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석주 옮김, 스탠리 웰스 책임편집, 케네스 뮤어 판본편집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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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나온 이 판본은 현재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을 공연할 때 대본으로 삼는 판본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쓸데없이 책값 올리는 요소는 다 빼버리고 대본답게 가볍고 얇게 만들어서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저렴해서 좋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다. 그런데 오셀로의 독특한 점은 셰익스피어 동시대가 시대 배경이라는 점. 햄릿은 중세 덴마크, 리어왕은 고대 브리튼, 맥베스는 11세기 스코틀랜드인데 반하여 16세기 베네치아와 키프로스 섬이 배경이니까. 어차피 시공간 배경이야 언제어디든, 연극이란 항상 현재 눈앞 시공간에서 공연되는 것, 그렇다면 오셀로는 가장 셰익스피어 당대 영국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지않을까.

 

<오셀로>의 극중 시간 배경은 레판토 해전 직전이다. 오스만 제국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동지중해 지배권에 도전하다 드디어 베네치아의 식민지인 키프로스 섬을 공격, 차지한다. 이에 베네치아는 에스파냐, 로마 교황 등과 기독교 연합 함대 구성을 주도하여 그리스 레판토 항 앞바다에서 오스만 제국 함대와 싸운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1571년의 일이다. 당대의 관객들은 아름다운 백인 아내를 얻은 후 키프로스로 떠나는 무어인 해군제독 오셀로를 무대에서 보고 있지만 이미 레판토 해전의 승패와 이후의 역사까지 알고 있다. 영국은 1588년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를 무찌르고 베네치아와 에스파냐에 이어 새로운 해상강국이 된다. 그런 영국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연극이 오셀로의 질투로 벌어진 가정 비극으로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해군 제독이라는 자가 겨우 질투라는 개인적 감정에 휘말려 국가 안보에 위기를 가져오다니

 

그런데 오셀로를 파멸로 이끄는 이아고는 영국의 라이벌 국가 에스파냐 출신이다. 야곱의 에스파냐 이름인 이아고는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이다. 산티아고라고 불린다. 무어인으로 불리는 오셀로는 이교도가 사는 지역 출신 흑인 용병이다. 데스데모나를 사랑하는 오셀로는 그렇게 능력있고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에게'검은 숫염소'로 모욕당한다. 이는 명백히 16세기 제국주의 영국의 타자에 대한 편견을 반영한 설정이다.  점입가경, 죄 없는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의 의심을 받는 이유에는 가부장제에 기초한 여성 혐오가 있다. 그녀는 아버지 몰래 오셀로와 혼전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속인 여자가 남편은 못 속이겠냐는 의심을 받는다. 물론, 작가 셰익스피어는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의 입을 빌려 "하지만 아내가 잘못을 한다면, 전 그게 남편 잘못이라고 생각해요.(191쪽)"같은 훌륭한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데스데모나에게는 끝까지 제대로 항변의 대사가 주어지지 않는다. 설사 간통을 했더라도 이혼하면 될 것을 오셀로는 굳이 데스데모나를 죽이려 한다. 왜? 당시 남편에게는 부정한 아내를 죽일 권리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배신감때문만은 아니다. "그래도 그녀는 죽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더 많은 남자들을 배신할 테니까.(106쪽)'라고 미래의 남편에 대한 부정까지 미리 예상해서 죽이는 거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당대의 대중 오락인 연극 대본이기에 당연히 당대 대중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기에 나는 <오셀로>에서 제국주의 가부장 국가였던 16세기 영국의 모습을 본다. 기독교 신과 국왕, 아버지와 남편이 하나였던. 그놈이 그놈이었던.

 

이 불행한 사건에 대해 보고하실 때

저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죄를 경감하지도 말고, 악의로 헐뜯지도 많이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말아 주십시오.

다만, 지혜롭게 사랑하지는 못했지만,

너무나도 많이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말해 주십시오.

- 230쪽

 

위는 오셀로가 자살하기 전에 치는 마지막 대사다. 데스데모나의 무죄를 알고 자살하려는 마당에 끝까지 헛소리다. 대개 이런 위치에 있는 대사에는 전체 주제가 집약된 법인데, 이게 뭘까. 죽는 마당에 아내에 대한 사죄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만 걱정될까? 역시 원전을 읽는 건 즐겁다. 헐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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