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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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온몸을 힘차게 밀어 찾아 나가는

따뜻한 체온과 완벽한 교감의 순간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도착한 사랑이야기

내 사랑이 이상한가요?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었을 때 그동안 누구도 장애인 문제를 이렇게 꺼내놓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스스로가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라서 그 누구의 말보다 진실함이 절절하게 다가왔었더랬다.

그리고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회에서 자신을 실격당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하고 알아야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대만인 저자가 대만내에서의 장애인 문제를 '성과 사랑' 을 주제로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취합하여 풀어낸 대중서와 연구서의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이다. 원제는 '암흑의 나라' 라고 한다. 장애인들의 욕망은 그동안 빛이 비추는 사회에선 드러낼 수 없었던 그렇게 비자의적으로 어둠속에 갇혀 있었던 문제였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환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일진대 빛을 만끽하며 살아온 우리가 어둠에 대해 이제는 제대로 생각해보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타이완에서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소개하는 이 책을 읽기전 글로 소개하는 김원영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소개글에서 이미 이런 주제를 언급하는 것에 대한 용기랄까 결의같은 것이 느껴져서 읽기전부터 어서 이런 책이 좀더 편하게 읽혀지고 알려질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의 교육 체계와 사회복지기관, 사회 여론이 여태까지 장애인을 무성애자나 성별을 지운 존재로 취급하면서 일률적인 짧은 머리, 여럿이 함께 자는 군대식 잠자리, 집단 탈의, 집단 목욕 등의 형태로 돌봄의 편의를 추구해왔고, 그들의 욕망을 건드릴까 봐 제대로 된 성교육을 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제시하라는 건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그럼 성 문제가 터진다면? 그냥 보고도 못본 체한다. (p. 22)


오랜 세월 장애인의 성적 충동은 일종의 금기사항이었다. 이들은 무성애자로 취급되었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이상 성별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성별은 생존의 욕구처럼 당연하게 본능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것만 나또한 그저 그들을 보살핌이 필요한 무성애적 존재로 생각해 왔음을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편의적으로 시설에서 돌봄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졌음을 부끄럽게 인정한다...


장애는 개인의 불행이지만, 그 불행을 어떻게 대면하는가는 한 사회가 '장애' 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는지를 반영한다. 은연중이든 노골적이든 장애에 대한 인식에 차별이 있는지, 일상에 무장애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p. 25)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불편한 부끄러움을 느낀 내가 갖고 있는 인식은 그동안 내가 받아온 교육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는 어떤 교육을 해왔는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반에 장애인 친구 한명 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특별학급이라고 장애인반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한반에 함께 존재했던 그들이 고등학교 대학교에 올라갈 수록 눈에 띠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물며 지금은 초등학교에 장애인친구가 있는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다. 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걸까??


그들은(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 성인이 된 지적장애인 자녀들을 어린아이 취급한다. 이 '아이들'이 성별 개념이 있는지, 사랑과 애정 관계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감히 생각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p. 39)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그동안 우왕좌왕하며 걸어온 길에 실수가 오해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거기에는 아이가 울퉁불퉁한 길을 걷지 않게 하려는 선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길 바란다. 그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게 설마 잘못된 일일까? (p. 50)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 중에서 부모가 살뜰히 집안에서 보살피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성어린 보살핌을 제공하는 부모들조차도 자신들의 자녀가 성인이 되었음을 인지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저 평생 '아이' 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 '아이' 안에도 성호르몬이 존재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다 선의이다. 그저 자식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부모의 마음이 자식의 욕구와 부딪히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독립적 주체가 되기 힘든 장애인들의 경우는 오히려 더 억압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어느쪽도 함부로 잘못됐다 말할 수 없다.


성교육은 단지 '노no'라고 말할 줄 아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이면의 정서적 연결과 유대 관계 형성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사들은 늘 이 점은 소홀이 한 채 올바른 관념만을 이끌어내려 애쓰고,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힘겨루기를 반복하다 쌍방이 지쳐 나가떨어지면, 결국 '학생이 멍청해서' 라는 변명으로 결과를 합리화한다. 이처럼 쌍방이 망하는 길을 걸어온 셈이다. (p. 45)


성교육의 부실함은 장애아들에게만 있어온 것은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학교에서도 성교육은 여전히 부실하고 난해하다. 범죄예방 측면에서 성교육을 다루면 성은 곧 범죄가 되고 생물학적 측면에서 성교육을 다루면 성은 그저 무의식적 본능이 된다. 성과 사랑을 연결하고 성과 유대감을 연결하는 성교육의 부실함은 사랑을 영화처럼 낭만덩어리로 만들거나 사랑을 무서운 범죄연결고리로 만들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랑도 아니고 일단 썸부터 시작하는 사랑예행연습이 필요한 시대가 되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지적장애인에게도 성적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진실한 경험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진실한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지적장애인이 성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장애인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험악한 사실 앞에서 단순히 '신체의 자기결정권 존중' '성의 자유로운 추구'만 주장한다면 돌보는 사람들의 우려는 불식될 수 없으리라. (p. 92)


성폭력범죄에서 지적장애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일 것이다. 시설에서의 집단 사례라도 발각되면 뉴스에서 화젯거리로 삼는 기간만 관심이 쏠렸다가 흐지부지... 그러다 또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악순환... 이런 상황에서 지적장애인의 성적 욕망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장애인들에게 책임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장애인들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장애인들의 성적욕망을 억압한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흐름인걸까? 책임과 윤리는 모든 인간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어느 한쪽에만 과하게 요구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을 '환자'와 '불구자'로 보는 데 익숙한 우리는 의학과 손상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저 의식주와 의료, 장애없는 환경일 뿐 사랑과 우정, 친밀한 인간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의 다발성 경화증 환자 투탄 하나포드가 "남자는 늘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착각한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은 늘 장애인의 필요를 안다고 착각한다" 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p. 115)


명언이다. 우리는 늘 내가 상대방의 요구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착각인것을;;;


'건강하고' '온전한' 신체만이 성과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건강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신체는 그저 '다를' 뿐이다. 장애를 가진 신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동정' '공포' '기형' 이라는 편견은 악의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단순히 낯설어서인지도 모른다. (p. 129)


낯섬도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면 좀더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가 대만에 거주할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낯설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저자는 장애인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한데 우리사회에서는 휠체어든 다른 장애든 장애인들을 만나는 경우자체가 드물다. 드문만큼 만나면 한번쯤 더 눈길을 주고 더 쳐다보고 지나간다. 그런 문화부터 바뀌어야 할텐데... 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사회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참...


