 된 자국 군인을 구출하거나 그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p. 148)

라이언일병구하기 라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스토리만 들었을때 뭐 이런 멍청한 선택이 있나 싶었다. 한명을 구하기 위해 여럿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대체 산술적으로 말이 되는가 말이다. 하지만 로마때 그러했듯 미국에서는 라이언일병구하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거대국가일수록 자국의 군인을 보호하려는 상징성이 없다면 누가 군인이 된다고 나서겠는가?

산타클로스를 오늘날과 같은 친숙한 이미지로 각인시킨 건 코카콜라 회사였다. 1931년 코카콜라 회사 로고와 동일한 색깔인 빨간색 옷과 콜라 고품 모양을 본뜬 흰 수염을 단 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킨 광고를 내 보냈다. (p. 156)

헐 몰랐다. 코카콜라를 겨울에도 그렇게 마시도록 한 것이 산타클로스였구나. 코카콜라보다 훨씬 커진 이미지성을 가진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코카콜라에서 시작됐었구나. wow 마케팅이란!

경제학은 돈을 버는 방법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효과적으로 잘 쓰는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p. 182)

경제학자인 저자에게 지인들이 돈버는 방법좀 알려달라고 농담반진담반 많이들 물어왔나 보다. 저자는 경제학의 학문적 특성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경제학은 이윤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라 만족감을 논의하는 학문이라고. 사실 경제적인 사람이다 라는 표현은 알뜰하다는 의미였는데 나도 경제학자라면 돈버는 방법까지 아는줄 알았다. ㅍㅎㅎ

단순히 음악에 적합한 배경을 까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음악과 영상을 완벽히 접목해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은 1975년 발표된 영국의 록 그룹 퀸 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최초였다. 퀸이 이 영상을 제작한 이유는 음악을 전달하는 새로운 매개체를 만들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BBC방송국의 인기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신곡을 소개해줄 영상을 제작하려 했다. (p. 225)

퀸 이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구나! 역시 대단한 그룹이다!! 비록 그것이 지금의 뮤직비디오를 생각하고 만든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음악과 영상이 조화로운 작품으로 만든것은 어쨌든 퀸이 최초였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경제적 논리를 갖고 따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문화유산의 가치 평가에서도 경제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p. 254)

외규장각의궤 를 예롤 들어 저자는 소득탄력성과 공급탄력성을 설명한다. 문화유산에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긴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외규장각의궤를 가져오기 위해 벌였던 협상은 결과적으로 경제협상이자 산업협상이었다.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보이지 않는 창고에 보관하는 것은 얼핏 비경제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는 미술관과 미술관 운영자의 이윤을 극대화해주는 가장 주요한 전략이다. (p. 257)

예술에 대한 예시들로 설명되는 경제적 개념들은 특히나 더 흥미로웠는데,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보다 보관하는 작품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저자의 설명을 읽고서야 알았다.

그런데 사실 대공황이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발생한 최초의 사례는 아니다. 모차르트 역시 유효수요 부족으로 인해 피해를 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p. 321)

모차르트는 음악으로도 유명하지만 다른 사례들로도 참 인용이 많이 될 수 있는 인물인듯 하다. 모차르트는 귀족층을 대상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당시는 싱흥중산층이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고 그래서 모차르트도 귀족보다는 자유분방한 신흥 부유층을 타깃으로 삼고 귀족을 풍자하는 '마술피리' 나 '피가로의 결혼' 같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아직 시기상조였다. 신흥 부유층은 음악에 투자할 여력까지는 아직이었다. 모차르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난로세를 회피하기 위해 벽난로를 없앴던 납세자들은 창문 또한 없애기 시작했다.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어둡게 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지어진 건물들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물들을 보면 크기에 비해 창문수가 현격히 적은 기형적인 형태로 건설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p. 356)

영국에 있던 세금중에 창문세라는 것이 웃기기 보다는 창문세를 안내려고 창문을 없거나 작게 만들었던 납세회피자들이 너 기가막힌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 안내려고 부리는 꼼수들은 참...

철과 구리 같은 금속으로 화폐를 만들게 된 것은 당시 금속 광산이 전부 왕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p. 389)

실물자산이 화폐로 사용되는 것은 왕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금속은 무기제작에도 활용도가 높았다. 또한 금속으로 만든 화폐또한 왕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기에 금속화폐의 등장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흔히 인플레이션은 개별 경제주체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주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해방 이후 우리 경제에서는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이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데 일부 기여하게 되었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필리핀은 농지개혁와 근대화, 산업화에 실패해 아직도 15대 지주 가문이 국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p. 399)

혼란기에 어떻게 질서를 잡아내느냐가 지금을 만들었다. 남한의 농지개혁법은 의외로 수천년간 이어온 지주계급을 해체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물론, 그것을 만든 이들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사실 시장경제 매커니즘 면에서 볼 때 다산 정약용이 살아온 시대적 환경이 애덤 스미스의 시대적 환경보다 더 명확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산이 보여준 통찰력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422)

다산 정약용의 일화들은 여기저기서 언급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찌보면 조선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다고나 할까...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하기도 했다.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인 살라디움saladium이 봉급을 의미하는 salary 의 어원이 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은 랭커스터, 맨체스터, 윈체스터 등과 같이 지명의 어미에 '체스터'가 붙은 역우가 상당수다. 체스터는 병영지를 나타내는 라틴어인 castra 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영국에서 체스터로 끝나는 지역들은 로마제국 시절 로마의 가장 변방지역을 지키는 병영지였던 곳이다. (p 401)

사유재산은 라틴어로 프리바투스 privatus 라고 부르는데, 이는 '나누었다' 와 '약탈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사유재산 제도가 전쟁으로 인해 얻은 전리품을 나누어가지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 402)

 

영어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많이 왔을 수밖에 없겠지만, 영어는 모르고 역사는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어원 이야기가 나오면 재밌고 새롭고 좋다. ㅎㅎ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각 지역마다 혹은 국가마다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거래의 득실 또한 우리의 셈법이 아닌 다른 셈법에 의해서도 계산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 454)

세계의 교류가 아무리 활발해지고 가까워져도 비슷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고유한 것들이 있다. 그 고유한 다름은 교류의 토대이자 필요가 된다. 따라서 교류는 계속되고 경제도 계속될 것이다. 다양한 셈법을 익히는 자가 더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그 다양성을 이해하는 방법은 결국 이 책처럼 통섭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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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10주년 기념 특별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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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카우치라 불리는 길다란 눕는 쇼파가 표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일명 프로이트의 의자다.

