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휩쓴 세계사 - 전염병은 어떻게 세계사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는가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17
김서형 지음 / 살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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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어떻게 세계사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는가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시간매순간 다양한 곳 다양한 사람에게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역사가 된다. 그런 순간들 중 어느 장면을 포착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세계사책치고 무척 얇은 편이라 역사서로서는 빈약하지만 세계사속 '팬데믹'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적 전염병사를 짧고 굵게 알려주고 있다.

석기시대에도 질병은 있었다. 그러나 이동식 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변경되면서 전염병은 생존에 커다란 위험요인이 되었다.

기생충은 인간과 동물에게 모두 전염병을 옮긴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야생동물이 인간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인간 사회에서 기생충에 의한 전염병이 자주 발생했다. 수렵·채집 시대보다 공동체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전염병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고, 생활 터전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농경시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수렵·채집 시대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 작물을 재배하면서 인간 사회에는 당뇨병과 관절염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발생했다. (p. 19)

따로 살때보다 모여살면서 더 다양한 질병이 생겨났고 멀리 있는 곳까지 이동하며 교류하면서 더 위험한 전염병이 생겨났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도시와 국가를 형성하며 세계적 네트워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네트워크를 통해 신문물 뿐만 아니라 질병도 퍼지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는 실크로드를 통한 천연두였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사람들은 더 많은 생산물을 얻기 위해 소를 길들이기 시작했는데, 천연두는 소와 인간에게 공통으로 발생했다.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한 아프로-유라시아의 여러 지역에는 천연두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 수천 년 전에 인도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천연두는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훈족이 옮겨 다니면서 아프로-유라시아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도시와 지역을 연결하고 있던 글로벌 네트워크인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까지 번졌다. (p. 33)

실크로드가 육로를 통해 중국과 로마를 연결한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였다면, 바닷길은 유럽과 아프리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였다. (p. 40)

실크로드는 육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길도 있었다. 그렇게 예전부터 사회는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는 질병 있으면 가는 질병도 있는 법이다.

541년에 동로마제국에서 처음 발생한 페스트는 아프로-유라시아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인구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로마제국이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 동안 페스트가 영향을 미치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 이슬람제국이 등장해 동로마제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p. 47)

질병은 인류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고 권력을 손아귀에 쥐어도 죽으면 다 일장춘몽이다. 권력의 이동은 군인과 병력에 좌우되었고 병력은 질병에 큰 영향을 받았다. 승승장구 하던 국가일지라도 전염병으로 노동력과 군사력이 감소하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 속에 등장한 제국들은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도로를 정비했다. 로마제국에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도로를 체계적으로 건설했고, 페르시아제국에서는 서쪽 끝까지 2,700킬로미터에 달하는 '왕의 길'을 건설했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계자들도 도로 건설에 관심이 많았는데, 30~40킬로미터마다 역참을 설치했다. (p. 50)

권력과 정복의 확산에도 중요했겠지만 전염병의 확산에도 '길'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질병도 함께 이동했다.

14세기 동안에 아프로-유라시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은 흑사병이었다. 흔히 '페스트'라고 부르는 흑사병은 중국 남서부 지역의 윈난성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던 풍토병이었다. 몽골제국이 윈난성을 정복하면서 흑사병은 자연스럽게 몽골제국 내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상인들의 교역이나 활발한 정복 전쟁과 함께 몽골제국 근처의 여러 지역으로 흑사병이 퍼졌다. (p. 53)

흑사병은 십자군 전쟁과 더불어 1,0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한 교회가 붕괴되는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영주나 제후는 교회의 간섭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력을 확대해나갔고, 이는 결국 새로운 형태의 국가가 탄생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p. 60)

권력의 중심엔 대부분 종교가 함께하기 마련이었다. 종교는 중앙집권적 권력형성에 튼튼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전염병에 사람들이 죽언나갈때 종교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흐트러진 믿음은 권력도 흔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흔들린 권력은 또다른 모양의 권력을 만들어내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역사가 되기 마련이었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30~40년 동안 유럽인이 아메리카로 이동하면서 숨낳은 전염병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천연두와 홍역, 인플루엔자, 페스트, 티푸스, 디프테리아 등 모든 전염병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지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아메리카 원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멸종했다. (p. 74)

동식물만 멸종하는게 아니다. 인류도 멸종한 종류가 많았다. 특히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멸종은 인류사에 가장 참혹한 질병사가 아닐까...

1845년 다시 한번 기근이 발생했다. 감자역병균이라는 전염병 때문이다. 감자 기근과 더불어 아일랜드에서는 심각한 전염병이 발생했다. 사실 굶주림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1845년 대기근 동안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전염병은 티푸스였다. 티푸스는 주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자주 발생했다. (p. 85, 86)

질병은 동물과 인간으로부터만 오는 것도 아니었다. 기후와 환경은 갈수록 새로운 질병을 생성했다. 13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소빙기' 동안 극심했던 추위는 기근을 불러왔다. 변화되는 기후와 기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아진 인구는 (자연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는 수준의) 비위생적 환경을 만들었고 다시 전염병이 퍼지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아프로-유라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한 작물 가운데 사탕수수와 커피가 잘 자랐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웠다. 하지만 천연두나 홍역 등 아프로-유라시아에서 이동한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가 급속하게 감소하면서 농장에서 일할 새로운 노동력을 찾아야만 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노예는 인류 역사상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기원전 2000년 무렵 수메르에서는 노예의 코에 코뚜레를 끼우고 가축과 동일하게 취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p. 94)

고대에는 주로 채무 관계나 전쟁 때문에 노예가 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노예주와 노예가 피부색이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노예로 삼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슬람의 노예무역을 들 수 있다. 9세기 무렵 이슬람 상인들은 동유럽과 남유럽, 중동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요충지인 발칸반도의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으면서 '슬라브Slav'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영어로 '노예slave'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11세기 즈음 이슬람 상인들은 에티오피아나 말리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교역하면서 아프리카 노예를 사고팔기 시작했다. (p. 95)

슬라브족은 백인계열 아닌가? 노예의 어원이 백인노예였다니... 이또한 참 아이러니하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달리 다양한 풍토병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아프리카 원주민은 웬만한 전염병은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유럽인은 아프리카의 전염병에 저항할 아무런 면역력도 없었다. 노예로 잡히거나 팔린 아프리카 원주민과 함께 아메리카로 이동한 전염병은 황열병이었다. (p. 102)

동인도회사는 설탕이나 차, 면직물 등 인도의 다양한 상품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풍토병(콜레라)이 영국으로 이동하는 데 주요한 매개체였다. (p. 113)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전염병에 쓰러지던 유럽인들은 자연에서 만들어진 풍토병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쓰러지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전염병은 결핵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7000년 무렵 수렵·채집 시대의 화석에서 결핵의 흔적이 발견되고, 기원전 2400년 무렵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흔적을 볼수 있다. 결핵은 인류 역사상 매우 오래된 전염병 가운데 하나였지만, 산업 네트워크가 형성된 이후에 더욱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p. 124)

저자는 결핵이 빈부 격차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염병이라고 말하며, 오늘날 결핵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 인도와 아프리카라고 알려준다. 결핵은 영양부족과 연결되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교적 잘 살게 된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도 결핵환자는 여전히 생겨나고 있다. 잘 살게 됐다고 해서 모두가 잘 살게 된 것은 아니니 이또한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염병'이라는 단어가 총 736회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비속어로 사용되는 단어인 '염병'은 전염병을 줄인 말이기도 하지만 주로 장티푸스를 가리킨다. (p. 132)

기근과 전염병은 쌍둥이인가 보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신체에 퍼진 전염병에 인류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구가 늘어난 것을 보면 참... 인류가 대단하긴 하다.

아일랜드 이민자에 대한 미국인의 부정적인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장티푸스 메리'사건이었다. (p. 138)

전염병은 빈부격차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곤 한다.

미국내에서 결핵이 퍼졌을때 백인만을 위한 요양원이 세워졌고, 기근에 시달리던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미국에 몰려들기 시작했을때 먼저 와있던 이주민들은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곤 했다. 아일랜드 이주민 여성이었던 메리가 요리사로 일했던 집마다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하자 보건당국은 메리를 조사했고 메리가 무증상 보균자임이 확인되어 남은 일생을 수용소에서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다.