낯선 생활과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국제결혼은 쌍방이 고립되었다는 무력감을 느끼기 쉽지만 외국인 배우자가 직면하는 압박과 고통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만약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인륜지대사를 그리 좋다고 여겨지지 않는 상대와 치르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고향을 떠나온 그들은 이후이 세월 동안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망은 가슴 깊이 묻어둔 체 지내다 결국에는 거의 잊고 산다. 하지만 언젠가 혼란스러운 욕망이 불쑥 수면 위로 떠오른다면 가정이 서로를 옥죄는 감옥이 될지도 모른다. (p. 155)

"아들을 외국인 신부와 맺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휠체어에 앉은 여자는 맞을 수 없다" (p. 189)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 동남아 외국인 신부 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만에서는 장애인 남성이 동남아 신부를 사오는 경우가 꽤 많은 듯 하다. 우리나라 농촌총각들이 동남아 신부를 사오듯이... 여하튼 그래도 여건이 되고 남성인 장애인은 신부를 사.올. 수라도 있다. 하지만 여성 장애인은??

모든 사회엔 계층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사회 약자층이라고 여겨지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더 약자층은 존재했다. 그나마 남성장애인의 성적욕망은 어떤식으로든 해소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장애인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성적욕망은 둘째치고 가사와 출산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것 같은 여성장애인은 어렵게 인연을 만나도 거부당한다. 같은 장애인 남성에게조차 버려진다.


손천사는 자위와 성욕 충족 등 순수하게 생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을 애매하게 보고 금기시하는 주류 사회의 태도에 도전하고자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오직 이성적인 소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의 필요를 이해시켜야만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론은 그들의 신념에 그다지 흥미가 없고 보도는 늘 선정적으로만 흐른다. (p. 247)

"인정해요. 우리는 욕망을 이용해 장애인을 도와요. 그들이 욕망을 삶의 힘으로 바꿀 수 있게 격려하지요. 서비스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역량을 펼쳐 나가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하고요. 욕망이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왜 우리는 이렇게 성과 욕망을 두려워하죠? (p. 262)


책의 뒷부분에는 장애인의 성적욕구를 풀어주는 무료자원봉사단체 손천사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일본의 유료서비스업체 화이트핸즈 와 프랑스의 APPAS, 스위스의 SEHP, 이탈리아의 LoveGiver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해소해주는 사례들을 보면서 복잡다단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손천사를 만든 황즈젠은 장애인이면서 동성애자 이다. 첩첩산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장애인의 성문제 관련 최전선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생각해보면 왜 그러면 안된다고 느끼는 것인가? 그냥 다 다른 사람일 뿐인데...


장애인의 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일 뿐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정상'을 규정하고 '차이'를 대하는지를 연구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미천한 수준이다. 인간됨과 관련한 한 차례의 도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p. 273)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법이나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성 관념의 해방인지도 모른다. 성의 범람이 아니라, 지식과 마음의 해방말이다.

성적 욕구를 전적으로 문제시하고 불안해하는 태도야말로 더 넓고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마음의 문턱이다. 신체는 인류가 자아를 장악하는 도구이자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단지 육신이 존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로 진입하는 중요한 통로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고, 사회의 명와 암을 이해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든 장애인에게 돌려주자. 이는 인도주의적인 동정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펼쳐 보이는 일이다. (p. 303)


장애는 크게 신체적 장애와 지적 장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과 후천적 장애에 대해서는 그나마 장애인으로서는 비장애인처럼 용인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선천적 게다가 지적 장애이기까지 하면 이경우의 장애인은 거의 사람취급 못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성적 욕망이라니 얼마나 낯선 주제인가 게다가 동성애이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어려운 주제인가

이 어렵고 낯선 주제를 삶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공감은 낯섬을 넘어서는 지지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지지기반이 모이고 모여서 더 넓은 토대를 만들고 그 토대가 확장되다 보면 이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낯설어지는 인식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사계절 출판사는 동화책과 청소년책으로 익숙한 출판사였다. 그런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이라는 책을 낸 출판사여서 신선했었는데, 뒤이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이라는 책까지 내는 것을 보고 기대감이 오른다. 앞으로도 녹록치 않은 출판시장에서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기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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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한 수학자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7
김승태.김영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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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펼펴지는 발칙한 수학 여행

수학 여행을 즐기며 배우는 수학사

 

 

이 책은 청소년용 수학사 책이다.

고대의 수학자들로 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디오판토스, 히파티아를

중세의 수학자들로 하이얌, 피보나치, 타르탈리아&카르다노, 네이피어, 데카르트 를

근대의 수학자들로 오일러, 가우스, 코시, 모르간, 칸토어, 와일즈 를 소개하고 있다.

수학자들의 이름을 보면 느껴지겠지만 수학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을 밝혀낸 수학자들이다.

따라서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에 대한 기초 개념과 그 이론이 등장하게된 수학자들의 삶의 한 장면에 중심을 두고 간단간단하게 서술된다.

탈레스가 고대그리스에서 고대 수학의 기초를 세우고

피타고라스학파에서 피타고라스정리가 어떻게 등장했고

유클리드 고대시절 얼마나 대단한 기하학을 정리해냈고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 라는 무게일화 말고도 어떤 일을 했고

디오판토스 가 수학의 기호를 도입함으로써 얼마나 편리해졌고

히파티아가 고대 유일의 여성수학자로서 얼마나 위대했는지 설명한다.