심리학책은 여럿 읽었는데, 정신분석 책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사실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구분을 잘 모르겠기도 하다.

심리학은 마음 같고 정신분석은 의식 같아서, 심리학은 심장같고 정신분석은 뇌같지만, 요즘은 둘다 뇌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상호보완되는 학문들이라 따로 구분이 가능한가 의아해지기도 한다. 여하튼, 정신분석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관단어 1위로 프로이트가 떠오르기 마련인지라 이 책은 심리학책이 파도처럼 넘치는 요즘 시대에 정신분석학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사실 나한테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지 이 책은 10년동안 꾸준히 읽혀온 책이라고 한다. 이번 책은 10주년 기념판으로 '정신과 의사들을 정신분석하는 마음의 명의와 함께 내 무의식을 찾아가는 여행' 이라는 홍보문구가 띠지에 써있었다. 비밀독서단이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으로 선정한 책이기도 했었다는데, 비밀독서단을 애청했던 나로서는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싶은 당황스러움이;;;

여하튼 저자는 국내 정신분석학의 대가이다. 국내 최초의 '국제정신분석가' 이자 정신분석가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지도 분석가 라고 한다. 서울대병원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하며, 환자 분석과 정신분석가 교육에 앞장섰고, 정신과/신경과/수면의학 전문의로서 각종 미디어에서 대한민국 명의로도 꼽힌 바 있다고 한다. 가히 국내 정신분석학에서는 연륜과 깊이를 두루 갖춘 대표전문가라고 할만한 이력이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축적시켜 풀어낸 책인데다 최신 개정판이라 정신의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한 책이다. 무엇보다 굉장히 쉽게 풀어낸 대중서이다. 모르는이에게 어려운 말로 전문성을 뽐내는 얕은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이가 알만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능력자가 진정한 대가 아닐까.

책은 총 4장으로 구분되는데,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기' 에서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 에서 세세한 감정들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하고, '타인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무의식' 에서나의 무의식을 점검해보며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가지 기본 치유법' 에서 나의 정신을 위한 치유를 살짝 살펴본다.

정신분석은 소위 상담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분석가는 언어로 표현한 텍스트를 해석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나에게 돌려주거나 스스로 의미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줍니다. 인간은 결국 감성적인 동물입니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에 문제가 많습니다. 마음도 몸처럼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아픈지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신분석이란 바로 그 마음을 확대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렌즈입니다. (p. 22~23)

심리학 위안 치유 힐링 등은 다 상담으로 연결된다. 타인과 하던 자기자신과 하던 여하튼 상담이 일반적인 귀결지점이다. 저자는 첫장부터 정신분석을 심리적 상담과 구분짓는다. 이렇게 '첫번째 이야기' 에서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설명된다.

프로이트는 마음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마치 커다란 땅덩어리를 나눈 것 같다고 해서 이것을 '지형이론' 이라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형이론 만으로는 해석에 한계점을 느꼈고, 프로이트는 고심끝에 '구조이룬'을 내놓는다. 구조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는데, 그들의 이름은 이드, 자아, 초자아 이다. 이후 정신분석은 지형이론과 구조이론을 조합하여 발전되어 왔고 후대 학자들에 의해 또다른 방법들이 추가되어 오고 있다.

현대 정신분석학은 오래된 프로이트의 이론만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평은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비평을 하는 사람들의 눈길은 프로이트가 살아 있던 100년 전의, 그것도 초기 이론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신분석학은 성적 욕망만 논한다"는 식의 비판이 어이없게 나오는 것입니다. (p. 77)

흔히 다른 학파들에서 21세기인 지금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프로이트 생존의 관점 중 일부인 '리비도 이론'만을 가지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 타 학파와 달리 현대 정신분석학은 이론과 기법에서 프로이트 생전의 '이드 심리학' 이후에 안나 프로이트와 하인츠 하르트만의 주도로 이루어진 '자아 심리학', 멜라니 클라인과 영국 분석가들이 주도한 '대상관계 이론', 하인츠 코헛의 '자기 심리학', 스트빈 미첼 주도의 관계 정신분석학, 상호주관성 이론, 윌프레드 비온의 이론, 존 볼비의 애착 이론, 자크 라캉의 이론 등등에 의해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깊어졌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그러한 활발함이 정신분석학의 세계를 더 넓고 깊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p. 277)

 

내 정신분석학에 대한 상식도 프로이트의 성적욕망론 수준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무지였으며, 다양한 이론들이 발견되고 발달되어 오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론서인 것은 아니다. 이론에 대한 부분은 길지 않으며 대부분은 이해를 돕는 수준에서 친절하게 풀이된다.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의 회색들이 필요합니다. 통합되지 않고 대립된 상태로 저장된 선명한 이미지들만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세상이 온통 갈등 구조로 보여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내 마음이 언제나 싸움터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세상을 몇 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색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p. 83)

정신분석도 결국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 치유의 방법으로서 렌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 렌즈를 소개하고 난 저자는 이제 그 렌즈로 감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감정들은 불안, 우울, 분노, 공포, 좌절, 망설임, 열등감, 시기심, 질투 이다.

망설임을 정신분석 용어로는 '양가감정' 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거나 태도를 보인다는 뜻입니다. (p. 147)

일상적인 감정들이고 친숙한 단어들인데 정신분석적으로 들여다보는 감정들의 이해는 그간의 심리학적 풀이들과는 비슷한듯 달랐다. 저자는 감정을 이해시켜줌으로써 그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인생상담' 과 '정신분석' 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서 왔는데 나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치료자라고 해서 금방 알고 방향을 지시할 ㅜ 있겠습니가?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짐작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내가 말한 것에 근거해서 치료자가 나를 이해하고 이해한 것의 의미를 해석해서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학입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치료자는 위험합니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p. 172)

심리적인 문제를 느껴 정신과를 찾아가는 일이 예전보다는 쉽게 용인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심리적 상담과 정신적 치료는 좀 다르다. 거기에 정신분석은 또 다르다. 나에게 필요한 방법을 찾는 것도 다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여러분 앞에 분석가가 있다고 스스로 상상해보세요. 그와 대화함으로써 내가 대상을 찾아 방황하는 현재는 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어떻게 닦아내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p. 179)

렌즈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다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잘 닦아내고 초점을 잘 맞춰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다. 나만 잘 볼 수 있다. 결국 내가 핵심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서 자랍니다. 세상 일이 모두 즐겁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면 고독은 진정으로 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를 통합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정신분석가의 카우치에 누워서 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매우 고독한 작업입니다. 분석가의 작업도 오랜 기간 분석받는 사람의 내면세계와 홀로 직면해야 하니 고독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애착만으로 물든 관계는 멀리 못 갑니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습니다. (p. 190)

loneliness 와 solitude 의 구분은 옛날부터 굉장히 공감하고 좋아하는 개념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다. 참 좋은 문장이다.

