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두어페이지 읽자마자 이 소설과 아주 흡사한 분위기였던 책이 생각났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은하수...안내서'로 지칭)

SF도 좋아하고 판타지도 좋아하는 나는 SF의 전설적 작품이라는 '은하수...안내서' 라는 제목을 여러번 들었던 터라 꼭 읽어봐야지 마음먹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절반도 읽지 못한채 덮어야 했다.(내가 지금껏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덮은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다)

일단, 시대·문화적 공감대를 느낄 수 없었다. 70년대 라디오와 티비프로그램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영국의 당시 프로그램들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영미식 유머도 잘 모르는데 블랙유머라니 더더욱 이해가;;;

그리고 줄거리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었다. 라디오 연재로 시작한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연장되서 그런지 개략적으로라도 플롯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읽어도읽어도 계속 너무 모르겠기만 한데 그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전체틀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에(지구인 밴드소개-외계인의 지구방문-우주적노래경연-지구인의 참가 등등으로 이어지는)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면서, 사이사이 다른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라도 전체적 맥락을 놓칠듯놓칠듯 놓치지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도 (비록 '은하수...안내서'를 다 읽진 못했지만) 이 소설은 '은하수...안내서'에 대한 오마주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굉장히 유사한 듯 했다.

'옛날, 옛적, 작지만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라는 이름의 행성에' 로 시작하는 SF 작품이라니! SF 소설이 과거시점이라니!! 독특했다. 각각의 소제목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출전곡인만큼 이 소설의 흐름이 노래경연대회인것은 어쩌면 당연한 설정인지도 모르겠으나, 그 노래들 또한 굉장히 오래전 곡들이 많아서 미래적SF분위기는 전혀없는 색다른 SF소설로서 초반부터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어리석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이나 불확실성의 원리나 일요일에는 우편물이 안 온다는 사실처럼 널리 통하는 불가침의 보편 규칙이다.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기되 절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한, 은하의 역사는 화면에 가사가 나오는 간단한 노래이자,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꽃으로 이루어져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유익하고 친절한 거대 디스코 볼이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디스코 볼이다. 음악을 틀고, 조명을 켜라. (p. 16)

 

다 읽고 나니 위 문단이 이 책의 줄거리였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우주에서 돌아가는 디스코볼 이었다.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지구인 하나뿐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 넓고 광활하다는 우주에!

그래서 저자는 엄청나게 다양한 지적 생명체들을 등장시킨다. 하도 희한하고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하길래 문득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뜻밖에도 소설제목이기 이전에 '우주를 무대로 한 모험담을 다룬 공상 과학 소설 또는 그런 영화' 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일례로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 그러고 보니 이 작품속에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여러 장면들을 본것도 같다. 희한한 우주종족들이 나올때마다.

여하튼, 우주에 다양한 지적생명체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사이에 '지각력 전쟁'이 있었다. 서로를 파괴하고 소모시키기만 하는 전쟁 끝에 그들은 평화공존의 방법으로 우주적 가요제인 '그랑프리 가요제'를 개최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우주에 새로운 지적존재가 확인될때마다 이 신규종족은 반드시 참가하여 본인들이 지적생명체임을 확인받아야 한다. 매년 개최되는 이 '그랑프리 가요제'는 당연히 매년 개최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책에 몰입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무엇보다 이 작품 특유의 표현방식때문이었다.

예를들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밴드 '데시벨 존스와 앱솔루트 제로스'의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구절 옮겨보면

데스와 미라와 오르트에게 땀에 전 헌 밴드스타킹만 한 값어치밖에 안 되는 멜로디 하나와 노래방 마이크를 빼앗긴 고약한 술꾼이 산딸기향 막대사탕을 반쯤 빨아먹다 내뱉은 것 같은 가사 한 줄을 주면, 하룻밤 사이에 마치 혜성에 강타당한 오스카 와일드의 유령이 별을 필로폰처럼 흡입하고 부른 듯한 노래가 탄생했다. 이종 교배된 런던 부동산 시장의 노예가 되어 쓰레기통에 가득 담긴 싸구려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새틴 슬립을 입고 화성의 패션쇼를 묵사발로 만들겠다는, 무모하고 미래우주적인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의 절망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매력적이면서도 귀를 찢는 노래 말이다. (p. 27)

