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열전 -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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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마 제국을 다스렸던 10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창건자이자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시작해 대략 350년 뒤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제국 동부 콘스탄티노플에 새로운 수도를 개창한 제2의 창건자 콘스탄티누스로 마무리 된다. 이들은 개인보다는 제국을 우선하는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제국의 존속을 위해서 핏줄이 달라도 계급이나 심지어 인종이 달라도 황제로 삼았다. 권력을 집중하기 위해 황실은 여성들을 가문의 일원으로 십분 활용했다는 것이 놀랍다. 정략결혼이 횡행하고 내분과 살인은 빈번했으니 불행한 가족이기도 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 누이의 아들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총망 있는 조카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삼았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옥타비아누스는 복수를 하기로 한다.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이기고 원로원에 의해서 아우구스투스로 지명되며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다. 딸 율리아 아들들이 죽자 예정했던 후계자를 잃어버렸다. 양자로 얻은 티베리우스가 후임자로 임명된다.

 

티베리우스는 정책성과를 놓고 판단한다면 로마에서 가장 성공적인 황제 중의 한 명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제국의 경계를 안전히 지켰고, 대내적으로는 원로원을 영구적으로 황제에게 복속시켰다. 네로는 성공적이라기보다 가장 자극적으로 흥미를 돋우는 황제였다. 리라 반주를 하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는 레슬링을 연습했고, 결국에는 시합에 나갈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필 시 원고들이 그의 사후에도 수십 년 넘게 남아 있었고, 후대의 한 관찰자는 그 시들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 최초의 귀족이 아닌 지배자였다. 이집트에서 그는 때를 기다렸고,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왕의 신통력을 과시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재판을 주재하는 동안 그는 두 평민을 치료했다고 한다. 신성한 새로운 재능의 표시였다. 베스파시아누스의 건축 계획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바로 콜로세움이다. 여기에 투입된 노동력은 아마도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자유민과 노예, 포로들을 아우를 것이다. 포로들은 유대 전쟁에서 끌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40대에 황제가 된 트라야누스는 인생의 전성기에 있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했으며, 에너지와 계획들이 넘쳐났다. 비록 군인이었지만 트라야누스는 좋은 정치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사근사근하고, 차분하며, 개인적인 공격들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드리아누스는 제2의 아우구스투스를 자처해 제국을 평화롭게 하고 엘리트 계층을 외부자들에게 개방하는데에 대다수의 황제들보다 더 크게 공헌한 황제이지만 그는 살인을 일삼는 폭군이기도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책을 낸 유일한 황제이고 스토아 철학자였다. 스토아 철학은 법을 존중하고 공익을 우선시했다. 그는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했고, 위대한 황제가 되었다. [명상록]에서 신에 대한 두려움과 관대함, 나쁜 짓을 하는 것뿐 아니라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품는 것 자체를 삼가도록 가르치고 더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 습관을 멀리하고 소박한 사람을 살도록가르쳐준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내비친다.

 

세베루스는 로마 최초의 아프리카인 황제였다. 그는 속주 출신의 인물들을 최고위직에 임명하고, 군대를 중요시하면서 기사계급이 원로원 바로 아래 계급이 되었다. 세베루스가 죽은 뒤에 서방 제국은 250년간 더 이어진다. 그의 많은 행위들은 비록 전통을 거슬리기는 했어도 필요한 것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직업 군인이었다. 최초이자 최대 업적은 폭력의 악순환에 갇혀 있던 제국에서 안정을 회복한 것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막시미아누스를 카이사르로 임명하여 갈리아로 파견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막시미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 즉 공동 황제로 임명하고 그에게 서방을 맡겼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인이자 기독교인이었다. 군인이며 정치가, 건설자였다. 무자비하고 외골수였지만, 가장 성공적인 황제들은 다들 그러했다. 그는 전사이자 행정가, 대중홍보의 천재이자 종교적 환영을 보는 사람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 치하의 로마 제국은 세계 최강 국가들 중의 하나였고 콘스탄티노플은 가장 위대한 도시들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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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배워야 합니다 -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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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다. 지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겪고 있는 우리에겐 행복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간절하다. 평범한 일상의 우울을 떨쳐주고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세로토닌 이론보다도 특별히 테라피를 중심으로 썼다.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들이 많이 하는 호소를 듣고 이시형박사가 권하는 세로토닌적 처방전과 세로토닌 워킹, 세로토닌 다이어트도 함께 실었다.

 

책에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세로토닌 처방전, 힐링과 행복의 뇌 과학, 세로토닌의 뇌 과학, 세로토닌 테라피, 뇌 과학에서 본 인간 유형, 이젠 세로토닌의 세기 6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책을 읽다가 산책을 해볼까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 워킹법은 저자가 생각한 것이라고 했다. 머리가 꽉 차서 안 돌아갈 때는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건강에 노화 예방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워킹은 사색하면서 어슬렁거리는 걸음이다.