페르시아 수학자 하이얌의 3차방정식과 피보나치 수열이 얼마나 아름답고

타르탈리아 & 카르다노 의 방정식 대결이 얼마나 어이없고

네이피어가 만들어낸 로그 와 데카르트가 만들어낸 좌표가 얼마나 유익한지 설명한다.

오일러는 장애를 극복했꼬 가우스는 천재적이었고

코시는 절대부등식을 모르간은 대수학을 칸토어는 집합론을 선구적으로 발전시켰고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냈음을 설명한다.

부록으로 조선시대 중국의 사신이 도발한 수학문제를 해결한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 마방진을 만든 최석정을 소개하고

중국의 수학자 조충지 와 이선란 그리고 일본의 수학자 다카기 데이지 도 소개한다.

알아야 할 수학자들이고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알고 있지는 못하는 수학개념들이므로 이렇게 쉽게 풀이된 청소년 수학대중서가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고글이라는 가상인물의 등장과 함께 시간여행을 하는 문섭이는 초등학생 같다. 고글의 갑작스런 등장은 개연성이 없고 쉽게 설명해주는 건 좋은데 초등학생용 문체에 개념들은 중학교 1~고1의 수학정리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영 애매하다. 초등학생이 읽으면 수학개념이 어렵고 청소년이 읽으면 어린이책을 읽는 느낌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초등학생이 읽는다면 편하게 읽으면서 이런 수학자들이 있었다 하며 이름을 알아두는 정도로 넘기고, 청소년이 읽는다면 주인공인 고글과 문섭의 시간여행은 패스하고 수학자들의 삶과 개념들에만 집중하며 읽는 것이 그나마 이 책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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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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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제목 그대로 책에 바치는 저자의 마음을 표현한 글들은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지극히 공감가는 산문들이었다.

결코 소멸되지 않길 바라지만 어쩌면 소멸할지도 모르는 책에 대한 공경

나는 디지털 독서의 장점 또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출판의 생태적 이점에 대한 설명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려 한다. 그러기에 나는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사람이다. 글을 깨친 뒤로 내게 세상을 열어준 것은 파일이 아니라 책이었다. 책은 내 동반자이자 내 동거인이었고 조력자이면서 친구였다. 지금 이 순간가지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집필함으로써 내 인생의 가장 대담한 꿈을 이루었고 지금도 이루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책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되면,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이 책에서 한번 열거해보려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책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거를 발굴해낼 생각도 없다. 그보다는 기이하게도 우리 모두가 아주 당연시 여기는 책을 둘러싼 문화 현상 전반에 주목하려 한다. 너무나도 친숙한 나머지 책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될 그 모든 것에. (서문 p. 21)

저자가 이 책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된 이유를 서문에서 말과 자동차의 비유로 설명하니 굉장히 실감나게 다가왔다.

19세기 말 서구의 대도시들은 온갖 종류의 마차로 가득 차 있었다. 시내곳곳에 말이 있었다. 런던의 경우 30만 마리의 말이 매일 귀리 1,200톤과 건초 2,000톤을 먹어 치웠고 말 한 마리당 하루에 약 15킬로그램을 배설했다. 사람들은 도시가 곧 말똥에 뒤덮일 것이라 걱정하면서도 모든 운송과 이동은 말과 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대체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누가 말과 마차대신 자동차를 이용하겠냐며 자동차를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안다. 누구도 자동차 없는 세상을 생각하지 못한 다는 것을.

저자는 전자책의 등장을 자동차의 등장으로 비유한다. 그렇다면 말과 마차에 해당하는 종이책은 정말 사라질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처럼 만약 그럴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는 공감하기에 저자가 절절이 풀어놓는 책에 대한 헌사에 나또한 마음을 뺐길 수 밖에 없었다. 사라지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를 것에 대한 진심어린 헌사랄까.

>> 몸체에 대하여 ··· 새책, 헌책, 큰 책과 작은 책, 아름다운 책, 훼손된 책, 불완전한 책, 주석을 붙인 책

>> 사용에 대하여 ··· 좋아하는 책, 알맞은 책, 부적절한 책, 비싼 책과 싼 책, 발견된 책, 선물 받은 책, 사인된 책, 독점된 책, 빌린 책, 분실된 책, 훔친 책, 두고 간 책, 버린 책, 금지된 책, 학대받은 책, 불살라진 책

>> 전문성에 대하여 ··· 독본, 사전, 서평용 견본, 초판본, 낭독회용 견본, 책공예

>> 모여 있는 책들 ··· 공공 도서관, 개인 도서관( 비축, 신분, 수집, 보관), 서점, 헌책방, 이동 도서관, 책장

저자가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 예상하는 것들은 책에 대한 경험들이다. 저자는 엄청난 장서가이고 수집가이다. 그가 책을 모으며 느껴왔던 책에 대한 생각들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음직한 기분들이었다. 그가 만난 책들에 대한 인상을 담은 글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책들에 대한 찬미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책이 소중한데 책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책장을 갖고 책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저자가 참 부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나만의 책장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현실성이 낮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빌려보거나 빌려보지 않는 책은 보관할 수가 없어서 최소한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처분한다. 때로는 그렇게 선별해야하는 것이 마음 아플 정도로 나도 책에 욕심이 많지만 어쩔 수없다.

대학에 가서야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처음 가보았는데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그렇게 넓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있는 모습을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도서관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공간이었고 위안의 장소였다. 그래서 지금은 도서관사서들이 정말 부럽다. 서점주인도 부럽지만 매출에 대한 부담이 아무래도;;;

책을 볼때 나는 줄을 친다거나 글을 적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필요한 부분엔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하고 책장도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래서 내가 읽고 난 책은 거의 처음수준의 새책에 가깝다. 내 소유의 책인데 왜 그렇게 아껴가며 조심스럽게 읽는지 나도 내가 잘 이해가 안가지만 내게 책은 그만큼 늘 소중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것을 발견하면 그렇게 마음이 안좋을 수가 없다. 많이 읽혀서 닳은 것과 함부로 관리해서 훼손된 것은 엄연한 차이가 난다. 게다가 도서관 책인데 줄치고 메모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다 읽고 나면 반납하고 다시 볼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지? 화가 난다.

