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사망 400주년을 맞이해서 4대 비극을 한번에 읽었다. 4대 비극을 희곡
원작으로 읽기는 처음이지만, 이 작품들에 얽힌 추억들은 방울방울 많기도 하다. 열 살 무렵 계몽사 전집에서 찰스 램의 '어린이를 위한 셰익스피어
이야기'로 처음 접한 이후 만화나 영화나 연극이나 뮤지컬, 오페라 각종 패러디 등등으로 계속 접해왔기 때문이다. <햄릿>의 또다른
버전인 영화 <야연>이나 뮤지컬 <햄릿>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잊고싶은 슬픈 추억도 있다. 어언 이십여년 전, 이제
더이상 고딩이 아니라 지성인인 대학생이라는 착각에, 고3 겨울방학을 맞은 나는 그만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원서 읽기에 도전, 책부터 지르게
된다. 그 중 처음으로 <맥베스>에 도전한 나는,,,, 흑흑,,,, 마녀 등장 장면에서 멘붕이 와서 책을 덮을 운명이었다. 세상에,
무슨 마녀들이 그리 고색창연하게 프랙티컬하지 않은 영어단어로 마녀의 솥에 들어갈 온갖 재료들을 리스트 좔좔 읊어대는지 원. 그중 사전을 찾지
않아도 아는 단어는 toad밖에 없었다. ㅠㅠ
이런 슬픈 추억을 봉인하고, 눈물 닦고, 자, 다시 4대비극 헛소리 리뷰 시작한다.
<맥베스>
역시 제임스
1세 앞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즉위 후 제임스
1세는 셰익스피어 극장을 왕실 극단으로
바꾸어 후원해준다.
이에
셰익스피어는 제임스 왕의 조상 역사를 담은 이 작품을 지어 보답한다.
연대기에 의하면 제임스 왕의
가문인 스튜어트 왕가는 이때 맥베스에게 암살당한 뱅코우의 후손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기본 연대기 내용에 11세기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야심가인
맥베스 장군이 마녀의 예언을 듣고 아내의 사주를 받아 덩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는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더해 희곡<맥베스>를
지어낸 것이다.
왕을 죽이고
스코틀란드의 왕이 된 맥베스는 극심한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몰락한다. 뱅코우의 후손인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1세는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
여왕이 잉글랜드 튜더 왕가의 엘리자베스 1세의 5촌 조카였다. 그래서 후사 없이
사망한 엘리자베스 1세를 이어 잉글랜드 왕위를 차지하였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유아기에 왕위에 오른 이후 여러 번의
암살 음모를 겪었다. 아마 왕위 찬탈자 맥베스의 심신이 파멸하는 과정을 무대에서 지켜보며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지나 않았을까.
한편,
마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레지날드 스콧의 저술에 반박하기 위해 1597년 손수 <악마론(Demonology)>을 짓기도 한 제임스 왕의 취향도
셰익스피어가 작품에 반영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렇듯 당시에는
왕이든 농민이든 모두 마녀의 존재와 마법의 효력을 믿던 시대였다.
유럽에서 마녀
사냥이 절정에 이른 시기는 중세가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16세기 후반이었다.
마녀 사냥은
근대 초,
중세에서 근대
이행기의 사회 혼란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 역시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가 공존하는 어지러운 시대, 셰익스피어 당대의 시공간을 무대에 올렸다고 볼 수 있겠다. 아아, 셰익스피어 비극의 시대배경은 늘 현재였던
것인가!
그런데, 관련 책 읽다보니 종종 보이는 '맥베스가 마녀와 레이디 맥베스 - 여성의 부추김
때문에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견해는 좀 웃기다. 춘추전국시대 각 국가들의 패망 원인에나 이런 논평 나오는줄 알았는데. 역시나 웃김에는
동서고금이 없다.
*** 역시, 안 중요하지만 내겐 재미있는 사항 하나. 역시 스코틀란드 배경 사극답게 성에
'맥'이 들어간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스코틀란드에서 '맥 ~'라는 성은 '~의 자손'이라는 뜻. 맥아더, 맥그리거, 맥도날드 등등. (맥심은
아니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