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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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공력이 듬뿍 담긴 책이다. 책 제목은 '여행'을 내걸었지만 유럽 도자기 역사를 깊이 들어가는 인문 서적이다. 내가 리뷰를 쓰는  2017년 1월 현재, 저자는 도자기 여행 시리즈를 4권 냈다. 동유럽, 북유럽, 서유럽, 일본편이다. 이 책은 4권 시리즈의 첫 책인데, 대장정을 향해 가는 각오와 도자기를 향한 열정이 절절이 느껴진다.  내용도 풍부한데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각 꼭지 마다 여행 도움 정보가 실려 있어서 현지에 가볼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진도 풍부하고 책 뒤에 유럽 도자기 연표도 있다.

 

저자는 독일 동부,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모두 5개국 15개 도시를 여행하며 동유럽 도자기 역사를 추적한다. 여정의 시작은 독일 작센주의 마이슨. 마이슨은 도자기의 성지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에서만 생산 가능했던 경질 도자기를 유럽 국가 가운데 최초로 생산에 성공, 유럽 도자기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수입한 자기에 매료된 작센의 아우구트스 1세는 도자기 개발팀을 만든다. 드디어 1708년, 연금술사인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가 도자기 생산 기술을 알아낸다. 당시 도자기는 화이트 골드로 불릴 정도로 값진 것이었으니, 연금술사가 만들어 냈다는 것도 재미있다. 도시 이름인 마이슨은 곧 청화 백자로 유명한 브랜드가 된다. 대표적 청화백자로 양파 문양이란 뜻의 '쯔비벨무스터'는 동양에서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석류를 그린 것이었다. 마이슨은 도자 인형인 '피겨린'으로도 유명하다. 마이슨의 켄들러가 피겨린의 창시자였다. 동양에서 무덤 부장용으로 사용되던 토용이 전한 말기부터 도용으로 바뀌고, 당삼채로 이어진 바 있는데, 마이슨 사에서 도용 아니 피겨린은 유럽 왕실의 꽃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역사 맥락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당시 유럽 사교계에서는 만찬 때 설탕으로 만든 인형이나 장식품으로 식탁을 장식하곤 했다. 설탕 장식품은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켄들러 피겨린의 등장은 설탕 장식품보다 값은 비싸지만 모든 요리사의 수고를 덜어주는 단비와도 같았다.

- 69쪽에서 인용

 

이어서 저자는 드레스든 츠빙거 궁전의 도자기 컬렉션을 취재한다. 바이에른 주의 도자기 가도를 따라 로젠탈, 빌레로이 앤 보흐 등 쟁쟁한 도자기 브랜드의 역사를 전해준다. 맥주만 유명한 줄 알았던 뮌헨의 님펜부르크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러고보니, 라거맥주 이전의 맥주잔은 유리잔이 아니라 도자기 잔이었군! - 이건 책에 없는 내 말 ^^) 이어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향한다. 우리 어머니, 이모 세대의 혼수품이었던 금박 두른 장미 도자기 세트의 원조였던 '비엔나의 장미' '로열 비엔나' 도자기를 만든 아우가르텐으로. (역사적 내력을 읽고 사진을 보다 보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주문한 '푸른 장미' 도자기가 갖고 싶어진다. ) 아우가르텐 사는 코발트 블루를 발견하여 유럽 도자기 역사에 기술혁명을 일으킨 회사로도 유명하다. 저자는 도자기 회사의 내력과 당시 유럽 역사를 함께 서술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비엔나가 유럽 외교의 중심이 되면서 격식을 갖춘 외교 만찬이 자주 열리고, 이에 아우가르텐 도자기가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는. 그래서 아우가르텐 박물관의 도자기 컬렉션에는 그릇마다 당시 유럽을 지배한 군주들의 외교 네트워크 스토리가 있다고. (아아, 가서 보고 싶고 사고 싶다. )

 

이에따라 비엔나에서는 세력 균형을 추구하는 강대국 외교관들의 다자간 고위 만찬이 끊이지 않고 열렸으며, 그들의 식탁에 오를 고급 도자기가 불티나게 팔렸다. 고급 도자기는 외교에 필요한 선물로도 항상 최상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열 비엔나 도자기가 다시 한번 부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214쪽에서 인용

 

저자는 도자기만 보고 쓰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라 불리는 훈데르트바서가 건축에 사용한 타일도 거론한다. 이어 체코로 향한다. 1790년대 보헤미아의 카를스바트 인근에서 엄청난 매장량을 가진 고령토가 발견되어 마이슨보다 80년 정도 늦었지만 체코에도 도자기 산업이 시작된다. 쯔비벨무스터도 만든다. 이어서 폴란드. 폴란드의 도자기 공업도 유서깊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 배경이 크라코프의 도자기 공장이었다. 폴란드 도자기의 색감과 문양은 경쾌해서 미국의 대중 식기로 대량 수출된다. 그 유명한 '폴카 도트' 문양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헝가리로 향한다. 마차시 성당 등 부다페스트 유명 건축물 지붕들에서 아르누보 타일을 보고, 헝가리의 유명 도자 브랜드인 헤렌드와 졸너이를 소개한다.

 

책은, 흔한 여행견문서적이 아니다. 참 쓰기도 힘들고 책으로 만들기도 힘든 기획이었을 것이다. 이런 책을 집에서 편히 앉아 읽을 수 있다니, 저자와 출판사 편집팀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첫 걸음이라서 그런지, 이 책에는 아쉬운 점이 좀 있다. 도자기 관련 내용과 기행 부분, 역사 부분, 저자의 감상 부분이 좀 겉도는 느낌이다. 대중 서적이지만 배경 지식 설명이 많지 않아서 유럽사에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책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종이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이 저자가 직접 답사해서 찍은 풍부한 사진인데, 컬러가 뿌옇고 흐리게 인쇄되어 있다. 편집 쪽으로 봐도 산만하다. 책  상태로만 평가한다면, 시리즈 4권 중에서 이 동유럽편이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 나는 이 저자분이 쓴 도자기 여행 시리즈 4권을 한꺼번에 다 읽고 이 리뷰를 쓰고 있으며, 이 분의 작업을 존경하는 입장임을 밝힌다. 괜히 흠 잡는 것 아님) 내가 읽은 책은 2쇄인데도 종종 오타가 있다. 이 점도 아쉽다.

 

*** 역사 오류

 

298쪽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상속녀인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부분이 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아버지 카를6세의 유일한 딸이 아니었다. 요절한 남동생 말고도 여동생이 둘 있었다. 마리아 아말리아와 마리아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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