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 엄마보다 더 아픈, 상처받은 딸들을 위한 심리치유서
캐릴 맥브라이드 지음, 이현정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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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 보고 충동적으로 골랐는데, 기대 외로 이 책 참 좋다. 저자는 어느 스님처럼 그래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해라,,,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섣불리 용서해야 니 맘이 편해진다,,,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가 타고난 나르시스트인 것이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 할 생각도 없다. 저자는 딱 잘라 말한다. 엄마는 절대 안 바뀌니 당신이 바뀌어야 산다,라고.  나르시스트 엄마의 유형과 사례 등등 분석도 많지만 이 책에 관심을 갖고 리뷰를 검색해보실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은 해결책일 것이니 해결 쪽 내용을 길게 쓰겠다.

 

당신이 엄마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니 애초에 마음을 접어라. 엄마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 사전에 변화란 말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끊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엄마 때문에 받는 정신적 상처가 클 경우에 말이다. 

 - 243쪽에서 인용

 

저자가 권하는 해결책은 '가벼운 관계 맺기'다. 딸인 당신이 연락을 더 적게 해서 모녀 관계에 변화를 꾀하는 것. 절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심각하지 않고, 죄책감을 갖지도 말고 선을 넘지 않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하라는 것. 이 방법은 엄마와 완전히 의절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 여성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제시하여 사람들이 당신에게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권한다.

 

보통 선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할까봐 경계선 긋기를 주저하지만 사실 그것은 버림받는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을 자기에게 잘 하면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단순히 구분 짓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앟으면 간단하게 관계를 끊고 돌아서곤 하며 생각외로 큰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단호한 어조로 못 박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엄마가 딸인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행동에 어떤 느낌을 받든 그건 엄마의 문제일 뿐이니까. 엄마의 감정을 딸이 모두 책임질 의무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 말고 언성 높여 싸우지도 말고 엄마에게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선을 그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를 들자면 아래의 대화 방법이 있다. 딸이 본인의 이혼 소식을 전하자 딸의 마음을 돌보기는 커녕 이기적으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반응을 보이는 나르시스트 엄마의 경우,

 

엄마 : 세상에 이혼이라니! 대체 결혼생활을 뭘 어떻게 한 거야? 어디 창피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꺼낼 수가 있어야지!

당신 : 엄마, 제 삶은 제가 결정해요. 지금 가장 마음 아픈 사람은 바로 저라고요. 그런데 엄마는 위로는 커녕 나무라기만 하니 더 마음이 아프네요.

- 253쪽에서 인용

 

일단 경계선을 긋고 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특히나 엄마가 사생활에 사사건건 참견하려는 경우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를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말라고 덧붙인다. 선을 설정해 놓고 엄마가 그걸 무시하면 그 상황에서 단지 빠져나오고 감정 대립 없이 예의를 지키면서 자신이 그은 선을 지켜내도록 하라고 권한다. 화를 내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딸인 자신의 감정도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알리라고. 언쟁하지도 말고 엄마가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해서 그 선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쓰라고 한다.

 

물론 엄마의 과거 학대나 폭언 등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내 감정도 자유를 얻기는 하다. 저자는 엄마가 본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만 용서해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엄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뽑아버려 스스로 희생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르시스트 엄마 아래에서 학대받고 자란 딸들이 처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엄마 자격을 고민하게 되는 것.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런 사람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 된다고. 말보다 행동과 태도에 부정적인 믿음과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히 폭력적 언행을 자제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더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본인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다고 너무 자책 말라고 위로한 후,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며, 단지  어린 시절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것뿐이니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저자는 권한다.

 

치유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마라. 순식간에 상처가 씻은 듯이 낫는 마법은 없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도 또 수치심을 느끼지도 마라.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데서 벗어나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거듭나라. 이것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자아다.

- 274쪽에서 인용

 

이렇듯 이 책에는 나르시스트 엄마 밑에서 자라서 감정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딸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이 실려 있다. 유용했다. 약 기운이 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말고,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애써 봐야겠다.