사랑은 열정적 행위입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열정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에 의존할 수 있어서입니다. 열정적 사랑은 일종의 중독 상태입니다. 중독이라 말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사랑의 모양이 더 열정적으로 변하길 원하지만, 사랑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성이 생기고 관계가 소원해지면 금단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p. 208)

그랬구나... 나는 여태 살면서 열정적인 사랑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현실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에 대한 팬심이나 이성에 대한 몰입에도 그닥 흥미없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이 단락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늘 즐기는 편이었는데, 이런 성향으로서는 열정적인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ㅎㅎ

용서는 절대로 상대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한 짓을 잊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란 내 상처의 원천이자 원한과 복수의 대상인 상대 자체를 마음에서 버림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p. 219)

용서의 의미는 심리학 책들에 나오는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심리적인 감정들을 많이 다루고 있으면서도 위안이나 힐링, 치유 보다는 이해를 돕고 있다.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어찌보면 심리적 위안 위로 힐링 치유 등의 기본 토대일 것이다. 다양한 감정들의 이해는 그 토대를 충실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는 현재를 당연히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완벽하게 정리하고 미래를 잘 계획하면 그만큼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현재를 소비해버립니다. 현재를 사는 것은 일단 현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해서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합니다. 마음에서 태어나서 곧 사라져버리는 생각, 느낌, 이미지 그리고 몸의 감각에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마음챙김'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개념으로 정신의학에서 받아들여 실용적으로 개발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흐름의 지배자가 되자는 시도아지 노력입니다. 내 마음의 흐름을 옳다고 또는 그르다고 평가하지 말고, 그저 물처럼 살펴보고 경험하면 됩니다. (p. 228)

심리학이라고 불리건 정신분석학이라고 불리건 여하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잘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 여기' 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 그곳이 상담실이 됐건 프로이트의 의자가 됐건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속에 이드와 초자아가 충돌하는 사이사이 느껴지는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연습을 돕는 많은 책들 중에 이 책도 한자리 떡하지 자리잡을 만한 책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갈등의 심리학'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들은 삶의 동반자입니다. 갈등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 곁에 늘 있습니다. 시달리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갈등의 순환 고리를 탐색하고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러한 작업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p. 274)

책의 뒤에 부록으로 '마음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 라고 다양한 책들을 소개시켜 주고 있는데, 읽고 싶은 책들이 여럿 눈에 띄어서 이 책을 읽은 수확중의 또하나가 이기도 했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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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문장이다

 

 

띠지에 이런 홍보문구가 써 있었다.

'150만 독자가 사랑한 <책 읽어주는 남자> 전승환 작가의 첫 번째 인문 에세이'

그리고 표지 뒤쪽에 추천사를 써주신 분이 따듯한 시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님과 <시를 잊은 그대에게> 라는 책으로 인상깊었던 정재찬 교수님 이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 라는 채널명을 알고 있었는데... 그 글들이 모여 이렇게 한권의 책이 되고 심지어 이해인 수녀님과 정재찬 교수님께 추천사를 받을 수 있다니... 저자가 새삼 부러웠다. 좋은 글귀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북 테라피스트라고 마음 큐레이터 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것도 부러웠다.

그렇다. 어쩌면 지금은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내는 것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대신하는 시대가 되고 자신이 쓰지 않아도 다른이의 책 속에서 진주같은 문장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것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되는 세상이 된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문장이 아니라 한권을 추천하는 북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내가 좋았던 그 한권의 책을 다른 이도 완독할 수 있도록 그 책을 진심을 다해 소개하는 북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누군가에게 내 서평이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하길 바라며...

여하튼 이 책은 참 예쁜 책이다.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예쁘고 마음도 예쁜 온통 예쁜 책이다.

저자가 다른 책에서 예쁜 문장들을 많이 인용해 놓았으니, 나는 저자의 문장들 중에서 예쁜 문장들을 조금 골라보았다.

그렇게 불쑥 슬픔이 찾아올 때, 제겐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더 외로워지는 겁니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찾는 거죠. 그러다 뭔가 쿵 마음에 와닿을 때면,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납니다. (p. 15)

불쑥 슬픔이 찾아올때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더 외로워지는 것이라는 말은 의외로 굉장히 힘이 되는 문장이다. 외롭다는 것은 혼자라는 것 따라서 외로움이 힘들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위로가 되는 방법일 것 같지만, 때로는 더더 외로워지는 것이 힘이 될 때가 있다. 지극히 혼자가 되어봐야 외로움의 끝에 가봐야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 애매하게 함께하게 되면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더 외로워지는 것이 마음을 달래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 책이 놓여있다는 것이 어쩌면 저자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펑펑 눈물이 나는 적은 없다;;;)

슬픔과 고통의 형태가 다양하기에, 우리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p. 17)

사람 생김새가 다양한 만큼 슬픔과 고통의 형태도 다양할 것이다. 감정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감정이어도 사람마다 다 다른 감정이다. 같을 수 없다. 그것을 몰라서 우리는 때때로 오해하고 실수하는 게 아닐까? 나의 슬픔과 너의 슬픔은 같은 슬픔일 수 없다. 슬픔이라는 하나의 명칭은 결국 하나일 수 없다. 감정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위로의 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다양성을 새삼 생각하게 한 이 문장이 나는 참 좋았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게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p. 44)

 

저자가 인용한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라는시의 일부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 여기서 나왔었구나... 내가 좋아했던 안도현 시집의 제목 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라는 시집이 있었다.

안도현 시인이 백석 평전 이라는 책도 냈었는데... 백석 시인을 정말 좋아했었구나... 백석평전 을 읽어봐야 겠다....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할 때 후회하게 됩니다. (p. 52)

후회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인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보니 좀 다르게 다가왔다. 한 문장의 기준 시점을 과거에 두느냐 현재에 두느냐에 따라서도 사고방식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후회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니 좀더 실체감 있게 다가왔다.

그때 필요한 것은 좀 더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도 괜찮다는 말, 나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말입니다. (p. 130)

위로의 말 중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잘될거야 힘내' 같은 말들이 아닐까

하지만 때로는 그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괜찮아지지가 않는다.