미국내전 동안 사망자 수는 약62만명 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전투로 사망한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약3분의1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3분의2에 해당하는 약40만 명은 왜 목숨을 잃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전염병 때문이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전염병은 세균성이질이었다. 세균성이질은 주로 환자의 배설물을 통해 시겔라균에 감염되어 발생한다. (p. 155)

집단생활에서 전염병은 치명적이다. 전쟁이 발생할때마다 사망자수엔 전쟁 자체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수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전쟁의 피해를 생각할때 놓쳤던 부분이다.

1918년 봄에 처음 발생한 인플루엔자는 유럽으로 파견된 병력과 함께 이동하면서 한 달 이내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유일하게 제1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국가는 스페인이었는데, 스페인 언론은 인플루엔자에 관해 빈번하게 보도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이 전염병을 '스페인 독감'이라 불렀지만, 사실 인플루엔자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스페인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최근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전염병을 스페인 독감 대신 '1918년 인플루엔자' 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p. 162)

'스페인 독감' 들어봤는데, 스페인이랑 별 상관이 없다니 거참... 스페인으로서는 영 기분이 안좋겠다. 코로나가 처음은 중국코로나 였다가 국가의 이미지를 고려해 중국이라는 빠진 걸로 아는데, 질병 명칭에도 국가권력이 영향을 미치나 보다...

현대전쟁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셀 쇼크' 같은 정신적인 전쟁 트라우마도 언급하지만, 글쎄... 트라우마를 전염병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심각한 전염병 가운데 하나가 말라리아다. 일부 과학자들은 약2,000만 년 전부터 말라리아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전염병인 것은 확실하다. (p. 190)

이처럼 오래된 질병인 말라리아에 대한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 세계 말라리아 환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거대 제약기업들에게 말라리아 백신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것이다.

에볼라바이러스도 황열병이나 말라리아, 에이즈처럼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풍토병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에볼라는 1976년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콩고공화국에서 최초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014년 지금까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다시 등장했다. 가장 먼저 에볼라가 발생한 나라는 기니였다. (p. 207)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질병일지라도 세계적 전염병이 되는 것은 순식간임을 역사는 내내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늘 연결되어 왔다. 근시안적 이익에만 몰두하다간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학자들은 에볼라와 마찬가지로 사스도 박쥐가 매게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중국·호주·미국 공동 연구팀은 중국에서 서식하는 박쥐 아홉 종류를 조사하고 이 가운데 70퍼센트가 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p. 212)

족제비는 인간이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감염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지표 동물로 사용된다. 따라서 족제비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감염될 확률이 매우 높다. (p. 216)

신종인플루엔자A는 2003년 미국에서 처음 발생했고, 2009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했다. 신종인플루엔자A는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치명적이었다.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타미플루를 복용했다. 타미플루는 국제보건기구로부터 유일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로 인정받은 약이다. 결국 신종인플루엔자A는 조류인플루엔자의 또다른 변이라고 볼 수 있다. (p. 219)

에볼라, 사스 그리고 코로나까지 박쥐와 연결되어 있다니... 박쥐란 참 신묘한 동물이긴 한가 보다. 그러니 연구를 안할수는 없고 연구하다 바이러스에 걸리면 난리가 나고 거참...

족제비가 인간 대신 바이러스 검사체로 이용되고 있었구나... 족제비가 이렇게 인류와 밀접한 관계의 동물인지 몰랐네... 괜히 미안해지네...

조류독감이 발생할때마다 엄청난 살처분 뉴스를 보며 좀 과하지 않나 싶었었는데... 직접적인 전염이 되지 않더라도 같은 타미플루가 효과를 보는 인플루엔자여서 그랬구나... 그러다 인수공통바이러스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철새...조류독감... 반복... 거참....

현대사회는 밀접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다. 아무리 코로나가 창궐해도 최대한 빠른 관계회복을 위해 국가별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호관련성이 이익을 넘어 전염병 극복과 질병예방에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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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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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파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21세기 신친일파, 그들 앞에 맞선

한일 관계 전문가 호사카 유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문제, 독도문제'에 관한

『반일 종족주의』 저자의 왜곡과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나왔을때 책소개내용과 기사들을 보며 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버젓이 나오나 싶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어쨌든 그 책은 관심을 많이 받았고,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꽤 많이 팔렸다는 얘길 들으니 그저 기가막힐 뿐이었다.

기사내용의 일부만으로도 이미 헛소리로 보이는 책에 내 시간을 쏟으며 읽어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그 책은 내 시야에서 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뒤이어 이 책이 나왔다.

좀 옛날식?! 표지디자인이 영 내취향은 아니었지만, 상식삼아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읽어봤다.

읽고나니, 너무 당연한 내용들에 너무 명백한 증거들이던데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거짓이라 부정하고 악의적 편집을 한 '그' 책에 대해 더욱 화가 났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에서 정치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정착해(2003년 귀화함) 한일관계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였다.

한국인이 친일을 할때 일본인이 친한을 해준다는 것은 표면상으로도 의미있는 일인만큼, 헛소리에 논리적으로 반박해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2019년 『반일 종족주의』라는 기이한 제목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고, 뒤이어 일본에서도 출간되었다. 그 책의 저자들은 한국인의 반일적인 '상식'이나 '정서'가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일본에 대한 '노예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들이 책 『반일 종족주의』를 통해 주장하는 한국인들의 '상식'이나 '정서'중 현재 한일 양국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들, 즉 일본군 '위안부'문제, 강제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본서는 그들의 주장을 분석해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 문제들에 대해서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일본 우파의 논리에 자신들의 생각을 더해 저술한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p. 5)

머리말의 시작부터 깔끔하게 이 책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데, 저자의 논리정연한 말들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 뭔가 다른 말을 덧붙인다는 것이 오히려 군더더기가 될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내용들을 정리해 옮겨와 보는 것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보려 한다.

일본 우파가 주장하는 논리의 시작은 1993년 8월 자민당의 미야자와 정권의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가 '고노 담화'를 발표한 직후였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도 표했다. 그러자 자민당 내 극우 세력이 반발하고 나섰다. 나아가 '고노 담화' 폐기를 목표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민당 내에 '역사검토위원회'가 결정되었고, 우파 논객들을 강사로 초빙해 모임을 지속해서 가졌다. 그러면서 자민당 내부에 극우 세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1995년 8월 일본 정부는 '종전 50주년'을 맞이해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세계 앞에 사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도 자민당 내 극우 세력이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 우파의 최종적인 목표는 '고노 담화' 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데 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후지오카 노부카쓰 교수 등이 내세운 '자유주의 사관'을 도입했다. '자유주의 사관' 학설이란 일본이 침략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백인 지배에서 해방시킨 '해방 전쟁'을 수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강제연행을 부정하며,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배하면서 근대화시켰다고 강변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과거를 사죄하는 태도를 '자학사관'적 태도라고 매도하면서, 일본의 사과 외교는 일본의 진보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1993년 '고노 담화'를 발표한 이후 자민당은 호소카와 내각에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창당 이래 무려 38년 동안 여당의 지위를 유지했던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자민당 내 우파의 위기감을 자극해 우파의 논리 구축을 촉진시킨 결과 '자유주이 사관'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는 1997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극우단체 '일본회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일본 내에서 역사 왜곡을 심화시키는 주체적 역할을 해나갔다.그들은 또한 틈만 나면 '좌경화된 일본인의 의식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1998년 한국에서 김대중 정권이 성립된 이후, 한국내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바로 진보 세력에 대항하는 '뉴라이트'의 등장이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2000년경에 등장했는데, 일본과의 유사점은 한국 내 보수 우익이 1998년 정권을 상실한 것을 계기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보수 우익의 논리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2005년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발족되었다. 이어서 2006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뉴라이트재단을 창립해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안병직 명예교수 등과 함께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 경제사를 연구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셈이다. 본서에서는 그들의 정치적 색깔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논리와 주장을 문제로 삼았다. 본서는 특히 강제징용 문제, 일본군 '위안부'문제, 독도 문제 등에 관한 그들의 논리가 매우 잘못되었음을 입증해 나간다. (p. 6~8)

이영훈은 2018년 10월 말 확정된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승소판결 역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 우파의 주장보다 훨씬 더 편협하다. 일본 우파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다 끝난 것을 뒤집은 이상한 판결이라고 했을 뿐, 거짓 판결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 또한 한국 법원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1965년에 모두 끝난 일이므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달라고 주장한 것이지, 거짓 판결이라고까지는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영훈은 판결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반일 종족주의』 일본판이 이미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인들이 그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이영훈은 걱정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어느 나라 사람이란 말인가. 필자가 분석한 결과, 이영훈과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의 글에는 큰 결함과 왜곡과 은폐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노예근성'으로 가득 찬 잘못된 주장을 대중을 향해 펼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p. 18)

