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페르시아의 역사 - 아케메니드 페르시아·파르티아 왕조.사산조 페르시아 살림지식총서 335
유흥태 지음 / 살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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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의 역사는 실제보다 상당히 축소되어 알려졌다. 그 넓은 영토에 대한 영향력과 찬란한 문명에 대한 스스로의 기록 자체가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기록도 페르시아 전쟁 당시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등 적진 측의 기록이다. 건축물과 부조, 새겨진 글씨 등을 통해 그 역사를 파악해야 하는 애로점이 있다.

 

게다가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등 지금의 미국처럼 고대 세계를 호령했던 이 지역의 왕조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티움 제국, 아랍계 이슬람 제국과 차례차례 오랜 패권 싸움을 해 왔다. 자연히 상대측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로 기록되었는데 문제는 지금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는 쪽이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계승한 서구라는 점이다. 그래서 페르시아에 대한 이미지는 현재까지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굳어져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300>등의 영화에서까지 페르시아 측은 야만적인 동양으로 그려지지 않았나. 크게보면 서구인과 같은 인종에 속하는데도! (예외적으로, 구약 시대 유대인에게 우호적이었던 왕은 성경에 긍정적으로 기록되어 있음)

 

심지어 같은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페르시아를 계승한 이란(1935년 팔레비 왕정 당시 국호가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바뀜)은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관계로 더 과격한 쪽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과거 강대국과 경쟁했던 찬란한 제국의 후손들은 억울할 것 같다.

 

하지만 고대 페르시아는 수많은 고대 종교와 사상이 태동한 곳이고, 거대 제국을 다스리는 효율적 행정체제를 수립했다. 로마 이전에 도로 시스템이, 몽골 이전에 역참제가 이미 존재했다. 후대의 제국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 시스템을 본받고자 했다. 정복지의 다른 민족도 비교적 관용적으로 대한 편이었다.

 

크세르크세스가 비록 아테네를 파괴했다고하나, 페르시아 제국이 정복전쟁을 일삼았다고 하나, 알렉산더가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한 것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로마제국의 정복은 칭송하면서 페르시아 제국만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 시각이 아니다. 얇은 책이지만 내가 원하는 시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 좋았다.

 

단점은 인명 표기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과 참고 문헌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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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심리코드 - 인류 역사에 DNA처럼 박혀 있는 6가지 인간 심리
김태형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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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서 독서를 한다. 1 진지하게 책상에 스탠드 켜고 정자세로 앉아 연필들고 시험공부하듯 사학자들의 정통 역사서를 읽는 방법. 이들은 버거운 상대들이어서 리뷰도 못 쓰고 하루 100페이지 읽기도 힘들다. 2 들고 다니며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서서 읽거나 엄마집에 가서 소파에 누워 읽는 대중 역사 에세이들. 이들은 2,3시간이면 한 권 읽어치우고 20분만에 리뷰 써 버린다. 2번 독서의 경우, 내가 모르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내용에 주목하여 읽는다기보다는 뭐 나도 나름 내 꿈이 있으니까 비전문가 저자들이 역사를 보는 방식이나 서술 기법의 장단점등을 체크해가며 읽는다. 그러다보면 이따금씩 박홍규씨나 김상근씨처럼 자신의 분야 스페셜리스트의 시각을 가지고 제네럴리스트로서 신선하게 역사를 언급해주시는 저자분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껌정의 전문 용어로 이렇게 말한다. "심 봤다!"

 

이 책 참 괜찮다. 세계사를 떠밀어 온 여섯가지 인간 심리로 '기억, 탐욕, 우월감, 통제욕, 개방성, 종교'를 보고 각각 6개의 장을 배분하여 세계사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이 부분에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을 염두에 두시고 기획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 직후부터 관심 가지고 있다가 리뷰어 행사를 했는지 한날 한시에 칭찬 리뷰가 많이 올라와서 책의 수준을 의심하느라 이제야 읽은 것이 저자분께 죄송스러울 정도이다.