그때는 괜찮다 힘내 라는 말 보다는 옆에 있어주고 들어주고 살짝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씁쓸해하며 계속 길을 걷는데, 길 위에 툭 튀어나온 가로수의 뿌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던 가로수의 뿌리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로수는 비록 전기톱과 가위에 깎여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땅속 깊은 뿌리만큼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p. 173)

흉하게 잘려나간 가로수들을 보며 가로수를 왜 저렇게 해놓았을꼬 하며 무심하게 지나쳤었다. 그런데 뿌리라니! 뿌리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비슷한 모양새를 한 가로수들도 뿌리는 정말 다 다르게 생겼을 것이다. 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각한다는 것은 늘 묘한 울림과 위로를 준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란 게임처럼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 바뀌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의 시간이 우리에게 유이하며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죠.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가르침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p. 188)

니체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궁금하긴 하지만, 니체의 책을 읽고나면 다른 책은 다 무의미해진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가장 나중으로 미뤄둔 책들이다. 그래서 잘 모르지만, 저자가 인용한 니체의 질문이 그리고 저자의 대답이 의미있었다. 지금의 선택이 바뀌지 않아도 좋을만큼 만족스러운 현재를 살라는 것만큼 최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이십 대, 젊을 때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에요. (p. 241~242)

저가가 인용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말하다> 의 일부분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었다. 이 책과 <보다> <듣다> 3편이 시리즈였는데, 보다 와 말하다 까지만 읽고 그쳤었다. 작가의 잘난체가 너무 심해서 너무너무 재수없어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해도 그의 소설도 읽지 않았었다. 어쩔 수 없이 <오직 두 사람> 이라는 소설집을 읽었어야 했는데, 읽고나니 역시나 소설도 작가의 인성을 보여주는 듯해서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손에 드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작가였다. 말하다 라는 책은 전체적으로 보면 별로였는데, 이렇게 일부분만 떼어놓으면 좋아보일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새삼 문장력을 실감케 했다. 김영하 작가가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 저 구절에 공감할 수 있다. 나이란 그렇게 먹어가는 것이다. 나이 먹어야 알게 되는 것을 몰랐기에 젊었던 것이다.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싶은 것들은 다 그때 몰랐기에 지금 알게될 수 있는 것들이다. 몰랐기에 깨달을 수 있다. 후회할 필요없다. 사람사는게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젊었을때 친구도 술도 없이 보낸 세월이 나이들어 과연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 문장이 와닿을만큼 어느새 늙어버렸다. ㅎㅎ

책 내용중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역사상 가장 용감했던 모험가 중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습니다.(p. 146)' 부분이었다. 콜럼버스는 모험가가 아니라 침략자 였다. 모험가로 신대륙을 탐험한게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새로운 땅을 착취한 사람이었다. 정말 모험가였다면 그가 아메리카에서 저지른 행동들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모험은 발견에서 그치고 발견된 곳을 존중했어야 한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모험가가 아니다. 나는 콜럼버스를 모험가라고 칭하는 글을 볼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저자도 다른 모험가를 예로 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책 속에 읽었던 책들이 나오면 반갑고,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했던 문장들을 다시 보면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안읽었던 책이 나오면 관심가고, 책 전체를 읽고 싶지 않더라도 인용된 문장들만으로도 좋을 수 있는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한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없이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은 겨울에 읽어야 한다.

왠만하면 아주아주 추울때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따듯한 온기가 넘쳐나는 책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겨울과 추위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창밖에 눈이 내리면 더욱 좋고, 눈이 아니라 비여도 좋겠다. 어쨌든 흐릿하고 서늘한 어느날 기분이 좀 쳐져 있을 때 약간 어스름한 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운채 옆에 차한잔 놓고 혼자서 이 책을 펼쳐보면 '아.. 좋다...' 싶을 것이다. 저자의 차한잔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차 한잔 할까요.

세상의 추위에 차갑게 얼어붙은 당신에게

마음을 담아 따듯한 차 한잔 드리겠습니다.

비록 모든 걱정을 털어낼 순 없겠지만

그 차 한잔으로 작은 여유와 행복을 찾기를,

그래서 세상을 다시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찾기를. (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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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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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랑에 열정을 다하는 이들의 따사로운 성장의 기록

"사랑의 라이벌은 인간이 아니라 풀이었습니다"

 

 

애기장대

이 책을 읽고나면 주인공 이름은 까먹어도 이 식물의 이름은 기억하게 된다.

길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보면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잡초로 여겨지는 그런 풀들의 하나일텐데... 이 책의 주인공은 애기장대 풀인가 싶을정도로 책을 다 읽고나면 애기장대풀을 연구하는 식물학자가 된 기분이다.

애기장대는 식물연구를 위한 모델식물이라고 한다. 발아해서 다음 씨가 맺힐 때까지의 1세대 기간이 약 6주로 짧고, 화학물질을 쓰면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체를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며 또 크기가 작아서 유리 용기 안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고 게놈 사이즈가 작다는 등의 이유로 식물 연구를 위한 모델 식물로 많이 활용된다고... 검색해서 사진도 봤는데... 음... 정말 평범한 풀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심야식당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심야식당 이라는 작품을 본 것은 아니지만,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주워들은게 있는데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후지마루는 요리사가 꿈인 청년이고 이 청년이 선택한 식당은 특별하게 다정한 음식들이 가득한 그런 식당이다.

몇 번쯤 엔푸쿠테이에 들러본 후, 후지마루는 이 식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맛이 훌륭했다. 신기한 기예를 뽐내지는 않았지만, 정성껏 만든 마음이 전달되어 온다. 강요하지 않는, 깊이가 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다. 허름한 외관과 식당 주인의 무뚝뚝함에도 불구하고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격도 적당했다. 요리사로서의 기개와 실력이 느껴지는 식당이라고 후지마루는 결론지었다. (p. 13)

후지마루는 엔푸쿠테이 라는 식당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 엔푸쿠테이라는 식당은 번화가라기 보다는 골목식당이라는 느낌의 식당으로 테이블 수도 많지 않지만 단골이 많은 식당이다. 그리고 이 식당 가까이에 T대학이 있는데 그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식당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이 식당의 단골중에 그녀가 있었다.

후지마루는 시선을 내려 고무 슬리퍼를 신은 모토무라의 얇은 조개껍데기 같은 발톱을 보면서 화제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튼 상대는 기공 무늬 티셔츠를 입은 여자다. 찾을 것도 없이 화제는 '식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식물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게 많았던 참이다. 후지마루는 얼굴을 들고 말했다.

