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의자 (10주년 기념 특별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카우치라 불리는 길다란 눕는 쇼파가 표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일명 프로이트의 의자다.

심리학책은 여럿 읽었는데, 정신분석 책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사실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구분을 잘 모르겠기도 하다.

심리학은 마음 같고 정신분석은 의식 같아서, 심리학은 심장같고 정신분석은 뇌같지만, 요즘은 둘다 뇌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상호보완되는 학문들이라 따로 구분이 가능한가 의아해지기도 한다. 여하튼, 정신분석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관단어 1위로 프로이트가 떠오르기 마련인지라 이 책은 심리학책이 파도처럼 넘치는 요즘 시대에 정신분석학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사실 나한테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지 이 책은 10년동안 꾸준히 읽혀온 책이라고 한다. 이번 책은 10주년 기념판으로 '정신과 의사들을 정신분석하는 마음의 명의와 함께 내 무의식을 찾아가는 여행' 이라는 홍보문구가 띠지에 써있었다. 비밀독서단이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으로 선정한 책이기도 했었다는데, 비밀독서단을 애청했던 나로서는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싶은 당황스러움이;;;

여하튼 저자는 국내 정신분석학의 대가이다. 국내 최초의 '국제정신분석가' 이자 정신분석가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지도 분석가 라고 한다. 서울대병원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하며, 환자 분석과 정신분석가 교육에 앞장섰고, 정신과/신경과/수면의학 전문의로서 각종 미디어에서 대한민국 명의로도 꼽힌 바 있다고 한다. 가히 국내 정신분석학에서는 연륜과 깊이를 두루 갖춘 대표전문가라고 할만한 이력이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축적시켜 풀어낸 책인데다 최신 개정판이라 정신의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한 책이다. 무엇보다 굉장히 쉽게 풀어낸 대중서이다. 모르는이에게 어려운 말로 전문성을 뽐내는 얕은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이가 알만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능력자가 진정한 대가 아닐까.

책은 총 4장으로 구분되는데,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기' 에서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 에서 세세한 감정들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하고, '타인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무의식' 에서나의 무의식을 점검해보며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가지 기본 치유법' 에서 나의 정신을 위한 치유를 살짝 살펴본다.

정신분석은 소위 상담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분석가는 언어로 표현한 텍스트를 해석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나에게 돌려주거나 스스로 의미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줍니다. 인간은 결국 감성적인 동물입니다.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에 문제가 많습니다. 마음도 몸처럼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아픈지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신분석이란 바로 그 마음을 확대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렌즈입니다. (p. 22~23)

심리학 위안 치유 힐링 등은 다 상담으로 연결된다. 타인과 하던 자기자신과 하던 여하튼 상담이 일반적인 귀결지점이다. 저자는 첫장부터 정신분석을 심리적 상담과 구분짓는다. 이렇게 '첫번째 이야기' 에서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설명된다.

프로이트는 마음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마치 커다란 땅덩어리를 나눈 것 같다고 해서 이것을 '지형이론' 이라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형이론 만으로는 해석에 한계점을 느꼈고, 프로이트는 고심끝에 '구조이룬'을 내놓는다. 구조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세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는데, 그들의 이름은 이드, 자아, 초자아 이다. 이후 정신분석은 지형이론과 구조이론을 조합하여 발전되어 왔고 후대 학자들에 의해 또다른 방법들이 추가되어 오고 있다.

현대 정신분석학은 오래된 프로이트의 이론만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평은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비평을 하는 사람들의 눈길은 프로이트가 살아 있던 100년 전의, 그것도 초기 이론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신분석학은 성적 욕망만 논한다"는 식의 비판이 어이없게 나오는 것입니다. (p. 77)

흔히 다른 학파들에서 21세기인 지금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프로이트 생존의 관점 중 일부인 '리비도 이론'만을 가지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 타 학파와 달리 현대 정신분석학은 이론과 기법에서 프로이트 생전의 '이드 심리학' 이후에 안나 프로이트와 하인츠 하르트만의 주도로 이루어진 '자아 심리학', 멜라니 클라인과 영국 분석가들이 주도한 '대상관계 이론', 하인츠 코헛의 '자기 심리학', 스트빈 미첼 주도의 관계 정신분석학, 상호주관성 이론, 윌프레드 비온의 이론, 존 볼비의 애착 이론, 자크 라캉의 이론 등등에 의해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깊어졌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그러한 활발함이 정신분석학의 세계를 더 넓고 깊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p. 277)

 

내 정신분석학에 대한 상식도 프로이트의 성적욕망론 수준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무지였으며, 다양한 이론들이 발견되고 발달되어 오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론서인 것은 아니다. 이론에 대한 부분은 길지 않으며 대부분은 이해를 돕는 수준에서 친절하게 풀이된다.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의 회색들이 필요합니다. 통합되지 않고 대립된 상태로 저장된 선명한 이미지들만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세상이 온통 갈등 구조로 보여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내 마음이 언제나 싸움터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세상을 몇 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색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p. 83)

정신분석도 결국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 치유의 방법으로서 렌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 렌즈를 소개하고 난 저자는 이제 그 렌즈로 감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정신분석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감정들은 불안, 우울, 분노, 공포, 좌절, 망설임, 열등감, 시기심, 질투 이다.

