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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일과 사랑에 열정을 다하는 이들의 따사로운 성장의 기록
"사랑의 라이벌은 인간이 아니라 풀이었습니다"
애기장대
이 책을 읽고나면 주인공 이름은 까먹어도 이 식물의 이름은 기억하게 된다.
길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보면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잡초로 여겨지는 그런 풀들의 하나일텐데... 이 책의 주인공은 애기장대 풀인가 싶을정도로 책을 다 읽고나면 애기장대풀을 연구하는 식물학자가 된 기분이다.
애기장대는 식물연구를 위한 모델식물이라고 한다. 발아해서 다음 씨가 맺힐 때까지의 1세대 기간이 약 6주로 짧고, 화학물질을 쓰면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체를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며 또 크기가 작아서 유리 용기 안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고 게놈 사이즈가 작다는 등의 이유로 식물 연구를 위한 모델 식물로 많이 활용된다고... 검색해서 사진도 봤는데... 음... 정말 평범한 풀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심야식당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심야식당 이라는 작품을 본 것은 아니지만,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주워들은게 있는데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후지마루는 요리사가 꿈인 청년이고 이 청년이 선택한 식당은 특별하게 다정한 음식들이 가득한 그런 식당이다.
몇 번쯤 엔푸쿠테이에 들러본 후, 후지마루는 이 식당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맛이 훌륭했다. 신기한 기예를 뽐내지는 않았지만, 정성껏 만든 마음이 전달되어 온다. 강요하지 않는, 깊이가 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다. 허름한 외관과 식당 주인의 무뚝뚝함에도 불구하고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격도 적당했다. 요리사로서의 기개와 실력이 느껴지는 식당이라고 후지마루는 결론지었다. (p. 13)
후지마루는 엔푸쿠테이 라는 식당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 엔푸쿠테이라는 식당은 번화가라기 보다는 골목식당이라는 느낌의 식당으로 테이블 수도 많지 않지만 단골이 많은 식당이다. 그리고 이 식당 가까이에 T대학이 있는데 그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식당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이 식당의 단골중에 그녀가 있었다.
후지마루는 시선을 내려 고무 슬리퍼를 신은 모토무라의 얇은 조개껍데기 같은 발톱을 보면서 화제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튼 상대는 기공 무늬 티셔츠를 입은 여자다. 찾을 것도 없이 화제는 '식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식물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게 많았던 참이다. 후지마루는 얼굴을 들고 말했다.
"연구실분들은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지요. 저도 채소를 좋아해요. 주방에서 채소를 손질하고 있을 때, 넋을 잃고 그 단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장한테 야단을 맞곤 해요"
"네, 식물은 정말로 신기하고 아름다워요" 모토무라는 웃는 얼굴이 됐다. (p. 42)
작품 초반의 분위기로는 이 둘은 정말 천생연분이다. 후지마루는 채소를 썰다가 식재료들의 균형잡힌 구성들을 새삼 발견하며 감탄을 하고 ' 그때마다 후지마루는 생명체를 먹는 거구나, 하고 느낀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조와 몸을 가진 채소, 생선, 고기 같은 것을 먹으면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어쩐지 무서운 느낌도 든다. 후지마루는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겠지만,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p.18) ' 는 식물도취적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토마루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식물에 빠져있었다. 특히, 애기장대풀에.
후지마루는 한 번 더 현미경을 들여다봤다. 생명 활동의 증거를 빛으로 발하고 있는 죽은 세포들의 무리. 작은 잎 안에 존재하는, 아름답고 쓸쓸한 은하.
"후지마루 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후지마루는 모토무라에게 몸을 돌렸다. 모토무라도 후지마루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저는 후지마루 씨의 마음에 응할 수 없어요" (p. 93)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모토무라가 너무나도 담담하게 들려주는 말을 들으며, 후지마루는 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쪾이 더 신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사랑이라고 하는 애매모호한 뭔가를 내세우지 않으면 번식할 수 없는 인간이 더 기묘하고 기분 나쁜 생물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에요"
아아. 후지마루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모토무라씨는 식물이라는 은하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사람이다. 글쎄 봐봐, 모코무라씨의 눈. 파란 빛에 비친 잎사귀의 세포 그 자체가 아닌가. 우주처럼 칠흑 같은 눈.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반짝이는 빛이 깃들어 있다. 분열하고 증식하는 에너지. 연애도 사랑도 아닌 것에 자극을 받으면서 죽을때까지 긴긴 시간을 달려 나아간다. (p. 96)
후지마루는 좀 이르다 싶던 순간에 고백을 했고 역시나 차였다. 하지만 낙담하기는 커녕, 모토무라를 비롯해서 같은 연구실의 멤버들을 좀 더 관찰하기로 마음 먹는다. 마쓰다 연구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식물 연구에 그토록 열중하는 걸까? 후지마루가 식물연구소의 사람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페이지부터 화자는 후지마루에서 모토무라로 변경된다.