"연구실분들은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지요. 저도 채소를 좋아해요. 주방에서 채소를 손질하고 있을 때, 넋을 잃고 그 단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장한테 야단을 맞곤 해요"

"네, 식물은 정말로 신기하고 아름다워요" 모토무라는 웃는 얼굴이 됐다. (p. 42)

 

작품 초반의 분위기로는 이 둘은 정말 천생연분이다. 후지마루는 채소를 썰다가 식재료들의 균형잡힌 구성들을 새삼 발견하며 감탄을 하고 ' 그때마다 후지마루는 생명체를 먹는 거구나, 하고 느낀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조와 몸을 가진 채소, 생선, 고기 같은 것을 먹으면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어쩐지 무서운 느낌도 든다. 후지마루는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겠지만,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p.18) ' 는 식물도취적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토마루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식물에 빠져있었다. 특히, 애기장대풀에.

후지마루는 한 번 더 현미경을 들여다봤다. 생명 활동의 증거를 빛으로 발하고 있는 죽은 세포들의 무리. 작은 잎 안에 존재하는, 아름답고 쓸쓸한 은하.

"후지마루 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후지마루는 모토무라에게 몸을 돌렸다. 모토무라도 후지마루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저는 후지마루 씨의 마음에 응할 수 없어요" (p. 93)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모토무라가 너무나도 담담하게 들려주는 말을 들으며, 후지마루는 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쪾이 더 신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사랑이라고 하는 애매모호한 뭔가를 내세우지 않으면 번식할 수 없는 인간이 더 기묘하고 기분 나쁜 생물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에요"

아아. 후지마루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모토무라씨는 식물이라는 은하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사람이다. 글쎄 봐봐, 모코무라씨의 눈. 파란 빛에 비친 잎사귀의 세포 그 자체가 아닌가. 우주처럼 칠흑 같은 눈.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반짝이는 빛이 깃들어 있다. 분열하고 증식하는 에너지. 연애도 사랑도 아닌 것에 자극을 받으면서 죽을때까지 긴긴 시간을 달려 나아간다. (p. 96)

 

후지마루는 좀 이르다 싶던 순간에 고백을 했고 역시나 차였다. 하지만 낙담하기는 커녕, 모토무라를 비롯해서 같은 연구실의 멤버들을 좀 더 관찰하기로 마음 먹는다. 마쓰다 연구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식물 연구에 그토록 열중하는 걸까? 후지마루가 식물연구소의 사람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페이지부터 화자는 후지마루에서 모토무라로 변경된다.

마쓰다 연구실에는 교수인 마쓰다를 중심으로 연구원인 가와이, 선배 대학원생인 이와마, 대학원생 2년차인 모토무라, 후배 대학원생인 가토 가 있다. 모토무라가 화자가 되면서 이들에 대한 설명이 좀더 구체화 되고 그렇게 연구원들의 세계를 좀더 현실감 높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냈다.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주는 경우가 있구나, 하고 그들을 보면서 모토무라는 실감한다. 너무나도 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애기장대 연구에 몰두하면서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모토무라는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하고 거듭 생각한다. 그러자 신기하게 생각되는 건 역시 식물이다. 뇌도 신경도 없는 식물은 사랑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 같은 게 없어도 빛과 물만 있으면 그것을 식량으로 하여 얼마든지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다.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과는 '산다'는 것의 의미가 전혀 다른 것 같다. 아무리 연구해도 넘을 수 없는, 식물과 인간 사이에 패여 있는 깊은 틈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식물의 신비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신비를 아는 것과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식물이 사람의 모습과 행동과 사랑을 바라보며 "너희들은 어떤 생물이지?"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p. 229~230)

모토무라가 식물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나는 살면서 점점 더 식물의 위대함을 느낀다. 나이들수록 식물의 생명력에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어떻게 자신의 번식환경을 알고 계절을 알고 생체리듬을 조절할까... 시간의 흐름에도 계절의 흐름에도 무뎌져 갈때 식물이 알려주는 그 흐름들은 생각없이 그저 살아지는 시간속에서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각성을 주곤 한다. 하지만 모토무라가 연구하는 내용이 자세히 서술될때마다 내가 지금 연구서 혹은 논문을 읽고 있는 건가 싶으면서 머리가 핑핑 돌기도 한다;;;

실험에 짜인 줄거리는 없어. 연구에 기일 같은 건 없어. 깜빡 실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선입견 없이 잘 관찰하고 성실하고도 공정하게 계속 사실을 기록한다.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생각을 거듭해서, 이 세계의 이치에 조금씩 다가가기를 계속한다.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왜" 라고 질문을 던지며 수수께끼의 근본을 향하여 계속해서 연구한다. 그것이 실험이며 연구다. (p. 349)

모토무라의 성장은 일본의 순수과학 연구자들의 시간을 엿보게 한다. 실생활에 바로 적용되지 않는 학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온 생을 다 바쳐 오로지 탐구정신 하나만으로 연구에 몰입하는 과정은 일본에 노벨상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느낌도 든다. 일본인들 특유의 내적지향성이랄까 여튼 약간 비사교적으로 보이는 성향도 조금 느끼게도 한다. 그렇게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인지 헤깔릴때가 종종 있다;;;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도 없고, 기온이나 계절이라는 개념조차 없는데도, 식물은 정확히 봄을 알고 있다. 온도계나 일기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건 초겨울의 따듯한 날씨가 아니라 진짜 봄이다. 슬슬 여느 해와 같이 활발하게 생명 활동을 할 시기가 왔다' 라고 판단하고 기억한다. 반대로 인간은 뇌와 언어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뇌도 기쁨도 모두 뇌가 내놓은 것이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은 물론 인간이기에 맛볼 수 있는 묘미겠지만, 관점을 바꿔놓고 보면 인간은 뇌의 포로라고 할 수도 있다. 실은 화분의 식물보다도 더 좁은 범위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 (p. 352)

모토무라는 반성했다. 꾸준하게 한 발 한 발 살피며 나아가는 것을 장점으로 삼은 나머지, 지나치게 방어 자세가 되어 있었다. 실점이 없게 신중하게만 하려고 한 나머지,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빈틈없이 하려고만 하다 보니 너무 작아졌다. (p. 359)

실험이란, 식물이란,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이제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사는 것을 그만둘 수 없듯이, 학부생 때 '왜?' '알고싶어' 하며 묻고 바랐던 것은 낭비도 잘못도 아니었다.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신기하고 매력적인 존재, 식물을 알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알아가기 위하여 연구자로 살아갈 거다. (p. 406)

 

모토무라가 인간이 아닌 식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뭔가 계기가 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학창시절과 무난한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좋아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을 타고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연구원들이 다 그렇게 연구만을 위해 살고 그외 모든 관계들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닐텐데... 마쓰다 연구실 에서 식물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오로지 식물만을 생각한다. 아무래도 인간중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연구원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보다.;;;

그렇게 모토무라의 실험일기가 소설의 반이 넘게 서술되다가 끝에 가서 화자가 다시 후지마루로 바뀌는데, 그 계기는 두번째 고백을 하고 두번째로 차이면서 부터다.

