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가 인용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말하다> 의 일부분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었다. 이 책과 <보다> <듣다> 3편이 시리즈였는데, 보다 와 말하다 까지만 읽고 그쳤었다. 작가의 잘난체가 너무 심해서 너무너무 재수없어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해도 그의 소설도 읽지 않았었다. 어쩔 수 없이 <오직 두 사람> 이라는 소설집을 읽었어야 했는데, 읽고나니 역시나 소설도 작가의 인성을 보여주는 듯해서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손에 드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작가였다. 말하다 라는 책은 전체적으로 보면 별로였는데, 이렇게 일부분만 떼어놓으면 좋아보일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새삼 문장력을 실감케 했다. 김영하 작가가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 저 구절에 공감할 수 있다. 나이란 그렇게 먹어가는 것이다. 나이 먹어야 알게 되는 것을 몰랐기에 젊었던 것이다.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싶은 것들은 다 그때 몰랐기에 지금 알게될 수 있는 것들이다. 몰랐기에 깨달을 수 있다. 후회할 필요없다. 사람사는게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젊었을때 친구도 술도 없이 보낸 세월이 나이들어 과연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 문장이 와닿을만큼 어느새 늙어버렸다. ㅎㅎ
책 내용중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역사상 가장 용감했던 모험가 중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습니다.(p. 146)' 부분이었다. 콜럼버스는 모험가가 아니라 침략자 였다. 모험가로 신대륙을 탐험한게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새로운 땅을 착취한 사람이었다. 정말 모험가였다면 그가 아메리카에서 저지른 행동들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모험은 발견에서 그치고 발견된 곳을 존중했어야 한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모험가가 아니다. 나는 콜럼버스를 모험가라고 칭하는 글을 볼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저자도 다른 모험가를 예로 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책 속에 읽었던 책들이 나오면 반갑고,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했던 문장들을 다시 보면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안읽었던 책이 나오면 관심가고, 책 전체를 읽고 싶지 않더라도 인용된 문장들만으로도 좋을 수 있는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한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없이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은 겨울에 읽어야 한다.
왠만하면 아주아주 추울때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따듯한 온기가 넘쳐나는 책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겨울과 추위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창밖에 눈이 내리면 더욱 좋고, 눈이 아니라 비여도 좋겠다. 어쨌든 흐릿하고 서늘한 어느날 기분이 좀 쳐져 있을 때 약간 어스름한 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운채 옆에 차한잔 놓고 혼자서 이 책을 펼쳐보면 '아.. 좋다...' 싶을 것이다. 저자의 차한잔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