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운명의 캉캉
박정윤 지음 / 푸른역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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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까지는 그래도 우리 사회가 경제 쪽으로든 성평등 쪽으로든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살아갈 사회는 내가 태어나 자란 박정희와 전두환의 시대, 1970~ 80년대보다 좋아지리라고 믿었다. 어른이 된  나는 세상이 더 좋아지는 데에 뭔가 기여할 바가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조금씩 뒷걸음질치던 세상은 다시 박대통령의 시대가 되었고, 여성들의 인권은 100여년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영화<서프러제트>의 주인공인 모드의 시대와 나혜석의 시대로 말이다. 이렇게도 사는 게 피곤하고 절망적일 수 있을까!

 

 

백 년이 지나도 나 여사의 생각을 인정 못하는 것이 이 나라 남자들이에요. ”

- 본문 176쪽에서 인용

 

 

여튼, 이제 다시 나혜석의 삶과 시대를 읽고 고민해볼 시점이다. 그래서 골라 든 소설. 소설은  독자와 동시대 인물인 절은 여성 독고진이 은행에서 뜻밖의 연락을 받으며 시작한다. 화련이라는 인물이 독고완의 직계손에게 전해달라며 60년전 은행에 위탁한 물건을 찾아가라는 연락이었다. 물건은 나혜석의 그림,  나혜석에 대해 독고진이라는 인물이 쓴 소설, 기타 기록들이었다. 이 내용이 겉이야기이고 독고진과 윤초이가 나혜석의 삶을 재구성해가는 내용이 속 이야기이다. 소설은 액자소설식 구성으로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나혜석과 엘리제 양장점이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난 나혜석 인생 최대의 스캔들을 중점적으로 쓸 예정이오. 나혜석, 운명의 캉캉. 캉캉은 불란서어로 스캔들이라 하더군. ”

- 123쪽에서 인용 

 

개화기의 독보적 신여성으로서, 서양화가로서, 작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나혜석의 여러 모습 중, 소설은 그녀를 몰락시킨 스캔들 위주로 나혜석의 삶을 조명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당대 남성들의 모습과 여성에게 혹독했던 시대에 대해 작가는 충실한 묘사를 할 수 밖에 없다.  

 

소설을 거의 안  읽다보니, 이 작품 자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혜석이 활약하던 시대의 문화계 인물들, 주인공이 일본 유학과 유럽 여행시 접하는 문물들, 등등 시대배경 묘사가 치밀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일본 여성운동잡지며 영국 서프러제트 할머니 등등 깨알같은 역사 포인트가 곳곳에 있다. 저자분께서 공부를 많이 하고 성실하게 쓴 티가 나서 읽으면서 매우 재미있었다. 나혜석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본 정보가 있는 사람들도 책을 손에서 놓지못하고 한달음에  읽을만큼 흥미진진하다.

 

뜻밖에, 국문과 학부 출신들도 나혜석이나 김명순, 김일엽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대 아닌 경우는 근대여성문학사 수업이 아예 없는 국문과도 많은가 보다. 여튼 다들 좀 이광수나 김동인 등 그 시절 유명 문인들이며 지식인들이 얼마나 동료 여성들을 이용해먹은 비겁한 자들이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또, 제발 그런 내용을 중고교 국어 문학사 시간에 학교에서 좀 가르쳤으면 좋겠다. 요새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몰라서 죄 짓는 인간들이 '초많다'( '초ㅡ다'는 작중 인물 중 윤초이의 말버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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