이영훈은 또한 어떤 말을 서술할 때 사실의 일부분만을 떼어내 자신의 주장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사실 100가지 중에서 그가 인용하거나 차용하는 비율은 20~30가지에 불과하며, 나머지 절대다수의 진실은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수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자신이 사람들에게 말한 20~30가지 중에 논리성을 만들어 그것이 마치 100가지 사실 전체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영훈이나 이우연의 논리는 나머지 70가지 중 몇 가지 사실만 증거로 제시해도 쉽게 붕괴될 수 있다. 자신을 따르는 극소수 신봉자에게나 통하는 논리를 일반 대중에게 주장하는 셈이다. (p. 20)

원고들은 일본 측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을 위자료로 청구한 것이지, 이영훈이 주장한 것처럼 받지 못한 저금이나 미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제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영훈은 이 재판이 사감과 원고 사이의 문제이니 사감을 조사해야 하는데, 사감은 사망했으니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사감을 고소한 것이 아니라 일본제철을 고소한 것이고, 사감의 일은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한데도 이영훈은 이 재판을 원고가 마치 사감을 고소한 사건인 것처럼 태연하게 왜곡했다. 하지만 재판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영훈의 단정적인 글을 읽으면 그의 말에 현혹될 우려가 매우 크다. (p. 27)

메이지시대 일본 정부와 대규모 탄광들의 죄수 노동 정책이 나야 제도하에서 광부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조선인, 중국인, 전쟁 포로들의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으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일본인들도 기피하는 노예 노동에 조선인 등 타민족을 강제적으로 동원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들에게 노예 노역이었던 탄광에서의 지옥같은 착취 중노동을 타민족에게 시켰다는 사실을 '강제연행설 허구론자'들은 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p. 44)

이우연은 강제징용 문제를 연구한 연구자로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왜 '강제징용이 허구'라고만 강변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지만, '노예근성'이 발휘되어 그가 일본 앞잡이가 된 것이라면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p. 62)

중요한 사실을 이우연이나 일본 우파는 절대로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일부 부분적인 사실만을 부풀려 그것이 마치 전체적인 진실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일본 우파 논리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구제하기가 어렵다. '노예근성'이 정신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p. 93)

'2019년 11월 14일 일본 국회 중의원 외무위원회 회의록' 을 보면 2018년 11월 시점에서도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고, 배상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인정했다. 그런데도 일본 측은 양국이 약속했기 때문에 재판에서 개인은 구제받지 못한다는 또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일본 측은 한국이 1965년에 일본과 맺은 약속을 어겼다고 강변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항상 국가 대 국가의 약속이라는 말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러나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뜻은 개인이 해당 기업에 보상이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이번 소송들은 한국인 피해자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불법성에 의해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불법 행위를 저지른 사실에 대한 배상을 대법원이 명령했기 때문에 국가는 이번 판결문제에서 빠지고, 전범 기업들이 성실히 판결을 이행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기업이 판결을 지키지 않는다면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해 현금화한 뒤 피해자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그것만이 답이다. 한국 측의 판결 결과 집행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일본의 국제적 고립으로 이어질 뿐이다. (p. 102)

이영훈은 자신의 논리-'위안부'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으며, 자유롭게 지내며 폐업도 자유롭게 했으니 성노예가 아니었다-라는 논리에 유리해 보이는 부분만 인용했고, 자신의 논리와 맞지 않는 부분은 외면했다. 그와 같은 행위가 학자로서 올바른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p. 117)

돈만 벌수 있다면 아무리 납치를 당해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견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돈만 주면 성노예로 삼아도 된다는 논리는 돈이 가장 가치가 있으니 다른 것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의 발상이다.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의 본질은 물질만능주의라고 스스로 비판하는데, 그의 견해가 물질만능주의 그 자체다. 이영훈은 경제학자이니 돈이 제일 가치가 있다는 발상을 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경제학자가 돈을 인권보다 중요한 가치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영훈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물질만능주의나 배금주의 신앙에 빠진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종족주이자일 텐데, 왜 한국 사람들의 정신문화를 '반일 종족주의'라고 비판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종족주의'라는 말은 아마도 자신들을 관찰해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뜻으로 그들을 '친일 종족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다. (p. 118)

그런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 우파나 한국의 신친일파들은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인권유린주의자들이다. (p. 128)

한국의 성매매 문제와 일제강점기의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그 억압성이나 폭력성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그 차이를 무시했다. 그들은 일본이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반일 감정을 한민족의 미신이나 샤머니즘 같은 것이라고 갖다 붙여서 왜곡한다. 그들이 '반일 종족주의'라는 말을 만든 목적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 확산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일본 우파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홍보와 연구, 집필, 언른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인의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올바른 주장이 미신이나 샤머니즘 이라면 한국 측 주장을 지지하는 UN인권위원회나, 일본 내엥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본인 활동가나 학자들, 단체들도 다 미신을 믿는 반일 종족주의자란 말인가.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종족주의'라는 말을 매우 교묘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신도 사상이야말로 일본식 '종족주의'이고, 일본이 바로 '신도 종족주의'의 나라인데,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신도나 신사의 사상은 일본식 샤머니즘이다. 그런 일본식 '신도 종족주의'에서 나오는 주장들이야말로 일본 신도가 국가 종교였던 1945년까지 일본을 이상형 국가로 보는 일본 우파의 주장과 동일하다. 일본 우파는 일왕이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신이고, 1945년까지 대일본제국은 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식 '신도 종족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일본의 우파이자 역사 수정주의자들이다. 그런 일본의 우파와 같은 주장을 하는 한국인들이야말로 '친일 종족주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단어 하나만 바꾸면 자신들에게 딱 들어맞는 명칭을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p. 186)

1991년 김학순이 '위안부'였음을 고백했을 때, 구 일본 병사들은 많이 생존해 있었다. 따라서 김학순이 고백했을 때 만 62세부터 91세까지의 전쟁 경험자 중에 많은 분들이 살아 있어 할머니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입을 열지 않았다. 전쟁을 경험한 생존자들이 김학순의 고백에 반론하지 않았던 이유는 김학순의 이야기가 주익종이 말하는 '가공의 새 기억'이 아닌 역사의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p. 259)

『반일 종족주의』저자들은 인권 문제와 안보 문제를 일부러 혼동하는 척하는 것 같다. 안보 문제를 거론하면서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자 문제와 같은 인권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 그것은 일본 우파가 원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미국 입장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인권 문제를 한일 두 나라가 제대로 해결해서 안보 협력이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한국의 신친일파는 일본 우파의 입장을 수용해서, 다시 말해 일본에 대폭적으로 양보해서 안보 협력을 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의 신친일파는 일본이 제대로 사죄를 하고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을 때, 그 후에 전개될 진상 규명으로 자신들의 선조의 친일 행각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그런 부류나 신친일파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p. 271)

이영훈의 독도에 대한 서술은 그동안의 독도 연구 성과를 전혀 모르면서 마치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기는 글이다. 그의 글에는 독도와 관련된 역사 연대조차 잘못된 부분이 많고, 사실관계 인식에도 오류가 많다. 예를 들어 이영훈은 독도를 거론할 때 기초적 문헌인 『세종실록지리지』 간행 연도가 1454년인데 1451년이라 썼고, 독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일본이 독도를 불법 편입한 연도인 1905년을 1904년으로 잘못 썼다. 이는 단순한 실수로 간주할 수 없으며, 이영훈의 독도에 관한 '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이외에도 독도에 관한 연대의 무지가 다수 드러난다.(p. 275)

이영훈이 왜 일본 측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는지 알 수 없다. 이영훈은 한국 측 연구자들의 주장에는 아예 귀를 닫은 채 왜 일본측 논리만을 신봉하는지 모르지만, 학자라면 모름지기 여러 의견이나 주장을 두루 살펴야 하는데도 말이다. (p. 292)

이영훈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일본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솔직히 말해 한국 정부가 독도가 역사적으로 그의 고유한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은 실정입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오랫동안 일본 측의 논리만 파고들었다 할지라도 이 같은 발언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역사적 증거를 살펴보자. (p. 299)

 

(1)세종실록지리지 에서... (2)숙종실록에서... 그외 다양한 책과 지도, 문서들을 바탕으로 조목조목조목

위의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는 일부만을 소개했을 뿐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영훈은 그러한 증거들을 알지 못하는 척 얼토당토 않은 예를 들어가며 일본 우익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p. 301)