 

읽어가다가 계속 놀라웠다. 나는 그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남아선호 남존여비사상(잠시 분노하고 지나간다. 뭐 좋은 거라고 '사상'이라는 이름 붙이나 모르겠다. 강간'문화'에는 그렇게 경기하는 사람들이!!!)이 창궐하여 한국만 유독 모녀 관계가 어려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서양에서도 이렇게나 망한 모녀 관계가 많다니. 뭐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보면 서양  저자가 쓴 책이 많은 것이 당연한건가 싶기도 하다만 아무래도 이건 보편적인 가부장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딱 패턴이 어머니 본인이 부모, 남편, 사회로부터 여성 약자로서 받은 억압과 스트레스를 더 약자 여성인 자신의 딸에게 화풀이하는 악순환이다. 그 강력한 증거가 이 책에도 나와 있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자기 엄마가 이렇게나 이상한 사람인줄 모르며 엄마와 이런 관계의 문제를 거의 겪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역시 여성 혐오 문화 아닐까. 아놔, 대대로 후진 패턴이 반복되며 서로가 불행하게 되는 이 문제를 어찌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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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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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를 막론하고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집을 떠난다. 자신의 운명을 찾아 과감히 떠난 아이들은 세속적인 성공은 물론, 자아의 성장과 독립도 이루게 된다. 


여우 누이, 아버지의 유물, 구렁덩덩신선비, 세상에서 제일 큰 참깨나무, 바리데기, 삼공본풀이, 장화홍련전, 심청전, 장자못 전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 등 저자는 우리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여기에 서양 이야기를 더한다. 작가가 있는 그림동화나 페로동화라고는 하지만 구전되던 설화를 채록하여 저자가 가필한 작품들이기에 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한 이야기들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 음악대, 잭과 콩나무, 장화 신은 고양이, 황금 거위, 흰눈이와 빨간장미 등을 다룬다.

 

저자는 길 떠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숨겨진 의미를 다정하게 설명해 준다. 머문자보다 떠난자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본인의 의지로 모험을 떠난 것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버려진 바리 공주, 팔려간 심청이, 숲에 던져진 백설공주처럼 피치못한 상황에 처해도 스스로 떠난 아이들처럼 살 궁리를 하고 움직여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 궁전에 다녀 온 신데렐라처럼 앉아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길을 찾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화와 홍련이를 보라. 방에서 서로 끌어앉고 울기만 하다가 계모의 음모에 휘말려 죽는다. 둘은 귀신에 되어서야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니 산 사람은 떠나고 움직여야 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법. 어떤 상황일지라도 창의적 사고와 도전적 태도가 중요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떠나면 살고 머무르면 죽는다'가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만, 또 그렇지만은 않다. 가다가 목표를 수정하여 자신이 선택한 곳에 과감히 머무를 수 있는 것도 용기있는 선택이다. 브레멘에 가기 전 숲 속 작은집에 머무른 네 마리 동물의 경우를 보라. 악단 단원이 되겠다는 원래 꿈도 포기했지만 상관없다.

 

브레멘이란 어디 특정하게 정해진 곳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식으로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요. 인생의 행복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 140쪽에서 인용.

    

구비설화라는 것이 너무 동화로만 알려져 있어서 식상한 권선징악 주제에 체제수호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는 그런 점이 없어 더 좋았다. 그림동화집에 나오는 <땅속 나라 난쟁이>의 주인공인  한스는 난쟁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버릇을 고쳐준다. 무조건 착하게 굴지 않고 바보 같은 우직함으로고 그름을 가리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행운을 얻는다. <흰눈이와 빨간 장미>의 주인공 소녀들은 배은망덕한 난쟁이가 화를 내도 신경 끄고 쿨하게 자기 볼일을 본다. 문제는 상대에게 있는데 괜히 자신들이 상처 받을 필요가 없기에. 멋진 캐릭터들이다.  내가 몰라서, 덜 읽어서 그렇지 사실 옛이야기는 그리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우리나라 구비문학 쪽 읽다보면 신동흠 선생님을 계속 만나게 된다. 제자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지만 선생님께 많은 빚을 졌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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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페미니즘 - 함께 공부하는 여성권 강의 사회운동 작은책 2
이유미 지음 / 사회운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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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분이 직접 몇 년간 페미니즘 주제로 노동자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세미나에서 토론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실용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성폭력 문제를 노동권 측면에서 접근한 장점이 돋보인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거나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적 쟁점을 주로 다루어 출간된 지 몇 년 되었지만 낡은 느낌이 없다. 인용하고 있는 통계 자료만 업데이트해주면 스테디하게 사랑받을만한 책이다. 얇지만 내용이 충실하다. 콤팩트형 서바이벌 키트같은 느낌?  

