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 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박정호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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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제학의 쓸모 X 인문학의 사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그 프레임은 살면서 쌓아온 경험들과 배워익힌 지식과 지혜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따라서 각자의 프레임은 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때로는 다른 이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경제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역사, 문학, 예술, 문화, 정치, 사회 등 다른 분야들을 경제학적 프레임으로 풀어낸 책이다. 경제학자가 아닌 내가 경제학자의 시선을 따라가보는 것은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내용들이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1장에서는 경제학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나 정치경제등 다른 사건들을 예로 들었다면 2장부터는 역사와 예술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경제학적 개념들을 인용해 설명해주고 있다.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어렵지 않아서 읽기 무난했고 딱히 순서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읽어도 괜찮을 내용들이었다. 경제상식도 높이고 지대넓얕식의 인문학 상식도 높일 수 있는 책이랄까.

정확히 말하자면 빌 게이츠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자유재'를 '경제재'로 바꾸어 돈을 번 인물이다. (p. 35)

자유재와 경제재 이야기를 하며 예로 든 인물이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IT업계의 거부 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돈을 받고 팔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새로 창조해낸 것도 아니었다. 그가 위대한 것은 프로그램의 개발자여서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사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시작한 인물이 그였다.

함무라비 법전의 조항들은 4,000년 전부터 정부의 가격통제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경제학 이론에서는 자원배분을 자유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에 개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 44)

함무라비 법전에 경제 관련 조항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수메르 토판들이나 이집트 기록들에서 기록의 시작은 재물이 들고나는 것을 위해서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책을 읽을 수록 사람사는 건 참 수천년간 별로 변한게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경제에서도 그랬네...

 

그 누구도 기축통화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p. 53)

 

스위스가 세계대전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국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위스 화폐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나면 물자의 수송이 더 중요해지지만 경제적 교류는 원활할 수가 없다. 누가 승전국 패전국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나라의 돈을 받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누구도 침범하지 않을 교류의 장소 교류의 수단이 필요했고, 그 조건을 충족시킨 나라가 스위스였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는 자국의 통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어느쪽으로부터도 침공받지 않는 완벽한 안전지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정교한 금융기법이 절실했던 금융회사들의 필요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게 된 시대 상황이 맞물리면서 현재의 금융공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p. 62)

냉전시대 경쟁적인 우주산업은 많은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을 필요로 했으나 냉전이 종식되자 그들은 실업자가 되었다. 그들을 받아준 곳은 금융계였다. 금융이 커져가던 시대에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공급과 수요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다니. 많이 배운이들은 여전히 많이 벌 수 있게 되었다.

개성상인들은 이러한 복식부기의 간편함을 깨닫고 자신들만의 회계장부인 사개치부법에 이를 활용해왔다. 이는 복식부기의 원리를 처음 생각해낸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오늘날 재무회계 처리방법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회계 역사나 기술이 서양의 그것에 비해 결코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p. 93)

무역하면 유럽이므로 회계도 유럽에서 엄청 발달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거래처가 세계곳곳의 여러나라가 아니라고 해서 그 관리방법까지 미약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서양의 회계처리 방식이 전래되기 전까지 사개치부법은 유사한 방식으로 잘 활용되어 왔었다.

원래 주식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때로는 주식이 위험을 줄이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p. 99)

주식 하면 투기 가 떠오른다. 하지만 주식회사의 처음은 위험분산이었다. 가장 위험한 투자처가 된 주식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투자방식이었던 주식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찍부터 서구 열강들과 교역해야 했던 상하이의 상인들이나 동남아 여러 지역을 비롯해 멀리 중동 지역까지 교류했던 광저우 지역의 상인들이 모두 유대인과 비슷한 거래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권과 접촉해야 했던 상인들은 어느 국가이든 상관없이 모두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을 따랐다. (p. 110)

다양한 거래처와 교류한다는 것은 오히려 표준화된 거래방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다 비슷한거다.

