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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지음 / 까치 / 2003년 10월
평점 :
아아, 난 이 책의 리뷰를 좀더 빨리 써놓지 않았던 점을 후회한다!
이 선생님에 대한 내 애정표현을 선생님 살아 생전에 하지 않았던 점을 후회한다!
정말 선생님덕분에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인간이 되었노라고, 덕분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연예인들이나 주변의 내또래 남자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책 속의 남자들이었다. 나보다 많이
알아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남자들. 저자분들, 교수님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잘난 남자들의 전공 저작을 읽었을 때 완벽해보이던 그 지성은 여행 에세이나 신문의 칼럼에서 시사를 논할 때 이상한
빈틈이 보이곤 했다. 미,영, 프, 독 쪽으로 전공하고 유학다녀온 분들인 경우, 이른바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 좋은 학벌을 갖추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신사분들인 경우 더 그랬다. 왜 이 분들은 자신이 전공하고 유학한 그 나라 지식인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고 말하는 것일까? 왜
백인 지식인의 입장에서 제3세계를 논평하는 것일까? 이분들의 편한 에세이에서 세련되게 드러나는 지뢰같은 이 불편함은 도대체 뭘까?
2001년, 이성형 선생님의 라틴 아메리카 기행서인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를 읽고서 나는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잘난 지식인 남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마름이면서 지주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하고 있었다. 소작인들이 못사는
것은 니네들이 게으르기 때문이야, 라고 분석하는 마름들. 난 그 마름들의 반편 지성이 싫었다. 강한 자 앞에서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 강하게
굴기위해 자신의 지식과 지성을 사용하는 엉터리 남자들! 반면, 이 선생님은 현재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제반 문제들의 역사적 근원을 배부른 백인
여행객의 시선이 아니라 그곳 민중들의 시선으로 밝혀 주고 계셨다. 정치학 전공자이시지만 문학과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으셔서 읽으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알고보니 이 분은 1980년대 사구체 논쟁의 주역으로 유명하신 분이셨지만, 난 당시 대학을 다니지 않아서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었다. 지식인다운 지식인으로 기억하고 이 책만 읽고 나는 지나쳤다. 아직 선생님의 진가를 몰랐던 것이었다.
그러다 2003년, 이 책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이 나왔다. 제목은 좀 후졌지만 내용은 놀라웠다. 그동안 내가 조금
읽어가며 서구 위주의 세계사 서술에 불편했던 점, 의아했으나 무식해서 몰랐던 점들을 이 선생님께서 명쾌하게 요약정리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세계사란 서구 지식인들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인들이 저지른 과거와 현재의 만행들, 그것을 미화하는 그들의
이데올로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세뇌당하는 우리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역사가 코르테스와 피사로 이후에 시작되는 이유를 원주민의 문자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배웠던 우리. 그것은 서구 침략자들이 그들의 문서기록물들을 다 불태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백인들의 흰 피부를
보고 신화 속의 신이라고 여기며 자발적으로 복종하지도 않았다. 이는 다 서구인이 지어낸 이야기들인데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또한 서구인들이
자랑하는 르네상스의 빛, 그 반대편에 있는 어둠들의 이야기 서술은 또 어떠한가. 유럽인들이 자랑하는 계몽과 합리성은 비유럽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은, 설탕, 옥수수, 커피, 감자에 얽힌 세계사의 명암. 서구인 역사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들이 세계사에 기여한
정도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기록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선생님은 서구 대 비서구 사회를 단순한 선악 관계로 파악하여 선동하는 서술을 하지는
않으신다. 옥수수나 감자가 서구 농촌에 전래된 이후 가난한 소작농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언급하시면서 서구 제국주의 내에서도 중심부와 주변부의
문제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혀 주신다. 한마디로 이 분은 더 깊이, 더 넓게 보여 주신다.
다시 오버하자면, 나는 이 책 덕분에 각성했다. 이 선생님의 이 책과, 이 책에서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엔리케 두셀 등 쟁쟁한 다른
선생님들을 책으로 만나 읽어가며 나는 성장했다. 한마디로 선생님 덕분에 나는 샹송 들으며 프랑스 번역소설과 시오노 나나미만 읽던 된장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부분, 나중에 추가해서 몇 줄 적는다 : 프랑스 소설 읽기와 샹송 듣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프랑스의
알제리 튀니지 침략 등 프랑스의, 아니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볼 때 모든 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수준에 있었다는 의미이다. )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사이사이, 이 선생님이 그 뛰어난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상고 출신, 부산 출신, 서울대
외 출신에 국내 박사, 라틴 아메리카 정치를 논하다보니 자연 언급할 수밖에 없는 반미의식 때문?)가 들려 왔다. 안타까웠다. 그러다, 올해 8월
1일, 그분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철렁, 했다. 아직 젊으신데, 더 연구하시고 더 나를 이끌어 주셔야 하는데,,,, (게다가 나는 그날
잔뜩 마시고 있었다. 이 점도 죄송하고 마음 아프다) 하워드 진 선생님이나 에릭 홉스봄 선생님(물론 이 분은 2달 후 타계하셨지만) 타계하셨을
때에는 크게 보도하던 메이저 언론들이 이 선생님 타계시에는 왜 이리 조용하게 지나치는지도 화가 났다. 두 분 노장 역사가분처럼 30년, 40년
더 살아 연구하셨더라면 이선생님도 두 분 못지않은 대학자가 되셨으리라고 나는 확신하기에.
나는 이 책을 2004년의 2쇄로 읽었다. 그때는 내가 블로그에 독서기록을 하기 전이어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써놓지 않았다. 나는 이
점에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이 책에서, 이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받은 것을 세상에 자랑해야만 했었다. 내 친구들에게 이 책을 마구마구 권해
주었어야 했다. 그래서 이제야 이 책을 다시 읽고 이렇게 두서 없는 글을 남긴다. 부디 선생님께서 하늘나라에서 편하시길 빈다.
이선생님에 대한 더 좋은 글은 아래를 참고 하시길.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2723.html
http://blog.naver.com/saintcomf/20163702210
http://blog.daum.net/cafeafternoon/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