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기행같은 제목이지만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각 음식의 역사와 지역 특색, 음식점 소개와 음식 관련 문화 설명이 잘 어우러져 있다.
게다가 직접 발로 혀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거의 주영하 저자급이다. 저자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나올 책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무엇보다 내게 흥미로운 점은, 음식을 통해 일본의 근대 형성과정을 추적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돈가스의 탄생>이나
<커리의 지구사>, <에도의 패스트푸드> 등과 겹치는 내용이지만 음식 기행 형식이기에 보다 대중적이고 쉽게 읽힌다. 그리고
가게 경영 측면이나 지역 경제 측면에서 메뉴를 선택하고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붙이는 과정을 서술하는 내용 등, 음식의 기원이나 문화를 다루고 있는
다른 책과 차별화되는 내용이 많다.
일본의 음식문화나 근대화 과정을 마냥 예찬하는 내용만도 아니다. 저자는 가고시마, 즉 과거 사쓰마 번이 아마미제도, 류큐 등을 식민지배한
점 등을 밝히는 등, 음식 역사에서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를 언급해 준다. 음, 한마디로 공부를 많이 하신 티가 나서 읽기 좋았다. 아래 인용
부분처럼 넓은 시야로 음식 문화를 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상에서 클릭 몇 번으로 뚝닥 급조해내는 음식 칼럼과 다른 책이다.
돼지국밥, 고기국수, 돈코쓰라멘, 오키나와소바는 돼지를 활용했다는 공통점 외에도 국토의 남단이며 해안 지방이라는 지리적 환경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해안과 제주도, 일본의 오키나와와 규슈는 오래전부터 뱃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음식의 역사를 교류의 역사로 본다면
이는 만만치 않은 단서들이다.
- 54쪽에서 인용
옥의 티는, 광대한 범위의 역사와 문화를 음식과 함께 펼쳐놓다보니, 잘못된 역사 지식이 종종 보이는 점. 17쪽에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무쓰히토 왕이 즉위 2년에 메이지 왕으로 이름을 바꾼다는 부분은 좀 심했다. 이름은 무쓰히토, 연호가 메이지. 그래서 메이지 시대다.
(무쓰히토는 메이지 덴노, 요시히토는 다이쇼 덴노, 히로히토는 쇼와 덴노, 현재 아키히토는 헤이세이 덴노) 그리고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 음식이
처음 도입된 것만은 아니다. 이전에 이미 카스테라나 덴뿌라도 있었다. (이 부분은 명확히 오류는 아니고, 독자가 좀 오해할 여지가 있는 정도로
서술되어 있는 정도. )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음식만이 아니다. 돈카쓰, 카레, 돈코쓰라멘, 단탄멘, 교자, 잔폰, 오코노미야키, 구시아게, 스시, 오니기리,
우동, 소바, 오뎅 같은 음식 이야기도 있지만 가쿠우치, 가라토 시장, 야타이같은 공간에 대한 서술도 있고 에키벤이나 료칸 같은 일본만의
음식문화 이야기도 있다. 소바가도나 프로듀싱 계열점 등 외식산업 관련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규슈 여행이나 식당 창업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렇다. 도서관 노트북실 제 96석에서 작업하고 있다가 갑자기 <료마가 간다>가 생각났다. 이어서
당연히 메이지 유신이 떠올랐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은 음식유신'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나니, 마구 허기가 지는게 아닌가. 배가 고픈게 아니라
돈까스, 카레, 고로케, 카스테라의 역사에 대한 글이 고팠다. 그래서 침 흘리며 자료실 올라가 찾아 읽은 책이다. 처음에는 돈까스와 카레 부분만
읽고 반납하려했는데 책이 너무 재미있어 끝까지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아아, 이래서, 자율 학습실에는 감독관이 있어야 한다!)
기대 없이 대출했지만 책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도서관 대출이 아니라 사서 읽고 규슈 여행가방에 넣어가야 할 책이었다. 음식 문화 관련,
좋은 필자의 좋은 책을 많이 내 주시는 따비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