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문장이다

 

 

띠지에 이런 홍보문구가 써 있었다.

'150만 독자가 사랑한 <책 읽어주는 남자> 전승환 작가의 첫 번째 인문 에세이'

그리고 표지 뒤쪽에 추천사를 써주신 분이 따듯한 시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님과 <시를 잊은 그대에게> 라는 책으로 인상깊었던 정재찬 교수님 이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 라는 채널명을 알고 있었는데... 그 글들이 모여 이렇게 한권의 책이 되고 심지어 이해인 수녀님과 정재찬 교수님께 추천사를 받을 수 있다니... 저자가 새삼 부러웠다. 좋은 글귀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북 테라피스트라고 마음 큐레이터 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것도 부러웠다.

그렇다. 어쩌면 지금은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내는 것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대신하는 시대가 되고 자신이 쓰지 않아도 다른이의 책 속에서 진주같은 문장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것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되는 세상이 된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문장이 아니라 한권을 추천하는 북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내가 좋았던 그 한권의 책을 다른 이도 완독할 수 있도록 그 책을 진심을 다해 소개하는 북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누군가에게 내 서평이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하길 바라며...

여하튼 이 책은 참 예쁜 책이다.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예쁘고 마음도 예쁜 온통 예쁜 책이다.

저자가 다른 책에서 예쁜 문장들을 많이 인용해 놓았으니, 나는 저자의 문장들 중에서 예쁜 문장들을 조금 골라보았다.

그렇게 불쑥 슬픔이 찾아올 때, 제겐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더 외로워지는 겁니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찾는 거죠. 그러다 뭔가 쿵 마음에 와닿을 때면,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납니다. (p. 15)

불쑥 슬픔이 찾아올때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더 외로워지는 것이라는 말은 의외로 굉장히 힘이 되는 문장이다. 외롭다는 것은 혼자라는 것 따라서 외로움이 힘들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위로가 되는 방법일 것 같지만, 때로는 더더 외로워지는 것이 힘이 될 때가 있다. 지극히 혼자가 되어봐야 외로움의 끝에 가봐야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 애매하게 함께하게 되면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더 외로워지는 것이 마음을 달래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 책이 놓여있다는 것이 어쩌면 저자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펑펑 눈물이 나는 적은 없다;;;)

슬픔과 고통의 형태가 다양하기에, 우리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p. 17)

사람 생김새가 다양한 만큼 슬픔과 고통의 형태도 다양할 것이다. 감정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감정이어도 사람마다 다 다른 감정이다. 같을 수 없다. 그것을 몰라서 우리는 때때로 오해하고 실수하는 게 아닐까? 나의 슬픔과 너의 슬픔은 같은 슬픔일 수 없다. 슬픔이라는 하나의 명칭은 결국 하나일 수 없다. 감정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위로의 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다양성을 새삼 생각하게 한 이 문장이 나는 참 좋았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게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p. 44)

 

저자가 인용한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라는시의 일부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 여기서 나왔었구나... 내가 좋아했던 안도현 시집의 제목 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라는 시집이 있었다.

안도현 시인이 백석 평전 이라는 책도 냈었는데... 백석 시인을 정말 좋아했었구나... 백석평전 을 읽어봐야 겠다....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할 때 후회하게 됩니다. (p. 52)

후회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인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보니 좀 다르게 다가왔다. 한 문장의 기준 시점을 과거에 두느냐 현재에 두느냐에 따라서도 사고방식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후회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니 좀더 실체감 있게 다가왔다.

그때 필요한 것은 좀 더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도 괜찮다는 말, 나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말입니다. (p. 130)

위로의 말 중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잘될거야 힘내' 같은 말들이 아닐까

하지만 때로는 그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괜찮아지지가 않는다.