모토무라를 이해하기 위한 후지마루의 시간은 흡사 인간애를 통달하는 득도의 입장을 갖게 하는 느낌이다. 착해도 착해도 너~~~무 착한 거지.

그래도 후지마루는 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마쓰다 연구실에 출입해왔다. 그동안 알게 된 것은 '이 사람들은 식물과 식물 연구를 지나치게 좋아해' 라는 것이다. 아마 연구자의 연인이나 가족은 '이 사람, 또 다시 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연구에 빠져 있어' 라고 어이없어 할 때가 있지 않을까.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보지 못한 후지마루로서도, '정말인가. 내가 모토무라 씨 안에서는 식물보다도 아래인 거냐' 라고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식물과 인간을 놓고 인간이 식물보다 당연히 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식물 연구자라면, 점심 식사를 배달하는 근처 식당의 종업원과 식물 중에서 식물 쪽에 더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으흐흑, 역시 사랑의 패잔병은 괴롭다. 그러나 후지마루는 모ㅌ무라가 이야기하는 애기장대에 대한 이야기를 얌전히 경청한다. 그것이 모토무라의 성의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도 후지마루 자신이 애기장대를 비롯한 식물과 식물에 대한 연구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 415)

후지마루는 굉장히 낙천적이다. 사랑의 패잔병은 괴롭다면서 전혀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모토무라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줄 모른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모토무라의 식물에 대한 열정과 동급이다. 둘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성장 중이다. 다만 그 성장의 길이 열차의 선로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채 평행선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잘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모토무라는 잠자코 후지마루를 바라보고 있다. 후지마루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말로 그려내보려고 했다.

"그 열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사랑' 이라고 하지 않나요? 식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모토무라 씨도,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대상인 식물도, 모두 같아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살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p. 457

"가끔 생각해요.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요" 웃음 짓는 모토무라의 눈에는 희망을 닮은 빛이 비쳤다. (p. 458)

우리는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다. 언젠가 죽어서 흙이나 재가 되어도, 인류가 멸종되어도, 지구 위에서 분명 앞으로도 빛을 먹고 사는 생명의 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정말로 신기하다. 각각의 생명체가 갖고 있는 정묘한 매커니즘이. 식물이나 동물은 왜 태어나는지, 태어났는데 왜 또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가는 길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왜 모두 어둠이 아니라 빛을 식량으로 살아 가는지.

후지마루는 행복한 기분이 되어 잠든다. (p. 459~460)

 

이해함으로써 편안해 지는 걸까... 이해하면 사랑의 실패는 상처가 되지 않는 걸까... 상처가 되지 않을만큼만 사랑한 걸까... 이해하기에 그냥 그 상태로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사랑이긴 한걸까... 사랑이란 무엇인 걸까... 후지마루는 왜 행복한 걸까;;;

식물소설이다 보니 식물에 대해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있었는데, 버섯과 딸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디서부터가 시물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인지 엄밀히 선을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전학에 근거하여 조사한 결과, '움직이지 않으니까 식물이다' 라고 생각되어왔던 버섯이 진화의 코스로 볼 때 동물에 가까운 종으로 판명됐듯이, 현재로서 식물 연구는 '생물학' 혹은 '생물과학' 이라는 큰 묶음 속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p. 153)

"그 씨앗 같은 거, 그게 실은 열매야. 딸기의 씨앗은 그 씨앗같이 보이는 것의 속에 들어 있어" (p. 242)

 

남자 주인공이 식당종업원이다 보니 음식에 대한 느낌도 빼놓을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황정은 소설이 생각났다. 3명의 주인공 중 한명인 남자주인공이 작은 식당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데 그 소설에서도 음식은 따듯함의 상징이다. 후지마루의 음식도 비슷하다. 많은 소설에서 음식은 따듯하고 그리운 무언가를 담은 것으로 표현되지만, 음식에 큰 관심이 없고(하지만 잘 먹고 많이 먹는다;;;) 그런 느낌의 음식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음식이 꼭 그래야 하나 싶기도 했다.

직접적인 대면관계보다 온라인상에서의 비대면관계가 늘어가는 사회 속에서 그러한 비대면관계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요즘 관심을 높여가는 분야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라던데.. 그래서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방법보다는 식물을 통한 감상을 담은 에세이들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흐름의 연장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일종의 청정소설 이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고 투명한 청정 그자체로 시종일관 굴곡없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이 소설은 굉장히 착한소설 이다. 인물도 착하고 배경도 착하고 내용도 착한 더이상 착할 수 있나 싶게 착하디 착한 소설이다.

'사랑 없는 세계' 라는 제목에서 약간 비운의 사랑을 예감했는데 의외의 사랑이 펼쳐져서 신기해하며 읽은 작품이다. 이런 소설도 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묘한 소설이다.

식물 가득한 표지그림이 마음에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들이 그려져 있는 표지였다. 딱 하나, 선인장이 빠진게 아쉽다. 둥근 선인장이 꼭 그려져 있어야 할 것 같은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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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레미제라블>과 <양들의 침묵>의 환상적인 만남

인간의 탐욕과 원초적 본성을 파헤친 스웨덴판 셜록 홈스



프레데릭 배크만의 작품들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그가 극찬한 놀라운 데뷔작 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던 책이다.

저자의 소개글을 보니 1979년생인 작가가 2017년 발표한 데뷔작인데, 출판되자 마자 흥행한 책이라고 한다. 후속작인 <1794> 또한 2019년에 출간되자마자 여러나라에 판권이 팔렸다는데, 책을 읽고나니 왜 그런지 알수 있었고 후속작도 어서 번역본이 나왔으면 바라게 되었다.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대단한 작품이었다.


사족으로... 저자의 이름이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인데 '밤과 낮'이라는 의미를 지닌 '나트 오크 다그' 는 현존하는 스웨덴 최고의 귀족가문으로, 이 성은 가문의 문장인 금색과 푸른색으로 위아래가 나뉜 방패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저자소개에 함께 씌여 있는 것을 보고 굳이 이 부분을 알려야 했을까? 싶으면서 유럽에서 귀족가문이란 여전하구나 싶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여하튼, 귀족가문에 걸맞은?! 품격?!있는 작품이긴 했다.