2006년 4월 당시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은 독도 영해에 일본 해상 자위대의 탐사선을 보내겠다고 한국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신조의 아이디어였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독도 영해 12해리에 16척의 경비정을 배치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오면 배로 밀어 부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국의 기세에 놀란 일본 측이 외교차관회담을 제의해 사태는 수습되었고, 이후 일본 배는 독도에서 13해리까지는 접근하지만 독도 영해를 노리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노무현 정권 때 한일 간의 '독도전쟁'이 한 차례 있었고, 한국이 이긴 것과 다름없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의 당시 일본에 대한 대처가 바람직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영훈은 당시 일본측에 한국이 대응했던 점을 왜곡했다. 이영훈이 독도는 조용히 관리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증거가 없다는 이영훈의 거짓 주장과 한국인이면서 일본 우익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해가며 일본식 종족주의로서 교묘하게 거짓말을 만들어 미국에 끊임없이 로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영훈은 알고 있을까? (p. 309)

이영훈의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파기했다'는 주장은 엄연한 거짓이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여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주장해온 것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위안부'피해자 여성들과 지원 단체 들이다. 이영훈은 사실을 왜곡하여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하나하나 왜 사실대로 정직하게 쓰지 않고 일부분만을 취해서 그럴싸하게 거짓을 만들거나 왜곡시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걸까. (p. 312)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그 밖에도 일제강점기 일제에 대한 토지 수탈론이나 쌀 수탈론에 대한 비판, 육군 특별 지원병이나 학도 지원병이 강제로 징병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원했다는 주장, 백두산 신화 비판, 쇠말뚝 신화 비판, 구 총독부 청사 해체에 대한 비판, 고종 황제 비판, 친일 청산에 대한 비판등이 포함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차차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파고들 생각이다. (p. 316)

여기는 한국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의 법이나 관습이 통하는 곳이다. 어느 나라든 자국의 법이 적용된다. 한국에는 한국법이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일본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러니하다. 자국을 침략한 나라를 옹호해주고 이상한 논리로 침략국을 감싸는 데도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신친일파 청산은 국가의 존망과도 연결된다. 친일 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신친일파의 잘못된 사상도 바로잡아야 한다. (p. 318)

개인의 언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역사 왜곡 행위는 막아야 한다. 이우연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역사를 왜곡하는 글과 동영상을 서슴지 않고 발표해왔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절실히 필요하다. 본서가 올바른 세상과 밝은 미래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미약하나마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다. (p.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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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두어페이지 읽자마자 이 소설과 아주 흡사한 분위기였던 책이 생각났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은하수...안내서'로 지칭)

SF도 좋아하고 판타지도 좋아하는 나는 SF의 전설적 작품이라는 '은하수...안내서' 라는 제목을 여러번 들었던 터라 꼭 읽어봐야지 마음먹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절반도 읽지 못한채 덮어야 했다.(내가 지금껏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덮은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다)

일단, 시대·문화적 공감대를 느낄 수 없었다. 70년대 라디오와 티비프로그램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영국의 당시 프로그램들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영미식 유머도 잘 모르는데 블랙유머라니 더더욱 이해가;;;

그리고 줄거리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었다. 라디오 연재로 시작한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연장되서 그런지 개략적으로라도 플롯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읽어도읽어도 계속 너무 모르겠기만 한데 그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전체틀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에(지구인 밴드소개-외계인의 지구방문-우주적노래경연-지구인의 참가 등등으로 이어지는)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면서, 사이사이 다른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라도 전체적 맥락을 놓칠듯놓칠듯 놓치지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도 (비록 '은하수...안내서'를 다 읽진 못했지만) 이 소설은 '은하수...안내서'에 대한 오마주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굉장히 유사한 듯 했다.

'옛날, 옛적, 작지만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라는 이름의 행성에' 로 시작하는 SF 작품이라니! SF 소설이 과거시점이라니!! 독특했다. 각각의 소제목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출전곡인만큼 이 소설의 흐름이 노래경연대회인것은 어쩌면 당연한 설정인지도 모르겠으나, 그 노래들 또한 굉장히 오래전 곡들이 많아서 미래적SF분위기는 전혀없는 색다른 SF소설로서 초반부터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어리석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이나 불확실성의 원리나 일요일에는 우편물이 안 온다는 사실처럼 널리 통하는 불가침의 보편 규칙이다.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기되 절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한, 은하의 역사는 화면에 가사가 나오는 간단한 노래이자,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꽃으로 이루어져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유익하고 친절한 거대 디스코 볼이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디스코 볼이다. 음악을 틀고, 조명을 켜라. (p. 16)

 

다 읽고 나니 위 문단이 이 책의 줄거리였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우주에서 돌아가는 디스코볼 이었다.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지구인 하나뿐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 넓고 광활하다는 우주에!

그래서 저자는 엄청나게 다양한 지적 생명체들을 등장시킨다. 하도 희한하고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하길래 문득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뜻밖에도 소설제목이기 이전에 '우주를 무대로 한 모험담을 다룬 공상 과학 소설 또는 그런 영화' 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일례로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 그러고 보니 이 작품속에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여러 장면들을 본것도 같다. 희한한 우주종족들이 나올때마다.

여하튼, 우주에 다양한 지적생명체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사이에 '지각력 전쟁'이 있었다. 서로를 파괴하고 소모시키기만 하는 전쟁 끝에 그들은 평화공존의 방법으로 우주적 가요제인 '그랑프리 가요제'를 개최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우주에 새로운 지적존재가 확인될때마다 이 신규종족은 반드시 참가하여 본인들이 지적생명체임을 확인받아야 한다. 매년 개최되는 이 '그랑프리 가요제'는 당연히 매년 개최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책에 몰입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무엇보다 이 작품 특유의 표현방식때문이었다.

예를들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밴드 '데시벨 존스와 앱솔루트 제로스'의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구절 옮겨보면

데스와 미라와 오르트에게 땀에 전 헌 밴드스타킹만 한 값어치밖에 안 되는 멜로디 하나와 노래방 마이크를 빼앗긴 고약한 술꾼이 산딸기향 막대사탕을 반쯤 빨아먹다 내뱉은 것 같은 가사 한 줄을 주면, 하룻밤 사이에 마치 혜성에 강타당한 오스카 와일드의 유령이 별을 필로폰처럼 흡입하고 부른 듯한 노래가 탄생했다. 이종 교배된 런던 부동산 시장의 노예가 되어 쓰레기통에 가득 담긴 싸구려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새틴 슬립을 입고 화성의 패션쇼를 묵사발로 만들겠다는, 무모하고 미래우주적인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의 절망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매력적이면서도 귀를 찢는 노래 말이다. (p. 27)

음... '은하수...안내서'를 좋아했던 이라면 그 작품과 유사한 이런식의 표현들이 포복절도SF코믹으로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영미권의 블랙코미디적 유머에 웃을 수 없었다. 내겐 너무 먼 컬트적 표현들이었다. 우주적 밴드음악을 즐기는 이라면 '데스와 오르트'의 정서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초현실적 밴드음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끝내주는 우주인'이라는 앨범으로 인기를 좀 얻나 싶었을때 한 멤버의 사고로 해체된 후 데시벨 존스는 혼자 근근이 음악활동을 해온 데뷔 15년차이지만 정말 아~주 별볼일 없는 신세임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4월 말 어느 목요일 오후 2시에, 그런 걸 착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외계인들이 모든 사람들의 거실로 동시에 착륙했다. 잠시 동안 지구 전체는 달걀 프라이를 만들거나 [카운트다운]을 시청하거나 다양한 장치로 엔도르핀을 반복적으로 솟구치게 하는 게임 같은 것들을 하는 등 저마다 최선을 다해 지구다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다음 순간 멋진 카펫 위에 엉거주춤 서 있는 2미터 키에, 반은 플라밍고이고 반은 아귀처럼 생긴 군청색 외계인과 맞닥뜨렸다. 크리스털로 뒤덮여 뼛속이 훤히 보이는 가슴에는 깃털이 나 있었고, 머리에는 축축하고 제릴 같은 옥색 꽃이 교회에 가는 할머니처럼 비틀거렸다. 커다랗고 까맣고 톱니처럼 째진 눈이 모든 지구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p. 42)

'가느다랗고 유리 같은 빨대 형태의 기관이 달린 조류 대가리', '외계에서 온 2미터 높이의 등불 달린 물고기류 플라밍고', '커다랗고 파란새', '아귀플라밍고', '우주에서 온 플라밍고', '길고 긴 갈대 같은 다리' 등으로 표현되는 이 외계인은 '밀크로드를 지혜보다 빨리 달리는 고도 비행사이자 Aaba형 버스의 열네 번째 리릭'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그냥 '에스카'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데시벨에게 그 외계인은 (많이 이상한) '로드러너'로 보였다. 도저히 머리속으로 상상이 안되서 약간의 검색으로 합성해봤는데,

 

대시벨의 눈에는 (많이 이상한) 로드러너, 만화 '루니툰'에 등장하는 쏜살같이 달리는 그런 새의 한 종류로 보였다. 로드러너를 아귀와 합성시키고 깃털변형과 머리위 기관까지 합성한 형태는 각자 상상해 보는걸로;;;

그렇게 지구인은 일단, '지각력 있는 은하계의 1만 번째' 대상으로써 외계인의 방문을 경혐하게 된 것이다.

