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미술관에 간 지식인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프레넬 법칙, 나노입자, 엔트로피, 메타물질, 불확정성의 원리, 그래핀까지

명화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다

 

 

표지에 한 남자의 자화상이 있다.

액자에 클로즈업 된 그의 얼굴 그리고 눈 에 빛이 연결되 있다. 눈에서 빛이 나오는 것일까 눈으로 빛이 들어가고 있는 중일까

그 빛은 뒤표지의 거울과 연결되고 빛은 다채로워짐과 동시에 한줄기로 통일된다.

이 남자는 빛 과 자화상 을 연결했을 때 떠오르는 화가, 렘브란트 다.

그리고 빛 과 그림은 과학과 미술의 연결을 확실하게 이어주고 있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림이 이렇게 과학적이었나?!!!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간만에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재미를 쏠쏠이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물리학자로 카이스트 교수인 저자가 해외연구소에서 공부할때 가까운 미술관에서 위안을 얻고 여전히 바쁜 실험연구 사이사이 일요일에 그림을 그리며 쌓은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물리학과 그림을 자연스럽게 엮어내고 있다.

읽는 내내 '생각의 탄생' 이라는 책이 생각났더랬다.

과학자들의 천재성을 예술적 영감과 연결지어 예술교육을 강조한 그 책에 등장하는 먼나라 천재과학자들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과학과 미술을 이렇게 재밌게 엮어낸 저자가 내게는 '생각의 탄생' 의 현현 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이는 사람이 전혀 그런티내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법한 자연스러운 설명과 풀이를 해주는 책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점에서 저자의 서술은 굉장히 편안하게 몰입하게 해주어 감사했다.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들은 유명한 그림이 많아서 처음 보는 그림이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처음 보는 것인양 새로운 것을 과학적으로 알게 해주어 명화에서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의 과학적 소양에 따른 그림의 변화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 ㅎㅎ

피테르 브뢰헬의 어두운 그림에서 나는 중세암흑기를 느꼈다면 저자는 태양흑점감소로 인한 날씨의 변화를 읽어낸다. 저자가 알려주는 '소빙하기 시대' 는 서양역사를 읽을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조지오 오키프의 그림이야기를 하며 미국대륙횡단도로 '루트66' 지도가 나왔을 때는 '분노의 포도' 라는 소설이 생각나서 한동안 소설속 여정을 떠올려 보게 되기도 했었다. 그러고 나니 뉴멕시코주의 자연을 사랑한 오키프의 그림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 그림들 속 파란 하늘에서 빛의 산란을 설명하는 저자의 과학적 풀이가 새삼 재밌게 읽혀지기도 했다.

리쿠르고스 컵이라는 4세기경의 로마컵 사진을 처음 봤을 땐 색이 다른 두개의 컵인줄 알았는데, 하나의 컵인 것을 알고 놀라웠다. 컵 안쪽에 빛을 쪼이면 컵의 색이 변한다는 것을 그 컵을 사용했던 로마인들은 알았을까? 알았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이 컵의 제조 기법이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고 하니...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냥 예쁜 색유리로만 봤었는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안과 밖 사진을 함께 보고 나서야 그 진가를 깨달았다. 이제 스테인드글라스작품을 보게 되면 밖에 나가서 한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ㅎㅎ

영국의 대표 풍경화가인 컨스터블은 구름을 잘 그리기 위해 기상학을 공부하고, 무지개를 잘 그리기 위해 뉴턴의 광학을 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그림은 정말 하늘만 그렸음에도 멋진 작품이 되는 구름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표지에 나왔던 렘브란트의 자화상 이야기는 렘브란트의 굴곡진 삶과 함께 읽으니 좀 슬프기도 했지만, '빛의 삼각형' 영역을 알고 나서 다시 자화상을 볼때마다 그 삼각형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화를 포함해 동양화에는 없고 서양화에만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빛' 과 '그림자'다. 동양화는 대상과 작가의 정신·관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양화를 그린 화가들은 실제 대상의 형태나 대상이 놓인 상황을 보이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대상이 갖는 의미나 개념, 즉 관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풍경을 그린 산수화에서도 종이의 바탕을 모두 채색하지 않고, 주된 산세, 나무,동물 등 그림의 주제가 되는 사물을 중심으로 그렸다. 인물화는 주제인 인물이 그림 중앙에 크게 자리하고 배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동양화에는 거리감과 입체감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동양화는 물감의 농담과 선의 굵기, 또는 상대적인 크기 등을 다르게 하여 형태와 거리감이나 원근감을 표현했다. 동양에서는 인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었고, 산수화나 화조화가 회화의 주돤 분야였다. 이는 그 시대를 지배하던 학문의 가치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동양에서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자연에 있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유토피아적 이상 세계를 그린 <몽유도원도> 나 민화 <십장생도>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서양에서 '빛' 과 '하늘' 은 신을 의미한다. 서양화에 빛과 하늘이 무수히 그려진 데 반해, 동양화에는 하늘에 대한 개념이나 빛이 직접 묘사된 경우가 없다. (p. 117)