그때는 괜찮다 힘내 라는 말 보다는 옆에 있어주고 들어주고 살짝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씁쓸해하며 계속 길을 걷는데, 길 위에 툭 튀어나온 가로수의 뿌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던 가로수의 뿌리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로수는 비록 전기톱과 가위에 깎여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땅속 깊은 뿌리만큼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p. 173)

흉하게 잘려나간 가로수들을 보며 가로수를 왜 저렇게 해놓았을꼬 하며 무심하게 지나쳤었다. 그런데 뿌리라니! 뿌리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비슷한 모양새를 한 가로수들도 뿌리는 정말 다 다르게 생겼을 것이다. 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각한다는 것은 늘 묘한 울림과 위로를 준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란 게임처럼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 바뀌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의 시간이 우리에게 유이하며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죠.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가르침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p. 188)

니체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궁금하긴 하지만, 니체의 책을 읽고나면 다른 책은 다 무의미해진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가장 나중으로 미뤄둔 책들이다. 그래서 잘 모르지만, 저자가 인용한 니체의 질문이 그리고 저자의 대답이 의미있었다. 지금의 선택이 바뀌지 않아도 좋을만큼 만족스러운 현재를 살라는 것만큼 최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이십 대, 젊을 때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에요. (p. 241~242)

저가가 인용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말하다> 의 일부분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었다. 이 책과 <보다> <듣다> 3편이 시리즈였는데, 보다 와 말하다 까지만 읽고 그쳤었다. 작가의 잘난체가 너무 심해서 너무너무 재수없어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해도 그의 소설도 읽지 않았었다. 어쩔 수 없이 <오직 두 사람> 이라는 소설집을 읽었어야 했는데, 읽고나니 역시나 소설도 작가의 인성을 보여주는 듯해서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손에 드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작가였다. 말하다 라는 책은 전체적으로 보면 별로였는데, 이렇게 일부분만 떼어놓으면 좋아보일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새삼 문장력을 실감케 했다. 김영하 작가가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 저 구절에 공감할 수 있다. 나이란 그렇게 먹어가는 것이다. 나이 먹어야 알게 되는 것을 몰랐기에 젊었던 것이다.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싶은 것들은 다 그때 몰랐기에 지금 알게될 수 있는 것들이다. 몰랐기에 깨달을 수 있다. 후회할 필요없다. 사람사는게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젊었을때 친구도 술도 없이 보낸 세월이 나이들어 과연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 문장이 와닿을만큼 어느새 늙어버렸다. ㅎㅎ

책 내용중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역사상 가장 용감했던 모험가 중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습니다.(p. 146)' 부분이었다. 콜럼버스는 모험가가 아니라 침략자 였다. 모험가로 신대륙을 탐험한게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새로운 땅을 착취한 사람이었다. 정말 모험가였다면 그가 아메리카에서 저지른 행동들은 말이 되지 않는다. 모험은 발견에서 그치고 발견된 곳을 존중했어야 한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모험가가 아니다. 나는 콜럼버스를 모험가라고 칭하는 글을 볼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저자도 다른 모험가를 예로 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책 속에 읽었던 책들이 나오면 반갑고,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했던 문장들을 다시 보면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안읽었던 책이 나오면 관심가고, 책 전체를 읽고 싶지 않더라도 인용된 문장들만으로도 좋을 수 있는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한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없이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은 겨울에 읽어야 한다.

왠만하면 아주아주 추울때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따듯한 온기가 넘쳐나는 책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겨울과 추위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창밖에 눈이 내리면 더욱 좋고, 눈이 아니라 비여도 좋겠다. 어쨌든 흐릿하고 서늘한 어느날 기분이 좀 쳐져 있을 때 약간 어스름한 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운채 옆에 차한잔 놓고 혼자서 이 책을 펼쳐보면 '아.. 좋다...' 싶을 것이다. 저자의 차한잔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차 한잔 할까요.

세상의 추위에 차갑게 얼어붙은 당신에게

마음을 담아 따듯한 차 한잔 드리겠습니다.

비록 모든 걱정을 털어낼 순 없겠지만

그 차 한잔으로 작은 여유와 행복을 찾기를,

그래서 세상을 다시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찾기를. (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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