 

이 책에는 심리학자로서 역사를 서술하는 시각은 기본이고, 심리학도였다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하신 후 다시 학계로 돌아온 저자분의 이력도 제국주의나 기독교 등 유럽사 관련한 서술의 시각에 반영되어 있다. 이 점은 어떻게 보면 책이 약간 아쉽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점이기도 하다. 다른 쪽 장들에서는 본 집필 의도대로 '기억, 탐욕, 우월감, 개방성'이라는 심리 키워드에 맞춰 관련 역사를 예로들면서 잘 서술되어 있는반면, '통제욕, 종교' 부분에서는 갑자기 목소리 높여 제국주의와 기독교, 미국 비판으로 빠져서 옛날 운동권 학회 세미나때 선배가 만들어 복사해 공부시키던 문건들처럼 서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더 부드럽고 세련되게 표현해 주시거나 처음 의도로 계속 가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튼, 앞으로 더욱 주목해볼 저자분이시다.

 

미국인은 지난 시절 인디언 대학살과 흑인 노예에 대한 악행으로 뿌리 깊은 죄의식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무의식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지배층은 이런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왔다. 그들은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 냉전 해체 이후에는 테러주의자들이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선전하여 미국인을 집단적 광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2003년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고 거짓말하면서 이라크를 재차 침공하겠다고 했을 때, 대다수 미국인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 역시 미국인의 뿌리 깊은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죄의식이 야기하는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자기 죄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뿐이다. 

- 본문 220쪽

 

종교개혁은 날로 부패하고 타락하던 가톨릭교회에게 경종을 울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가 유럽인을 평화 애호적이나 도덕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종교적 교리가 절대적인 지배력이 있었을 때 인류가 지금보다 행복했는지 의심스럽지만, 그들이 지금보다 도덕적이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어느 시대나 종교는 도덕성 못지않게 부도덕성도 지원해 주었다.

가톨릭을 믿는 나라든, 개신교를 믿는 나라든, 유럽 나라들은 대부분 구교와 신교의 비호 아래 제국주의적 해외 침략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개신교는 서구의 제국주의자, 특히 미국의 아시아 침략의 길잡이로 충실히 봉사했다.

- 본문 258쪽

 

한 마디로, 이 분의 이 책, 참 생각해볼만한 점, 배울 점들이 많다. 이를 껌정의 전문 용어로 이렇게 말한다. "이분,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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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 한국인의 시각에서 세계사를 조망한다
오귀환.이강룡 지음 / 페이퍼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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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 아닌 저자가 역사서를 쓸 경우, 그 저자의 직업이라든가 삶의 이력이 역사 서술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피며 읽는 것도 재미있다. 이번에는 저널리스트 두 분이 함께 쓰신 책이다. 확실히, 내가 질색하는 점 - 역사 에피소드를 흥미위주로 나열만 하고 개념없는 개그 발언해대는 점 - 이 없어서 좋았다. 동양사편과 서양사편을 나눠 서술했다고 들어서 그런지 읽다보면 관록있는 한 분과 젊고 패기넘치는 다른 한 분, 두 분의 각각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런 대중 역사서는 새로운 지식 습득보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사실을 이 저자분은 어떤 시각에서 서술하고 의미 부여를 해 주고 계신가, 하는 점을 파악하며 읽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분들의 개성이 확연히 보인다. 대중 역사서로 기획된 다른 세계사 통사류들과 차별점을 가진 책이다. 물론 이 책도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저자분들은 사건의 단순 나열에 급급하지 않는다. 700쪽이나 되지만 전세계의 모든 역사를 총망라해서 요약해 들려 주지도 않는다. 동서양 역사의 큰 흐름에 따라 왜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되었는지를 알려주려는 듯이 한 꼭지에 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시절에만 그치지 않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관련 역사와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다 언급해 준다. 놀랍고도 재미있다. 예를들어 501쪽의 오스만 제국 부분에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쇠퇴와 그 몰락한 제국의 영토를 차지하려는 영, 프 등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과 1차대전, 2차대전의 관계까지 설명하다가 지금의 팔레스타인 문제, 이스라엘 건국과 아랍 민족주의, 오페크까지 한 번에 흐름을 서술해 준다. 다른 책에서 만나기 힘든 서술 시각이다. 흥미로웠다. 한마디로 편히 앉아서 전문가에게 개인 브리핑을 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저자분들의 경력이 이런 식으로 글에 반영이 된 것일까? 중앙아시아 지역 서술, 티베트 불교 부분, 신자유주의 부분 등 독립된 칼럼 같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다 현재 세계 각 지역의 제반 문제들과 관련해서 서술해 주신다. 개그식으로 말하자면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요? 불편한 진실은 이렇습니다." 하는 식으로 과거 역사를 논하면서 현재 문제의 원인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지 뭔가. 십자군 전쟁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네오콘 언급하듯 말이다. 덕분에, 이 책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아주 유용한 역사책이 되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세계와 인간을 보는 시각이 정당하다. 개념있는 세계관을 갖고 서술한 책이다. 맘에 든다.