성격과 국적과 저마다 느끼는 극한의 공포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고 놀라울 만큼 빈번하게 시도한 끝에, 정말로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애써 밤을 넘기려는 가련한 바텐더가 된 에스카 대표를 통해서 이후 90여 분에 걸쳐 지구의 모든 거실에서는 거의 똑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p. 57)

자, 여러분 새로운 단어에 겁먹을 우리가 아니죠, 그렇죠? 물론이죠! 공부는 재밌다! '버스verse'는 그냥 당신들 언어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과 가장 가까운 단어라고 보면 돼요. 오늘 수업에서는 아주 재밌는 에스카의 계층사회학을 공부해 볼 거예요! 함께 새끼를 기르는 한 쌍과 이들의 새끼는 버스, 어른 새끼들은 리릭스, 지배계급은 코러스, 프롤레타리아는 키, 그리고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브리지 랍니다. 어떤 행성에 살든 모든 에스카를 통칭해서 콰이어라고 부른답니다. (p. 58)

하나의 존재이지만 전지구에서 동시에 듣는이에게 친숙한 각각의 다른 목소리로 자신이 어떤 외계인임을 설명하는 대화가 오간다. 외계인에게도 지구인과 별다를 것 없는 사회계층이 존재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그리스 고전'을 공부했다는 저자의 이력이 새삼 생각났다. 비슷한 계층구조와 평화의 방법으로 합의한 노래경연은 어떻게 보면 고대사회와 그 사회에서 평화를 합의한 올림픽과도 닮아 있었다.

당신네 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아. 인간은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하고 고통에 걸신들려 있으며 오염을 내뿜는 우주 괴물이라는 말씀. 근데 자기야, 그런 게 영화에서는 보통 어떻게 그려질까? 적어도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가 틀렸다는 걸 납득시켜 볼 기회를 주려는 거잖아. 당신들은 나팔총으로 마지막 남은 도도새를 쏴 죽이기 전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새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당신들은 운 좋은 거야, 우리는 당신들보다 나은 존재니까. 우리는 괴물이 아니거든. 우리에게는 나름의 절차가 있어. 그리고 그 절차대로 잘 돌아가다 보니까 우리는 절차에서 벗어나지 않지. 당신들은 아마 그런 절차를 기업에서 내리는 지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잘리고 싶지 않으면 따라야 하는 거런 지시 말이야.

인류여, 힘내시라! 당신들은 우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이트클럽에 예약되었어요! 당신들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종들이 은하계 최고상을 받기 위해 모두 모이는 아름다운 리토스트 행성에 인류 대표를 보낼 거예요. (p. 69)

우리는 다 함께 힘과 지적 능력과 각양각색의 재주를 두루 갖춰야 나갈 수 있는 명예로운 콘테스트에 참가할 거예요. 당신들이 인간의 불유쾌한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줘요. 부끄러운 인류 역사에서 말 그대로 뭐든 배웠다는 것을 증명해 봐요. 인간 대표가 맨 꼴찌를 하지 않는 한, 인류는 이미 하늘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에 함께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음치에다 머리가 거꾸로 붙어 있는 하찮기 그지없는 단 하나의 우주 문명조차도 이기지 못한다면 인류의 집단적 존재에 대한 모든 기억을 친히 대조 확인하여 파일에 보관한 뒤 당신들 행성의 자원을 상냥하게 빼내가서 결국 인간 종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의 유기물질은 생물권으로 다시 매끄럽게 통합되어 당신네 행성은 편안히 쉬면서 또다시 몇십억 년이 흐른 뒤 돌고래 같은 것들로 재기하기만을 꿈꾸겠지요. 정말 재밌지 않아요? (p. 70)

그냥 노래경연대회가 아니었다. 지구문명의 존폐가 걸린 콘테스트! 인류의 대표가 될 뮤지션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외계인은 이미 사전조사를 거쳐 후보리스트를 작성해왔다. 그런데 그 명단의 맨 아래에 데시벨 존스의 밴드 이름이 있었고, 그 위의 다른 모든 후보들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데시벨 존스의 밴드가 인류 대표가 되었다! 갑자기 엄청난 책임을 맡게된 데시벨에게 각종 정부기관들이 달려들지만 로드러너는 순식간에 훌쩍 이 밴드를 데리고 지구를 떠나버린다. 그야말로 뿅! 하고 순삭.

외계종족들을 설명하며 여기저기 블랙코미디가 난무하지만, 그 사이사이 지구인의 역사를 섞어 놓았다. 1회 그랑프리 대상을 받은 종족은 외계전쟁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켰던 외계인이었는데, 유로송콘테스트 1회 대상이 스위스 였다. 식민지와 분리주의파와 사소한 사건을 빌미로 터지는 전쟁들에 대해서도 '작고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밝히길 바라지 않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수백만에 이르는 우주여행 종족들이 보유한 우주선의 공통점은, 제작하는 것보다 기르는 게 더 쉽고 비용이 덜 들며 더 재미있다는 점이다. (p. 171)

이 소설이 컬트적으로 느껴지는 것중 하나가 바로 우주선 이다. 광속보다 빠르게 우주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우주선은 스테이크를 연료로 먹는 '고기 우주선' 이다!

데시벨 존스는 언제나 현재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오마르 잘리쉬칸은 늘 불확실한 미래를 살았고, 미라는 항상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살며 다른 사람들은 가끔씩만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미리 예고한 광범위한 오염 제거 의식을 거치고 난 뒤에만 말이다. (p. 176)

밴드 멤버는 3명이었으나, 미라는 없다. 미라의 사고 이후 남은 두 멤버는 사이가 멀어졌다. 미라에 대한 책임감은 서로에 대한 왜곡으로 표현됐다. 둘은 몇년만에 얼굴을 마주하기 무섭게 외계행성에 함께 와 있는 처지다. 그렇게 오랜만에 대화를 하게 된 두사람은 서로의 과거부터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안에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로 길었고, 말할 줄 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오래갔다.

"있지, 우린 없어"

"뭐가 없다는 거야 오르트?"

"지각력. 지각력이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날 밤이 오게도, 이후 그렇게 지나가게도 하지 않았을 거야. 나 역시 지각력이 없어.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라가 운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p. 215)

인류의 지각력을 증명하기 위해 뽑혀온 대표들이지만 이들은 서로의 지각력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갑자기 노래를 만들어야 할 시간도 촉박하고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시간도 촉박하다. 과거 인간이 만든 작품들을 베끼려고 모든 명작시, 모든 대사, 모든 불멸의 약강 5보격을 전치사 몇 개로 연결해 문장을 만들어 보려 하지만... 최악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구에서 모든 인류가 티비중계로 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연대회 날이 다가온다.

