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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 남경태의 48가지 역사 프리즘
남경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개인적으로 나보다 10살 정도 선배뻘이 되는 국내 필자들의 전작을 좇아 읽고 그 필자들의 발전과정을 추적해가며 내가 배울점, 안
배울점을 추려보는 습성이 있다. 이 저자분 역시 내가 장기적으로 스토킹을 하고 있는 분이다. 그래도 이번 책의 별점은 셋이다. 정말 좋아하는
필자이지만, 도저히 내가 용납이 안되는 점이 눈에 거슬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사, 즉 時事란 단어 뜻 그대로 레임덕이나 대학 등록금 문제 등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사건을 논평한다. 그 근거는 바로
역사이다. "하지만 모든 시사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본문 301쪽에서 인용)"이라는 문장 그대로, 저자는 현재 보이는 현상 그 이면의, 더
깊은 근원의 역사 배경을 짚어가며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을 설명해주고 더 나은 사회, 더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바로
이렇게 역사를 바탕으로 현실발언을 해 주시는 점이 대부분의 강단 사학자들과 다른 이 저자분의 매력이자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정말 과거 역사
속 사관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의 약점은 바로 그 '시사'라는 책의 제목에 있다. 저자분은 時事에 충실하려 함인지, 경제, 사회, 국제, 문화, 교육 등등
신문의 면처럼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군데군데 저자분이 조금 공부를 덜 한 부분의 약점이 보인다. 자신의 전공 시공간만을 다루는
강단사학자들과 달리 이런 대중역사 저술가들은 워낙 광범위한 시공간과 관심사를 종횡무진 다루기에 피치 못하게 강하고 약한 분야가 각각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 저자분의 경우, 내가 보기에는 전쟁사와 일반 사회 분야가 강하다. (난 <인간의 역사를 바꾼 전쟁이야기>와
<30년 전쟁>을 읽고 이 저자분께 반했다).
반면 이 책의 일부 다른 분야에서는 종종 역사 사실이 아니거나 이제는 다른 학설의 도전을 받는데 그 변화를 언급하지 않으신 부분, 또
부적절한 진술이 보여서 아쉬웠다. 예를 들어, 33쪽의 선덕여왕과 선화공주를 서술한 부분은 <화랑세기>의 선덕 여왕 부분이나
선화공주를 백제 호족의 딸로 보는 최근 연구 성향이 반영되지 못했다. 37쪽의 루크레치아 보르자가 시집간 아라곤 가는 에스파냐 왕가가 아니고
나폴리의 아라곤 왕가였다. 교황의 딸인 루크레치아 서술 부분에서 가톨릭 성직자의 결혼 설명한 부분도 무리이다. 당시의 성직자는 정식 결혼만
엄격히 금지되었을 뿐, 그외 관계와 자녀 출생에 대해서는 그리 비난받지 않았다. 서자로 인지하면 그만이었으므로. (그외 종종 사실과 다른 용어
사용이 보이지만,,, 생략. 더 지적하면 내가 싸이코같아 보이니까. )
책을 읽다보면 다른 분야에서는 진보적인 남자라도 여성 관련한 부분 서술에서는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붓놀림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또
역사상의 약한 개인에 대해 편향된 시각으로 씌여진 흥미위주의 기록물만을 인용하여 부당하게 서술, 약자의 역사를 오락으로 소비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둘 다 내가 매우 혐오하는 서술 스타일이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부분을 읽게 되어 매우 당황스럽고
아쉬웠다. 앞서 지적한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경우, 정략결혼만 언급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인터넷에 떠도는 삼류 선정적 역사 블로그의 글처럼
근친상간까지 서술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녀와 그녀의 가문를 공격하는 측의 연대기 기록에 적힌 내용만을 소개하는 거, 과연 정당할까?
그녀는 야심가인 아버지와 오빠에게 장기판의 말처럼 희생당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녀와 하인 페드로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를 어버지와 오빠의 호적에
올렸다는 것이, 그녀 아들의 친부가 아버지나 오빠였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시는가? 지금도 집안의 여식이 미혼모가 되면 대개 외조부나 외삼촌의
호적에 올려주고 그 여식은 새출발 시키지 않는가? 난 이렇게 대중역사서에서 쓸데없이 약자를, 특히 여성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 싫다.
역사적 약자와 관련된 성적 폭력적 에피소드 소개, 대중역사서 필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이번에 이 책에서 전반부부터 이 서술을 접하게 되어
읽으면서 좀 불쾌했음을 밝힌다.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지적. 121쪽을 보시라. 이탈리아가 "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원래 독일 측에 줄을 서 있다가 개전 초기에 영국의
꼬드김에 넘어가 연합국 측에 가담했으나, 고무신을 바꿔 신은 팔자가 흔히 그렇듯이 전승국으로서의 혜택도 별로 얻지 못했다." 난 이
표현, 경악스럽다. 이게 재미있는가? 적합한 비유라고 생각하시는가? 여성의 정절과 전쟁 참여는 무슨 상관이며, 남자를 바꾼 여자는 삶의
혜택을 얻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가? '나꼼수'의 언어표현에서도 보듯, 일부 재기발랄하고 스스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자하는 일부
지식인 남성들의 지네끼리만 재미있는 이상한 표현, 이거 나는 아주 불편하다. (나만 이상한 건가?) 만약 저자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다음부터는
좀더 주의해주시길 바란다. 나는 내가 좋아하여 평생 스토킹하고 싶은 저자분이 허접한 유머, 그것도 여성비하의식이 깔린 발언을 하는 사람이길
원하지 않는다.
이상한 리뷰가 되어버렸다. 정리하자. 이 책은 꽤 괜찮은 편이지만 좀 별난 내가 보기에는 아쉽고 황당한 서술 표현이 있었다. 사소한 팩트
나열이 아니라 전체를 큰 틀에서 보게 만들어 주는 장점을은 확실히 가진 책이다. 하지만, 독자는 전체를 크게 보며 읽게 되더라도 필자는 좀더
디테일에 공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설득력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사소한 문장 표현에서도 나온다. 그러기에 내게 불편한 점은 이 책의 디테일에
있었으며 덕분에 나는 역사 저술가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즉, 강자 - 남자들 사이에서 남자들 세계의 진보를 논하는 것은
쉽다는 것. 하지만 역사상의 모든 시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약자들을 정당하게 대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진보적 역사 저술가의 태도라고 생각한다는
것. 등등. 물론 답 없다. 난 걍 고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