망설임을 정신분석 용어로는 '양가감정' 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거나 태도를 보인다는 뜻입니다. (p. 147)

일상적인 감정들이고 친숙한 단어들인데 정신분석적으로 들여다보는 감정들의 이해는 그간의 심리학적 풀이들과는 비슷한듯 달랐다. 저자는 감정을 이해시켜줌으로써 그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인생상담' 과 '정신분석' 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서 왔는데 나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치료자라고 해서 금방 알고 방향을 지시할 ㅜ 있겠습니가?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짐작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내가 말한 것에 근거해서 치료자가 나를 이해하고 이해한 것의 의미를 해석해서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학입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치료자는 위험합니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p. 172)

심리적인 문제를 느껴 정신과를 찾아가는 일이 예전보다는 쉽게 용인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심리적 상담과 정신적 치료는 좀 다르다. 거기에 정신분석은 또 다르다. 나에게 필요한 방법을 찾는 것도 다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여러분 앞에 분석가가 있다고 스스로 상상해보세요. 그와 대화함으로써 내가 대상을 찾아 방황하는 현재는 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어떻게 닦아내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p. 179)

렌즈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다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잘 닦아내고 초점을 잘 맞춰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다. 나만 잘 볼 수 있다. 결국 내가 핵심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서 자랍니다. 세상 일이 모두 즐겁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면 고독은 진정으로 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를 통합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정신분석가의 카우치에 누워서 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매우 고독한 작업입니다. 분석가의 작업도 오랜 기간 분석받는 사람의 내면세계와 홀로 직면해야 하니 고독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애착만으로 물든 관계는 멀리 못 갑니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습니다. (p. 190)

loneliness 와 solitude 의 구분은 옛날부터 굉장히 공감하고 좋아하는 개념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다. 참 좋은 문장이다.

사랑은 열정적 행위입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열정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에 의존할 수 있어서입니다. 열정적 사랑은 일종의 중독 상태입니다. 중독이라 말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사랑의 모양이 더 열정적으로 변하길 원하지만, 사랑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성이 생기고 관계가 소원해지면 금단증상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p. 208)

그랬구나... 나는 여태 살면서 열정적인 사랑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현실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에 대한 팬심이나 이성에 대한 몰입에도 그닥 흥미없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이 단락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늘 즐기는 편이었는데, 이런 성향으로서는 열정적인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ㅎㅎ

용서는 절대로 상대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한 짓을 잊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란 내 상처의 원천이자 원한과 복수의 대상인 상대 자체를 마음에서 버림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p. 219)

용서의 의미는 심리학 책들에 나오는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심리적인 감정들을 많이 다루고 있으면서도 위안이나 힐링, 치유 보다는 이해를 돕고 있다.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어찌보면 심리적 위안 위로 힐링 치유 등의 기본 토대일 것이다. 다양한 감정들의 이해는 그 토대를 충실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는 현재를 당연히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완벽하게 정리하고 미래를 잘 계획하면 그만큼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현재를 소비해버립니다. 현재를 사는 것은 일단 현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해서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합니다. 마음에서 태어나서 곧 사라져버리는 생각, 느낌, 이미지 그리고 몸의 감각에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마음챙김'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개념으로 정신의학에서 받아들여 실용적으로 개발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흐름의 지배자가 되자는 시도아지 노력입니다. 내 마음의 흐름을 옳다고 또는 그르다고 평가하지 말고, 그저 물처럼 살펴보고 경험하면 됩니다. (p. 228)

심리학이라고 불리건 정신분석학이라고 불리건 여하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잘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 여기' 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 그곳이 상담실이 됐건 프로이트의 의자가 됐건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속에 이드와 초자아가 충돌하는 사이사이 느껴지는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연습을 돕는 많은 책들 중에 이 책도 한자리 떡하지 자리잡을 만한 책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갈등의 심리학'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들은 삶의 동반자입니다. 갈등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 곁에 늘 있습니다. 시달리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갈등의 순환 고리를 탐색하고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러한 작업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p. 274)

책의 뒤에 부록으로 '마음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 라고 다양한 책들을 소개시켜 주고 있는데, 읽고 싶은 책들이 여럿 눈에 띄어서 이 책을 읽은 수확중의 또하나가 이기도 했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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