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제목 그대로 책에 바치는 저자의 마음을 표현한 글들은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지극히 공감가는 산문들이었다.

결코 소멸되지 않길 바라지만 어쩌면 소멸할지도 모르는 책에 대한 공경

나는 디지털 독서의 장점 또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출판의 생태적 이점에 대한 설명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려 한다. 그러기에 나는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사람이다. 글을 깨친 뒤로 내게 세상을 열어준 것은 파일이 아니라 책이었다. 책은 내 동반자이자 내 동거인이었고 조력자이면서 친구였다. 지금 이 순간가지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집필함으로써 내 인생의 가장 대담한 꿈을 이루었고 지금도 이루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책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되면,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이 책에서 한번 열거해보려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책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거를 발굴해낼 생각도 없다. 그보다는 기이하게도 우리 모두가 아주 당연시 여기는 책을 둘러싼 문화 현상 전반에 주목하려 한다. 너무나도 친숙한 나머지 책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될 그 모든 것에. (서문 p. 21)

저자가 이 책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된 이유를 서문에서 말과 자동차의 비유로 설명하니 굉장히 실감나게 다가왔다.

19세기 말 서구의 대도시들은 온갖 종류의 마차로 가득 차 있었다. 시내곳곳에 말이 있었다. 런던의 경우 30만 마리의 말이 매일 귀리 1,200톤과 건초 2,000톤을 먹어 치웠고 말 한 마리당 하루에 약 15킬로그램을 배설했다. 사람들은 도시가 곧 말똥에 뒤덮일 것이라 걱정하면서도 모든 운송과 이동은 말과 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대체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누가 말과 마차대신 자동차를 이용하겠냐며 자동차를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안다. 누구도 자동차 없는 세상을 생각하지 못한 다는 것을.

저자는 전자책의 등장을 자동차의 등장으로 비유한다. 그렇다면 말과 마차에 해당하는 종이책은 정말 사라질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처럼 만약 그럴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는 공감하기에 저자가 절절이 풀어놓는 책에 대한 헌사에 나또한 마음을 뺐길 수 밖에 없었다. 사라지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를 것에 대한 진심어린 헌사랄까.

>> 몸체에 대하여 ··· 새책, 헌책, 큰 책과 작은 책, 아름다운 책, 훼손된 책, 불완전한 책, 주석을 붙인 책

>> 사용에 대하여 ··· 좋아하는 책, 알맞은 책, 부적절한 책, 비싼 책과 싼 책, 발견된 책, 선물 받은 책, 사인된 책, 독점된 책, 빌린 책, 분실된 책, 훔친 책, 두고 간 책, 버린 책, 금지된 책, 학대받은 책, 불살라진 책

>> 전문성에 대하여 ··· 독본, 사전, 서평용 견본, 초판본, 낭독회용 견본, 책공예

>> 모여 있는 책들 ··· 공공 도서관, 개인 도서관( 비축, 신분, 수집, 보관), 서점, 헌책방, 이동 도서관, 책장

저자가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 예상하는 것들은 책에 대한 경험들이다. 저자는 엄청난 장서가이고 수집가이다. 그가 책을 모으며 느껴왔던 책에 대한 생각들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음직한 기분들이었다. 그가 만난 책들에 대한 인상을 담은 글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책들에 대한 찬미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책이 소중한데 책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책장을 갖고 책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저자가 참 부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나만의 책장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현실성이 낮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빌려보거나 빌려보지 않는 책은 보관할 수가 없어서 최소한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처분한다. 때로는 그렇게 선별해야하는 것이 마음 아플 정도로 나도 책에 욕심이 많지만 어쩔 수없다.

대학에 가서야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처음 가보았는데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그렇게 넓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있는 모습을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도서관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공간이었고 위안의 장소였다. 그래서 지금은 도서관사서들이 정말 부럽다. 서점주인도 부럽지만 매출에 대한 부담이 아무래도;;;

책을 볼때 나는 줄을 친다거나 글을 적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필요한 부분엔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하고 책장도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래서 내가 읽고 난 책은 거의 처음수준의 새책에 가깝다. 내 소유의 책인데 왜 그렇게 아껴가며 조심스럽게 읽는지 나도 내가 잘 이해가 안가지만 내게 책은 그만큼 늘 소중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것을 발견하면 그렇게 마음이 안좋을 수가 없다. 많이 읽혀서 닳은 것과 함부로 관리해서 훼손된 것은 엄연한 차이가 난다. 게다가 도서관 책인데 줄치고 메모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다 읽고 나면 반납하고 다시 볼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지? 화가 난다.