이 소설의 원제인 <1793> 년은 유럽에서 혁명의 시기였다. 귀족에게나 서민에게나.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혁명이 없었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때 스웨덴은 주춤했던 왕정이 복구되었고, 제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권력이 재편될때 스웨덴은 철저히 중립을 지키며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권력재편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국가로서, 대세에 따라 왕이 존재하되 통치하지 않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왕권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혁명으로 역사가 뒤집어진 것은 아님을 이 책을 읽은 후 이런저런 검색을 하면서 알았다. 스웨덴의 역사를 조금 알고 나니 작품 속에서 혁명의 기운이 사그라들었던 정황이 좀더 복합적은 의미로 다가왔다.


책의 시작에 앞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지도가 나오는데, 지도를 보고 있자니 정유정 작가가 생각났다. 지도로 시작하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데, 이 소설도 그런 면에서 비슷했다. 프레데릭 배크만의 책을 읽으며 스웨덴 소설 정서가 한국인 정서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서양소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위화감 없이 읽히는 것이 점점 더 스웨덴 소설에 흥미가 생긴다.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는데 1부 1793년 가을 살인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2부 1793년 여름 사건 전의 시점으로 갔다가 3부 1793년 봄으로 더 거슬러가서 사건의 외적인 상황들을 서술하면서 여름 가을을 거쳐 자연스럽게 4부 1793년 겨울로 이어진다.

출판사의 홍보문구 처럼 혁명의 기운을 품은 시절 빈민촌, 경찰, 가짜이름 등은 레미제라블을 떠올리게 하고, 감금, 폭행, 살인, 싸이코패스 등은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며, 두 명의 남성이 주체적으로 사건해결에 나선다는 점에서 셜록 홈스를 생각나게 하지만, <늑대의 왕> 은 그 작품들과 달랐다. 매번 예상을 뒤엎는 독특한 추리소설이었다. 역사소설이 아닌데 역사를 알게하고 로맨스 소설이 아닌데 사랑의 감정이 내내 흐르는 묘한 스릴러 였다.


1793년 스톡홀름의 온갖 쓰레기가 떠다니는 호수에 팔다리가 절단된(심지어 혀가 잘리고 눈까지 파내어진) 시체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경찰청의 사정상 청장의 친구인 변호사 세실 빙에 에게 의뢰된다. 그리고 세실 빙에는 시체를 건져낸 방범군 미켈 카르델에게 공조할 것을 요청한다. 모든 것에서 이성적인 빙에와 달리 카르델은 모든 상황에서 주먹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었다.


시계를 완전히 해체한 뒤, 그는 모든 작업을 역순으로 반복했다. 손을 떼자 익숙한 째깍째깍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지난 여름 이래 백 번째로 그는 생각했다. 세상은 바로 이렇게 돌아가야 한다. 이성적이면서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모든 부품들에 제자리가 있고 그 부품들의 궤적은 어떠한 영향을 남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p. 21)


세실 빙에는 이런 사고방식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페결핵 환자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였고 아내가 있는 집을 떠나 혼자 병증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었다. 그래서 삐쩍 마르고 창백한 그는 '인데베토우의 유령'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인데베토우는 치안본부다. 우리네 경찰청)


빙에는 마음을 다스리려 눈을 감았다. 잠시간 그의 의식은 완전한 침묵 속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꽂혀 있는 정신 속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그는 오비디우스의 책 한권을 뽑아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었다. '옴니아 무탄투르, 니힐 인헤리트' 모든 것이 변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없다. 위로를 주는 말이었다. (p. 24)

"빙에 씨, 혹시 '호모 호미니 루푸스 에스트' 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플라우투스가 포에니전쟁에서 남긴 말이지요. '사람은 만인에게 늑대다" (p. 92)

"한때 저에게 그리스 고전에 정통한 개인교사가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아주 교묘하게 쓰는 바람에 저는 아이스킬로스를 탐구하며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냈지요. 에우메니데스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비로운 이들' 입니다. 신화에서는 현명한 자들이 복수의 세 여신인 에리니에스의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자 그들을 그런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p.123)


서양인들의 작품에서 그리스로마고전이 인용될 때마다 얘네들은 기원전 것을 대체 얼마나 우려먹는 건가 싶으면서도 여전히 인용될 만큼 완성된 작품들을 그 옛날 부터 익혀온 것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리스고전을 좋아하다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또한 서양역사를 순차적으로 읽는 중이다보니 라틴어 고어와 역사에 대한 인용에서도 역시나 반갑다. 왠지 그냥. ㅋㅎㅎ


당신이야말로 진짜 늑대입니다.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당신이 늑대인 건 분명하지만, 만에 하나 제 짐작이 틀렸다 해도 당신은 조만간 완연한 늑대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늑대 무리와 함께 달리려면 늑대들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송곳니가 생기고, 포식자의 눈빛을 띠겠지요. 피에 굶주린 본능을 거부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 주변에서 피 냄새가 악취처럼 피어오를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당신의 이가 피로 벌겋게 물들고 나면 당신도 내 말이 옳았단 걸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의 송곳니는 깊이 파고들 겁니다. 어쩌면 당신이 둘 중 더 힘이 센 늑대가 될지도 모르지요. (p. 96)


수사하면서 만난 한 영국상인은 빙에를 보고 늑대라고 말한다. 힘센 늑대같은 살인범보다 어쩌면 더 힘센 진짜 늑대라고.

소설속에서 늑대같은 야만성과 폭력성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나오지만, 그 어떤 폭력적 수단을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냉철한 이성으로만 판단하는 빙에를 보고 소설 초반에서 이미 진짜 늑대라고 한다. 읽는 내내 빙에는 늑대같은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영국상인의 말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묘하게 실현된다.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운수가 좋을 것 같더라니" (p. 150)


크리스토페르 블릭스는 17살의 청년이다. (이 시절 유럽에선 이 나이면 군대도 갔다오고 결혼도 하는 그런 나이였다;;;) 왕이 벌인 명분없는 전쟁의 참상에서 살아남아 스톡홀름에 온 이 순진한 시골청년에게 친구인 쉴반 은 빚으로 빚을 갚는 사기꾼으로서의 삶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운수가 좋을 것 같던 그날부터 둘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날의 행운으로 쉽게 번 돈은 나중에 목숨빚으로 돌아오게 된다.