데시벨은 데이비드 보위가 1975년에 [지기 스타더스트]앨범 촬영 때 입었던 딱 붙는 금속성의 망고와 피스타치오와 코코넛 색깔 줄무늬 바지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더 나아가 작은 블록체로 자신에 대한 최악의 평들을 전부 인쇄해 넣은 연노랑 스타킹을 무릎까지 올라오게 신은 뒤 그 위에 버클까지 채웠다. 또한 외계인의 피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베르사체가 어디선가 구해 와서 자른 뒤 검정색 반짝이를 가득 붙인 듯한 재료로 만든 야성적인 언더버스트 코르셋 밑으로, 헐렁하고 약간 해적 옷처럼 보이는 심야 네온불빛 색깔의 셔츠가 살짝 삐져나와 매혹을 더했다. 천을 꼬아 꿰매 만든 넥타이스카프의 레이스 단은 과거에 가장 소란스러운 무대에 섰을 때 누군가 던져 준 레이스 속옷에서 떼어내 댄 것이었다. (p. 278)

이 뒤로도 한참 더 길게 이어지는 의상의 표현이 도저히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지 않아서 '지기 스타더스트'를 검색해 보았는데, 이런! 데시벨은 '지기 스타더스트' 즉 데이비드 보위의 아바타 라고 할 수 있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 '지기 스타더스트' 에 대한 오마주였다. '지기 스타더스트' 로서의 데이비드 보위 의상들을 보니 대충 데시벨의 의상도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했다면 이 소설이 환상적이고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음악이 상상이 됐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역시 이또한 내게는 너무 먼 컬트적 문화였다;;;

 

                             

조금씩 아주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비결이었다. 누구도 완벽한 프로 뮤지션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원초적이고 지난 시절보다 좀 더 망가진 모습을 원했다. 그래야 그의 공연을 예약하고 쓰레기 같은 그의 물건들을 사고 그를 홍보하고 그와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 관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야 서서히 좀 더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데시벨이 앱솔루트 제로스와 단 하루의 영광을 누리면서 터득한 방정식이었다. 고통이 농담이 되고, 농담이 듣기 좋은 게 되고, 듣기 좋은 게 기쁨이 되고, 기쁨이 수익이 되고, 수익이 안전장치가 되고, 그러면 튀김 가게에서 하루 더 일하지 않아도 되고 막막함에서 하루 더 멀어졌다. 데스는 지구의 운명이 술집에서 써먹는 작업용 멘트 같아 웃음을 터뜨렸다. (p. 282)

지구에서 하던 데로 외계에서 행동하는 데시벨.

지구에서 하던 데로 영국인 답게 행동하는 오르트.

하지만 우주외계인들 역시 그들 하던데로 행동했으니,

너희도 이미 봤듯 이제부터는 여기 있는 거의 모두가 너희를 제거하려 하거나, 적어도 너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주의를 흐트러트리거나, 유혹하거나, 부담감을 주입하려 하거나, 아니면 아예 꼼짝 못 하게 붙들어 놓으려고 할 거야. 사실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고. 너희도 언제든 되갚아 줄 수 있으니 꼭 해야 해. 우리 중 한 종족을 쓰러트리면 너희 종족의 미래가 보장되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기대하지 않을 거야. 인간은 해부학적으로 공격력이 굉장히 부족한 종족이야. 너희들은 그렇게 뭉뚝하고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데다 멋없는 피부색을 지닌 상태를 넘어서기 힘들 거라고 봐. 너희는 공격하기 가장 쉬운 먹잇감이야. (p. 311)

16일이 흘러갔다. 작고 물이 많고 쉽게 흥분하는 지구라는 세상은 비존재의 허무주의를 마주하는 일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류는 그런 상황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p. 321)

지구는 만물의 종말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삶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p. 322)

온갖 괴상망측한 모습의 외계인들이 인류대표를 무시하고 얕보고 깔보고, 지구에서는 이러한 인류대표들의 모습을 보며 싸우고 논쟁하고 내기를 걸고 급기야 다른 외계종족을 응원하게까지 되는데... 인류는 지적생명체임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될까?

이 대회의 핵심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고, 우리가 준비됐는지를 입증하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짐승보다 나은 존재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거라면...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지각력에 반하는 대회가 아닐까 싶어. 난 모두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어. 네페르티부터 호메로스와 아퀴나스와 멋쟁이 브러멜과 마리 퀴리를 포함해 니코와 수지와 나까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지. 난 지구의 마지막 인간이 될 자질이 없어. 난 그냥 평범한 남자야. 할 수 없다고. 난 빌어먹을 카인이 아냐. 난 ㅚ초로 외계인을 죽인 놈이 되지 않을 거야. 설령 클리피라도 말이지. 근데 클리피는 재수 없긴 해 (p. 354)

데시벨은 환락을 즐기고 오르트는 좌절한다. 이들은 과연 경연대회를 치를 수 있을까?

번쩍거리는 디스코볼을 보는것마냥 정신없는 외계종족들을 헤매다 보면 그랑프리 콘테스트는 끝나있다.

 

모든 게 그냥 완전 엉망이 될 때가 있다! (p. 408)

'작가의 말'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대한 감사 인사를,

'이 얼토당토않은 아이디어', '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출 청소년 기행담에 가깝다고 할' 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며 그러한 이 책을 써포트해준 에이전시에 대한 감사 인사를,

''은하수...안내서'가 없었다면 이 책은 그저 한줄기 생각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라며 '은하수...안내서'의 저자에 대한 경외의 심정을,

'우리가 가장 사랑한 우주 괴짜인 보위' 는 '죽지 않았고 잊히지 않았다. 늘 그랬듯 다른 행성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라는 표현을

먼저 읽었다면

이 책을 더 제대로 즐기며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뭔지 몰랐고, '은하수...안내서'를 끝까지 읽지 못했으며, '우주 괴짜인 보위'를 알지 못했기에, 겨우겨우 줄거리를 이어가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외계종족들이 반갑고,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를 아끼며, '은하수...안내서'를 재밌게 읽었던 이라면 이 작품을 나보다 훨씬 감명깊게 읽으며,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이 폭발하는 코믹SF'로서 즐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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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FACTFULNESS

 

 

작년 연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티비에 나왔다고 하던데 (티비를 잘 안보는 나로서는 어떤식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인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서 이 책 이름이 튀어나왔다. 무엇이 그토록 이 책을 유명해지게 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저자 3명은 가족관계다. 아버지 한스 로슬링과 아들 올라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 륀룬드.

한스 로슬링은 공중보건의 이자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고 테드를 비롯한 다수의 세계적 강의를 진행했던 스타강사이다. 스웨덴 국경없는의사회를 공동설립하고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등의 구호기구에서 활동하면서 공중보건에 대한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러한 현실적 문제점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하며 그 인식을 바꾸는데 있어 무엇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우기 위해 '갭마인더재단'을 세웠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팩트체크를 하여 그 결과를 널리 알려 왔다. 이 연구재단에서 아들부부가 활동하며 한스 로슬링을 뒷받침 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팩트풀니스 FACTFULNESS - 이 책에서 '사실충실성' 이란 말로 번역되어진 이 말은 저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로,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뜻한다고 한다.

즉, 이 책은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얼마나 우리가 사실에 근거하지 못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13문제를 질문한다. 어렵거나 한 문제들은 아니다. 예를들어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하는 식의 문제들이다.(모두가 답을 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질문들?!) 이 13가지 문제에서 인간의 평균 정답률은 16%였다. (세계 유수의 석학들이 모인 곳에서 질문을 던져도 정답률에 큰 차이가 있진 않았다;;) 하지만 3지선다형 문제를 침팬지에게 풀게해서 침팬지가 무작위로 찍어도 정답률은 33%다. 정리하면, 인간은 침팬지가 찍는 답보다 낮은 정답률을 보일만큼 왜곡된 혹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판단착오를 하게 되었을까?

이 낮은 정답률이 알려주는 결론이 큰 문제인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 없는 곳으로, 한마디로 더 극적인 곳'(p. 22) 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그런 세계관은 스트레스와 오해를 불러온다'(p. 27) 고 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따라서 ''사실충실성'은 건강한 식이요법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일상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일단 연습해보라. 그러면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을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암기하지 않고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진짜 위험성과 여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되 엉터리 정보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p. 31) 고 구체적인 방법들까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다수에게 질문했고 (안타깝게도) 늘 낮은 결과를 확인시켜주었던 13문제를 바탕으로 인간의 10가지 본능을 분석하고 각각마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점을 모색한다.

간극본능, 부정본능, 직선본능, 공포본능, 크기본능, 일반화본능, 운명본능, 단일관점본능, 비난본능, 다급함본능, 이 10가지 본능은 때로는 습관으로 때로는 오류논리로 때로는 심리적으로 우리가 너무 일상적으로 이용해왔던 판단근거들이기도 했다. 우리와 그들을 반대적으로 구분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섣불리 판단하고 눈에 보이는 데로 성급하게 결정해왔던 과거의 많은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됐었는지 하나하나 깨닫다 보면 결과적으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훨씬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굳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려고 하는가?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저자의 데이터들이 증명한다.