순장 문화는 절대왕권이 공고히 다져지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국왕들이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낸 위험회피 전략이었다. (p. 117)

순장에 대해 그저 권력의 과시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순장문화는 경제적 용어로 말하자면 위험회피 전략이 맞았다. 왕이 죽었을때 측근들이 다 살아있다면 왕의 자손이 위협을 받게 되고, 왕이 죽을때 같이 죽는 다는 것을 아는 이상 어떻게든 왕을 오래 그리고 잘 보필해야 하므로, 순장은 일석이조의 왕권강화방법이었다.

과거 영미권 국가에서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 바 있다. 소작농에게 지주계층과 동일한 형태의 선거권이 부여된 시기는 19세기 말에 들어서였다. 또한 비록 귀족은 아니지만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마치 귀족처럼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흔히 이러한 계층을 젠트리라 부른다. (p. 124)

옛날엔 땅을 가진자만이 귀족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받았다. 지금은 건물을 가진자가 권력을 갖는다. 젠트리피케이션?!

신대륙에 끌려와 노예가 된 수십만 명의 흑인들이 소수의 유럽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같다. 유럽인에게 저항했을 때 돌아오는 대가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 얻게 되는 결과는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에서 다소간의 휴식 내지는 안락함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신대륙에 남아 있으면 또 다른 유럽인들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은 저항으로 인해 얻게 될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p. 137)

저자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은 선택을 이야기하며 흑인노예들의 상황을 예로 들지만, 이러한 상황을 경제적인 면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합리성으로만 따지기엔 역사는 희생과 용기로 점철된 시간들이 분명한 획을 긋고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조공은 만주족과 명나라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중계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p. 141)

역사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대개 무리한 조공의 요구로 힘들어하는 우리민족의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조선시대 조공은 흑자무역이었다. 형님국에 아우국이 조공을 바치면 형님국은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이 주어야 했기에 조선은 1년에 3번 조공을 원할때 명나라는 3년에 1번 조공을 원할 정도였다. 조공에 대한 실리성은 분명 알아둬야 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이러한 전략을 현대에는 미국이 계승하고 있다. 미국은 포로가 된 자국 군인을 구출하거나 그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p. 148)

라이언일병구하기 라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스토리만 들었을때 뭐 이런 멍청한 선택이 있나 싶었다. 한명을 구하기 위해 여럿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대체 산술적으로 말이 되는가 말이다. 하지만 로마때 그러했듯 미국에서는 라이언일병구하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거대국가일수록 자국의 군인을 보호하려는 상징성이 없다면 누가 군인이 된다고 나서겠는가?

산타클로스를 오늘날과 같은 친숙한 이미지로 각인시킨 건 코카콜라 회사였다. 1931년 코카콜라 회사 로고와 동일한 색깔인 빨간색 옷과 콜라 고품 모양을 본뜬 흰 수염을 단 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킨 광고를 내 보냈다. (p. 156)

헐 몰랐다. 코카콜라를 겨울에도 그렇게 마시도록 한 것이 산타클로스였구나. 코카콜라보다 훨씬 커진 이미지성을 가진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코카콜라에서 시작됐었구나. wow 마케팅이란!

경제학은 돈을 버는 방법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효과적으로 잘 쓰는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p. 182)

경제학자인 저자에게 지인들이 돈버는 방법좀 알려달라고 농담반진담반 많이들 물어왔나 보다. 저자는 경제학의 학문적 특성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경제학은 이윤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니라 만족감을 논의하는 학문이라고. 사실 경제적인 사람이다 라는 표현은 알뜰하다는 의미였는데 나도 경제학자라면 돈버는 방법까지 아는줄 알았다. ㅍㅎㅎ

단순히 음악에 적합한 배경을 까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음악과 영상을 완벽히 접목해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은 1975년 발표된 영국의 록 그룹 퀸 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최초였다. 퀸이 이 영상을 제작한 이유는 음악을 전달하는 새로운 매개체를 만들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BBC방송국의 인기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신곡을 소개해줄 영상을 제작하려 했다. (p. 225)

퀸 이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구나! 역시 대단한 그룹이다!! 비록 그것이 지금의 뮤직비디오를 생각하고 만든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음악과 영상이 조화로운 작품으로 만든것은 어쨌든 퀸이 최초였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경제적 논리를 갖고 따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문화유산의 가치 평가에서도 경제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p. 254)

외규장각의궤 를 예롤 들어 저자는 소득탄력성과 공급탄력성을 설명한다. 문화유산에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긴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외규장각의궤를 가져오기 위해 벌였던 협상은 결과적으로 경제협상이자 산업협상이었다.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보이지 않는 창고에 보관하는 것은 얼핏 비경제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는 미술관과 미술관 운영자의 이윤을 극대화해주는 가장 주요한 전략이다. (p. 257)

예술에 대한 예시들로 설명되는 경제적 개념들은 특히나 더 흥미로웠는데,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보다 보관하는 작품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저자의 설명을 읽고서야 알았다.

