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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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온몸을 힘차게 밀어 찾아 나가는

따뜻한 체온과 완벽한 교감의 순간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도착한 사랑이야기

내 사랑이 이상한가요?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었을 때 그동안 누구도 장애인 문제를 이렇게 꺼내놓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스스로가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라서 그 누구의 말보다 진실함이 절절하게 다가왔었더랬다.

그리고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회에서 자신을 실격당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하고 알아야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대만인 저자가 대만내에서의 장애인 문제를 '성과 사랑' 을 주제로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취합하여 풀어낸 대중서와 연구서의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이다. 원제는 '암흑의 나라' 라고 한다. 장애인들의 욕망은 그동안 빛이 비추는 사회에선 드러낼 수 없었던 그렇게 비자의적으로 어둠속에 갇혀 있었던 문제였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환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일진대 빛을 만끽하며 살아온 우리가 어둠에 대해 이제는 제대로 생각해보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타이완에서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소개하는 이 책을 읽기전 글로 소개하는 김원영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소개글에서 이미 이런 주제를 언급하는 것에 대한 용기랄까 결의같은 것이 느껴져서 읽기전부터 어서 이런 책이 좀더 편하게 읽혀지고 알려질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의 교육 체계와 사회복지기관, 사회 여론이 여태까지 장애인을 무성애자나 성별을 지운 존재로 취급하면서 일률적인 짧은 머리, 여럿이 함께 자는 군대식 잠자리, 집단 탈의, 집단 목욕 등의 형태로 돌봄의 편의를 추구해왔고, 그들의 욕망을 건드릴까 봐 제대로 된 성교육을 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제시하라는 건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그럼 성 문제가 터진다면? 그냥 보고도 못본 체한다. (p. 22)


오랜 세월 장애인의 성적 충동은 일종의 금기사항이었다. 이들은 무성애자로 취급되었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이상 성별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성별은 생존의 욕구처럼 당연하게 본능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것만 나또한 그저 그들을 보살핌이 필요한 무성애적 존재로 생각해 왔음을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편의적으로 시설에서 돌봄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졌음을 부끄럽게 인정한다...


장애는 개인의 불행이지만, 그 불행을 어떻게 대면하는가는 한 사회가 '장애' 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는지를 반영한다. 은연중이든 노골적이든 장애에 대한 인식에 차별이 있는지, 일상에 무장애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p. 25)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불편한 부끄러움을 느낀 내가 갖고 있는 인식은 그동안 내가 받아온 교육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는 어떤 교육을 해왔는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반에 장애인 친구 한명 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특별학급이라고 장애인반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한반에 함께 존재했던 그들이 고등학교 대학교에 올라갈 수록 눈에 띠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물며 지금은 초등학교에 장애인친구가 있는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다. 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걸까??


그들은(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 성인이 된 지적장애인 자녀들을 어린아이 취급한다. 이 '아이들'이 성별 개념이 있는지, 사랑과 애정 관계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감히 생각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p. 39)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그동안 우왕좌왕하며 걸어온 길에 실수가 오해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거기에는 아이가 울퉁불퉁한 길을 걷지 않게 하려는 선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길 바란다. 그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게 설마 잘못된 일일까? (p. 50)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 중에서 부모가 살뜰히 집안에서 보살피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성어린 보살핌을 제공하는 부모들조차도 자신들의 자녀가 성인이 되었음을 인지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저 평생 '아이' 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 '아이' 안에도 성호르몬이 존재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다 선의이다. 그저 자식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부모의 마음이 자식의 욕구와 부딪히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독립적 주체가 되기 힘든 장애인들의 경우는 오히려 더 억압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어느쪽도 함부로 잘못됐다 말할 수 없다.


성교육은 단지 '노no'라고 말할 줄 아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이면의 정서적 연결과 유대 관계 형성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사들은 늘 이 점은 소홀이 한 채 올바른 관념만을 이끌어내려 애쓰고,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힘겨루기를 반복하다 쌍방이 지쳐 나가떨어지면, 결국 '학생이 멍청해서' 라는 변명으로 결과를 합리화한다. 이처럼 쌍방이 망하는 길을 걸어온 셈이다. (p. 45)


성교육의 부실함은 장애아들에게만 있어온 것은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학교에서도 성교육은 여전히 부실하고 난해하다. 범죄예방 측면에서 성교육을 다루면 성은 곧 범죄가 되고 생물학적 측면에서 성교육을 다루면 성은 그저 무의식적 본능이 된다. 성과 사랑을 연결하고 성과 유대감을 연결하는 성교육의 부실함은 사랑을 영화처럼 낭만덩어리로 만들거나 사랑을 무서운 범죄연결고리로 만들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랑도 아니고 일단 썸부터 시작하는 사랑예행연습이 필요한 시대가 되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지적장애인에게도 성적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진실한 경험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진실한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지적장애인이 성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장애인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험악한 사실 앞에서 단순히 '신체의 자기결정권 존중' '성의 자유로운 추구'만 주장한다면 돌보는 사람들의 우려는 불식될 수 없으리라. (p. 92)