 

저자는 강조한다.  성폭력 예방 문제를 매녀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가해자를 처벌하면 해결되는 개인적인 문제라거나 주변에 여성이 있을 때 언행을 조심하는 정도의 도덕적인 의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서술한다.  전체적인 여성 억압의 현실이 어떤지, 노동 시장에서 여성들이 받는 차별과 성적인 폭력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이 있게 이뤄지지 않는 것. 그래서 사건 발생 때 잠깐 관심 가졌다가 마는 것 같은 문제 말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성역할 구분과 그로 인한 위계, 여성의 성을 금기시하고 남성의 공격적 성욕을 본능처럼 생각하는 이중적 성규범,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풍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 사회적 문제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사회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조직 안에서 여성 동료에게 술 따라라, 연애하자는 식으로 치근덕대는 행위, 밖에 나가서 성매매하고 도우미를 부르는 행위, 여성노동자가 관리자와 고객으로부터 성희롱 당하는 현실이 모두 동일한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 본문188쪽에서 인용

 

또한 성폭력은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노동할 권리를 침해한다. 가해자는 위력을 가진 직장 상사뿐만이 아니다. 온갖 갑질하는 인간들이 가해자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생기는 젠더 폭력이기 때문이다. 음란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는 콜센터 노동자라든가 백화점, 마트, 식당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당하는 성폭력도 직장 성폭력이다. 직장은 '고객이 왕'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방치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일 경우 파견 관리하는 정규직 남성 사원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직장 성폭력은 불륜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기본 노동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딛고 있는 조건을 혁신하는 것부터 출발해서 여성들이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도록 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싹틔웁시다.

- 본문 189쪽에서 인용

  

독서 모임에서 활용하기 좋게 각 챕터마다 토론 거리를 주고 있어 더욱 유용하다.  제목 대로 '지금 여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페미니즘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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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본에 이런 단편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19458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진 조선 00시의 소학교. 일본인 국어선생(당연히 이때의 국어는 일본어다)이 이제부터 일본어를 못 가르치게 되었다고 아쉬워하면서 마지막 수업을 한다. 그는 목멘 소리로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결코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조선인 학생들은 그동안 일본어를 열심히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수업에 집중한다. 한 학생은 까치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앞으로 저 까치도 조선어로 울어야 할까?' 라고 생각하며 감상에 빠져 든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창밖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목이 멘 일본인 선생은 칠판에다 크게 "대일본제국 만세!"라고 쓴다.

 

게다가 이 소설이 패전국 일본의 아픈 마음을 자극하여 이후 일본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면? 이 소설을 읽은 일본의 우익들이 '국토(, 조선) 회복'이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면? 이 소설이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우리의 일제 강점기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된다면? 심지어 우리나라에 여행온 일본인들과 다른 외국인들이 00시를 방문하여 ", 이곳이 그 유명한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로구나! 역시 모국어는 소중한 것이야." 라는 헛소리를 해대며 기념 사진을 찍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조금 과격하지만 이런 가정을 프랑스와 독일의 이야기로 바꾸면 바로 그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알자스로렌 지역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영토였던 때보다 독일 영토였던 때가 더 많았으며 원래 이곳 민중들의 기본 언어는 독일 방언의 일종인 알자스어였다. 그런데 우리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소설을 우리의 일제 식민 지배 경험을 반영하여 읽으며 프랑스인의 왜곡된 민족주의 감정에 감동을 받아 온 것이다. 역사적 내막을 알고 보면 허무해도 이만저만 허무한 것이 아니다.

(중략)

우리가 마지막 수업을 읽고 감동받았던 것은 일제 식민지 경험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소학교에 있었던 '방언찰'을 아시는가? 일본어를 쓰지 않고 조선말을 쓰는 학생을 벌주는 용도로 사용했던 이 나무패는 조선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오키나와를 비롯하여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에서 표준 일본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학생을 벌주기 위해 사용했다. 그것도 2차 대전에서 패하여 일본의 해외 식민지도 없어진 후인 1960년대까지 말이다. 이렇게 한 나라 안에서도 주변부 지역에 대한 중심부의 폭력적인 언어 권력 행사는 있었다.