동양화의 서양화는 참 다르다. 무엇이 더 우수하다고 따져볼 필요는 없다. 그냥 다른거다. 그런데 그 다름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서양화의 변화는 '신'을 어떻게 표현해내느냐 로 추이를 따져볼 수 있다면 동양화에는 아예 '신'이 없었다. 문화와 철학이 다른 것이다. 갑자기 동양화에 애정이 솟으려 한다. ㅎ

그네 타는 여인 그림으로 신윤복의 그림과 프랑스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림을 함께 보니 동서양의 퇴폐미?! 가 비교되면서 신선한 감상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화가는 요하네스 베르메르 였다. 그의 삶에 그의 그림이 모두 다 그렇게 신비스러운지 몰랐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많이 전해지지 않지만 전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 다 유명하다. 그래서 봤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우유 따르는 여인> 그림에서 구멍난 창과 그 구멍을 통해 비추는 빛까지 섬세한 표현을 했다는 것을 클로즈업 해서 책에서 보고 나니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림이 마치 스튜디오에서 소품과 인물만 바꾼 채 그린 것처럼 비슷한 구도와 형식이 반복된다는 것을 읽고나니 식상하기는 커녕 더욱 그림에 호기심이 일었다. 무엇보다 평생 살았던 곳을 그린 <델프트 풍경> 이라는 작품을 저자가 구글맵에서 찾아낸 현재의 델프트 사진과 비교해보니 화가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 새삼 느껴지면서 그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영화가 있던데... 물론 창작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긴 봐야 겠다.

사육제<謝肉祭)는 '카니발'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카르네발carne vale(고기여, 그만)' 이 어원인 카니발은 사순설을 앞두고 실컷 먹고 즐기는 축제를 가리킨다. 부활절 전 40일간을 사순절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에서는 이 기간에는 금식하고 참회화며 경건하게 생활했다. (p. 180)

카니발이 이런 뜻이었나! 어원은 알게 될때마다 참 재미있다. 고기여 그만 이라니 ㅋㅋㅋ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발생학에 관심이 있었던 클림트는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작은 세상에 감명을 받았고, 지속해서 자신의 작품에 인간의 배아와 세포 등을 패턴으로 만들어 담아냈다. 클림트가 그린 세포는 생명의 시작이자 곧 작은 우주 그 자체다. 클림트는 이러한 접근으로 인간 본성과 생명 근원에 대한 물음과 그 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p. 196)

클림트의 그림은 화려한 황금색으로만 기억했었는데 앞으로 다시 보면 베아와 세포등을 찾게 될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다. 그 가운데 화가로 산 기간은 고작 10년이다. 그는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무려 9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200여 점은 죽기 두세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그려졌다.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p. 203)

고흐의 삶과 고흐의 그림은 늘 그림감상 그 이상의 뭔가를 전달해 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가진 몇 안되는 화가로 지금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으로 그나마 그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게 된다.

고흐는 코발트블루와 크롬옐로 물감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재료상에 따라 성분의 차이로 미세하게 색의 차이가 났기 때문에 고흐는 특정 회사의 코발트 물감만을 고집했다는 것을 보면 화가의 눈은 다르긴 다른가 보다.

샤갈이 그림에서 즐겨 쓰던 색은 우리가 빛의 삼원색이라고 알고 있는 빨강, 파랑, 초록과 색의 삼원색인 사이안, 마젠타, 노랑이다.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은 다음과 같은 상관관계가 있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을 섞으면 생성되는 이차색이 색의 삼원색이 된다. 즉 파랑+초록은 청록색(사이안), 빨강+파랑은 자홍색(마젠타), 빨강+초록은 노란색(노랑)이 된다. 그렇다면 왜 이 색깔들이 기본색이 되었을까? (p. 225)

빛을 인지하는 망막에서 반응하는 색들을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색에 따른 민감도를 통해 색을 인지하는 사람의 색에 대한 인지설명은, 그림을 볼때 화가가 어떤 색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다시 해보게끔 해주었다. 샤갈은 참 여러모로 특출난 화가이긴 하다.