성폭력범죄에서 지적장애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일 것이다. 시설에서의 집단 사례라도 발각되면 뉴스에서 화젯거리로 삼는 기간만 관심이 쏠렸다가 흐지부지... 그러다 또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악순환... 이런 상황에서 지적장애인의 성적 욕망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장애인들에게 책임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장애인들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장애인들의 성적욕망을 억압한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흐름인걸까? 책임과 윤리는 모든 인간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어느 한쪽에만 과하게 요구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을 '환자'와 '불구자'로 보는 데 익숙한 우리는 의학과 손상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저 의식주와 의료, 장애없는 환경일 뿐 사랑과 우정, 친밀한 인간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의 다발성 경화증 환자 투탄 하나포드가 "남자는 늘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착각한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은 늘 장애인의 필요를 안다고 착각한다" 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p. 115)


명언이다. 우리는 늘 내가 상대방의 요구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착각인것을;;;


'건강하고' '온전한' 신체만이 성과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건강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신체는 그저 '다를' 뿐이다. 장애를 가진 신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동정' '공포' '기형' 이라는 편견은 악의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단순히 낯설어서인지도 모른다. (p. 129)


낯섬도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면 좀더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가 대만에 거주할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낯설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저자는 장애인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한데 우리사회에서는 휠체어든 다른 장애든 장애인들을 만나는 경우자체가 드물다. 드문만큼 만나면 한번쯤 더 눈길을 주고 더 쳐다보고 지나간다. 그런 문화부터 바뀌어야 할텐데... 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사회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참...


낯선 생활과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국제결혼은 쌍방이 고립되었다는 무력감을 느끼기 쉽지만 외국인 배우자가 직면하는 압박과 고통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만약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인륜지대사를 그리 좋다고 여겨지지 않는 상대와 치르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고향을 떠나온 그들은 이후이 세월 동안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망은 가슴 깊이 묻어둔 체 지내다 결국에는 거의 잊고 산다. 하지만 언젠가 혼란스러운 욕망이 불쑥 수면 위로 떠오른다면 가정이 서로를 옥죄는 감옥이 될지도 모른다. (p. 155)

"아들을 외국인 신부와 맺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휠체어에 앉은 여자는 맞을 수 없다" (p. 189)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 동남아 외국인 신부 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만에서는 장애인 남성이 동남아 신부를 사오는 경우가 꽤 많은 듯 하다. 우리나라 농촌총각들이 동남아 신부를 사오듯이... 여하튼 그래도 여건이 되고 남성인 장애인은 신부를 사.올. 수라도 있다. 하지만 여성 장애인은??

모든 사회엔 계층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사회 약자층이라고 여겨지는 장애인 사회에서도 더 약자층은 존재했다. 그나마 남성장애인의 성적욕망은 어떤식으로든 해소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장애인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성적욕망은 둘째치고 가사와 출산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것 같은 여성장애인은 어렵게 인연을 만나도 거부당한다. 같은 장애인 남성에게조차 버려진다.


손천사는 자위와 성욕 충족 등 순수하게 생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을 애매하게 보고 금기시하는 주류 사회의 태도에 도전하고자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오직 이성적인 소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의 필요를 이해시켜야만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론은 그들의 신념에 그다지 흥미가 없고 보도는 늘 선정적으로만 흐른다. (p. 247)

"인정해요. 우리는 욕망을 이용해 장애인을 도와요. 그들이 욕망을 삶의 힘으로 바꿀 수 있게 격려하지요. 서비스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역량을 펼쳐 나가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하고요. 욕망이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왜 우리는 이렇게 성과 욕망을 두려워하죠? (p. 262)


책의 뒷부분에는 장애인의 성적욕구를 풀어주는 무료자원봉사단체 손천사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일본의 유료서비스업체 화이트핸즈 와 프랑스의 APPAS, 스위스의 SEHP, 이탈리아의 LoveGiver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해소해주는 사례들을 보면서 복잡다단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손천사를 만든 황즈젠은 장애인이면서 동성애자 이다. 첩첩산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장애인의 성문제 관련 최전선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생각해보면 왜 그러면 안된다고 느끼는 것인가? 그냥 다 다른 사람일 뿐인데...


장애인의 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일 뿐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정상'을 규정하고 '차이'를 대하는지를 연구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미천한 수준이다. 인간됨과 관련한 한 차례의 도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p. 273)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법이나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성 관념의 해방인지도 모른다. 성의 범람이 아니라, 지식과 마음의 해방말이다.

성적 욕구를 전적으로 문제시하고 불안해하는 태도야말로 더 넓고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마음의 문턱이다. 신체는 인류가 자아를 장악하는 도구이자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단지 육신이 존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로 진입하는 중요한 통로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고, 사회의 명와 암을 이해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든 장애인에게 돌려주자. 이는 인도주의적인 동정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펼쳐 보이는 일이다. (p. 303)


장애는 크게 신체적 장애와 지적 장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과 후천적 장애에 대해서는 그나마 장애인으로서는 비장애인처럼 용인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선천적 게다가 지적 장애이기까지 하면 이경우의 장애인은 거의 사람취급 못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성적 욕망이라니 얼마나 낯선 주제인가 게다가 동성애이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어려운 주제인가

이 어렵고 낯선 주제를 삶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공감은 낯섬을 넘어서는 지지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지지기반이 모이고 모여서 더 넓은 토대를 만들고 그 토대가 확장되다 보면 이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낯설어지는 인식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사계절 출판사는 동화책과 청소년책으로 익숙한 출판사였다. 그런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이라는 책을 낸 출판사여서 신선했었는데, 뒤이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이라는 책까지 내는 것을 보고 기대감이 오른다. 앞으로도 녹록치 않은 출판시장에서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기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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