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자의 에세이는 다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와 닿는다. 40대의 일상 속 생각들을 담아서 그런 것 같다.
이 저자의 매력을 생각해보면, 정확한 상황 묘사력이다. 친구 등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 묘사뿐만 아니라 책이나 음악 감상한 소감 묘사라든가
자기 마음의 묘사가 뛰어나다. 솔직하고 독특하다. 미술 전공자라서 그런 것일까? 아래, 저자가 클래식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쓴 대목을
인용해본다.
어떤 클래식 음악을 듣든지 내 눈앞에는 언제나 남자와 여자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정경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간다. 브람스를 들으면 어딘가 날씨
좋은 외국의 꽃이 핀 들판에서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가 해롱거리며 달리는 장면이 떠올랐고, <운명>의 도입부를 들으면 거구의 남자가
여자를 때려 눕히는가 싶었다.
- 20쪽에서
성경을 읽고 쓴 아래 부분도 멋지다. 눈 앞에 스크린이 촤르륵 펼쳐지며 한 외로운 남자의 등이, 그의 살내음이 느껴진다.
그리스도는 웅크리고 땅바닥에 글씨를 쓴다. 성서에는 그것밖에 쓰여 있지 않다. 그러나 나에게는 먼지 이는 하얀 땅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고독한 남자의 등이 보이고, 샌들을 신은 발 위에 덮인 먼지가 보인다. 그 엎에 아름다운 창부가 가만히 서 있다. "돌아가라."라고 그리스도는
말한다.
나는 열아홉 때 읽은 성서의 단지 그 부분 때문에 그리스도를 친근한 남자처럼 느끼게 되었다. 친근한 남자처럼 느끼게 된 것 떄문에
벌받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지만, 그런 까닭에 성서는 나에게 언제나 아름다운 문학으로 남았다.
- 284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7장 '독서는 나태한 쾌락이다' 이다. 동화나 명작을 읽은 자신의 감상을 솔직히 적어 놓은 부분이다. 어린 아들
겐에게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해주는 부분에서는 진지하게 저자의 아들인 히로시 겐 씨를 만나고 싶어졌다. '백조가 왜 오리보다 좋은 건데?
그러면 오리한테 미안하잖아, 오리는 오리로 훌륭하게 살아가면 되잖아!'라며 열등감에 찌든 엄마에게 깨우침을 주는 아들이라니. 멋지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니. 책에는 이렇게 독특한 시각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고,
나는 영화를 해피엔딩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빈자와 부자, 추녀와 미녀, 행복과 불행, 리얼한 것과 거짓된
것, 어떤 생활이 계속되든 끝나든,, 사람의 일생이란 그 안에 그 모든 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갖고 있으며, 진흙투성이 거적이든 얼룩 하나 없는
비단옷에 싸여 있든, 사는 것은 아름답다고, 핏덩어리를 토하며 죽는 몰리에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엄숙하게 느꼈다.
- 139쪽
몰리에르에 대한 영화를 보고 위와 같이 말하는 지극히 착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제목에 매우 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제목인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나는 세상이 규정하는 대로 열심히
하지 않으련다"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게 세상의 방식으로는 열심히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는 열심히 하며 살면 얼마나 외로울까. 순간순간
밀려드는 외로움을 저자는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부부는 녹아서 들러붙은 엿을 보고 같이 웃었다. 나는 가슴으로 따뜻한 바다가 흘러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엿이 녹은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행복.
- 352쪽에서
나는 기껏 녹아붙은 엿을 보고 웃는 커플을 보며 따뜻한 밀물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건 자신을 고집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평생 내 것이 아닌 따뜻함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경쾌발랄한 문장 사이사이 쓸쓸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말이 당당하게 쓰인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냐고? 그런 질문은 넌센스다. (중략) 나는 나인 채로 할머니가 되는 거다.
- 354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