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다 읽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작가시기에
더이상 요네하라 마리 작가의 책은
읽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요네하라 마리의 책이 더 나와 있었다. 마리가 쓴 책이 아니라
마리에 대해 여동생이 쓴 책이다. 이노우에 유리. 즉 결혼전 요네하라 유리. 일본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른다는 것을 잊고 잠시 누구지?라고
생각했다.
책은 음식에 얽힌 추억 위주로 고인인
언니 마리를 추억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모인 원고로 구성되었다. 마리의 <음식견문록>을 읽은 독자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할바'라든가
'여행자의 아침 식사' 통조림 등등 군침 도는 이야기가 자매의 추억과 얽혀
쏟아진다.
지역
유지인 친가 요네하라 가문 이야기라든가 그 시절
소련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어린 나이에 보고 겪은 사연 등등, 요네하라 마리가 쓴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색다른 결로 다시 등장한다. 당연히 마리
책의 오류(?)를 잡아내기도 한다. <프라하의 소녀 시대> 에서 중소대립때문에 학교에서도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유리가 울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유리 본인은 자신이 운 것은 중소 갈등이 아니라
남자아이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
밝힌다.
자매의
아버지 요네하라 씨는 아시다시피 일본 공산당의 거물이고 어머니도 만만찮은 인물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혼자 노년의 나이에 프랑스에 유학가서
2년을 공부하고 돌아오신 사연을 읽으니 자매의 지적 능력과 당찬 성격, 글솜씨는 유전인가 싶다. 아래 대목, 유머 감각마저 자매는 닮았다.
우리 둘 다 정리정돈 잘하는
아버지도,
공붓벌레
어머니도 닮지 않았다.
원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니까.
- 99쪽에서
인용
가사노동 돌봄 노동에 서툰 언니 마리가 동물을 키우고 나서 변했다는 사연을 저자는 또 이렇게 빵 터지게
쓴다. 아래, 마리의 책 제목인<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를 이용한
유머다.
이로 인해 어머니도 나보다 훨씬 열심히 곰상스럽게
돌봤다.
인간
수컷이라면 이 정도로 마리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 164쪽에서
인용
언니 마리에 대한 인물평도 곳곳에
있다. 요네하라 마리의 팬이라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제 틀 안에서는 개성적이요
재미있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 틀을 깨고 나와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리에게는 틀이란
게 없었다.
그 요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언니는 타고난
에너지로 정신을 자유럽게 활짝 열어 젖히고 살았다.
그 결과로 약간의
곤란함도 즐거움도 함께 받아 들였다.
덕분에 주위에도
불똥이 튀는 일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리워진다.
-
208쪽에서 인용
아래에 밝힌 요네하라 마리의 모습은 뜻밖이다.
마리는 미지의
것,
익숙지
않은 것은 못 먹었다.
먹을거리뿐
아니라 미지의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면 지레 겁을 내어 망설였다.
-
87쪽에서 인용
어린 나이에 낯설고 말 안통하는
프라하의 소련 학교에 다니면서 서로를 의지하던 자매는 다른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되기까지 반년 동안 쉬는 시간이 되면 복도로 뛰쳐나와 서로의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는 일본 학교에 적응이 안 되어 자매는 더욱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유리가 집에서 먼 홋카이도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자매는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게 된다.
편지로 시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로 가면서 둘은 점점 멀어진다. 이 과정을 저자는 담담히 묘사한다. 젊은 나이에 작고한
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서.
대단한 다독가인 요네하라 마리가 역사 문화 지식을 경쾌하게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마리 작가가 쓴 책은
아니지만 동생 유리 저자의 책을 통해 요네하라 마리의 개성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동생인 이노우에 유리 역시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다. 언니의 후광과 별개로, 이 저자의 글 자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