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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1908, <키스> 캔버스에 유채, 빈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다가, 마담 D의 의상 디자인과 문양, 집 벽에
걸린 풍경화를 보고 클림트를 떠올렸다. 주인공 이름이 구스타프인 것도 역시. 자연스레 나는 19세기말 20세기 전반기의 오스트리아, 빈에 빠져
들어갔다. 타는 갈증을 안고 클림트와 그의 시대에 대한 책을 몇 권 찾았는데,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 책의 장점은, 클림트를 에로티시즘 화가로 단적으로 정의내리지 않는 점이다. 아, 나는 이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위의 키스를 보라. 뭐가 야한가? 숭고하기만 하다. 연인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둘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벼랑은 꽃밭으로 변한다. 사랑이 세상을 바꿔 놓는 위대한 순간이다. <다나에>도 얼마나 숭고한가?
그의 그림에는 에로틱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이다. 그가 남긴 235점의 유화 작품 중 60여점은
에로틱하기는커녕 마치 명상이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적의 조화를 표현한 풍경화였고 나머지 대부분도 조용한 분위기의 초상화거나 상징적인
우의화였다. 그 우의화 중에는 에로틱한 그림도 있었지만 몇 점뿐이었고 그 마저도 숭고한 느낌을 준다.
- 본문 4~5 쪽에서 인용
클림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시대를 봐야 한다. 이 점에서 노동법을 전공한 저자의 시각이 빛난다. 전에 이 저자분의 다른 책 리뷰에도
썼지만, 난 이런 스페셜리스트의 시각을 갖은 저자분이 자신의 전공분야 아닌 곳에서 자신의 시각을 적용해서 쓴 책이 참 좋다. 꼭 박사 학위 가진
그 분야 강단 교수들만이 그 분야 책을 쓰란 법은 없다. 오히려 난 클림트를 미술 전공자들이 쓴 글을 보면 더 어렵고 이해가 안 간다. (솔직히
에로티시즘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 즉 그의 여성 모델과의 관계나 에밀리와의 관계 그에대한 얼치기 프로이트식 분석 등등,,,, 난 클림트의
그림보다 그에대해 에로틱한 글 쓴 저자들이 변태같다. )
그가 황실이나 국가기관이나 부자나 대중을 위해 그림을 그렸기에 그들이 좋아하는 봉건적 장식과 색채를 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30세도 안 되어 그런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전통에서 분리되어 분리파전이라는 새로운 전시회를 열면서 그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관람제도를 실시했다. 당시 에로틱하게 보인 그의 그림보다도 그 무료관람이 사실 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보수층은 그 점에 더욱 분노했다.
- 본문 34 쪽에서 인용
당시 프로이트도, 에곤 실레도,,, 그들이 비난받은 것은 그들 학설이나 그림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제국 말기의 억압성과 그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귀족 관료 부루주아들의 이중성때문이었다.
19세기 말 빈은 20세기를 빛낸 천재들이 산 곳이었다. 그러나 그 천재들은 대부분 살아생전 빈에서 아예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중적인 판단에
의해 고통을 받아다. 프로이트도, 말러도, 클림트도 그러했다.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전통적인 의사, 음악가, 화가들이 그곳을 지배했고 대중들도
그들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지배계급과 대중에 도전하는 새로운 견해는 언제나 무시되었다. 그만큼 세기말 빈은 보수적인
도시였다. 클림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릴파르처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훈장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어
이런 체제에서는.
천재에게 십자가를 걸어주지 않지,
아니, 천재를 십자가에 매달지.
- 본문 66쪽에서 인용
클림트의 시대로부터 백여 년이나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까지 그런 과거 서구제국의 시선을 갖고 그를 볼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 이유는 역시 우리에게 심어진 서구위주 제국주의 시선의 영향 때문이다. 지나친 장식과 금박이 주는 거부감. 이 부분에서
저자분이 번역, 소개하신 <오리엔탈리즘>의 일관된 비판 정신이 보인다.
빙켈만 이래의 신고전주의가 그리스적인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주류를 형성하는 가운데 서양에서 장식미술은 무시되었다. 서양에서는 19세기에
와서 디자인이 미술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그것은 그리스적인 순수미술과는 다른 응용미술, 즉 순수미술의 미를 응용한 것이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 것에 불과했다.
여기서 특히 우리는 그 응용미술이라고 하는 것이 특히 비서양사회의 민족미술이나 종교미술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하
아라베스크가 그렇다. 아라비아 사람들의 공예품이나 건축물 장식에 쓰인 무늬로 만든 타일로 뒤덮인 모스크는 서양 기독교와 대립하는 이교도의
상징으로 경멸되었다.
- 본문 52쪽에서 인용
이 책은 클림트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기 보다는 그의 시대를, 그의 시대과 비슷한 시대에 살며 그를 비난하던 자들의 시선과 같은 시선을 갖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분의 다른 책처럼, 좀 거칠기는 하지만, 다른 클림트 관련 책들과 확연히 차별되는 장점이 있기에,
클림트와 그의 시대에 관심있는 친구분께는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클림트와 그의 시대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다면 <제국의 붉은
노을(구판은 세기말 비엔나)>, <제국의 종말>, <어제의 세계>를 함께 읽기를 권한다.
여담이지만, 난 내 선배님 선생님 또래의 중년 남성분들, 그러니까 70, 80년대 학번 남성분들 보면 이따금 안쓰럽다. 근대화 산업 전사로
청춘을 희생당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의 대의에 의해 개인적 취향과 시각을 억압하도록 강요당한 점에서 불쌍한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초반부에서도 클림트를 싫어하다가 중년이 되어 좋아하게 된 저자분의 개인적 사연이 나오는데, 나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