 

마음의 3요소-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의 분비량에 따라 우리 마음 상태가 결정된다. 노드아드레날린 신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뇌내의 위기관리 센터 역할이다. 생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노르아드레날린 신경을 흥분시켜 위기에 대처한다. 세로토닌은 통증을 덜어주고 잘 견디게 해준다. 세로토닌이 튼튼하면 스트레스에 강한 체질이 되어 통증 조절은 물론이고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 피로가 쌓이는 일이 있을 때 이를 경감시켜 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평상심을 유지할 때 공부도 잘된다. 세로토닌에 공부 호르몬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곁에 있다고,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우리가 세로토닌 운동을 벌이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뇌 과학적으로 본 행복은 세로토닌이기 때문이다. 뇌 속에 세로토닌이 풍부한 상태가 힐링이요, 행복이다. p76

 

비타민 B6는 세로토닌 합성에 촉매제 역할로서 중요하며 일반식사로 충분하다. 일단 뇌로 들어간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으로 전환되려면 몇 가지 자극이 필요하다. 햇빛, 리듬 운동, 스킨십, 규칙적 식사, 복근 심호흡, 잘 씹기 등이다. 감사할 줄 아는 능력, 감사력은 인간성이나 인간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도 한국 사회는 이게 평가 절하되어 있다. 감사를 주고받는 순간만큼 우리에게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도 없다. 세로토닌이 펑펑 쏟아지는 순간이다. 모든 이에게 감사를 드리자. 그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우선 걷기 위해선 일상의 공간을 떠나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뇌 속에 새로운 회로가 생긴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웅크린 자세가 걸을 때는 반듯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주의를 기울여 5분만 걸어라. 행복해진다. 자유로움, 해방감, 신선함. 비즈니스 여행이라도 좋다. 일단 떠나라. 심신의 재충전을 위한 좋은 여행으로 만들어라. 세로토닌 여행의 진수를 맛보라. 정 떠날 형편이 안 되거든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길을 만드는 것도 좋다.

 

우리가 보통 피곤하다고 말할 때는 대체로 몸이 피곤한 것으로 알고 있다. 뇌 피로에는 휴식이 오히려 더 피로를 가중시킬 수도 있다. 쉬지 말고 가벼운 일을 해야 피로 회복이 빠르다. 단 머리를 너무 쓰는 일 말고 정원 손질, 청소, 정리 등 가벼운 일이 좋다. 특히 요즘은 만성피로가 오래가면 면역계 약화로 코로나19나 독감에 걸리기 쉽다.

 

세로토닌형 인간은 언제나 긍정적이다. 세로토닌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은 걱정, 근심,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전두엽 기능을 살짝 억제함으로써 매사에 긍정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세로토닌형 인간의 축복은 긍정성이다. 결핍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 혹은 자살까지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이보다 큰 축복이 달리 없다. 행복은 마음이 아니라 뇌에서 시작된다.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를 읽는 동안 혼란스러운 마음이 진정이 되고 행복이 충만해진다. 이 책은 우울증, 강박증, 중독, 공황장애, 섭식장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살리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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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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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 인생의 지혜가 담긴 명작이다. 이 책에 번역된 1881년부터 1886년 사이에 쓰인 동화들은 톨스토이의 기독교적인 윤리관과 무저항주의를 그대로 담은 작품들이다. 이 책은 동화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진다.

 

인생의 최고 정점이던 51세 무렵, 1879년을 기점으로 톨스토이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 그때는 [전쟁과 평화](1863-1869), [안나 카레니나](1873-1877)를 발표한 직후라 문학적인 명성과 창조적인 여감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선 인생의 허무함을 인식하며 상류층의 삶이 철저히 거짓과 위선 위에 세워졌다는 결론에 이른다. 신 앞에 단독자로 선 그는, “인간은 왜 사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진실을 어린아이와 민중도 이해할 수 있는 동화 형태로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이 책에 실린 10편의 명 단편이 탄생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 두 편은 인간은 나약하지만 자신을 위한 염려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한다. [두 노인]은 성지순례를 떠난 두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앙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는 동안 죽을 때까지 각 사람에게 사랑과 선행으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도록 명하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초반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끌 수가 없다]는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는 것과 누군가가 그에게 나쁜 짓을 하면, 복수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택해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촛불]은 사악한 관리인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자기 영혼을 피로 더럽히는 것이고 나쁜 사람을 죽였으니 악을 없앴다고 생각하겠지만, 더 나쁜 것을 자기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라 깨닫는다.