그렇다고 내가 새책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헌책은 헌책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이미 헌책이라고 알고 구입했으므로 어느정도의 훼손은 이미 감안했기 때문이다. 이경우엔 책의 소유주였던 사람이 책을 읽으며 남긴 흔적들에 대해 나도 읽다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그렇게 누군지 모를 타인과 같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되면 반갑기까지 하다.

저자는 책을 수집하면서 경험한 일화가 아주 다양하지만 내 책장 하나 갖지 못한 처지의 나로서는 언감생심 이다. 좋아하는 작가, 의미가 있는 판본, 절판 되기엔 너무 아까운 책들등 수집하고 싶은 조건들은 많지만 선물받은 책들도 다 읽고 나면 다시 선물해야 할 판에 수집이라니... ㅠㅠ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부터 나는 책선물을 종종 받았었다.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생일이면 내게 늘 책을 선물했다. 왜였을까? 내가 그런 티를 냈던가?? 흐음...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보다 좀많이 내 주변엔 늘 책이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그 책들은 다 어쨌을까... 아마도 이사를 거듭하며 나도 모르게 버려졌을 테지만... 지금도 문득 생각나는 책들이 있어 아쉽다.

한정된 공간에 책을 두어야 하다보니 왠만해선 책을 잘 버리지 않는 나로서도 책을 버릴때가 생기는데 얼마전에야 대학때 전공서적을 버리면서 책장사이에서 그림엽서 한장을 발견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잊고 있던 시간들이 그 엽서 한장으로 잠시나마 내게 행복감을 주었다. 책이란 이런 식으로도 기쁨을 주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가 노동하는 동물로서 말을 포기했듯이 언젠가는 인쇄된 책을 실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해도, 그것이 결코 우리가 좋은 텍스트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p. 186)

책은 일차적으로 텍스트 전달 수단이다. 문자가 있기 전에도 구전으로 전해오는 텍스트들이 있었듯이 종이책이 없어진다 해도 의미있는 텍스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텍스트 전달 수단으로서도 종이책이 좋다. 디지털북은 보기에 눈이 아프다는 신체적 어려움도 있지만, 인쇄된 책들은 저마다 텍스트 너머 다른 의미까지 전달해준다. 책의 크기, 재질, 색상, 인쇄형태, 촉감, 향기 등등 텍스트를 읽는 것에 더해 물질적인 종이책이 전해주는 이러한 것들은 텍스트만 전달해주는 전자책이 결코 알려줄 수 없는 것들이다. 어찌보면 인쇄된 책은 종합 예술품인 것이다.

"그것은 전주곡일 뿐, 책들을 불태우는 곳에서 결국에는 사람들도 불태울 것이다" (p. 112 - 하인리히 하이네)

잘못된 권력들은 늘 책들을 불태우고 지식을 독점하려 했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사람들이었다. 텍스트가 적힌 물질로서 책이 불에 태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던 시대에는 사람들의 현실도 눈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만약 대부분의 텍스트들이 전자화되고 눈에 직접적으로 실체로서 보이지 않게 된다면 권력의 실체도 권력이 해치는 사람도 눈에 안보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버튼 하나로 데이터를 날려버리듯이 버튼 하나로 사람들을 제거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만드는 미래여서는 안되지 않을까?!

마차가 자동차가 되고 자동차가 무인이 되고 그러다 아직 이름지어지지 않은 다른 형태의 이동수단이 생겨날지라도 종이책은 늘 인간과 함께 였으면 좋겠다고 그럴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젖병이 달린 철사엄마보다 젖병이 없는 인형엄마에게 안겨있기를 더 좋아했던 아기침팬지 실험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텍스트는 그 지식의 유용성 자체와 함께 종이책이 주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가상화될지라도 사람사이의 포옹과 유대감이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종이책이 주는 포근함 또한 영원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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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75

심리하이 알려준 발상의 전환과 작은 기법으로 세상살이가 수월해진다

 

평소 나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도서를 꽤 읽은 편이다. 그래서 심리학 법칙을 모아 놓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심리학 법칙에 대해 듣고 읽은 바가 있어 새로운 게 있을까 싶었고, 바이블처럼 많은 법칙을 한꺼번에 엮어 내용의 깊이가 얄팍하지 않을까 싶었다. 대형서점 서가에 숱하게 올려져 있는 다른 심리학 서적들처럼 한 가지 심리 실험 결과를 부풀리고 저자의 고집스러운 주장으로 뻥튀기해서 마치 이것만 알면 온 세상이 다 만만해진다고 달콤하게 속삭이거나, 무언가 그럴듯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막상 실생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책 중 하나일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저자의 해석과 적절한 예시가 제시되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올 뿐만 아니라 읽어갈수록 뭔가 세상 이치를 조금은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 中)

 

어쩜 이렇게 내마음을 콕 집어 옮겨놓으셨는지!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읽게되는 옮긴이의 말은 책을 다 읽고나서 무릎을 치며 고개끄덕이게 된다. 맞네 맞어 옮긴이의 말이 맞았어!!

나도 심리학 서적이라면 꽤 읽은 편이라 큰 기대는 없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 완전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가 중국인이라서 중국인이 쓴 심리서는 처음이다 싶어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굉장히 편리한 심리실용서였다.

대개의 심리서들은 힐링이나 위안을 주기 위해 상담사례들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거나 하는 치유서들과 대중적인 심리법칙들을 설명하는 대중이론서이거나 할텐데, 이 책은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상황들에 어떤 심리법칙들이 숨어있는지 판별해주는 심리법칙 사전같은 느낌이었다.