오해에 사로잡힌 사람을 설득할 때는 그의 의견을 데이터와 비교하는 방법이 매우 유용하다. (p. 41)

첫번째 주제에 따른 그래프부터 눈에 확 띄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세계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으로 구분하고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들에 비해 엄청나게 못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개발도상국이란 말이 의미없어진지 오래였다. '인류의 85%가 소위 '선진국'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나머지 15%중 상당수는 사이에 있고, 6%에 해당하는 13개 나라만 여전히 '개발도상국'안에 있다. 적어도 서양인의 머릿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대로다. 서양인 대부분은 시대착오적 생각에 사로잡혀 서양 이외의 세상을 바라본다.(p. 46)'

서양인만 그랬을까? 우리라고 달랐을까?

요악하면, 저소득 국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둘로 나뉜 세계에서 다수가 비참하고 결핍된 상태로 살아 간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자, 전적으로 오해다. 한마디로 엉터리다. (p. 50)

시원시원한 어투로 옆에서 힘차게 설명해주듯이 문장들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것 같았다. 각 장을 마무리할때마다 뒤에서 '사실충실성' 이 이 본능에서는 무엇이고 따라서 이 잘못된 본능을 억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점정리까지 해주니 책이 막히는 부분 없이 쑥쑥 읽힌다.

이렇게 희망적인 통계가 많은데, 어떻게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식의 생각은 대개 부정 본능 때문이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보이기 때문이다. (p. 95)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세계의 현 상황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p. 103)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것도 덮어놓고 희망적인 것도 다 아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만큼 세상은 희망적이며 마냥 희망적이지 않을만큼 세상은 부정적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아이를 구하면 인구는 '단지' 늘어난다" 는 말은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극빈층 탈출이 늦어질 때 인구는 '단지' 늘어난다. 극빈층에 갇힌 세대가 오히려 다음 세대 인구를 더 증가시킬 것이다. 인구 성장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하게 증명된 방법은 극빈층을 없애고, 교육과 피임을 비롯해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삶이 나아진 부모는 자녀를 더 적게 낳는 쪽을 선택했다. 이런 변화는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아동 사망률을 낮추지 않고 이런 변화가 일어난 곳은 없었다. (p. 131)

저자가 오랜기간 세계 곳곳에서 구호활동을 해온 만큼 공중 보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는 부분이 책에서 자주 등장한다. '가난한 아이들을 계속 살리면 인구 과잉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다' 라며 어린이구호사업을 하는 이들을 말리는 사람들이 은근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저자는 객관적으로 대응한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동 사망률을 줄여야 한다. 이는 고통받는 아이를 살리는 인간적 행위일 뿐 아니라 현재에도, 미래에도 전 세계에 이로운 행위다'(p. 131) 라고. 인구증가해결을 아동사망률에서 찾지 말라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위험한 세계'라는 이미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방송을 타지만, 실제 세계는 다른 어느 때보나 덜 폭력적이고 더 안전하다. (p. 152)

공포 본능은 세계를 이해하는 형편없는 지침이다. 공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 (p. 172)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려면 공포 본능을 누르고 실제 사망자 수를 따져봐야 한다. '공포'와 '위험'은 엄연히 다르다. 무서운 것은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것에 진짜 위험 요소가 있다. 진짜 위험한 것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즉 공포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우리 힘을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 있다. (p. 173)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코로나 사태는 '공포' 일까? '위험' 일까?

저자에게 묻고 싶지만... 저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저자가 세운 재단에 묻고 싶지만 나는 한국어밖에 못한다;;;

하지만 일단 지금의 사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므로 '위험' 이라고 여겨도 되는 것이겠지...?;;;

오늘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마초적 가치는 아시아의 가치도, 아프리카의 가치도 아니며 이슬람의 가치도 아니고, 동양의 가치도 아니다. 스웨덴에서 6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 가치이며, 스웨덴에서 그랬듯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라질 가치다. 불변의 가치가 결코 아니다. (p. 254)

저자가 13문제를 조사한 나라는 14개국인데 그 중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다. 조사대상국가는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일본, 노르웨이, 한국, 스페인, 스웨덴, 영국 미국이며, 각국의 성인 인구를 대표하도록 가중치를 부여해 구성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 조사결과는 다양한 그래프로 본문에 자주 이용된다. 14개국이 모두 침팬지보다 낮은 정답율을 보이긴 했지만, 실사례로 한국이 예로 들어질때 마다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가부장의 예를 한국에서 경험했던 일화를 인용하기도 하고 군부독재 시절을 (국가성장결과만 봤을때)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듯 보이기도 하는데, 만약 저자가 이 책을 들고 내한하여 북토크를 진행했다면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가부장의 가치가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는 말은 좋은데 그것을 과연 성장의 결과로만 볼 수 있을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한국이 더 발전하면 가부장이 없어질까? 과연??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의 순간을 즐기고, 무언가를 정말로 이해한다거나 안다는 느낌을 즐긴다. 주위를 사로잡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다른 많은 것을 훌륭하게 설명한다거나, 다른 많은 것의 훌륭한 해결책이 된다는 느낌까지 매끄럽게 쭉 이어지기 쉽다. 세계가 단순해지고,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 항상 그것만 반대하면 그만이다. 또 모든 문제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어 항상 그것만 지지하면 그만이다. (p. 266)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긴 하다. 나를 세상을 단순하게 규정할 수록 판단이 빨라질 수 있고 해결책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옳은 방법이 아니다.

혈액형별 성격 이 생각났다. 혈액형은 크게 4가지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을 4가지 성격유형으로 나눈다. 재미반 진심반으로 상대방이 성격을 판단할때 우리는 종종 혈액형을 묻곤 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이 딱 4가지 종류의 성격뿐이겠는가? 다양성을 이해하는데는 노력이 필요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더 노력이 필요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다양해 지고 있고 우리는 단순성을 탈피해야 한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p. 295)

지금 사는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인다면 그래서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 즉, 팩트풀니스 적 세계관을 장착해야 한다.

하지만 팩트를 체크하는 데 사용하는 데이터를 맹신해서도 곤란하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지 예전의 단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재평가해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을 기꺼이 시인해야 한다. (p. 231)

나는 수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데이터 광팬이긴 하지만, 데이터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데이터에도 한계가 있다. 나는 데이터가 수치 이면의 현실, 즉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때만 데이터를 좋아한다. 하지만 수치만 분석해서 얻은 결론은 의심해봐야 한다. (p. 273)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p. 337)

 

저자가 데이터를 많이 활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냥 말하면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들이대면 어느 정도 수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도 조심해야 할 점들이 분명히 있다. 저자가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들이 그 조심성들이 안심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과 함께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미래사회에서 데이터의 의미에 대해 좀더 폭넓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왜곡된 진실들을 10가지루 나누어 밝혀내고 나서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세계적 위험 다섯 가지'를 알려주는데, 세계적 유행병, 금융위기, 제3차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 이 그것들이다. 이중 첫번째 위험이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는 지금의 이 현실을 팩트풀니스하게 잘 판단하고 있는 걸까?

저자는 사실충실성을 실천하는 방법들을 교육계, 업계,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 자신이 속한 조직 에 꼼꼼이 조언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한번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있다.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p.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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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
짐 홀트 지음, 노태복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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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첨단을 찾아 떠나는 여행

과학과 수학, 그리고 철학의 최근 쟁점을 읽고

위대한 지적 사상가들을 소환한다!

 

 

저자 짐 홀트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현대 과학 작가라고 한다. 수학, 과학, 그리고 철학이 함께 어우러진 글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 왔는데, 그렇게 20년간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한 흐름에 따라 쓰여진 책이 아니므로 주제에 따라 일부 중복되는 내용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생각보다 과하게 전문적이었다. 그제야 표지에 써있던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 추천 도서' 라는 문구가 새삼 눈에 들어와 박혔다. 학.술.지. 에 실렸던 글들이었구나;;; 그리고 많은 글들이 어떤 책 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책 읽던 도중 앞뒤를 다시 훑어보니 책 뒤편에 '감사의 말'에서 이 책의 글들은 대부분 '북리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책은 어렵고 복잡다단한 사고의 유희였긴 했으나 내가 기대했던 일괄적이고 포괄적인 깨달음을 주는 사상서는 아니었다.

'감사의 말'을 토대로 글이 실린 매체들을 정리해 보았다. 글의 성격을 알면 글의 중심을 파악하기가 개인적으로 수월해서...

(글이 발표된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20년간 쓴 글들인데 그중 언제 쓰여진 글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글이 별로 없었다.)