'돈을 좀 꾸어주십시오' 그말에 나는 당황했지. '여윳돈이 있기는 하지만 왜 하필 나를 찾아왔지?' 그러자 청년이 이러더군. '유태인이시니까요' 블릭스, '유태인' 이란 수백 년 전부터 고리대금업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 그전까지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남에게 돈을 꾸어준 적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아무런 상관도 없었어. 내가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구든지 나에게 돈을 꾸러 왔고, 돈을 빌려주는 게 유태인의 본성이라고 믿었기에 감사조차 표하지 않았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재빠르더니 내가 동정심으로 빌려준 돈을 갚을 땐 그렇게 굼뜰 수가 없었어. 그러다 이게 내 직업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어. (p. 187)


사기는 사기에 의해 망하고, 엄청나게 불어난 빚 때문에 청부업자에게 쫒기다 잡혀 간 곳에서 채권자는 블릭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서양소설에서 유태인에 대한 묘사는 이상할정도로 한결같다. 잔혹한 고리대금업자. 그런데 이 고리대금업자의 운명론적 직업론은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한다. 그들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어쩔수 없는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묘한 논리랄까. 이 논리에서 벗어나는 인물이 딱 셋인데 빙에, 카르델 그리고 안나 다. 채권업자에게 잡혀 팔려간 곳에서 블릭스는 괴물의 지시를 받아 괴물같은 짓을 하게 된다.


이 저주받은 시대에 그녀는 아이를 낳을 것이고, 사내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르는 이 아이를 그녀는 길러낼 것이다.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건강하게 자라서 세상을 불의도 악의도 없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 이 아이가 자라서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대를 이어 어려운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이 아이가 바로 증오로 가득한 이 세상을 향한 그녀의 복수가 될 것이다. 사내아이라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칼 크리스토페르 라고 이름을 붙일 것이다. 여자아이라면 이제는 존재하지 않으나 영영 잊히지 않을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안나 스티나 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p. 329)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지만 깨끗하게 살아온 안나는 열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자신을 범하려던 청년의 부모에 의해 창녀로 고발된다. 당시는 동전 몇푼이라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창녀가 넘쳐났고, 그 창녀들을 잡아다가 교화소에 넘긴다는 명목으로 폭력이 횡행했고, 그렇게 잡혀간 교화소에서 또다시 매춘과 폭력에 짓눌리다 삶을 마치게 되는 인생이 흔한 시대였다. 안나는 매춘을 하지 않았으나 매춘을 한다는 명목으로 고발당했고 교화소에 넘겨졌고 폭력에 내몰렸다. 끝까지 지켜온 순결을 결국 교화소에서 잃었고 그렇게 잉태된 아기를 그녀는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탈출했고 블릭스를 만났다.


세실 빙에는 몇 시간 전 카르델에게 털어놓은 비밀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현장에 빙에가 나타났을 때 화를 낸 것은 그가 아니라 아내였다. 빙에는 오로지 하염없는 슬픔밖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 사실이 아내의 화를 더 돋우는 것 같았다. 당장 하사를 침대에서 끌어내리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두들겨 패면서 격한 감정을 드러냈어야 했을까? 그러나 빙에는 폭력이 이성에 앞서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어쩌면 사랑은 어느 지점에서 폭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빙에가 가 닿을 수 없는 지점이었다. 저 멀리서 달을 보고 울부짖는 외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지프 대처가 남긴 마지막 말이 떠올라 빙에는 몸을 떨었다. '당신이야말로 진짜 늑대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당신의 이가 피로 벌겋게 물들고 나면 당신도 내 말이 옳았단 걸 알게 될 겁니다' (p. 390)


빙에는 카르델과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와중에 다양한 것을 알게 된다. 귀족들의 추악한 습성과 군인들의 의미없던 죽음과 왕정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권력다툼과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그가 범인을 찾아갔을 때 범인은 빙에를 환영하며 자백한다. 넓다 못해 광활한 영지위에 쓰러져 가는 저택에서 철저히 혼자 살던 괴물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늑대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당신만큼은 예외입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우월한 종류의 인간이지요. 누구나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와중에 당신은 정의와 이성을 수호하고자 하니까요. '엑스트라 포스텐'에서 당신의 이름을 맞닥뜨리고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순간 제게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제 여정이 끝나는 자리에 당신을 데려다놓은 것은 신의 섭리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피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에서 진술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러니 제가 진술을 마친 이후에 일어나게 될 일은 제 책임인 동시에 당신이 이룬 일이기도 합니다. (p. 438)


나는 범인에게 속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예상은 매번 틀렸다. 귀족들의 음탕하고 잔혹한 사건인가 싶다가 아니었고 도와주지 않을 것 같은데 도와줬고 이사람들이 이렇게 살수 있나 싶은데 살았다. 범인은 자신의 괴물적 범죄를 시대적 혁명의 불씨로 만들고자 했다. 감히!. 하지만 빙에는 진실을 꿰뚫었고 범인에게 속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묘하게 기쁘지가 않다.


북쪽 광장은 눈에 덮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구스타프 아돌프의 새 동상이 꽝꽝 언 덮개로 감싸인 채, 완성되어 공개되기를 이 년째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동상이 왕조의 첫 기마상이 될 것이라고들 했다. 빙에는 멈춰 선 채 덮개에 가려져 형체를 알기 힘든 이 동상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유령 같은 윤곽선을 가진 이 동상은 마치 요한테스 발크가 감라스탄에 풀어놓고자 하는 죽음의 신이라도 되는 듯 광장 한가운데 위협적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p. 451)


역사에서 혁명이 항상 올바른 불씨로 시작됐던 것은 아니다. 역사는 우연적 발화로 필연적 사건이 만들어지곤 했다. 유럽 대륙이 혁명으로 들끓을때 스웨덴의 기울어져 가는 국력과 처참한 국민들의 생활 사이에는 혁명의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 성냥불만 켜도 산불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불씨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죽음의 신을 불러들이는 것이 옳았을지 아니었을지 빙에는 선택했지만 나는 여전히 선택할 수가 없다. 무엇이 더 나았을까...


'난롯가의 불빛 속 미켈 카르델을 돌아보며 미소 짓는 빙에의 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 작품의 가장 뒤통수치는 격의 반전 문장이었다. 자신의 피로 물든 늑대는 과연 늑대인가? 이 소설 속에서 진짜 늑대의 왕은 누구였을까? 세실 빙에였다고 확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 중 한가지다. 이 작품은 그 무엇으로도 규정하기 어려운 의문들을 남기는 기묘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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