75가지의 법칙들은 간단간단한 설명으로 쉽게 이해가 되는 동시에 공감이 되기때문에 내 마음을 알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계를 인정하고 사회생활을 편안하게 하면서 삶에 여유를 찾게 도와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심리법칙들은 하나같이 다 이름만 제대로 몰랐을 뿐이지 전혀 모르던 것들은 아니란 점이 이 책의 실용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이게 이런 이름의 법칙이었어? 하면서 그렇지 이럴때가 있지 하며 읽고나면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맞닦뜨렸을때 이 책이 생각날것 같다. 아 이거이거 읽었던 상황인데 이게 왜 이런 기분이 들더라... 하면서 책을 다시 찾아 읽고나면 실수를 줄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은 음료, 같은 이름에 단지 번역된 글자만 달랐을지만 소비자들은 각각 다른 정서적 반응을 보였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쿨레쇼프 효과'를 생생하게 보여 준 사례다. 이 사례는 각 다국적 기업의 현지화 전략을 끌어내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오늘날까지 미국의 수많은 비즈니스스쿨에서 현지화 전략의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p. 36)

코카콜라 이야기다. 1920년대 초 코카콜라가 중국시장에 들어왔으나 반응은 참담했다. 그런데 1980년대 다시 들어온 코카콜라는 중국음료시장을 이끌게 되었다. 바로 이름 때문이다. 처음에는 코카콜라를 음절만 따서 번역을 해놓은 이름이라 뜻풀이를 하는 한자를 쓰는 중국사람들이 봤을 때 너무나 이상한 조합의 한자이름이었다. 당췌 무슨 음료인지 알수 없는 어려운 이름의 음료는 마시기 어렵다는 이미지를 쌓아갔다면, 새로 시장에 진입할땐 可口可樂 이라는 뜻풀이가 좋은 이름으로 광고하자 소비자들은 바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중국인이 저자이니 이런 사례도 알게되어 재밌었다.

'걷어차인 고양이 효과'는 재미있는 우화에서 유래되었다. 한 가시가 저녁 연회에서 주인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채 자신의 장원으로 돌아왔고 제시간에 자신을 맞이하지 못한 관리에게 한바탕 화를 냈다. 관리는 마음속에 울화가 치밀어 집으로 돌아온 후 별것 아닌 이유로 자신의 아내에게 한바탕 욕을 했다. 억울한 아내는 아들이 침대에서 깡충깡충 뛰는 것을 보고 아들의 뺨을 한대 때렸다. 그후 영문도 모르고 뺨을 맞은 아이는 기분이 극도로 나빠져 옆에서 뒹굴로 있던 고양이를 발로 찼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우화를 이용하여 전형적인 감정의 전염을 묘사했다. (p. 66)

심리법칙이라는게 사실 별거 아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 있지 않은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가서 눈흘긴다' 고 감정의 전염을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경우들이다. 자주 접하는 만큼 심리법칙으로까지 나왔을 땐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감정은 전염된다!!!

그러니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전염될것 같다거나 상대방의 감정이 내게 전염되는 것 같으면 그것이 전염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전염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로크 법칙과 벼룩 효과는 상호 보완적이다. 벼룩 효과는 낮은 목표 설정으로 사람의 능동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반면, 로크 법칙은 너무 높거나 현실과 맞지 않는 목표는 적극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p. 101)

코끼리를 어렸을때 아기코끼리가 뽑아내지 못할정도의 말뚝에 밧줄로 묶여놓기 시작하면 어른코끼리가 되어도 그 말뚝 그 맛줄에 매여있다고 한다. 어른코끼리에게 그 말뚝은 나뭇가지 수준이었을텐데 감히 그럴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과한 목표를 세워놓아도 문제다. 아무리해도이룰수 없는 목표는 좌절감만 줄 뿐이다. 목표는 필요하다. 다만, 합리적인 수준의 목표설정이 중요한 것이다. 심리법칙은 한쪽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사람의 심리는 한쪽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양면을 다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단 목표에서만 거론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는 '성공이 성공을 번식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또한 '성공은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우리는 평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자주 들어도 '성공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태효과는 이 사회에서 가장 냉혹하고 무정한 규칙으로 실패자들이 강인한 의지를 갖고 있을지라도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실패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며 대부분 성공의 길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성공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것.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했기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그 자신감 덕분에 더욱 성공한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했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 열등감으로 더욱 실패한다. (p. 122)

 

'우는 놈 떡하나 더준다' 고 했다. 안울고 착한 아기가 오히려 떡하나를 더 못먹고 울고 투정부리는 이가기 떡하나를 더 받아먹는 세상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 라는 말은 다수의 실패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이 계속 성공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일은 개천에서 용나듯 힘든 경우이지만 그럴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냉정한 현실도 직시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성공이 당신을 보살펴 준다면 그것은 당신의 스승이니 당신의 꿈을 지켜라.

만약, 실패가 당신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당신의 스승이니 당신의 꿈을 지켜라.

만약, 돈과 권력이 당신을 유혹한다면 그것의 가치가 전자보다 클지라도 당신의 꿈을 지켜라.