잡지에 (아마도 칼럼식으로 쓰여져) 실린 글이 13, 북리뷰 가 11 이다. 8부는 15편의 글이 다른 부의 글들에 비해 4~5페이지 안팎정도 분량의 비교적 짧은 글들이라 일종의 에세이정도로 읽히긴 한다. (하지만 내용까지 에세이적이지는 않다;;;) 북리뷰의 경우 글의 중심에 있는 책도 나름 짐작해서 제목을 적어보았다. 하지만 북리뷰 임에도 어떤 책에 대한 리뷰인지 알수 없거나, 북리뷰가 아님에도 다양한 책들이 언급되곤 했다.

1부> 영원성의 움이는 이미지

1.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뉴요커]

2. 시간은 거대한 환영에 불과한 것일까? --- [라팜스 쿼터리]

2부> 수가 활약하는 세 가지 세계

3. 숫자 사나이 --- [뉴요커]

4. 리만 제타 추측, 그리고 최종 승자의 웃음 --- [이어 밀리언]

5. 프랜시스 골턴 경, 통계학... 그리고 우생학의 아버지 --- [뉴요커]

3부> 수학, 순수하고 불순한

6. 수학자의 로맨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에드워드 프렌켈의 [내가 사랑한 수학] >

7. 고등수학의 아바타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마이클 해리스의 [변명이 없는 수학] >

8. 브누아 망델브로와 프랙털의 발견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브누아 망델브로의 [프랙털리스트] >

4부> 더 높은 차원들, 추상적인 지도들

9. 기하학적 창조물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에드윈 애벗 [플랫랜드 : 다차원 세계의 이야기] >

10. 색깔의 코미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5부> 무한, 큰 무한과 작은 무한

11. 무한한 비젼 --- [뉴요커]

12. 무한 숭배 ---[런던 리뷰 오브 북스] < 3인공저 [무한에 이름 붙이기] >

13. 무한소라는 위험한 발상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에이브러햄 로빈슨 [비표준 해석] >

6부> 영웅주의, 비극, 그리고 컴퓨터 시대

14. 에이다를 둘러싼 논란 --- [뉴요커]

15. 앨런 튜링의 삶, 논리, 그리고 죽음 --- [뉴요커]

16.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조지 다이슨 [튜링의 대성당] >

17. 더 똑똑한, 더 행복한, 더 생산적인 ---[런던 리뷰 오브 북스] <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

7부> 다시 살펴보는 우주

18. 끈이론 전쟁, 아름다움은 진리인가? --- [뉴요커]

19. 아인슈타인, '유령 같은 작용', 그리고 공간의 실재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20. 우주는 어떻게 끝나는가? --- [슬레이트]

8부> 짧지만 의미 있는 생각들 --- [링구아 프랑카] (15개 글 중 일부는 슬레이트 와 뉴욕타임스북리뷰 와 뉴욕타임스매거진 에 실림)

9부> 신, 성인, 진리, 그리고 헛소리

21. 도킨스와 신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

22. 도덕적 성인에 관하여 --- [뉴요커] < 닉 혼비의 [좋은 사람 되는 법] >

23. 진리와 지칭 --- [링구아 프랑카]

24. 아무 말이나 하세요 --- [뉴요커] <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헛소리에 관하여] >

이 책의 글들이 북리뷰에 실렸다고 해도 북리뷰처럼 읽히지 않는것은 딱 한권의 책을 꼬집어 말하기 보다는 다른 내용들과 섞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고,

이 책의 글들이 잡지에 칼럼식으로 실렸음에도 북리뷰처럼 읽히는 것은 과학과 수학과 철학적 내용이 담겼을 다양한 논문과 책을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모든 글들이 굉장히 중립적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참 기묘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칭찬과 욕을 동시에 하고 있달까... 이랬다저랬다 식의 입장변화는 아닌데 이쪽저쪽 절충하는 방식이 교묘해 보였다.

예를 들어,

미 국방부에서 군사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맹 언어의 명칭은 '에이다Ada' 이다.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의 딸인 에이다 바이런의 이름을 땄다.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결혼 후에는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이 되는 인물-은 나중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고 불리는 작업을 처음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생 그녀는 수학 천재, 일명 '수의 여자 마법사'로 통했다. (p. 235)

(메나브레의 프랑스어 논문 '해석기관 개요' 를 번역하며 그녀가 붙인) 주석에 담긴 내용 중에서 어느 것이라도 그녀가 '독창적으로' 알아낸 것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p. 243) 사실 동물 자기장을 다룬 논문에 관해 쓰다 만 검토서를 빼고는 여생 동안 아무런 중요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p. 245) 사실 에이다는 미적분의 초급 과정을 배우는 학생이었을 뿐이다. (p. 247)

최초로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알린 이가 바로 신경이 예민한 젊은 여인이자 시인의 딸이자 자신을 요정으로 여긴 에이다 러브레이스다. (p. 249)

14. 에이다를 둘러싼 논란

 

 

에이다의 현재적 위치를 조명하며 과거 에이다의 삶을 통해 에이다의 과대망상과 부풀려진 명성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배비지나 다른 인물들의 중요성과 함께 쭉 서술하는듯 하다가 결론에 가서는 명확한 판단을 보류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에이다가 중요했다는 걸까? 의미없다는 걸까?

'더 똑똑한, 더 행복한, 더 생산적인' 이란 글에서 컴퓨터 시대의 도래와 관련된 서술은 더욱 교묘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전반적으로 저자의 서술방식이 대중적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굉장히 학자적이다. 내게는 그랬다.

 

나는 유머와 수학은 100만 년이 지나면 자리를 바꾸리라고 본다. 하지만 아득히 먼 미래에 농담은 어떤 모습일까? 더 차원 높은 웃음은 부조화가 영리한 방식으로 해소되어 즐거운 인식의 감정적 흥분을 일으킬 때 표출된다.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이해한 줄 알고 있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런 웃음이 생기는 법이다. 리만 제타 가설은 다가올 영겁의 세월이 지나 마침내 풀릴 때, 그런 해소를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그때에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소수의 플라톤적 독보성은 사소한 동어반복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인간 정신이 생각해낸 가장 위대한 문제가 100만 년 후에는 학생들에게나 어울리는 약간 천박한 농담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리만 제타 추측, 그리고 최종 승자의 웃음 中 p. 80)

미래의 학생들에게 농담이 될지도 모를 수학적 과학적 철학적 논제들이, 저자는 술술 풀어내는 그 논리들이 내게는 그저 어렵고 어려웠다.

물론, 새로 알게 된 것들도 많았고 따라서 배운 것들도 많았다.

'수' 나 '시간' , '차원' 에 대한 새로운 사고, '대수와 기하'의 통합에 대한 논제, '색깔정리' 를 둘러싼 무용한 논쟁을 통한 수학적 성격, '무한' 을 통한 수학과 철학 그리고 과학의 연결, 수학사와 과학사에 가까운 이론들의 발전사, '끈이론' 에 대한 논쟁사, '양자물리학' 의 두 입장(물리학이 예측을 하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실재를 통합적으로 드러낼 원대한 방안인가), 우주 종말론의 세 입장( 빅크런치- 최종적인 붕괴, 빅칠-꾸준한 속도로 영원한 팽창, 빅크랙업-점점 더 가속되는 영원한 팽창), 아이디어의 도용과 착상에 대한 차이, 괴델, 골턴, 프렌켈, 앨런 튜링, 폰 노이만, 푸엥카레의 일화들 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특히, 앨런 튜링과 골턴 경)

하지만 역시나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내 지적수준이 한참 모자람을 깨달아야 했다.

저자는 이런 글들을 쓰면서 이런 글들의 내용을 소통할 수 있는 지인들이 옆에 많았던 모양이지만, 오직 이 한권의 책으로만 그 많은 과학적 추측과 수학적 논리와 철학적 통찰을 경험하기에는 나로서는 영... 방법이 없었다;;; 천재들의 창의성을 다룬 '생각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 느꼈던 소외감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느끼며 아인슈타인이 괴델을 만났을때 느꼈던 심정을 저자와 공유하지 못한 나를 탓해보는 걸로 마무리한다.

 

 

연구소의 다른 회원들은 이 우울한 논리학자를 찜찜해하고 난처해했지만 아인슈티안만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연구실에 나오는 까닭은 '잔지 쿠르트 괴델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 라고.

지적인 고립의 감정을 공유했던 둘은 서로의 사귐에서 위안을 찾았다. 연구소의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둘은 다른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길 원했다" (p. 19)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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