음... '은하수...안내서'를 좋아했던 이라면 그 작품과 유사한 이런식의 표현들이 포복절도SF코믹으로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영미권의 블랙코미디적 유머에 웃을 수 없었다. 내겐 너무 먼 컬트적 표현들이었다. 우주적 밴드음악을 즐기는 이라면 '데스와 오르트'의 정서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초현실적 밴드음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끝내주는 우주인'이라는 앨범으로 인기를 좀 얻나 싶었을때 한 멤버의 사고로 해체된 후 데시벨 존스는 혼자 근근이 음악활동을 해온 데뷔 15년차이지만 정말 아~주 별볼일 없는 신세임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4월 말 어느 목요일 오후 2시에, 그런 걸 착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외계인들이 모든 사람들의 거실로 동시에 착륙했다. 잠시 동안 지구 전체는 달걀 프라이를 만들거나 [카운트다운]을 시청하거나 다양한 장치로 엔도르핀을 반복적으로 솟구치게 하는 게임 같은 것들을 하는 등 저마다 최선을 다해 지구다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다음 순간 멋진 카펫 위에 엉거주춤 서 있는 2미터 키에, 반은 플라밍고이고 반은 아귀처럼 생긴 군청색 외계인과 맞닥뜨렸다. 크리스털로 뒤덮여 뼛속이 훤히 보이는 가슴에는 깃털이 나 있었고, 머리에는 축축하고 제릴 같은 옥색 꽃이 교회에 가는 할머니처럼 비틀거렸다. 커다랗고 까맣고 톱니처럼 째진 눈이 모든 지구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p. 42)

'가느다랗고 유리 같은 빨대 형태의 기관이 달린 조류 대가리', '외계에서 온 2미터 높이의 등불 달린 물고기류 플라밍고', '커다랗고 파란새', '아귀플라밍고', '우주에서 온 플라밍고', '길고 긴 갈대 같은 다리' 등으로 표현되는 이 외계인은 '밀크로드를 지혜보다 빨리 달리는 고도 비행사이자 Aaba형 버스의 열네 번째 리릭'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그냥 '에스카'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데시벨에게 그 외계인은 (많이 이상한) '로드러너'로 보였다. 도저히 머리속으로 상상이 안되서 약간의 검색으로 합성해봤는데,

 

대시벨의 눈에는 (많이 이상한) 로드러너, 만화 '루니툰'에 등장하는 쏜살같이 달리는 그런 새의 한 종류로 보였다. 로드러너를 아귀와 합성시키고 깃털변형과 머리위 기관까지 합성한 형태는 각자 상상해 보는걸로;;;

그렇게 지구인은 일단, '지각력 있는 은하계의 1만 번째' 대상으로써 외계인의 방문을 경혐하게 된 것이다.

성격과 국적과 저마다 느끼는 극한의 공포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고 놀라울 만큼 빈번하게 시도한 끝에, 정말로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애써 밤을 넘기려는 가련한 바텐더가 된 에스카 대표를 통해서 이후 90여 분에 걸쳐 지구의 모든 거실에서는 거의 똑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p. 57)

자, 여러분 새로운 단어에 겁먹을 우리가 아니죠, 그렇죠? 물론이죠! 공부는 재밌다! '버스verse'는 그냥 당신들 언어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과 가장 가까운 단어라고 보면 돼요. 오늘 수업에서는 아주 재밌는 에스카의 계층사회학을 공부해 볼 거예요! 함께 새끼를 기르는 한 쌍과 이들의 새끼는 버스, 어른 새끼들은 리릭스, 지배계급은 코러스, 프롤레타리아는 키, 그리고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브리지 랍니다. 어떤 행성에 살든 모든 에스카를 통칭해서 콰이어라고 부른답니다. (p. 58)

하나의 존재이지만 전지구에서 동시에 듣는이에게 친숙한 각각의 다른 목소리로 자신이 어떤 외계인임을 설명하는 대화가 오간다. 외계인에게도 지구인과 별다를 것 없는 사회계층이 존재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그리스 고전'을 공부했다는 저자의 이력이 새삼 생각났다. 비슷한 계층구조와 평화의 방법으로 합의한 노래경연은 어떻게 보면 고대사회와 그 사회에서 평화를 합의한 올림픽과도 닮아 있었다.

