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호스
마이클 모퍼고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역사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쓸 때, 의식적으로 서구 백인 기독교도 남성의 입장에서만 보고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거기다 더 나아가 요새는 인간이란 종의 입장에서 역사를 본다는 것에 대해 고민 중이다. 예를 들어 전쟁사를 읽고 쓸 때, 남성 영웅 지배자 입장이 아니라 희생당하는 민중이나 여성의 입장,,, 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나는 그뿐만 아니라 전쟁에 희생된 동물들의 입장도 쓰고 싶다. 특히 전쟁에 끌려간 말들, 적군에게 죽고 아군에게 죽고(식량으로), 전쟁 끝나면 버려지는 말들의 시점에서 말이다. 

 

그렇게 보고 고르다 보니 1차 대전 배경으로 생각나는 작품이 <돌리틀 선생 이야기>와 <워 호스>다. 이하는 줄거리 요약이다. 책 읽으실 분들은 건너뛰시길.

 

아기말 조이는 6개월 때 엄마말에서 떨어져 팔려간다. 13세 소년 앨버트의 친구가 되어 농장 일을 돕는다. 앨버트 나이 15세때 1차 대전이 발발한다. 돈이 궁한 앨버트 아빠가 조이를 판다. 조이는 훈련을 받고 군마가 되어 유럽 대륙 전선에 투입된다. 적군의 기관총 부대는 한 번 전투로 영국 기병대의 1/4을 괴멸시킨다. 이제 말은 기병대보다 기마 보병의 운송 수단 역할에 머무는 시대가 되었다. 니컬슨이 사망하고 어린 워런 기병의 말이 된 조이는 탑손이라는 검정말에 의지한다. 탑손을 탄 스튜어트는 적진 돌파를 시도하다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전쟁 포로가 된다. 탑손과 조이 역시 포로가 되어 독일군 부상병을 호송하는 짐마차를 끌게 된다.  독일군은 프랑스 영토 농장의 에미릴 할아버지에게 말들을 돌봐주라고 맡겼다가 주고 가버린다. 농장 소녀 에밀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이는 행복해하나 다시 독일군에 징발되어 이번에는 대포를 끌게 된다.

 

갑자기 전쟁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선 것만 같았다. 탑손과 나는 전투의 무시무시한 소음과 악취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왔다. 대포를 끌고 진창길을 가기도 했다. 군인들은 우리 몸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하는 곳까지 대포를 끌고가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우리를 재촉하며 채찍질까지 했다. 잔인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무서운 충동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 같았다. 군인들은 다른 사람이나 말들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가질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 118쪽에서 인용

 

포탄 공격을 받은 조이는 철조망 사이 완충 지대를 헤매다 영국군 가축 위생병이된 앨버트와 재회한다. 앨버트는 입대 나이가 되자마자 조이를 찾으려고 자원입대한 것이다.  전쟁이 끝났다. 앨버트는 조이와 농장에 돌아갈 꿈에 부푼다. 그러나 병사들만 귀국선을 타라는 명령이 내린다. 말들은 현지 프랑스 농민들에게 경매로 넘긴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앨버트와 조이를 위해 부대원들은 모금을 한다. 그러나 경매에 이겨 조이를 산 사람은 다른 프랑스 농민이었다. 알고보니 에밀리의 할아버지. 조이와 앨버트의 사연을 들은 에밀리의 할아버지는 조이를 양보한다. 조건은 이미 사망한 에밀리를 기억해 주는 것.

 

"나는 에밀리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네. 몇 년 안 있어 나도 이 세상을 떠날 걸세. 그렇게 되면 에밀리를 기억할 가족이 남아 있지 않아. 에밀리는 비석에만 이름이 남을 거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겠지. 그래서 자네가 고향집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에밀리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에밀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까. 내 부탁 들어주겠나? 그러면 에밀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거라네. 어때, 거래가 성사된 건가?"

- 214쪽에서 인용

 

당연 거래는 성사되고, 앨버트와 조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해피엔딩.  

 

흥미로운 소설이다. 흔히들 대포의 등장으로 중세 기사들의 시대가 저물고 말의 군사적 이용 가치가 떨어진다고들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대포를 끌어야 하니까 말이 여전히 참전하게 된다. 산업 혁명 이후 기차 덕분에 보급 문제가 해결되었고 트럭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탄약이나 보급품 운반 용도로 말이 전장을 누비게 된다. 그리고 비참하게 전사하게 된다. 이런 배경 상황이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다 읽고 나니,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독일군 늙은 포병 프리드리히가 조이와 탑손에게 전쟁에 대해 말하는 아래 대사가 인상깊다.

 

“너희는 친구니까 말해 줄게. 나는 연대에서 유일하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야. 미친 건 다른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모르고 있지. 전쟁에 참가해 싸우면서도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몰라. 그게 미친 거 아니니?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를 수 있지? 상대편이 다른 색깔의 군복을 입고,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그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하지. 너희 둘은 내가 이 어리석은 전쟁에서 만난 생명체 가운데 유일하게 이성적인 동물이야. 너희가 이곳에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도 나처럼 끌러왔기 때문이겠지. 용기만 있다면 이 길로 도망가 다시는 안 돌아올 텐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군인들이 나를 잡아 총으로 쏴 죽일 테고, 아내와 아이들과 부모님은 평생 수치스럽게 살아야 할 거야. 난 미치광이 노병 프리드리히로 행세하며 어떻게든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거야. 그래야 다시 슐라이덴으로 돌아가 이 혼란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존경했던 정육점 주인 프리드리히로 돌아갈 수 있어.”

- 130 ~ 131쪽에서 인용

 

전쟁 고발 용도로도, 소년과 동물의 우정을 그린 순수한 용도로도 감동적인 소설이다. 그런데 난 조이가 인간의 말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다 알아듣는데 탑손같은 동료 말과 대화하지는 못하는 점이 이상해서 감동이 덜 온다. 이제 제대로 나이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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