 

나는 "프랑스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확한 말"이라는 알퐁스 도데의 서술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자신의 모국어가 있으며, 그 모든 모국어는 전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확한 말이다. 또 같은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태어난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자기만의 모국어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배국가와 피지배 국가 사이에서, 자국 내에서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서, 다른 계급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며 다른 상대에게 강자의 언어를 강요하는 순간, 폭력은 시작된다.

 

그러니 나중에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 여행가게 된다면 "여기가 바로 그 명작 마지막 수업의 배경 도시래! 역시 언어와 민족혼이란,,,"이라며 감동 받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알고보면 참 허무한 명작, 남의 나라 극우파 작가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속아 감동을 받기 쉬운 소설이 바로 이마지막 수업이다.

-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 본문 242 ~ 250쪽에서 인용

 

그렇습니다, 또 광고입니다.

 

제가 쓴 책 <백마 탄 왕자 ~>는 책 제목 때문에 공주와 왕자가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만 있는 것으로 오해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동화와 고전 명작, 설화 등을 놓고 유럽사 전체를 한번 담아내고 있습니다. 앞에는 더 흥미 위주, 궁금증에 답하는 이야기를 배치했고 뒤로 갈수록 본격 역사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통사 스타일로, 중세에서 근, 현대로 갑니다.

 

위에 인용한 모든 모국어는 가장 아름답다편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가 1871년에 발표한 마지막 수업의 공간배경인 알자스 로렌 지방의 역사를 통해 보불 전쟁(1870~1871년에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싸운 전쟁)부터 이후 제1, 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민족감정과 경쟁심이 야기한 결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알자스와 로렌은 17세기의 30년 전쟁 때 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프랑스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독일어권에 속해 있었기에 프랑스에 병합된 이후에도 일반 민중들은 독일어를 사용하였죠. 프랑스어는 도시 상류계급 일부만 쓰는 언어였습니다. 1871년 보불 전쟁 결과 알자스의 대부분과 로렌의 동쪽이 독일에 병합될 때까지도 이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인구는 전체의 11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마지막 수업에 나온 상황이 얼마나 프랑스 쪽 입장에서 극우 민족주의적 감정을 갖고 왜곡해서 쓴 것인지는 짐작할 만하죠. 프랑스는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독일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 나갔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의 체육시간에도 알자스와 로렌의 수복을 위한 체력 단련과 군사 훈련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과열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 바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는 모국어를 빼앗긴 경험이 있기에 이 소설에 감동하였지만, 실제 역사는 조금 다릅니다. 괜히 남의 나라 극우 작가의 펜 놀림에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었죠.

 

광복절이기도 하고, 친일파에 토착 왜구를 남발하는 요즈음의 과열된 사회 분위기가 생각나서 광고 겸 소개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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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08-16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어려워 하는 학생들이 제법 많더라구요. 동화를 통해서 세계사를 공부하는 이 책이 더욱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정판 내신 거 축하드려요 !! 십쇄까지 가시길...

껌정드레스 2020-02-06 09:57   좋아요 0 | URL
네, 박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덕담대로 스테디하게 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학 다닐 때 일이다. 외대 후문 쪽에서 알바를 했다. 집도 학교도 그쪽이 아닌데, 친구가 하던 자리를 이어받아 하다보니 장장 6개월 동안 1주에 6일은 외대에 가게 되었다. ( 여담인데, 그래서 나는 내가 1/8 외대생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한 학기를 다녔으니까. )

 

지금도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데 대학생이던 그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렇다, 오죽했다. 알바하다 쉬는 시간에 후문 쪽 분수대에서 커피 마시거나 학생 식당에서 짜장면 먹고 있으면 왜들 그리 '대시'를 해'대시'는지, 원. 취향도 독특해. (여담인데, 남자들아, 제발 입가에 짜장 묻히고 있을 때는 말 좀 걸지 말라구. )

그중 한 남자가 계속 내가 알바 출퇴근하는 길목을 얼쩡거리며 말을 걸었다. 외대역까지 쫄쫄 따라 오곤 해서 짜증이 났다. 무시하고 지나치던 어느날, 그가 길에서 내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밥 한 번만 같이 먹어달라고. 다시는 안 따라다니겠다고.

 

좋다! 식당으로 안내하라, 남자여.