마쓰다 연구실에는 교수인 마쓰다를 중심으로 연구원인 가와이, 선배 대학원생인 이와마, 대학원생 2년차인 모토무라, 후배 대학원생인 가토 가 있다. 모토무라가 화자가 되면서 이들에 대한 설명이 좀더 구체화 되고 그렇게 연구원들의 세계를 좀더 현실감 높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냈다.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주는 경우가 있구나, 하고 그들을 보면서 모토무라는 실감한다. 너무나도 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애기장대 연구에 몰두하면서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모토무라는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하고 거듭 생각한다. 그러자 신기하게 생각되는 건 역시 식물이다. 뇌도 신경도 없는 식물은 사랑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랑 같은 게 없어도 빛과 물만 있으면 그것을 식량으로 하여 얼마든지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다.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과는 '산다'는 것의 의미가 전혀 다른 것 같다. 아무리 연구해도 넘을 수 없는, 식물과 인간 사이에 패여 있는 깊은 틈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식물의 신비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신비를 아는 것과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식물이 사람의 모습과 행동과 사랑을 바라보며 "너희들은 어떤 생물이지?"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p. 229~230)
모토무라가 식물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나는 살면서 점점 더 식물의 위대함을 느낀다. 나이들수록 식물의 생명력에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어떻게 자신의 번식환경을 알고 계절을 알고 생체리듬을 조절할까... 시간의 흐름에도 계절의 흐름에도 무뎌져 갈때 식물이 알려주는 그 흐름들은 생각없이 그저 살아지는 시간속에서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각성을 주곤 한다. 하지만 모토무라가 연구하는 내용이 자세히 서술될때마다 내가 지금 연구서 혹은 논문을 읽고 있는 건가 싶으면서 머리가 핑핑 돌기도 한다;;;
실험에 짜인 줄거리는 없어. 연구에 기일 같은 건 없어. 깜빡 실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선입견 없이 잘 관찰하고 성실하고도 공정하게 계속 사실을 기록한다.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생각을 거듭해서, 이 세계의 이치에 조금씩 다가가기를 계속한다.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왜" 라고 질문을 던지며 수수께끼의 근본을 향하여 계속해서 연구한다. 그것이 실험이며 연구다. (p. 349)
모토무라의 성장은 일본의 순수과학 연구자들의 시간을 엿보게 한다. 실생활에 바로 적용되지 않는 학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온 생을 다 바쳐 오로지 탐구정신 하나만으로 연구에 몰입하는 과정은 일본에 노벨상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느낌도 든다. 일본인들 특유의 내적지향성이랄까 여튼 약간 비사교적으로 보이는 성향도 조금 느끼게도 한다. 그렇게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인지 헤깔릴때가 종종 있다;;;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도 없고, 기온이나 계절이라는 개념조차 없는데도, 식물은 정확히 봄을 알고 있다. 온도계나 일기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건 초겨울의 따듯한 날씨가 아니라 진짜 봄이다. 슬슬 여느 해와 같이 활발하게 생명 활동을 할 시기가 왔다' 라고 판단하고 기억한다. 반대로 인간은 뇌와 언어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뇌도 기쁨도 모두 뇌가 내놓은 것이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은 물론 인간이기에 맛볼 수 있는 묘미겠지만, 관점을 바꿔놓고 보면 인간은 뇌의 포로라고 할 수도 있다. 실은 화분의 식물보다도 더 좁은 범위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 (p. 352)
모토무라는 반성했다. 꾸준하게 한 발 한 발 살피며 나아가는 것을 장점으로 삼은 나머지, 지나치게 방어 자세가 되어 있었다. 실점이 없게 신중하게만 하려고 한 나머지,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빈틈없이 하려고만 하다 보니 너무 작아졌다. (p. 359)
실험이란, 식물이란,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이제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사는 것을 그만둘 수 없듯이, 학부생 때 '왜?' '알고싶어' 하며 묻고 바랐던 것은 낭비도 잘못도 아니었다.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신기하고 매력적인 존재, 식물을 알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알아가기 위하여 연구자로 살아갈 거다. (p. 406)
모토무라가 인간이 아닌 식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뭔가 계기가 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학창시절과 무난한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좋아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을 타고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연구원들이 다 그렇게 연구만을 위해 살고 그외 모든 관계들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닐텐데... 마쓰다 연구실 에서 식물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오로지 식물만을 생각한다. 아무래도 인간중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연구원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보다.;;;
그렇게 모토무라의 실험일기가 소설의 반이 넘게 서술되다가 끝에 가서 화자가 다시 후지마루로 바뀌는데, 그 계기는 두번째 고백을 하고 두번째로 차이면서 부터다.
모토무라를 이해하기 위한 후지마루의 시간은 흡사 인간애를 통달하는 득도의 입장을 갖게 하는 느낌이다. 착해도 착해도 너~~~무 착한 거지.