당신네 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아. 인간은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하고 고통에 걸신들려 있으며 오염을 내뿜는 우주 괴물이라는 말씀. 근데 자기야, 그런 게 영화에서는 보통 어떻게 그려질까? 적어도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가 틀렸다는 걸 납득시켜 볼 기회를 주려는 거잖아. 당신들은 나팔총으로 마지막 남은 도도새를 쏴 죽이기 전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새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당신들은 운 좋은 거야, 우리는 당신들보다 나은 존재니까. 우리는 괴물이 아니거든. 우리에게는 나름의 절차가 있어. 그리고 그 절차대로 잘 돌아가다 보니까 우리는 절차에서 벗어나지 않지. 당신들은 아마 그런 절차를 기업에서 내리는 지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잘리고 싶지 않으면 따라야 하는 거런 지시 말이야.

인류여, 힘내시라! 당신들은 우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이트클럽에 예약되었어요! 당신들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종들이 은하계 최고상을 받기 위해 모두 모이는 아름다운 리토스트 행성에 인류 대표를 보낼 거예요. (p. 69)

우리는 다 함께 힘과 지적 능력과 각양각색의 재주를 두루 갖춰야 나갈 수 있는 명예로운 콘테스트에 참가할 거예요. 당신들이 인간의 불유쾌한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줘요. 부끄러운 인류 역사에서 말 그대로 뭐든 배웠다는 것을 증명해 봐요. 인간 대표가 맨 꼴찌를 하지 않는 한, 인류는 이미 하늘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에 함께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음치에다 머리가 거꾸로 붙어 있는 하찮기 그지없는 단 하나의 우주 문명조차도 이기지 못한다면 인류의 집단적 존재에 대한 모든 기억을 친히 대조 확인하여 파일에 보관한 뒤 당신들 행성의 자원을 상냥하게 빼내가서 결국 인간 종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의 유기물질은 생물권으로 다시 매끄럽게 통합되어 당신네 행성은 편안히 쉬면서 또다시 몇십억 년이 흐른 뒤 돌고래 같은 것들로 재기하기만을 꿈꾸겠지요. 정말 재밌지 않아요? (p. 70)

그냥 노래경연대회가 아니었다. 지구문명의 존폐가 걸린 콘테스트! 인류의 대표가 될 뮤지션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외계인은 이미 사전조사를 거쳐 후보리스트를 작성해왔다. 그런데 그 명단의 맨 아래에 데시벨 존스의 밴드 이름이 있었고, 그 위의 다른 모든 후보들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데시벨 존스의 밴드가 인류 대표가 되었다! 갑자기 엄청난 책임을 맡게된 데시벨에게 각종 정부기관들이 달려들지만 로드러너는 순식간에 훌쩍 이 밴드를 데리고 지구를 떠나버린다. 그야말로 뿅! 하고 순삭.

외계종족들을 설명하며 여기저기 블랙코미디가 난무하지만, 그 사이사이 지구인의 역사를 섞어 놓았다. 1회 그랑프리 대상을 받은 종족은 외계전쟁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켰던 외계인이었는데, 유로송콘테스트 1회 대상이 스위스 였다. 식민지와 분리주의파와 사소한 사건을 빌미로 터지는 전쟁들에 대해서도 '작고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밝히길 바라지 않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수백만에 이르는 우주여행 종족들이 보유한 우주선의 공통점은, 제작하는 것보다 기르는 게 더 쉽고 비용이 덜 들며 더 재미있다는 점이다. (p. 171)

이 소설이 컬트적으로 느껴지는 것중 하나가 바로 우주선 이다. 광속보다 빠르게 우주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우주선은 스테이크를 연료로 먹는 '고기 우주선' 이다!

