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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ㅣ 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태원 옮김, 조지 헌터 판본 편집, 스탠리 웰스 책임 편집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4월
평점 :
<리어왕>은 4대 비극 중 유일하게 잉글랜드가
배경이다.
<맥베스>는 제임스 1세 이전까지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였던 스코틀랜드가 배경이니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리어왕>의 시대배경은 기원전 8세기 경이지만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프랑스 왕이나 부르고뉴 공작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이 작품 역시 다른 시대를 불러와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어왕>은
독특하다. 주인공과 나쁜 놈 , 죽을 남자의 파트너 여자 위주로 죽는 다른 극과 달리 작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과 악인들은 물론,
주변 인물들과
선량한 인물까지 모조리 죽여 버린다.
인물은 물론
국가 체제,
한 세계가
파멸하는 광경을 묘사한다. 거의
북구신화에서 묘사하는 세계의 종말 '라그나뢰크' 수준이다. 작가는 왜 이렇게 심하게 관객에게 겁을 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 <리어왕>이 1606년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에 제임스
1세 앞에서 공연하는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리어왕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왕이다.
아첨에 흔들려
왕국을 두 딸에게 나눠주고 진실한 막내딸 코딜리어는 맨몸으로 프랑스 왕에게 시집보낸다.
그런 그릇된 처사에 충언하는 신하도
쫓아낸다.
곧 딸들에게
냉대받은 리어왕은 충격으로 미쳐서 폭풍우 속을 헤맨다.
마찬가지로
자식을 오해하여 파멸하는 또다른 아버지 글로스터는 눈알이 뽑혀 도버 절벽에서 방황한다.
<햄릿>에 햄릿과 포틴브라스, 두 왕자가 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등장하는 반면 <리어왕>에서는 리어와
글로스터, 두 아버지가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왕과 백작이란 신분 차이만 있을뿐. 이렇듯 셰익스피어는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고 판단하지 못한 두 권력가 아버지를 통해 제임스 1세 왕과 그를 추종하는 귀족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분별력 없는
자가 불균등한 권력과 재산 분배를 통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또 계속
유지하려 든다면 어떤 파국이 올 것인지를.
왕이건 귀족이건
그 지위에서 내쫓긴다면 헐벗고 굶주린 거지와 마찬가지로 경멸받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
리어왕>
초연 이후
40년여년이 지나 의회는 제임스
1세의 아들인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을 공화국으로
선포한다.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이 어느 정도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리석은 권력자는 죽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광대 : 현명해지기 전에 늙으면 안
되는 거였어.
- 64쪽.
그외, 착하기만 한 코딜리어보다
거너릴과 리건 캐릭터가 내겐 훨 매력적으로 보인다. 각각 남편이 있는데도 에드먼드를 차지하려 드는 것, 꽤 재미있다. 자매는 레이디 맥베스
만큼이나 욕망에 솔직하다. 4대비극을 읽어보면 착한 여주보다 악녀 조연들의 성격이 더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이유가 뭘까. 걍 내가
사악해서일까? 아뇨, 셰익스피어 오빠, 당신도 사실은 악녀에게 더 매력을 느꼈던 거여요. 사랑하면 더 자세하게 보고 쓸 수 있는 법이니까요.
ㅋㅋ
*** 본 내용과 관련해서 전혀 중요한
발견은 아닌데, 극중'도버 절벽'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리어왕>에서는 중요 인물들이 방황하는 장소이자 코딜리어의
남편인 프랑스 왕의 군대가 상륙하는 곳이 도버절벽이다. 그런데 영국 왕실은 바다 건너 대륙으로 시집간 딸과 딸의 자손이, 혹은 시집온 딸의
자손이 바다를 건너와서 왕위를 차지하여 계속 이어지지 않았던가. 1066년 도버 해협을 건너온 정복왕 윌리엄, 헨리 2세, 메어리 2세와 결혼한
오렌지공 윌리엄, 제임스 1세의 손녀인 어머니 덕분에 즉위하여 하노버 왕조의 시조가 된 조지 1세 등. 다 도버해협을 건너오지는 않았지만 이런
점은 꽤 재미있다. 결국 기원전 8세기 때 이미 코딜리어 공주라는 본보기가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