만약, 꿈이 당신을 포기한다면 스스로 반성해라. 그리고 빨리 발견해라. 사실 당신이 꿈을 포기하고, 그것을 주워다가 날려 버리면 어쩌면 성공은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p. 137)

 

성공경험이 더큰 성공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을 가르칠때도 한문데 맞던 아이 두문제 맞게 해주고 두문제 맞고나면 세문제 맞게 해줌으로써 언젠가 열문제 다 맞을수 있도록 작은 성공경험을 쌓아주라고 한다. 성공이 또 성공을 불러오기는 하지만 성공만 성공을 불러올 수는 없다. 그런 성공들은 작은 실패에도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튼튼한 성공은 반드시 실패를 경험해야 만들어질 수 있다. 냉정한 현실에서의 실패가 결코 좌절로만 남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초두 효과나 최신 효과는 모두 극단적인 인지 방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돠 어울려 살아갈 때, 초두 효과와 최신 효과를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해야 하며, 이러한 심리적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을 사귈 때는 모든 면에서 깊이 타인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단편적인 인상으로 섣불리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p. 151)

첫인상이 강할때도 있고 마지막 인상이 강할때도 있다. 첫인상의 낙인을 오래 기억하는 것과 최근에서의 인상을 강하게 기억하는 것은 때때로 다르다. 이또한 양면을 다 살펴봐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문간에 머리 들여놓기 효과'는 작은 요구를 통해 큰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 와는 상반된 개념이다. 먼저 무리한 요구를 말하고 이어서 비교적 간단한 요구를 말하면 상대는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는 대신 간단한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p. 230)

여러 심리법칙들이 나오지만 나는 상반되는 개념들에 자꾸 눈길이 갔다. 만약 내가 기분 나쁠때 읽었다면,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라고 화낼수도 있었을 것이다. ㅎㅎ 하지만 양쪽의 법칙들을 다 알아야 어떤 경우에는 머리를 먼저 들이밀고 어떤 경우에는 발을 먼저 들이밀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블리스의 실험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하나의 오해를 깨뜨렸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부지런히 연습하면 반드시 능숙해진다는 것이다. 앞서 실험에서 세 그룹 중 부지런히 연습해 능숙해진 첫번째 그룹의 성적은 머릿 속에서 가상으로 연습한 세번째 그룹보다 좋지 않았다. 이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이 가져오는 결과는 미리 반복적으로 계획하고 이미지화한 경험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이유는 계획성이 숙력도보다 훨씬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p. 277)

블리스의 실험이란 세 그룹의 학생들에게 20일동안 다른 방식으로 농구 슛 하는 기술을 훈련하도록 요구했는데, 20일동안 매일 슛하는 훈련을 한 그룹과 20일간 어떤 훈련도 하지 않은 그룹과 첫날 훈련경험을 매일 20~30분씩 상상속에서 슛 훈련을 했고 20일 마지막날 슛 성적을 조사했을때 마지막 그룹의 성적이 가장 뛰어났던 것을 말한다. 이 실험의 결과를 얼핏 보면 '일만시간의 법칙' 이 무의미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제대로 된 동작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연습한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자신의 훈련동작을 생각하고 고쳐보고 하는 이미지트레이닝만으로도 나아졌는데 생각으로 고쳐보고 고친 동작으로 훈련했다면 얼마나 더 나아졌겠는가? '일만시간의 법칙' 에는 분명 반성하고 고쳐가는 시간이 포함되 있을 것이고, '블리스의 정의'란 연습에는 반드시 계획과 수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효율성은 그냥 오지 않을 테니까.

앵커링 효과니 월렌다 효과니 요나 콤플렉스니 돼지 게임이니 낯선 이름들에 걱정할 필요 없다. 읽고나면 거의다 아~! 하는 것들이다.

이런저런 심리서들이 참 많고 주저리주저리 긴 해설들도 참 많지만, 때로는 이 책처럼 간결한 심리법칙들이 필요할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마음의 문제들은 그 문제들을 상담해주는 책을 읽어야 겠지만, 조금 귀찮고 성가신 문제들에 대한 자잘한 고민에는 이 책이 알려주는 심리법칙들이 꽤 쓸모 있을 것이다. 여하튼 가볍게 읽을만한 알쓸심(알아두면 쓸모있는 심리법칙) 들이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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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미술관에 간 지식인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프레넬 법칙, 나노입자, 엔트로피, 메타물질, 불확정성의 원리, 그래핀까지

명화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다

 

 

표지에 한 남자의 자화상이 있다.

액자에 클로즈업 된 그의 얼굴 그리고 눈 에 빛이 연결되 있다. 눈에서 빛이 나오는 것일까 눈으로 빛이 들어가고 있는 중일까

그 빛은 뒤표지의 거울과 연결되고 빛은 다채로워짐과 동시에 한줄기로 통일된다.

이 남자는 빛 과 자화상 을 연결했을 때 떠오르는 화가, 렘브란트 다.

그리고 빛 과 그림은 과학과 미술의 연결을 확실하게 이어주고 있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림이 이렇게 과학적이었나?!!!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간만에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재미를 쏠쏠이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물리학자로 카이스트 교수인 저자가 해외연구소에서 공부할때 가까운 미술관에서 위안을 얻고 여전히 바쁜 실험연구 사이사이 일요일에 그림을 그리며 쌓은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물리학과 그림을 자연스럽게 엮어내고 있다.

읽는 내내 '생각의 탄생' 이라는 책이 생각났더랬다.

과학자들의 천재성을 예술적 영감과 연결지어 예술교육을 강조한 그 책에 등장하는 먼나라 천재과학자들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과학과 미술을 이렇게 재밌게 엮어낸 저자가 내게는 '생각의 탄생' 의 현현 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이는 사람이 전혀 그런티내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법한 자연스러운 설명과 풀이를 해주는 책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점에서 저자의 서술은 굉장히 편안하게 몰입하게 해주어 감사했다.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들은 유명한 그림이 많아서 처음 보는 그림이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처음 보는 것인양 새로운 것을 과학적으로 알게 해주어 명화에서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의 과학적 소양에 따른 그림의 변화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 ㅎㅎ

피테르 브뢰헬의 어두운 그림에서 나는 중세암흑기를 느꼈다면 저자는 태양흑점감소로 인한 날씨의 변화를 읽어낸다. 저자가 알려주는 '소빙하기 시대' 는 서양역사를 읽을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조지오 오키프의 그림이야기를 하며 미국대륙횡단도로 '루트66' 지도가 나왔을 때는 '분노의 포도' 라는 소설이 생각나서 한동안 소설속 여정을 떠올려 보게 되기도 했었다. 그러고 나니 뉴멕시코주의 자연을 사랑한 오키프의 그림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 그림들 속 파란 하늘에서 빛의 산란을 설명하는 저자의 과학적 풀이가 새삼 재밌게 읽혀지기도 했다.