 

그는 외대 정문을 등지고 지하철역으로 향했을 때 대로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무슨 경양식집이었다. 칸막이로 테이블이 분리되어 있었다. 인테리어는 원목과 하얀 회칠벽으로 되어 있었다. 어딘가에 하이디가 잠자는 다락방도 있을 것 같았다. 하이디네 염소같은 표정으로 메뉴판을 들여다보더니, 그는 정식인지 돈까스인지를 2인분 시켰다.

 

지금도 박력 넘치고 괴팍미 뿜뿜하는데, 20대 시절에는 오죽했을까? 그렇다, 나는 오죽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첫 데이트에 성공한 기쁨을 천천히 누리려는 대시남은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맹렬하게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고기를 썰고, 삼지창을 이용해 입으로 날랐다. 마지막 고기 한 점을 삼키는 즉시 얼른 후식 커피를 달라고 소리쳤다.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지? 나 간다. 앞으로 귀찮게 굴지 마!"

대시남이 화를 내며 말했다. "먹고, 그냥 튀게?"

 

파바박, 머리가 돌아갔다. 이 남자가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이 새끼가, 나를 돈 주고 산 것으로 여기고 있구나. 지가 밥을 샀으니 여자인 나는 얻어먹고 웃어주고 애교떨며 자기 즐겁게 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너에게 쓴 돈값을 하라니, 감히 내게?

 

나는 군말 안 하고 카운터로 가서 2인 밥값을 계산했다. 반도 안 먹은 돈까스 접시를 앞에 두고 당황해하는 돈까스남을 버려두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다음날, 돈까스남은 또 나타났다. 약속과 다르다, 왜 나타났냐고 물었다. 그가 뇌맑게 웃으며 말했다. "대개 여자들은 얻어 먹는데, 너는 내 밥값까지 내 준 것으로 보아 내게 호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또 왔다. "

 

그 이후 오랫동안, 돈까스만 보면 그 남자 생각이 나서 화가 났다. 그러나 후진 남자의 상처는 새 남자로 치유하는 법. 내게 돈까스만 보면 생각나는 다른 남자가 생겼으니,

 

바로 17세기 루이 13세 시절 프랑스 총리이던 리슐리외 추기경.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보면, 결투를 하려드는 달타냥과 총사들이 리슐리외의 근위병에게 체포당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리슐리외는 1626년 결투 금지령을 내렸다.

 

결투금지령 외에도 리슐리외가 결투를 막는데 기여한 사실이 더 있다. 리슐리외는 식사용 나이프의 끝을 둥글게 깎으라는 명령도 내렸다. 이전에는 식탁용 나이프와 일반 나이프의 구분이 없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식사하다가 다툼이 생기면 바로 식탁에 있던 나이프를 들고 칼부림을 하곤 했다. 이런 문제를 줄인 리슐리외형 나이프는 곧 프랑스 귀족 집안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는 프랑스 전체와 유럽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칼싸움 방지 목적도 있지만, 식사 도중에 나이프를 들고 이를 쑤시는 손님을 보고 경악해서, 라고도 한다.

 

여튼, 나는 자라서 역덕이 되었기에, 이제 돈까스를 먹을 때는 그때 그 대시남이 아니라 리슐리외 추기경을 생각한다.

 

아, 리슐리외 당신, 식사용 나이프의 끝을 둥글게 만든 것, 정말 잘 한 일이었어요. 만약 여전히 나이프가 뾰족했더라면, 아마 저는 그때 그 돈까스남을 ,,,, 그랬더라면 역사 에세이 작가가 된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그리고 이렇게 제 책 광고도 못 했겠죠.

 

 삼총사와 리슐리외의 갈등, 결투 금지와 식사용 나이프 등등, 흥미진진한 서양 명작과 역사 배경 이야기가 담긴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가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초판 원고에서 역사부분을 보강하고 전체적으로 손 봤습니다. 여기에 쓴 리슐리외형 나이프 이야기는 삼총사 편에 새로 들어갑니다. 기존 박스 기사에서 좌측통행 우측통행 이야기를 빼고 넣었습니다. 돈까스남 대신 제게 많은 사랑을 주시길 기대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쓴 책 신간 광고입니다.

알라딘에 근래 글을 자주 안 썼는데, 오랫만에 와서 대놓고 광고하기 죄송스러워서 수다부터 떨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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