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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여신들 - 역사를 바꾼 10명의 위인들
정명섭.박지선 지음 / 책우리 / 2010년 8월
평점 :
내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은, 핏빛 표지에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작게 넣고 위아래로 '혁명의 여신들'이란 제목을 흰색 국문, 영문으로 각각 배치한 강렬함에 끌려서는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이사도라 던컨, 헬렌 켈러, 코코 샤넬, 애거서 크리스티, 아멜리아 에어하트, 레니 리펜슈탈, 프리다 칼로, 조피 숄, 제인 구달이란 열 명의 라인업에 눈이 번쩍 띄인 것도 아니었다.
이들의 삶과 업적은 이미 여러 책과 영화로 소개되지 않은가. 내가 모르는 이는 없었기에, 심지어 식상한 느낌까지 받으며 아무 쪽이나 펴들고 한 부분 읽었는데, 아, 이 문체, 전에 읽은 적이 있다. 표지의 저자를 확인해보니 <연인, the lovers>의 저자들이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기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스파르타쿠스단'을 리드한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에다가 키도 작고 절름발이여서 사회주의 운동권 내에서도 몇 중의 차별을 받는다. 살해당하는 순간까지 세상의 모순을 똑바로 바라보고 움직인 사람.
현대 무용의 창시자 이사도라 던컨.
장애 극복을 통한 인간승리자로만 묻혀버린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의복의 혁명을 통해 여성 해방을 이룬 코코 샤넬.
최초의 여성 추리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비행한 아멜리아 에어하트.
아직 업적의 명암이 엇갈리는 레니 리펜슈탈. 나치정부당시에는 나치당 내부의 비난에, 나치 이후에는 히틀러의 정부라는 비난에 시달린 영화감독. 그만큼 그녀의 능력이 탁월했기에.
그림에서 비명이 들리는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다리를 절며 세상에 맞서 사랑과 혁명에 뛰어든 여인.
독일 백장미단의 조피 숄. 평범한 여대생이었지만 히틀러와 나치에 맞서 진실을 알리다 총살당한다.
학위도 없이 평생을 바쳐 동물과 교감하고자 했던 제인 구달, 그녀 덕분에 많은 여성과학자들이 양성될 수 있었다.
후훗, 이번 책도 역시 저자의 필력과 참신한 구성방식이 돋보인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적절히 사용하며 시점을 바꾸어 서술한 점(구달의 경우 심지어 침팬지의 시점에서 서술하기도 한다), 칼로의 그림 제목으로 삶을 재구성한 점, 애거서 크리스티의 경우 실종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문 형식으로 구성한 점 등등,,,
워낙 유명한 그녀들이고, 대략의 연대기적 삶은 이미 고정되었기에 이 경우에는 우리에게 익숙하며, 다 알려진 인물들의 삶의 진행과 결과 자체 나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삶의 과정에서 그녀들이 느꼈을 감정과 행위의 동기를 어떻게 독자의 공감을 얻으며 전개하는가,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말하자면 평전인 셈이기에 저자가 관여할 수 없는 큰 얼개 내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당시 그녀들의 삶을 재현해주느냐, 해석해주느냐,란 문제 말이다. 이런 문제를 능력있는 대중역사저술가들은 그들의 펜으로 쉽게 해결한다. 책에 등장한 역사 인물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직접 말을 걸어 독자에게 인간존재와 사회를 성찰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 이 저자들은 이미 이 능력의 기본을 닦으신 것 같다.
아쉬운 점은 몰입할만하면 끝나는 점. 물론 이는 저자들의 능력부족이 아니라 책의 기획 상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나는 이제 이 저자들이 이런 열전식의 구성이 아니라 오롯한 한 권의 책으로 능력을 보여주시길 원한다. 앞으로 발간될 책도 관심갖고 읽어 보리라. 그러니 부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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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혁명과 직접적 관련이 없기에 왜 이 책의 제목이 <혁명의 여신들>인지 의아하실 분들을 위해 적는다.
어린 시절 읽었던 헬렌 켈러의 위인전이 왜 20살이 되기 전에 끝맺었는지 어른이 된 후에 알게 되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좀 더 과격하게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 서문 8쪽에서 인용
바로, 위의 인용부분이 왜 이 책의 제목이 <혁명의 여신들>임을 밝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