그런데 사실 대공황이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발생한 최초의 사례는 아니다. 모차르트 역시 유효수요 부족으로 인해 피해를 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p. 321)

모차르트는 음악으로도 유명하지만 다른 사례들로도 참 인용이 많이 될 수 있는 인물인듯 하다. 모차르트는 귀족층을 대상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당시는 싱흥중산층이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고 그래서 모차르트도 귀족보다는 자유분방한 신흥 부유층을 타깃으로 삼고 귀족을 풍자하는 '마술피리' 나 '피가로의 결혼' 같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아직 시기상조였다. 신흥 부유층은 음악에 투자할 여력까지는 아직이었다. 모차르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난로세를 회피하기 위해 벽난로를 없앴던 납세자들은 창문 또한 없애기 시작했다.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어둡게 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지어진 건물들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물들을 보면 크기에 비해 창문수가 현격히 적은 기형적인 형태로 건설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p. 356)

영국에 있던 세금중에 창문세라는 것이 웃기기 보다는 창문세를 안내려고 창문을 없거나 작게 만들었던 납세회피자들이 너 기가막힌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 안내려고 부리는 꼼수들은 참...

철과 구리 같은 금속으로 화폐를 만들게 된 것은 당시 금속 광산이 전부 왕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p. 389)

실물자산이 화폐로 사용되는 것은 왕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금속은 무기제작에도 활용도가 높았다. 또한 금속으로 만든 화폐또한 왕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기에 금속화폐의 등장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흔히 인플레이션은 개별 경제주체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주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해방 이후 우리 경제에서는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이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데 일부 기여하게 되었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필리핀은 농지개혁와 근대화, 산업화에 실패해 아직도 15대 지주 가문이 국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p. 399)

혼란기에 어떻게 질서를 잡아내느냐가 지금을 만들었다. 남한의 농지개혁법은 의외로 수천년간 이어온 지주계급을 해체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물론, 그것을 만든 이들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사실 시장경제 매커니즘 면에서 볼 때 다산 정약용이 살아온 시대적 환경이 애덤 스미스의 시대적 환경보다 더 명확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산이 보여준 통찰력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422)

다산 정약용의 일화들은 여기저기서 언급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찌보면 조선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다고나 할까...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하기도 했다.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인 살라디움saladium이 봉급을 의미하는 salary 의 어원이 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은 랭커스터, 맨체스터, 윈체스터 등과 같이 지명의 어미에 '체스터'가 붙은 역우가 상당수다. 체스터는 병영지를 나타내는 라틴어인 castra 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영국에서 체스터로 끝나는 지역들은 로마제국 시절 로마의 가장 변방지역을 지키는 병영지였던 곳이다. (p 401)

사유재산은 라틴어로 프리바투스 privatus 라고 부르는데, 이는 '나누었다' 와 '약탈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사유재산 제도가 전쟁으로 인해 얻은 전리품을 나누어가지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 402)

 

영어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많이 왔을 수밖에 없겠지만, 영어는 모르고 역사는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어원 이야기가 나오면 재밌고 새롭고 좋다. ㅎㅎ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각 지역마다 혹은 국가마다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거래의 득실 또한 우리의 셈법이 아닌 다른 셈법에 의해서도 계산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 454)

세계의 교류가 아무리 활발해지고 가까워져도 비슷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고유한 것들이 있다. 그 고유한 다름은 교류의 토대이자 필요가 된다. 따라서 교류는 계속되고 경제도 계속될 것이다. 다양한 셈법을 익히는 자가 더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그 다양성을 이해하는 방법은 결국 이 책처럼 통섭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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