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아이>로 유명한 작가 엑토르 말로가 1893년에 손녀를 위해 쓴 소설이다. 원제는 <En
famille>로, '가족과 함께'라는 뜻이다. 해설에 따르면, <집 없는 아이>로 번역된 <Sans
famille>와 운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 알려졌기에 이에 따랐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뻬린느 역시 <집 없는 아이>의 레미 못지않게 의지가 강한 아동이다. 프랑스를 방랑하다 가족을 갖게 된다는 기본
골격도 비슷하다. 심지어 부잣집 혈육임이 밝혀지는 것도. 다른 점은 뻬린느가 겨우 12세에 방적 공장에 취직하여 능력을 펼치고 인정받는 내용이
있는 점. 레미가 탄광촌의 아동 광부로 일하는 대목과 함께, 산업혁명기 아동 노동의 실상에 대해 인용하기 좋은 책이다. 저자는 별 사회고발
정신없이 당시 프랑스 현실과 가난한 아동의 실상을 보여준 것 같은데 그게 결과적으로 당대를 증언하고 고발하는 역할을 하게 된 점도 흥미롭다.
전체적으로는 따뜻하고 낭만적인 부분이 더 많다. 500페이지가 넘지만 한번에 읽힌다.
책 끝으로 가면 진짜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뻬린느는 재벌 방적공장의 손녀로 밝혀진다. 여기서 혼자만 해피하게 엔딩이
되지 않는다. 뻬린느가 건의한대로 탁아소, 병원, 학교, 기숙사 등이 세워져서 마을 전체가 복지 수준이 향상된다. 그러나 한편, 마을이 뵐프람
회장의 회사에 노동자를 낳고 키워 공급하는, 일종의 농노와 농토가 결합된 중세 영지처럼 변해가는 것도 주목해볼만 하다. 아크라이트 방적기를
도입한 공장 마을이나 허쉬 타운 등, 산업혁명 당시에 이런 곳이 실존했기에.
<집 없는 소녀 펠리네>란 제목으로 일본 만화나 축약본 동화로 접한 분들이 많겠지만, 이 완역본으로 다시 읽어보시길 권한다.
발자크나 에밀 졸라와 동시대에 태어나서 작가적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운의 작가라고 하지만, 엑토르 말로의 작품이 앞서 대가들의 작품보다
지겹지도 않고 읽으면서 바로바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