이것도 맞고 저것 또한 맞다. 또 맞지만 동시에 틀리기도 한다. 이 모든 아이러니한 상황에 항상 저 멀리에서 둥근 달이 빛나며 그림 속의 모든 상황을 따스하게 안아준다. 어쩌면 이 달빛은 꿈을 내려다보는 루소의 눈일지도 모른다. (p. 247)

앙리 루소가 자신의 꿈을 표현한 그림들 속엔 달이 있었다. 둥근달에 대한 저자의 감상과 루소의 꿈에 대한 영감을 저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며 환상적인 자연과 이질적인 인간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루소의 그림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태평양 서부 마셜 제도 서북쪽에 '비키니'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현재 이 아름다운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아니 살지 못한다. 비키니섬에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총 23차례 핵실험이 진행됐다. 비키니 섬에서 핵실험이 있은지 얼마 안 돼, 파리 패션쇼에서 배꼽을 드러낸 파격적인 디자인의 수영복이 공개됐다. 수영복의 인상이 비키니 섬에서 진행된 핵실험만큼이나 충격적이라고 해서 이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이 붙었다.(p. 273)

비키니 라는 이름에 이런 배경이 있는 줄이야;;; 이제 비키니 수영복을 보면 왠지 다른 충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예술가와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현실 너머 새로운 것을 꿈꾸는 능력,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p. 288)

빛의 정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은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실험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결론 내리며 논쟁은 종결되었다. 물론 '빛의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p. 302)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분야, 미술과 물리학이 '빛' 이라는 공통의 화두를 놓고 고민하고 논쟁하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의 풍파를 겪으며 발전해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관한 과학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인상주의도 있었으나, 예술과 과학이 오래전부터 서로 공생관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라는 공통된 대명제를 놓고 철학적인 고민을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그 고민의 궤가 물리학과 상당히 닮아있다. (p. 308)

 

화가들은 점점 더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지만.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등 많은 입체파 및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려내는 쪽으로 변화한 상태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존재하나 보이지 않을 뿐인 것에서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까지 표현하게 된다.

과학과 예술은 알면 알수록 서로 밀접한 관계였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빛은 한 편의 그림이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림의 생애를 보여준다. 과학의 힘을 빌려 우리는 한 편의 명화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p. 357)

고흐는 물감에 섞인 원소나 불순물의 상대적인 농도에 따라 발색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파하고 원소의 특정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 물감을 고집하기도 했다. 기름에 색을 내는 가루를 섞어 물감을 만드는 방식은 11세기 무렵부터 기록에 남아있으나, '유화' 라고 부를 만한 정도의 물감 개량은 얀 반 에이크로부터 시작됐다. 에이크는 기름과 안료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유화 기법을 완성시켰다. (p. 370)

고흐의 해바라기를 시들게 한 범인은 다름 아닌 미술관의 LED조명이었다. LED조명은 고흐의 노란색을 어둡게 변색시켰다. 거듭된 연구로 LED가 결정적으로 고흐 그림을 변색시킨 범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미술관은 이제 공학자들과 함께 푸른빛은 많이 방출하지 않으면서도 그림을 밝게 비출 수 있는 LED조명에 대한 연구와 그림 보존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p. 385)

 

테라헤르츠파의 분석기법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제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을 원화를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 복원해낼 수 있을 정도다. 과학의 발달은 명화속 숨은 비밀들을 속속이 밝혀내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뭉크의 <절규> 그림에 얼룩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그 얼룩이 무엇인지 밝혀낸 이야기를 읽으며 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얀 반 에이크 의 그림은 그저 놀랍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정교한 실제감을 자랑한다. 마치 손에 만져지는 듯한 옷 하나하나 머리카락 하나하나의 표현들이 어찌나 섬세한지... 그런데 그가 유화기법을 완성시킨 사람이었구나.. 물감의 배합도 결국 과학과 닿아 있었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더 시들지 않도록 공학자들은 분명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명화의 복원과 보존은 첨단 과학의 선두기술을 응용하고 있었다. 옛것을 살려내는 신기술이라니... 뭔가 더 의미있어 보인다. ㅎㅎ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예술작품이 때때로 훼손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를 '반달리즘'이라고 한다.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 공공시설, 자연경관 등을 파괴하는 행위다. 게르만 민족의 하나인 반달족은 5세기 초 유럽의 민족 대이동기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정복하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반달 왕국을 세웠다. 반달족이 로마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문화와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 폭넓게는 낙서나 무분별한 개발 등 공공시설이나 자연경관을 훼손시키는 행위도 반달리즘에 포함된다. (p. 399)

로마사를 읽고 있는 중인데 로마유래 용어가 나오니 눈이 번쩍 뜨인다. 반달리즘도 로마에서 유래된 단어구나... 5세기 부분을 읽을때 좀더 주의깊게 살펴봐야 겠다. 여하튼, 반달리즘은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기원전 유구한 문화가 파괴된 분쟁지역이 떠올라 가슴아프다...

그림을 보다가 과학을 읽다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아~! 깨닫는 묘미가 가득한 책이었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6권이던데, 다른 시리즈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눈과 머리가 호강한 듯한 기분을 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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