리쿠르고스 컵이라는 4세기경의 로마컵 사진을 처음 봤을 땐 색이 다른 두개의 컵인줄 알았는데, 하나의 컵인 것을 알고 놀라웠다. 컵 안쪽에 빛을 쪼이면 컵의 색이 변한다는 것을 그 컵을 사용했던 로마인들은 알았을까? 알았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이 컵의 제조 기법이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고 하니...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냥 예쁜 색유리로만 봤었는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안과 밖 사진을 함께 보고 나서야 그 진가를 깨달았다. 이제 스테인드글라스작품을 보게 되면 밖에 나가서 한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ㅎㅎ

영국의 대표 풍경화가인 컨스터블은 구름을 잘 그리기 위해 기상학을 공부하고, 무지개를 잘 그리기 위해 뉴턴의 광학을 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그림은 정말 하늘만 그렸음에도 멋진 작품이 되는 구름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표지에 나왔던 렘브란트의 자화상 이야기는 렘브란트의 굴곡진 삶과 함께 읽으니 좀 슬프기도 했지만, '빛의 삼각형' 영역을 알고 나서 다시 자화상을 볼때마다 그 삼각형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화를 포함해 동양화에는 없고 서양화에만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빛' 과 '그림자'다. 동양화는 대상과 작가의 정신·관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양화를 그린 화가들은 실제 대상의 형태나 대상이 놓인 상황을 보이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대상이 갖는 의미나 개념, 즉 관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풍경을 그린 산수화에서도 종이의 바탕을 모두 채색하지 않고, 주된 산세, 나무,동물 등 그림의 주제가 되는 사물을 중심으로 그렸다. 인물화는 주제인 인물이 그림 중앙에 크게 자리하고 배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동양화에는 거리감과 입체감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동양화는 물감의 농담과 선의 굵기, 또는 상대적인 크기 등을 다르게 하여 형태와 거리감이나 원근감을 표현했다. 동양에서는 인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었고, 산수화나 화조화가 회화의 주돤 분야였다. 이는 그 시대를 지배하던 학문의 가치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동양에서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자연에 있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유토피아적 이상 세계를 그린 <몽유도원도> 나 민화 <십장생도>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서양에서 '빛' 과 '하늘' 은 신을 의미한다. 서양화에 빛과 하늘이 무수히 그려진 데 반해, 동양화에는 하늘에 대한 개념이나 빛이 직접 묘사된 경우가 없다. (p. 117)

동양화의 서양화는 참 다르다. 무엇이 더 우수하다고 따져볼 필요는 없다. 그냥 다른거다. 그런데 그 다름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서양화의 변화는 '신'을 어떻게 표현해내느냐 로 추이를 따져볼 수 있다면 동양화에는 아예 '신'이 없었다. 문화와 철학이 다른 것이다. 갑자기 동양화에 애정이 솟으려 한다. ㅎ

그네 타는 여인 그림으로 신윤복의 그림과 프랑스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림을 함께 보니 동서양의 퇴폐미?! 가 비교되면서 신선한 감상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화가는 요하네스 베르메르 였다. 그의 삶에 그의 그림이 모두 다 그렇게 신비스러운지 몰랐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많이 전해지지 않지만 전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 다 유명하다. 그래서 봤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우유 따르는 여인> 그림에서 구멍난 창과 그 구멍을 통해 비추는 빛까지 섬세한 표현을 했다는 것을 클로즈업 해서 책에서 보고 나니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림이 마치 스튜디오에서 소품과 인물만 바꾼 채 그린 것처럼 비슷한 구도와 형식이 반복된다는 것을 읽고나니 식상하기는 커녕 더욱 그림에 호기심이 일었다. 무엇보다 평생 살았던 곳을 그린 <델프트 풍경> 이라는 작품을 저자가 구글맵에서 찾아낸 현재의 델프트 사진과 비교해보니 화가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 새삼 느껴지면서 그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영화가 있던데... 물론 창작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긴 봐야 겠다.

사육제<謝肉祭)는 '카니발'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카르네발carne vale(고기여, 그만)' 이 어원인 카니발은 사순설을 앞두고 실컷 먹고 즐기는 축제를 가리킨다. 부활절 전 40일간을 사순절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에서는 이 기간에는 금식하고 참회화며 경건하게 생활했다. (p. 180)

카니발이 이런 뜻이었나! 어원은 알게 될때마다 참 재미있다. 고기여 그만 이라니 ㅋㅋㅋ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발생학에 관심이 있었던 클림트는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작은 세상에 감명을 받았고, 지속해서 자신의 작품에 인간의 배아와 세포 등을 패턴으로 만들어 담아냈다. 클림트가 그린 세포는 생명의 시작이자 곧 작은 우주 그 자체다. 클림트는 이러한 접근으로 인간 본성과 생명 근원에 대한 물음과 그 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p. 196)

클림트의 그림은 화려한 황금색으로만 기억했었는데 앞으로 다시 보면 베아와 세포등을 찾게 될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다. 그 가운데 화가로 산 기간은 고작 10년이다. 그는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무려 9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200여 점은 죽기 두세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그려졌다.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p. 203)

고흐의 삶과 고흐의 그림은 늘 그림감상 그 이상의 뭔가를 전달해 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가진 몇 안되는 화가로 지금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으로 그나마 그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게 된다.

고흐는 코발트블루와 크롬옐로 물감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재료상에 따라 성분의 차이로 미세하게 색의 차이가 났기 때문에 고흐는 특정 회사의 코발트 물감만을 고집했다는 것을 보면 화가의 눈은 다르긴 다른가 보다.

