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하다, <베니스의
상인>이 마음에 걸린다. 이럴 때는 가장 충실한 완역본으로 꼼꼼히 다시 읽어봐야 한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는 대개 찰스 램과 메리 램이
축약해서 이야기체로 풀어쓴 <셰익스 피어 이야기>의 내용이므로. 그래서 고른 책. 이 책은 셰익스피어 전공 교수 번역인데다가 극시
형식인 원전에 충실하게도 삼사조 사사조 운율을 살려 ‘운문 번역’이란 위엄을 과시하기에 더욱 좋다.
저자분의 친절한 서문 설명을
읽어보니 셰익스피어 희곡들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이며, 그 비율이 80퍼센트 이상인 희곡도 전체 38편 가운데 22편이나 된다고. 호,
이건 판소리도 창(노래)와 아니리(사설)로 구성된 것과 비슷한데? 그러면서 학자답게 작품별로 운문 산문 비율 분석해 놓은 자료도 보여주신다.
흠, 비극일수록 운문의 비율이 높은 것 같은데? 이거 흥미롭다.
내용으로 가 보면, 이
책은 셰익스피어 전집 구성 중 첫 책으로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좋으실 대로>,
<십이야>, <잣대엔 잣대로> 등 희극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이 중, 나는 이 글에 <베니스의 상인>만 쓴다.
<베니스의 상인>,
이 작품이 나는 매우 알쏭달쏭하다. <베니스의 상인>에는 네 가지 이야기가 얽혀있다. 포셔가 판사로 변장하여 남편 친구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해주고 샤일록을 망하게 하는 이야기, 바사니오가 포셔에게 구혼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상자를 고르는 이야기, 포셔가 결혼반지로 남편을
시험하는 이야기, 샤일록의 딸인 유대인 처녀와 기독교 청년의 사랑의 도피 이야기, 이렇게 넷이다. 물론 가장 유명한 것은 포셔의 재판
이야기이다. 아동용 축약본은 그 내용 위주이다. 나도 어릴 때는 심장 주위 살을 도려내는,,,,으으으,,, 샤일록 나쁜 놈, 이러면서 읽었다.
커서 다시 읽어보니 유대인 혐오가 보였다. 역사책 좀 읽으며 다시 보니 당대 배경에 맞지 않은 부분이 보였다. 읽을 때마다 다르다.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상자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지금 완역본 읽으며 다시 보니 새로운 것이 또 보인다. 과연 이 희곡의 제목인 <베니스의
상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게 또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내
생각이다. 베니스의 상인, 이라하면 대개 가장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악인 샤일록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는 '베니스의 상인'이 아니다.
안토니오도 아니다. 종교보다 실리를 중시하여 동지중해의 이슬람 지역과도 무역하던 베니스 상인들이다. 샤일록처럼 엄청난 돈을 대출해주면서 '심장
근처 살 1파운드'라는 터무니없는 조건을 걸 리도 없고, 안토니오처럼 전 재산을 한 항로의 상선단에 모조리 투자할 리도 없다. 그렇다면 베니스의
상인은 누구인가? 누가 이 거래로 가장 이득을 봤는가?
바로 포셔다. 남편과 친구의
지나친 우애 관계가 결혼 후까지 이어져서 결혼 생활을 방해하지 않도록 남편과 친구에게 은(恩, 약간 일본식 관념이지만,,, )를 입힌다. 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포셔는 증거물을 남긴다. 딴소리 없도록 반지 소동까지 일으킨다. 가장 베니스의 상인다운 거래를 하고 실리를 챙긴다.
이런 포셔가 바로 '베니스의 상인'아니겠는가? 그런데 <햄릿><오셀로><리어왕><맥베스>처럼 왜
주인공 이름이 작품 제목으로 쓰지 않았을까? 이 또한 겉과 속이 다른 상자같다.
아, 어렵다. 일단 여기까지.
또 묵혀 두었다가 나중에 파 보리라.
여튼, 이 책은 참 좋다. 어린이용 축약 이야기책으로만 셰익스피어를 읽어본 이들에게
강추한다. 산문으로 풀어쓴 <베니스의 상인>에는 샤일록도 그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원전 희곡에는 그냥 '유대인 : 블라블라~ '이렇게
처리되어 있다. 이 부분, 꽤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의 탐욕스럽고 잔인한 성정을 유대인 전체의 민족성으로 보았던 것일까? 또한
완역본이므로 축약되면서 빠진 부분이 많이 보여서 좋았다. 특히 샤일록의 목소리를 살려주는 아래와 같은 부분.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
없어요?
유대인은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으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치유되며,
여름과 겨울에도
같이 덥고 같이 춥지 않느냐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피 안나요?
간지럼을 태우면
안 웃어요?
독약을 먹이면
안 죽어요?
- 본문 179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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