 

[대자(代子)]에서 대부가 아들에게 말했다.“너는 내 명령을 지키지 않았구나. 나쁜 짓 하나는 금지된 방문을 연 것이고, 다른 나쁜 짓은 권좌에 앉은 것이고, 또 다른 나쁜 짓은 내 홀을 손에 쥔 것이다. 세 개의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 세상에 수많은 악을 보탰구나.”(p138) 자신의 마음이 따뜻하게 타오를 때에야 다른 이의 마음에도 불을 붙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에서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풍요한 삶을 살고자 하던 빠홈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죽음에 이른다. 정작 그에게 필요한 땅은 그의 몸 하나 묻힐 만한 크기의 땅이었던 것인데 욕심이 너무 과했던 탓이다.

 

[바보 이반]은 욕망을 지닌 두 형제는 마귀의 꾐에 빠져 실패하지만 정직한 노동을 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쓸 것을 필요한 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바보 이반야말로 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겼다. [노동과 죽음의 질병]은 서로 사랑 안에서 소통해야 하는 이유가 됨을 비로소 알고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세 가지 질문]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인데,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삶이 유독 가혹하게 느껴질 때 읽는 10편의 인생 단편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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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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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을 통해 각기 다른 시대와 각기 다른 공간에 존재했던 여성 인물의 삶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다채롭게 변주해온 박서련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호르몬이 그랬어]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온난한 기후에서 궤를 이탈해버린, 한랭기단이 드리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동세대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작가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작품이다.

 

첫 문장은 남겨두자.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야지. 이건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니까.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고쳐 쓴 것은 9년 전 일이고 그때는 이렇게 썼다. 대학에 입학한 해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10년 전인데도 그때 일들은 아주 먼 옛날의 풍문처럼 느껴진다. 술을 배웠고 이내 주정을 깨쳤다. 우리가 사는 곳은 5층짜리 허름한 건물에 73개 호실이 빽빽이 차 있는 구기숙사였다. 코인 세탁실 안에서 희고 말끔한 예의 얼굴은 온 힘을 다해 울음을 참고 있었다. 말을 건네는 대신 그 애를 안았다. 그 애는 놀랐고 나도 놀랐다. 시간이 지나 예는 사라졌다. 오로지 나의 세계에서만.(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패딩 점퍼를 입기엔 애매한 날씨다. 모친의 애인이 선물로 사준 고가의 패딩을 입고 문자로 이별 통보를 한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호텔에 들어서기에 대낮부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비싼 밥을 먹다 말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내가 할까? 미안했다는 말을 하려고 날 부른 걸까? 누군가는 두 달 뒤에 결혼한다고 했다. 역시 안 만나는 게 나았어. 충격을 받고 모친 애인에게 순대국 먹으러 가자고 전화를 한다.

 

모친의 애인이 옆 동 사람이고 단지 앞 상가에 가게를 가진 자영업자이며 열일곱살 먹은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다는 등의 사실을 알아냈다. 모친은 아직도 한 달에 닷새씩 꼬박꼬박 행사를 치른다. 기간은 나보다 일주일쯤 앞선다. 모친의 생리가 끝나면 내가 시작되는 셈이다. 10여 년간 지금껏 모친과 나의 생리는 단 한 번도 겹친 적이 없었다. 모친과 나 사이에 어떤, 호르몬의 고리가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모친의 애인 집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누웠던 자리에서 핏자국이 둥글게 번져 있다. 남자애 침대에다 이런 것을 남겨놨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연습장을 한 장 뜯어 휘갈기곤 그 위에 얹어놓는다. 종잇장은 지금쯤 피를 조금 먹었을까. 내가 적어둔 문장을 떠 올린다. <내가 아니야, 호르몬이 그랬어.> 나오라는 토는 안 나오고 눈물이 울컥울컥 나온다.(호르몬이 그랬어)

 

[]능은 왕 또는 비의 무덤을, 묘는 그 외 모든 무덤을 가리킨다. 총은 주인이 없는 빈 무덤이다.