 

조금 내용이 아쉽다면, 아무래도 전 세계를 다 다루다보니 어느 부분은 약간 좀,,, (아, 표현을 제대로 못하겠다) 그랬다는 거,,, 좀 자료를 덜 보셨나,,, 싶었다는 거. 283쪽의 명시절 정화 함대 서술 마지막 부분에서 '중국은 정화 함대가 유럽보다 수십 년 먼저 인도양 전역을 누볐지만, 북경 보수층의 대륙중심주의에 막혀 주저앉고 말았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늘 유목민족과 대륙 내에서 대립해야만 했기에 바다 진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중국의 실정을 좀더 밝혀 주셨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299쪽의 임진왜란 부분에서 '이 전쟁을 과거 조선 왕조 이래 '임진왜란' 이라고 부르는 것이 지나친 조선-한국 중심이라면, 일본의 연호를 앞에 붙인 뒤 '에끼'라는 작은 규모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일본적인 무책임주의-무반성주의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라는 부분은 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임진왜란을 명에서는 '만력의 역萬曆之役', 일본에서는 '분로쿠노 에키文祿之役'라고 각각 자국의 연호를 써서 '00之役'이라고 하는 반면, 중국 황제의 연호를 쓰기에 독자적 연호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60갑자를 따서 보통은 '임진왜란'이라고 하지만 '임진지역壬辰之役'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치윤, <해동역사>에 임진지역 표기 나옴). 이렇게 볼 때 '役에끼'표기만으로 일본 비판하는 것은 좀 무리이지 않을까. (아, 이 부분은 나도 정확히 모른다. 의문만 제기할 뿐이다. 아시는 분, 알려 주세요.^^) 또 395쪽 -400쪽까지의 미국 독립 혁명 부분은 너무 이상적으로 서술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식민지 내부의 부유층, 엘리트층이 자신들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 식민 모국에 저항한 부분은 안 써 주셨기에 하는 말이다. 497쪽의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부분에서 수카르노의 일제 부역 부분을 안 써 주신 것은 아쉽다. 아, 왠지 이렇게 쓰고 나니 죄송스런 기분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고 깊이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친구분들께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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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지음 / 까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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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난 이 책의 리뷰를 좀더 빨리 써놓지 않았던 점을 후회한다!

이 선생님에 대한 내 애정표현을 선생님 살아 생전에 하지 않았던 점을 후회한다!

정말 선생님덕분에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인간이 되었노라고, 덕분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연예인들이나 주변의 내또래 남자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책 속의 남자들이었다. 나보다 많이 알아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남자들. 저자분들, 교수님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잘난 남자들의 전공 저작을 읽었을 때 완벽해보이던 그 지성은 여행 에세이나 신문의 칼럼에서 시사를 논할 때 이상한 빈틈이 보이곤 했다. 미,영, 프, 독 쪽으로 전공하고 유학다녀온 분들인 경우, 이른바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 좋은 학벌을 갖추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신사분들인 경우 더 그랬다. 왜 이 분들은 자신이 전공하고 유학한 그 나라 지식인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고 말하는 것일까? 왜 백인 지식인의 입장에서 제3세계를 논평하는 것일까? 이분들의 편한 에세이에서 세련되게 드러나는 지뢰같은 이 불편함은 도대체 뭘까?

 

2001년, 이성형 선생님의 라틴 아메리카 기행서인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를 읽고서 나는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잘난 지식인 남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마름이면서 지주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하고 있었다. 소작인들이 못사는 것은 니네들이 게으르기 때문이야, 라고 분석하는 마름들. 난 그 마름들의 반편 지성이 싫었다. 강한 자 앞에서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 강하게 굴기위해 자신의 지식과 지성을 사용하는 엉터리 남자들! 반면, 이 선생님은 현재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제반 문제들의 역사적 근원을 배부른 백인 여행객의 시선이 아니라 그곳 민중들의 시선으로 밝혀 주고 계셨다. 정치학 전공자이시지만 문학과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으셔서 읽으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알고보니 이 분은 1980년대 사구체 논쟁의 주역으로 유명하신 분이셨지만, 난 당시 대학을 다니지 않아서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었다. 지식인다운 지식인으로 기억하고 이 책만 읽고 나는 지나쳤다. 아직 선생님의 진가를 몰랐던 것이었다.