데시벨 존스는 언제나 현재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오마르 잘리쉬칸은 늘 불확실한 미래를 살았고, 미라는 항상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살며 다른 사람들은 가끔씩만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미리 예고한 광범위한 오염 제거 의식을 거치고 난 뒤에만 말이다. (p. 176)

밴드 멤버는 3명이었으나, 미라는 없다. 미라의 사고 이후 남은 두 멤버는 사이가 멀어졌다. 미라에 대한 책임감은 서로에 대한 왜곡으로 표현됐다. 둘은 몇년만에 얼굴을 마주하기 무섭게 외계행성에 함께 와 있는 처지다. 그렇게 오랜만에 대화를 하게 된 두사람은 서로의 과거부터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안에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로 길었고, 말할 줄 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오래갔다.

"있지, 우린 없어"

"뭐가 없다는 거야 오르트?"

"지각력. 지각력이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날 밤이 오게도, 이후 그렇게 지나가게도 하지 않았을 거야. 나 역시 지각력이 없어.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라가 운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p. 215)

인류의 지각력을 증명하기 위해 뽑혀온 대표들이지만 이들은 서로의 지각력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갑자기 노래를 만들어야 할 시간도 촉박하고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시간도 촉박하다. 과거 인간이 만든 작품들을 베끼려고 모든 명작시, 모든 대사, 모든 불멸의 약강 5보격을 전치사 몇 개로 연결해 문장을 만들어 보려 하지만... 최악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구에서 모든 인류가 티비중계로 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연대회 날이 다가온다.

데시벨은 데이비드 보위가 1975년에 [지기 스타더스트]앨범 촬영 때 입었던 딱 붙는 금속성의 망고와 피스타치오와 코코넛 색깔 줄무늬 바지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더 나아가 작은 블록체로 자신에 대한 최악의 평들을 전부 인쇄해 넣은 연노랑 스타킹을 무릎까지 올라오게 신은 뒤 그 위에 버클까지 채웠다. 또한 외계인의 피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베르사체가 어디선가 구해 와서 자른 뒤 검정색 반짝이를 가득 붙인 듯한 재료로 만든 야성적인 언더버스트 코르셋 밑으로, 헐렁하고 약간 해적 옷처럼 보이는 심야 네온불빛 색깔의 셔츠가 살짝 삐져나와 매혹을 더했다. 천을 꼬아 꿰매 만든 넥타이스카프의 레이스 단은 과거에 가장 소란스러운 무대에 섰을 때 누군가 던져 준 레이스 속옷에서 떼어내 댄 것이었다. (p. 278)

이 뒤로도 한참 더 길게 이어지는 의상의 표현이 도저히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지 않아서 '지기 스타더스트'를 검색해 보았는데, 이런! 데시벨은 '지기 스타더스트' 즉 데이비드 보위의 아바타 라고 할 수 있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 '지기 스타더스트' 에 대한 오마주였다. '지기 스타더스트' 로서의 데이비드 보위 의상들을 보니 대충 데시벨의 의상도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했다면 이 소설이 환상적이고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음악이 상상이 됐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역시 이또한 내게는 너무 먼 컬트적 문화였다;;;

 

                             

조금씩 아주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비결이었다. 누구도 완벽한 프로 뮤지션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원초적이고 지난 시절보다 좀 더 망가진 모습을 원했다. 그래야 그의 공연을 예약하고 쓰레기 같은 그의 물건들을 사고 그를 홍보하고 그와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 관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야 서서히 좀 더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데시벨이 앱솔루트 제로스와 단 하루의 영광을 누리면서 터득한 방정식이었다. 고통이 농담이 되고, 농담이 듣기 좋은 게 되고, 듣기 좋은 게 기쁨이 되고, 기쁨이 수익이 되고, 수익이 안전장치가 되고, 그러면 튀김 가게에서 하루 더 일하지 않아도 되고 막막함에서 하루 더 멀어졌다. 데스는 지구의 운명이 술집에서 써먹는 작업용 멘트 같아 웃음을 터뜨렸다. (p. 282)

지구에서 하던 데로 외계에서 행동하는 데시벨.