동거 1년의 기억은 구획 지어지지 않은 슬라이드 필름 같았다. 몇 가지 장면들은 불어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었고 내가 한 말과 네가 한 말을 구별하기가 어려웠으며 종종 실제로는 연출된 적 없는 장면들도 끼어들곤 했다. 너는 난초당 42호에 보관되어 있었다. 건물 안은 바람이 들지 않지만 온도는 오히려 바깥보다 낮은 듯했다. 도로까지 나오니 고갯길을 막 넘어오는 버스가 보였다. 가까스로 시간을 맞췄다.가방에 든 너를 바싹 끌어안았다. 돌아가지 말자. 차창 밖으로 운구용 버스 한 대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누군가가 묻힌다는 사실에 나는 위로받았다.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조금 다투었다. 내 탓이었을 공산이 크다. 하룻밤을 밖에서 보내고 네가 출근했을 새벽에야 방으로 들어갔다. 문 열기 전부터 방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연탄가스 냄새, 같으면서 아니었다. 소용없는 줄을 알면서도 너를 업고, 업는다기보다 둘러메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데 내 방에 살았던 누군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주인 여자는 소스라치며 뒤로 자빠졌다. 오로지 오늘을 위해 산, 너를 담아둔, 검정색 스포츠 색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내가 가방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처음으로 지은 이야기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사촌 언니가 우리 집에서 지냈다. 열 살 때? 열한 살 때? 원고지에 쓴 이야기를 보고 언니가 서련이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조금 모호해도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고 감히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짓고 싶었다. 지금은 정확한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구에게나 공감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이 책의 세 작품을 쓴 나와, 그것들을 고친 나는 분명히 연속적이고 동일한 존재지만 또 이토록 다르다. 에세이 (……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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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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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노의 소설 [세월]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즈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램 독자상을 수상하였으며, 소설 속 그녀는 아니 에르노 자신이면서 동시에 사진 속의 인물, 1941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의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이고, 개인의 역사에 공동의 기억을 투영한 비개인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명절, 42년의 겨울은 아무리 말해도 모자랐다. 추위, 배고픔, 루타바기, 보급용 식량, 담배 교화권, 폭격, 전쟁을 알렸던 북쪽의 여명, 약탈당한 가게들, 사진과 돈을 찾아 잔해를 뒤지는 이재민들.

 

가정마다 대부분 죽은 아이들이 있었다. 모든 겨울의 기관지염을 거쳐서 결핵과 뇌막염을 피한 후 대략 12살이 되어야지만 구제를 받게 되며 건강해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신문들은 아직도 해마다 5만 명의 아이들이 죽는다는 제목을 붙였다. 여성들을 <올바른 여성><몹쓸 종자의 여성>으로 나누었다. 금주의 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교회 문 앞에 붙어 있던 <도덕 수위>는 성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남자애들은 군대에 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우리는 군복을 입은 그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는 억지로 말을 시켜야 겨우 입을 열었고, <네가 전쟁 때 배고픔을 겪었으면 이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았겠지>라는 말로 혼나면서 음식을 남겼으며, <너는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구나>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숲이나 모래사장에서 조심하지 않은 탓에, 어떤 방법으로든 유산시켜야 했다. 부자들은 스위스로, 그렇지 않은 이는 전문가가 아닌 낯선 여자가 냄비에서 뜨거운 금속관을 꺼내는 주방으로, 시몬드 보부아르를 읽은 것은 자궁을 가졌다는 불행을 확인하는 것 외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태아를 무료로 소파수술을 시켜 주는 군의관들의 사택으로 임신한 여자들을 비밀스럽게 데려갔다. 스튜 냄비에 도구들을 소독했고, 도구는 자전거 펌프기 장치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면 충분했다.

 

견딜 수 없는 기억 중에 아버지의 임종 장면이 있다. 그녀의 결혼식 때 딱 한 번 입었던 슈트를 수의로 입힌 아버지의 시체는, 방에서 1층까지 관이 통과하기에 너무 좁은 계단을 비닐에 싸여 내려갔다. 새로운 바람이 동부에서 불어왔다. 우리는 마법 같은 말, 페레스토리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끝도 없이 황홀해 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동독은 국경을 넘었고, 호네커를 끌어내리기 위해 교회 주변에서 촛불을 들고 열을 지어 행진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숨 가쁘게 흐르는 시절이었다.

 

사담은 수수께끼 같은 <전쟁의 어머니>를 약속했으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태어나서부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지금까지 분리되고 조화가 깨진 그녀만의 수많은 장면들을 서사의 흐름,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한데 모으고 싶어 한다. 거론되는 모든 두려움 중에 가장 큰 두려움은 에이즈였다. 에르베 지베르에서 프레디 머큐리까지 마지막 뮤직 비디오에서 그는 예전의 토끼 이빨보다 훨씬 더 멋졌다.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들과 거리를 뒀고, 정부는 그들을 페스트 환자 취급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윤리적인 광고에 전력을 다했다.

 

단연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도 어떤 느낌도 없이, 단지 티브이 화면을 보고 또 봤다. 9, 그날 오후,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이 하나씩 무너졌고 그 장면을 너무 많이 본 나머지 그것이 현실이 된 것만 같았다. 핸드폰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소식을 나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대에 이 땅 위에 살다간 그녀의 행적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한 그 시간, 그녀가 사랑 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다. 그녀는 또 다른 감각 속에서 자신의 책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를 직감했다. [세월]은 작가의 새로운 문학적 시도가 이뤄지는 작품이다. 저자가 세월에 기록한 삶은 작가 자신의 기억만이 아닌 다수의 기억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프랑스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살아 온 세월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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