 

그러다 2003년, 이 책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이 나왔다. 제목은 좀 후졌지만 내용은 놀라웠다. 그동안 내가 조금 읽어가며 서구 위주의 세계사 서술에 불편했던 점, 의아했으나 무식해서 몰랐던 점들을 이 선생님께서 명쾌하게 요약정리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세계사란 서구 지식인들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인들이 저지른 과거와 현재의 만행들, 그것을 미화하는 그들의 이데올로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세뇌당하는 우리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역사가 코르테스와 피사로 이후에 시작되는 이유를 원주민의 문자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배웠던 우리. 그것은 서구 침략자들이 그들의 문서기록물들을 다 불태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백인들의 흰 피부를 보고 신화 속의 신이라고 여기며 자발적으로 복종하지도 않았다. 이는 다 서구인이 지어낸 이야기들인데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또한 서구인들이 자랑하는 르네상스의 빛, 그 반대편에 있는 어둠들의 이야기 서술은 또 어떠한가. 유럽인들이 자랑하는 계몽과 합리성은 비유럽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은, 설탕, 옥수수, 커피, 감자에 얽힌 세계사의 명암. 서구인 역사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들이 세계사에 기여한 정도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기록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선생님은 서구 대 비서구 사회를 단순한 선악 관계로 파악하여 선동하는 서술을 하지는 않으신다. 옥수수나 감자가 서구 농촌에 전래된 이후 가난한 소작농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언급하시면서 서구 제국주의 내에서도 중심부와 주변부의 문제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혀 주신다. 한마디로 이 분은 더 깊이, 더 넓게 보여 주신다.

 

다시 오버하자면, 나는 이 책 덕분에 각성했다. 이 선생님의 이 책과, 이 책에서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엔리케 두셀 등 쟁쟁한 다른 선생님들을 책으로 만나 읽어가며 나는 성장했다. 한마디로 선생님 덕분에 나는 샹송 들으며 프랑스 번역소설과 시오노 나나미만 읽던 된장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부분, 나중에 추가해서 몇 줄 적는다 : 프랑스 소설 읽기와 샹송 듣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프랑스의 알제리 튀니지 침략 등 프랑스의, 아니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볼 때 모든 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수준에 있었다는 의미이다. )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사이사이, 이 선생님이 그 뛰어난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상고 출신, 부산 출신, 서울대 외 출신에 국내 박사, 라틴 아메리카 정치를 논하다보니 자연 언급할 수밖에 없는 반미의식 때문?)가 들려 왔다. 안타까웠다. 그러다, 올해 8월 1일, 그분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철렁, 했다. 아직 젊으신데, 더 연구하시고 더 나를 이끌어 주셔야 하는데,,,, (게다가 나는 그날 잔뜩 마시고 있었다. 이 점도 죄송하고 마음 아프다) 하워드 진 선생님이나 에릭 홉스봄 선생님(물론 이 분은 2달 후 타계하셨지만) 타계하셨을 때에는 크게 보도하던 메이저 언론들이 이 선생님 타계시에는 왜 이리 조용하게 지나치는지도 화가 났다. 두 분 노장 역사가분처럼 30년, 40년 더 살아 연구하셨더라면 이선생님도 두 분 못지않은 대학자가 되셨으리라고 나는 확신하기에.

 

나는 이 책을 2004년의 2쇄로 읽었다. 그때는 내가 블로그에 독서기록을 하기 전이어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써놓지 않았다. 나는 이 점에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이 책에서, 이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받은 것을 세상에 자랑해야만 했었다. 내 친구들에게 이 책을 마구마구 권해 주었어야 했다. 그래서 이제야 이 책을 다시 읽고 이렇게 두서 없는 글을 남긴다. 부디 선생님께서 하늘나라에서 편하시길 빈다.