지구에서 하던 데로 영국인 답게 행동하는 오르트.

하지만 우주외계인들 역시 그들 하던데로 행동했으니,

너희도 이미 봤듯 이제부터는 여기 있는 거의 모두가 너희를 제거하려 하거나, 적어도 너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주의를 흐트러트리거나, 유혹하거나, 부담감을 주입하려 하거나, 아니면 아예 꼼짝 못 하게 붙들어 놓으려고 할 거야. 사실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고. 너희도 언제든 되갚아 줄 수 있으니 꼭 해야 해. 우리 중 한 종족을 쓰러트리면 너희 종족의 미래가 보장되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기대하지 않을 거야. 인간은 해부학적으로 공격력이 굉장히 부족한 종족이야. 너희들은 그렇게 뭉뚝하고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데다 멋없는 피부색을 지닌 상태를 넘어서기 힘들 거라고 봐. 너희는 공격하기 가장 쉬운 먹잇감이야. (p. 311)

16일이 흘러갔다. 작고 물이 많고 쉽게 흥분하는 지구라는 세상은 비존재의 허무주의를 마주하는 일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류는 그런 상황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p. 321)

지구는 만물의 종말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삶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p. 322)

온갖 괴상망측한 모습의 외계인들이 인류대표를 무시하고 얕보고 깔보고, 지구에서는 이러한 인류대표들의 모습을 보며 싸우고 논쟁하고 내기를 걸고 급기야 다른 외계종족을 응원하게까지 되는데... 인류는 지적생명체임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될까?

이 대회의 핵심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고, 우리가 준비됐는지를 입증하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짐승보다 나은 존재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거라면...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지각력에 반하는 대회가 아닐까 싶어. 난 모두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어. 네페르티부터 호메로스와 아퀴나스와 멋쟁이 브러멜과 마리 퀴리를 포함해 니코와 수지와 나까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지. 난 지구의 마지막 인간이 될 자질이 없어. 난 그냥 평범한 남자야. 할 수 없다고. 난 빌어먹을 카인이 아냐. 난 ㅚ초로 외계인을 죽인 놈이 되지 않을 거야. 설령 클리피라도 말이지. 근데 클리피는 재수 없긴 해 (p. 354)

데시벨은 환락을 즐기고 오르트는 좌절한다. 이들은 과연 경연대회를 치를 수 있을까?

번쩍거리는 디스코볼을 보는것마냥 정신없는 외계종족들을 헤매다 보면 그랑프리 콘테스트는 끝나있다.

 

모든 게 그냥 완전 엉망이 될 때가 있다! (p. 408)

'작가의 말'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대한 감사 인사를,

'이 얼토당토않은 아이디어', '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출 청소년 기행담에 가깝다고 할' 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며 그러한 이 책을 써포트해준 에이전시에 대한 감사 인사를,

''은하수...안내서'가 없었다면 이 책은 그저 한줄기 생각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라며 '은하수...안내서'의 저자에 대한 경외의 심정을,

'우리가 가장 사랑한 우주 괴짜인 보위' 는 '죽지 않았고 잊히지 않았다. 늘 그랬듯 다른 행성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라는 표현을

먼저 읽었다면

이 책을 더 제대로 즐기며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뭔지 몰랐고, '은하수...안내서'를 끝까지 읽지 못했으며, '우주 괴짜인 보위'를 알지 못했기에, 겨우겨우 줄거리를 이어가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외계종족들이 반갑고,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를 아끼며, '은하수...안내서'를 재밌게 읽었던 이라면 이 작품을 나보다 훨씬 감명깊게 읽으며,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이 폭발하는 코믹SF'로서 즐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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