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걸 -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민병숙 옮김 / 마고북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제는 < King Kong Theorie>다. 영화의 주인공이고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사람도 짐승도 아닌, 암수 구분도 안 되는 킹콩. 저자는 펑크족 여성인 자신을 킹콩에 비유하여 자전적 페미니즘 에세이를 썼다. 이 책은 2006년 프랑스에서 출간될 당시 “현시대 최고의 페미니즘 책”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펑크록을 좋아하여 세상이 말하는 여성적인 외모와 차림을 거부하고(책 읽는 내내 개그우먼 안영미 씨의 "민식이냐?" 대사가 생각났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구하던 저자. 열일곱에 집단강간을 당했지만 자신이 펑크족 여성이었고 히치하이킹 중에 스스로 남자 셋이 타고 있는 차에 올랐기에 강간당한 것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강간이 범죄이긴하지만 세상은 '보호받을 가치'를 지닌 여자만 보호하기 때문에. 그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저자에게 불리한 증거였다. 저자에게는 '죽느냐 창녀가 될 것이냐 그것이 문제(48쪽)'였다.  저자는 자발적으로 매매춘을 하고 성적 서비스 업소에서 일한다.  스스로 손님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던 펑크록 차림을 버리고 여성적 외모를 가꾸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에 눈뜨기 시작한다.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영화를 제작한다. 이로인해 프랑스 사회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책은 이 과정을 약간 강한 어조로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리 과격하게 읽히지는 않은데, 여성성과 성매매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좀 새로운 시선을 읽었다. '여성성의 과잉 표출은 기득권을 잃은 남성들을 안심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24쪽)''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들이 획득한 권력을 감추며, 자신의 역할을 과거의 그것으로 복귀시켜 스스로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라는 신분에 놓는다(24쪽)''여성성이란 창녀 되기이고 노예근성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유혹이라 부를 수도 있고 그것이 글래머 제조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또 집단적으로는 열등하게 처신하는 습관을 갖게 한다.' 같은 부분. 나는 여성혐오하는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자기혐오에 빠져 나의 여성성을 부정하다가 나이 들어 이제서야 내 여성성을 긍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성 긍정이 자기 긍정이자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성성을 이렇게 보는 저자의 견해를 읽으니 새롭다. 물론 자본에 의한 지나친 여성성 상품화는 저자가 지적한 부분과 연관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흠. 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한 자발적 매춘을 지지하는 듯 서술된 부분은 뭐라 리뷰에 쓰기가 어렵다. 난 매매춘은 해당 여성 뿐만 아니라 전 여성의 인권을 하락시키기에 절대 반대 입장이다. 그런데 경험자인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또 다른데, 이건 프랑스 사회 맥락에서만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흠. 어렵다.

 

여튼 위의 두 부분, 어렵고 불편한 것은 내 경험과 사고의 한계일까? 아무래도 기존 페미니즘과 다른 시선을 갖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페미니즘 서적을 읽어봐야겠다. 강간에 대해 캐밀 파야가 쓴 책을 읽고 아래와 같이 요약, 소개한 부분은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위험이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집에서 나와 자유롭게 활보하기를 원한다면 감수해야 할 위험인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라. 툭툭 털고 일어나서 잊어버려라. 그 일이 그렇게도 두려우면 엄마 곁에 찰싹 붙어서 손톱 손질에나 열중해라.

- 51쪽

 

이에 깨달음을 얻은 저자는 계속 세상을 몸으로 탐구하며 성장해 간다.

 

진짜 인생을 멀리 둔 채 방 안에 갇혀 지내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에선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나는 낯선 도시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역이 문을 닫을 때까지 혼자 앉아 있거나 다음날 탈 기차를 기다리면서 골목길 한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마치 여자가 아닌 듯 행동했다. 더 이상 강간당한 적이 없긴 했지만 밖에서 그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는 백 번도 넘게 그럴 위험에 처했다. 그 시절, 그 나이에 내가 경험한 것은 순종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나를 가두거나 집구석에서 잡지나 뒤적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밀도 있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격정적인,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함께 동반되었던 온갖 더럽고 추잡한 일들에 대해서도 그것들을 살아낼 힘을 나는 찾을 수 있었다.

- 55쪽

 

그렇다고 강간의 본질을 간과하거나 강간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강간은 정치적인 프로그램이다. 자본주의의 뼈대이기도 한 그것은 권력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이다. 어떤 지배자를 지명해서 그가 아무런 제약 없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강간을 하든, 강탈을 하든,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하든, 그는 자신의 의도를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실현시킬 수 있고, 잔인함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 상대는 어떤 저항도 표출할 수 없다. 타인을, 그의 말과 의지와 모든 것을 무시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강간은 그래서, 시민전쟁이다. 그리고 한쪽 성이 다른 쪽 성에게 ‘내가 너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어. 네가 스스로를 열등하고 타락했다고 느끼도록 만들겠어’라고 선언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제도다.

63 - 64쪽

 

그리고 책벌레인 내 입장에서는, 저자가 책을 찾아 읽으며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공감이 가고, 몹시 눈물겨웠다.

 

1984년에 나는 몇 달 동안 병원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와, 내가 했던 첫 번째 저항은 책을 읽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 49쪽

 

충격적일수도 있는 사적 경험 고백으로 시작된 책이다. 흥미위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현재 전세계적인 반 페미니즘,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저자를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노동에 있어서의 권위, 잔인하고 부조리한 경제적 억압, 행정적인 횡포, 관료적인 모욕, 무언가를 구입하고 싶을 때 바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확실성 등에 대한 남성들의 욕구가 더 이상 충족되지 않자 그 책임이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우리의 해방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잘못된 것은 정치제도가 아니라 여성해방이라는 것이다.

- 182쪽

 

저자는 1969년 생이다. 책을 읽고 나니, 자신의 방식대로 아프고 이겨내고 싸우며 갈 길을 가는 언니를 만나 술자리에서 속내를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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