그렇다고 내가 새책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헌책은 헌책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이미 헌책이라고 알고 구입했으므로 어느정도의 훼손은 이미 감안했기 때문이다. 이경우엔 책의 소유주였던 사람이 책을 읽으며 남긴 흔적들에 대해 나도 읽다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그렇게 누군지 모를 타인과 같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되면 반갑기까지 하다.

저자는 책을 수집하면서 경험한 일화가 아주 다양하지만 내 책장 하나 갖지 못한 처지의 나로서는 언감생심 이다. 좋아하는 작가, 의미가 있는 판본, 절판 되기엔 너무 아까운 책들등 수집하고 싶은 조건들은 많지만 선물받은 책들도 다 읽고 나면 다시 선물해야 할 판에 수집이라니... ㅠㅠ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부터 나는 책선물을 종종 받았었다.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생일이면 내게 늘 책을 선물했다. 왜였을까? 내가 그런 티를 냈던가?? 흐음...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보다 좀많이 내 주변엔 늘 책이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그 책들은 다 어쨌을까... 아마도 이사를 거듭하며 나도 모르게 버려졌을 테지만... 지금도 문득 생각나는 책들이 있어 아쉽다.

한정된 공간에 책을 두어야 하다보니 왠만해선 책을 잘 버리지 않는 나로서도 책을 버릴때가 생기는데 얼마전에야 대학때 전공서적을 버리면서 책장사이에서 그림엽서 한장을 발견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잊고 있던 시간들이 그 엽서 한장으로 잠시나마 내게 행복감을 주었다. 책이란 이런 식으로도 기쁨을 주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가 노동하는 동물로서 말을 포기했듯이 언젠가는 인쇄된 책을 실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해도, 그것이 결코 우리가 좋은 텍스트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p. 186)

책은 일차적으로 텍스트 전달 수단이다. 문자가 있기 전에도 구전으로 전해오는 텍스트들이 있었듯이 종이책이 없어진다 해도 의미있는 텍스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텍스트 전달 수단으로서도 종이책이 좋다. 디지털북은 보기에 눈이 아프다는 신체적 어려움도 있지만, 인쇄된 책들은 저마다 텍스트 너머 다른 의미까지 전달해준다. 책의 크기, 재질, 색상, 인쇄형태, 촉감, 향기 등등 텍스트를 읽는 것에 더해 물질적인 종이책이 전해주는 이러한 것들은 텍스트만 전달해주는 전자책이 결코 알려줄 수 없는 것들이다. 어찌보면 인쇄된 책은 종합 예술품인 것이다.

"그것은 전주곡일 뿐, 책들을 불태우는 곳에서 결국에는 사람들도 불태울 것이다" (p. 112 - 하인리히 하이네)

잘못된 권력들은 늘 책들을 불태우고 지식을 독점하려 했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사람들이었다. 텍스트가 적힌 물질로서 책이 불에 태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던 시대에는 사람들의 현실도 눈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만약 대부분의 텍스트들이 전자화되고 눈에 직접적으로 실체로서 보이지 않게 된다면 권력의 실체도 권력이 해치는 사람도 눈에 안보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버튼 하나로 데이터를 날려버리듯이 버튼 하나로 사람들을 제거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만드는 미래여서는 안되지 않을까?!

마차가 자동차가 되고 자동차가 무인이 되고 그러다 아직 이름지어지지 않은 다른 형태의 이동수단이 생겨날지라도 종이책은 늘 인간과 함께 였으면 좋겠다고 그럴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젖병이 달린 철사엄마보다 젖병이 없는 인형엄마에게 안겨있기를 더 좋아했던 아기침팬지 실험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텍스트는 그 지식의 유용성 자체와 함께 종이책이 주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가상화될지라도 사람사이의 포옹과 유대감이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종이책이 주는 포근함 또한 영원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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