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예술기행>이란 제목이지만 라스코 동굴 벽화 위주이다. 저자는 연대 측정 전문가이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 연대도 측정한
경험이 있다. 저자는 연대 측정하러 다니며 본 구석기 동굴 벽화에 매료되어 라스코 동굴 벽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유럽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사실적인 소 그림을 그린 목적에 대해서 저자는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이라는 설을 제쳐둔다. 동굴벽화를 그린 시기의 주된 식량은 순록이었으니 성공적 수렵 기원이 벽화 제작의 목적이라면 순록 형상이 가장 많아야 하는데 순록은 전체
벽화에 등장하는
동물 중 겨우 0.2 퍼센트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구석기 시대
예술이 보인 시기인 3만 5000년 전부터 1만 2000년
전까지 2만년 동안 동굴 벽화의 주제는
어느 시대든 말과 소였다. 이로보아 그림의 주제는 수렵의 주요 대상물이
말이나 소였던 시절에 정해져서 내려오는 방식으로 그렸을 것이며 그렇다면
동굴
벽화는 선사 시대 사람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전설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편,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사실적 동물 그림도 많지만 반인반수의 기괴한 형상들도 많다. 저자는 크로마뇽인들이 왜 이런 기괴한 형상을 그렸는지를 추적한다.
이 과정을 따라가노라면 현재까지 등장한 구석기 동굴 벽화와 크로마뇽인에 대한 다양한 학설과 방법을 저절로 배울 수 있다. 이 부분이
독자로서 매우 보람차다. 기존 이론을 다 섭렵하여 독자에게 소개한 후, 저자는 원시 구석기인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의 부족들을 찾아가 그들의
종교 의식과 암각화를 연구한 인류학자들에 관심을 둔다. 칼라하리 사막의 북방 산족의 생활과 예술을 보고 드디어 결론을 내린다. 크로마뇽인들의
동굴 벽화에 그려진 반인반수의 형상은 사먼이 환각제를 먹고 트랜스 상태에서 본 것을 깨어나서 그린 것이라고. 그래도 이하의 문단을 덧붙여 안전하게 책을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유럽의 구석기 시대 예술은
모두 ‘샤먼이
본 환각’이라고
해석해도 좋을까.
그렇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5장에서
논한 것처럼,
동굴벽화를
그린 크로마뇽인은 놀랄 정도로 면밀한 자연 관찰자였다.
이
동물 그림은 자연계에서 일어난 엄연한 사실이지 트랜스 상태에서 본 환각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또 라스코 동굴이나 니오 동굴에서 보이는 동물의 분명한
표정도,
트랜스
상태에서 본 환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크로마뇽인의
예술에는 샤머니즘 이상의 어떤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벽화의
기원이 샤머니즘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도,
크로마뇽인의
동굴벽화에서는 그것을 넘어서 ‘진정한
예술의 발아’가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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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결론
부분.
프랑스 및 유럽의 유적 유물과 관련 연구 위주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선사 예술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다. 라스코 동굴 벽화와 크로마뇽인의
예술과 사회에 대해 나온 대중적인 단행본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책들중에 가장 내용이 많고 알찬 것 같다. 도판도 충실하다. 다른 책의 참고
문헌으로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보아 저자도 이 책도 믿을만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