그래도 후지마루는 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마쓰다 연구실에 출입해왔다. 그동안 알게 된 것은 '이 사람들은 식물과 식물 연구를 지나치게 좋아해' 라는 것이다. 아마 연구자의 연인이나 가족은 '이 사람, 또 다시 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연구에 빠져 있어' 라고 어이없어 할 때가 있지 않을까.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보지 못한 후지마루로서도, '정말인가. 내가 모토무라 씨 안에서는 식물보다도 아래인 거냐' 라고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식물과 인간을 놓고 인간이 식물보다 당연히 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식물 연구자라면, 점심 식사를 배달하는 근처 식당의 종업원과 식물 중에서 식물 쪽에 더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으흐흑, 역시 사랑의 패잔병은 괴롭다. 그러나 후지마루는 모ㅌ무라가 이야기하는 애기장대에 대한 이야기를 얌전히 경청한다. 그것이 모토무라의 성의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도 후지마루 자신이 애기장대를 비롯한 식물과 식물에 대한 연구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 415)
후지마루는 굉장히 낙천적이다. 사랑의 패잔병은 괴롭다면서 전혀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모토무라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줄 모른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모토무라의 식물에 대한 열정과 동급이다. 둘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성장 중이다. 다만 그 성장의 길이 열차의 선로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채 평행선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잘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모토무라는 잠자코 후지마루를 바라보고 있다. 후지마루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말로 그려내보려고 했다.
"그 열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사랑' 이라고 하지 않나요? 식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모토무라 씨도,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대상인 식물도, 모두 같아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살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p. 457
"가끔 생각해요.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요" 웃음 짓는 모토무라의 눈에는 희망을 닮은 빛이 비쳤다. (p. 458)
우리는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다. 언젠가 죽어서 흙이나 재가 되어도, 인류가 멸종되어도, 지구 위에서 분명 앞으로도 빛을 먹고 사는 생명의 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정말로 신기하다. 각각의 생명체가 갖고 있는 정묘한 매커니즘이. 식물이나 동물은 왜 태어나는지, 태어났는데 왜 또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가는 길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왜 모두 어둠이 아니라 빛을 식량으로 살아 가는지.
후지마루는 행복한 기분이 되어 잠든다. (p. 459~460)
이해함으로써 편안해 지는 걸까... 이해하면 사랑의 실패는 상처가 되지 않는 걸까... 상처가 되지 않을만큼만 사랑한 걸까... 이해하기에 그냥 그 상태로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사랑이긴 한걸까... 사랑이란 무엇인 걸까... 후지마루는 왜 행복한 걸까;;;
식물소설이다 보니 식물에 대해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있었는데, 버섯과 딸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디서부터가 시물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인지 엄밀히 선을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전학에 근거하여 조사한 결과, '움직이지 않으니까 식물이다' 라고 생각되어왔던 버섯이 진화의 코스로 볼 때 동물에 가까운 종으로 판명됐듯이, 현재로서 식물 연구는 '생물학' 혹은 '생물과학' 이라는 큰 묶음 속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p. 153)
"그 씨앗 같은 거, 그게 실은 열매야. 딸기의 씨앗은 그 씨앗같이 보이는 것의 속에 들어 있어" (p. 242)
남자 주인공이 식당종업원이다 보니 음식에 대한 느낌도 빼놓을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황정은 소설이 생각났다. 3명의 주인공 중 한명인 남자주인공이 작은 식당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데 그 소설에서도 음식은 따듯함의 상징이다. 후지마루의 음식도 비슷하다. 많은 소설에서 음식은 따듯하고 그리운 무언가를 담은 것으로 표현되지만, 음식에 큰 관심이 없고(하지만 잘 먹고 많이 먹는다;;;) 그런 느낌의 음식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음식이 꼭 그래야 하나 싶기도 했다.
직접적인 대면관계보다 온라인상에서의 비대면관계가 늘어가는 사회 속에서 그러한 비대면관계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요즘 관심을 높여가는 분야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라던데.. 그래서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방법보다는 식물을 통한 감상을 담은 에세이들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흐름의 연장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일종의 청정소설 이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고 투명한 청정 그자체로 시종일관 굴곡없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이 소설은 굉장히 착한소설 이다. 인물도 착하고 배경도 착하고 내용도 착한 더이상 착할 수 있나 싶게 착하디 착한 소설이다.
'사랑 없는 세계' 라는 제목에서 약간 비운의 사랑을 예감했는데 의외의 사랑이 펼쳐져서 신기해하며 읽은 작품이다. 이런 소설도 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묘한 소설이다.
식물 가득한 표지그림이 마음에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들이 그려져 있는 표지였다. 딱 하나, 선인장이 빠진게 아쉽다. 둥근 선인장이 꼭 그려져 있어야 할 것 같은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