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그리스 신화
사에구사 가즈코 지음, 한유희 옮김 / 시아출판사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서양 문화의 양대 기둥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고, 그래서 그리스신화와 성경은 필독서라고들 한다. 어린 자녀들에게도 아동용 축약본이나 만화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와 구약 성경의 세계관은 당시 그리스와 유대사회의 가부장제에 심히 오염되어 있다. 이를 생각없이 그대로 읽고 다시 자신의 후진 성차별적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사용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안타깝다. 거기다가 국내 남성 저자가 자신의 편견까지 사설로 더 넣어 집필한 그리스 신화가 널리 읽히는 것을 보면 정말,,, 에휴. 

 

그리스 신화만 이야기하자면, 그리스 신화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그리스인들이 이동해서 지중해 지역을 침략하는 역사적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만 한다. 원래 크레타와 중근동 주민들이 믿던 여신들은 이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이 숭배하는 제우스 등 남성신 신앙에 밀린다. 여신은 남신의 배우자가 되거나 강간당하거나 구애를 거절하다가 괴물(메두사)로 변하게 된다. 그렇다. 패배한 집단의 신은 잡신이 되거나 괴물이 되어 승자의 역사서에 기록되는 법. 용의 아들 견훤이 지렁이(지룡)의 아들로 왜곡되듯 말이다. 여신의 몰락과 이를 반영한 신화는 다시 그리스 가부장제의 강화에 기여하게 된다. 원래 아르고스 지방의 대지모신이었던 헤라는 겨우 가정과 결혼 수호의 여신이 되어 질투나 하게 된다,,,  이런 내용, 여러 책에서 띄엄띄엄 읽으면서 맥을 잡아가고 있었는데 역시나, 검색해보니 이미 단행본이 나와 있었다. 바로 이 책이다.

 

올륌포스의 신들은 원래 그리스 민족이 원주민이 사는 곳에 침입하여 그들의 신화와 원주민들의 신화를 새롭게 정리해 새로운 문화를 성립시킨 것이다. 그리고 원주민이 살았던 고대는 시대적으로 볼 때 모권 또는 여권의 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올륌포스 신들의 신화가 성립되었다는 것은 남성 우위적인 사회가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원주민의 옛 신들, 즉 대지모신을 중심으로 한 고대신들이 서서히 그리스 민족의 신들로서 변형되었고, 그것이 곧 올륌포스 신들이 된 것이다.

- 161 ~ 162쪽에서 인용 

 

책은 그리스 신화의 기본 내용은 알고 있는 독자가 읽는다는 가정하에, 기존 그리스 신화에서 그저 서술하고 지나가던 요소를 집어내어 역사적 근거를 들어 원래 여신의 존재를 밝힌다. 남신들의 경우에도 그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몰락하기 전 존재했던 여신의 영향을 언급해준다. 특히 그리스 신화의 성립을 미테나이 왕조의 성립과정과 함께 보는 것이 흥미롭다.

 

헤라는 올륌포스 12신이라는 신화가 탄생되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대지모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올륌포스의 신들이 미테나이 왕조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헤라는 미케나이의 여왕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신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 57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처럼, 책은 거의 결론만 나열하고 추적 과정은 깊지 않은 편이다. 아쉽다. 이 점은 이어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나 ,인도 유럽인, 세상을 바꾼 쿠르간 유목민>을 읽으니 좀 메꿔졌다. 그래도 갈 길이 멀다. 여튼, 어린 친구들이 물으면 확실히 말해주자. 그리스 신화에서 남신들의 구애를 거절하다가 강간당하고 납치당하는 여신, 요정, 인간 여자들은 나약한 여성들이 아니라 그 지역의 독립투사인 셈이었다고!

 

이미 절판되었지만 가까운 도서관에 있다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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