샤갈이 그림에서 즐겨 쓰던 색은 우리가 빛의 삼원색이라고 알고 있는 빨강, 파랑, 초록과 색의 삼원색인 사이안, 마젠타, 노랑이다.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은 다음과 같은 상관관계가 있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을 섞으면 생성되는 이차색이 색의 삼원색이 된다. 즉 파랑+초록은 청록색(사이안), 빨강+파랑은 자홍색(마젠타), 빨강+초록은 노란색(노랑)이 된다. 그렇다면 왜 이 색깔들이 기본색이 되었을까? (p. 225)

빛을 인지하는 망막에서 반응하는 색들을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색에 따른 민감도를 통해 색을 인지하는 사람의 색에 대한 인지설명은, 그림을 볼때 화가가 어떤 색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다시 해보게끔 해주었다. 샤갈은 참 여러모로 특출난 화가이긴 하다.

이것도 맞고 저것 또한 맞다. 또 맞지만 동시에 틀리기도 한다. 이 모든 아이러니한 상황에 항상 저 멀리에서 둥근 달이 빛나며 그림 속의 모든 상황을 따스하게 안아준다. 어쩌면 이 달빛은 꿈을 내려다보는 루소의 눈일지도 모른다. (p. 247)

앙리 루소가 자신의 꿈을 표현한 그림들 속엔 달이 있었다. 둥근달에 대한 저자의 감상과 루소의 꿈에 대한 영감을 저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며 환상적인 자연과 이질적인 인간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루소의 그림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태평양 서부 마셜 제도 서북쪽에 '비키니'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현재 이 아름다운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아니 살지 못한다. 비키니섬에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총 23차례 핵실험이 진행됐다. 비키니 섬에서 핵실험이 있은지 얼마 안 돼, 파리 패션쇼에서 배꼽을 드러낸 파격적인 디자인의 수영복이 공개됐다. 수영복의 인상이 비키니 섬에서 진행된 핵실험만큼이나 충격적이라고 해서 이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이 붙었다.(p. 273)

비키니 라는 이름에 이런 배경이 있는 줄이야;;; 이제 비키니 수영복을 보면 왠지 다른 충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예술가와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현실 너머 새로운 것을 꿈꾸는 능력,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p. 288)

빛의 정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은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실험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결론 내리며 논쟁은 종결되었다. 물론 '빛의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p. 302)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분야, 미술과 물리학이 '빛' 이라는 공통의 화두를 놓고 고민하고 논쟁하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의 풍파를 겪으며 발전해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관한 과학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인상주의도 있었으나, 예술과 과학이 오래전부터 서로 공생관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라는 공통된 대명제를 놓고 철학적인 고민을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그 고민의 궤가 물리학과 상당히 닮아있다. (p. 308)

 

화가들은 점점 더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지만.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등 많은 입체파 및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려내는 쪽으로 변화한 상태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존재하나 보이지 않을 뿐인 것에서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까지 표현하게 된다.

과학과 예술은 알면 알수록 서로 밀접한 관계였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빛은 한 편의 그림이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림의 생애를 보여준다. 과학의 힘을 빌려 우리는 한 편의 명화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p. 357)

고흐는 물감에 섞인 원소나 불순물의 상대적인 농도에 따라 발색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파하고 원소의 특정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 물감을 고집하기도 했다. 기름에 색을 내는 가루를 섞어 물감을 만드는 방식은 11세기 무렵부터 기록에 남아있으나, '유화' 라고 부를 만한 정도의 물감 개량은 얀 반 에이크로부터 시작됐다. 에이크는 기름과 안료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유화 기법을 완성시켰다. (p. 370)

고흐의 해바라기를 시들게 한 범인은 다름 아닌 미술관의 LED조명이었다. LED조명은 고흐의 노란색을 어둡게 변색시켰다. 거듭된 연구로 LED가 결정적으로 고흐 그림을 변색시킨 범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미술관은 이제 공학자들과 함께 푸른빛은 많이 방출하지 않으면서도 그림을 밝게 비출 수 있는 LED조명에 대한 연구와 그림 보존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p. 385)

 

테라헤르츠파의 분석기법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제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을 원화를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 복원해낼 수 있을 정도다. 과학의 발달은 명화속 숨은 비밀들을 속속이 밝혀내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뭉크의 <절규> 그림에 얼룩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그 얼룩이 무엇인지 밝혀낸 이야기를 읽으며 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얀 반 에이크 의 그림은 그저 놀랍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정교한 실제감을 자랑한다. 마치 손에 만져지는 듯한 옷 하나하나 머리카락 하나하나의 표현들이 어찌나 섬세한지... 그런데 그가 유화기법을 완성시킨 사람이었구나.. 물감의 배합도 결국 과학과 닿아 있었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더 시들지 않도록 공학자들은 분명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명화의 복원과 보존은 첨단 과학의 선두기술을 응용하고 있었다. 옛것을 살려내는 신기술이라니... 뭔가 더 의미있어 보인다. ㅎㅎ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예술작품이 때때로 훼손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를 '반달리즘'이라고 한다.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 공공시설, 자연경관 등을 파괴하는 행위다. 게르만 민족의 하나인 반달족은 5세기 초 유럽의 민족 대이동기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정복하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반달 왕국을 세웠다. 반달족이 로마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문화와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 폭넓게는 낙서나 무분별한 개발 등 공공시설이나 자연경관을 훼손시키는 행위도 반달리즘에 포함된다. (p. 399)

로마사를 읽고 있는 중인데 로마유래 용어가 나오니 눈이 번쩍 뜨인다. 반달리즘도 로마에서 유래된 단어구나... 5세기 부분을 읽을때 좀더 주의깊게 살펴봐야 겠다. 여하튼, 반달리즘은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기원전 유구한 문화가 파괴된 분쟁지역이 떠올라 가슴아프다...

그림을 보다가 과학을 읽다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아~! 깨닫는 묘미가 가득한 책이었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6권이던데, 다른 시리즈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눈과 머리가 호강한 듯한 기분을 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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