 

이선생님에 대한 더 좋은 글은 아래를 참고 하시길.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2723.html

http://blog.naver.com/saintcomf/20163702210

http://blog.daum.net/cafeafternoo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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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평의 문명사 -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까지 화장실을 통해 보는 인류 문명사
줄리L.호란 지음, 남경태 옮김 / 푸른숲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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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영하 15도의 강추위가 몰아치는 서울. 내 집에서 그나마 가장 따끈따끈한 곳이 화장실 변기 위이다. 변기 위에 앉아 열선이 들어간 변기를 개발한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화장실이나 변기의 역사에 대한 책도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과연 있었다! <1,5평의 문화사>! 여기서 1,5평이란 것은 화장실의 평수를 말하는 것인가보다.

 

책은 거의 유럽 중심으로 인간의 배설물 처리의 역사를 늘어 놓는다. 고대 도시에 건설되었던 하수도, 거리에 그냥 오물을 버리던 관습과 그로인한 콜레라 등 전염병 창궐, 근대 이후 도시 하수도 건설(여기서 또 <레미제라블>에서 쟝 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걷던 파리의 하수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 등,,,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인간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썼기에 서양에 비해 도시 분뇨와 악취, 전염병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는 점. 또 가장 역사가 오랜 화장실은 예나 지금이나 땅에 판 구덩이와 요강인데 그의 변천 역사도 나열된다. 개인 요강을 쓰던 귀족, 왕족들의 요강은 엄청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치장되어 부를 과시했으나 지금과 같은 화장실 붙박이 가족 공용 변기가 되면서 변기는 심플하게 변해간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뭐라뭐라해도 가장 회기적인 것은 수세식 변기의 발명과 화장실이 옥내로 들어온 사건이 아닐까 싶고. 그밖에 화장지의 역사라든가 1차대전 당시 참호 안에서의 화장실 문제 등등도 흥미로웠다.

 

비데(bidet)라는 말의 어원은 153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는 당나귀나 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700년대에 비데는 배설을 한 뒤 밑을 닦는 장치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비데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아마도 당나귀나 말을 탈 때처럼 기다란 그릇 위에 걸터앉기 때문인 듯싶다. 

- 본문 107쪽에서 인용

 

이교도 시대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중세 유럽의 바보들의 축제에서는 똥을 먹는 행위가 의식의 하나로 바뀌어 행해졌다. 사람들이 가득 모인 가운데 여자 옷을 입거나 광대 복장을 한 남자 배우가 제단에서 소시지와 피로 만든 푸딩을 먹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소시지는 인간의 대변을 상징한다고 한다. 피로 만든 소시지라는 뜻의 프랑스어 '부댕(boudin)'은 배설물이라는 뜻도 있다. 영국에서는 헨리8세가 바보들의 축제를 폐지했지만,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까지 그 풍습이 남아있다.

- 본문 190쪽에서 인용

 

아무래도 지은이가 볼 수 있는 자료는 서구인이 쓴 영어자료였을 터, 세계의 다양한 배설 문화와 위생 관습을 다루면서 제국주의 시절 서구의 침략자나 여행가가 기록한 부분을 인용한 부분은 문화의 다양성,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각으로 쓰여진 것이 많아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저자도 이를 인식하고 그점을 책에 미리 밝혀 놓았다. 이점 참 마음에 든다.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힌 저자의 이력 덕분일까. 덕분에 전공자이든 일반인이든 유명지식인이든 아니든, 저자 본인의 열린 마음과 시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읽기에 흥미롭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별 내용은 없고 그냥 여기저기 문헌에서 화장실과 배설에 대한 부분만 오려내서 주욱 연결해 놓은 것 같은 책이다. 역자 남경태씨를 믿고 골랐는데 지금의 남경태씨의 실력이 아닌듯하다. Prince of Wales 를 '웨일즈의 왕'이라 해 놓으신 부분은 정말 의아하다. 그외 인명을 전부 영어식으로 번역해 놓은 것도 요즘의 역자라면 절대 하지 않으실 일인데 말이다. 18년 전에 나온 책이라 그런가.

 

참, 믿을만하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일본어 전공자)이 술자리에서 일본 토토사의 사훈은 '인류가 0을 싸는 한 토토는 영원하다'라고 말했는데, 사실일까? 현대 변기문화의 선구자는 일본의 토토사인데, 그 회사의 연구원이 쓴 화장실과 변기의 역사에 대한 책은 없을까? 만약 있다면 이 책보다 더 학문적(소리나는 대로 읽어보시라)으로 완성도가 높고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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