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발견>을 매우 의미깊게 읽었기에 이번 책도 믿고 읽었다.
이 책은 우리 옛이야기와 서양 옛이야기가 원래
구전되던 형태에서 변형된 현실을 각각
의 그림책을 통해 살핀다. 저자는 각 이야기 화소가 구비전승되던
상황, 이본, 현대에 변
형된 이유 등등을 꼼꼼히 살피며 우리 아이들에게 권할만한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눈을
키워준다.
1부 우리 옛이야기로는 <콩쥐
팥쥐><해와 달이 된 오누이> <바리 공주><선녀와
나무꾼
><구렁덩덩 신선비><흥부전><심청전><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서양
옛이야기로는
그림 동화와 안데르센 동화, <백설공주><신데렐라><인어공주><빨간 모자><아기
돼지 삼
형제><헨젤과 그레텔>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옛이야기는 아니지만 옛이야기의 미덕을
잘
반영한 그림책으로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을 소개한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교육적 목적으로 구전민담의 원래
형태를 지나치게 변형하는 것을 경
계한다.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잔인하다고 하여 글 작가 마음대로
구전설화에 기반한 옛
이야기를 변형, 새로 쓰는 예가 많은 현실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래동화 본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죽이려 한 사람을 쉽사리 용서하고 사악한 성
품의 인물들은
갑자기
착해지는데,
이러한
비현실적인 결말이 고전소설이나 구전민담의 권
선징악적인
끝맺음보다 교육적으로 더 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개
작하면서까지 부자연스럽고
어설픈 용서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악행은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옛
사람들의 믿음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
36쪽
저자는 구전되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변형할 경우, 이야기마다 주석을 달아 독자에게 어
떤 구전
설화와 문헌 설화로부터 화소를 끌어와서
이야기를 재구성
했는지, 옛글과
새글
차이를 알려주고 원전 출처 밝히는 것이 옛이야기의 전통과 가치를 보존하는 길이라고
말
한다. 또 저자는 여러 지방의
여러 화소를 두루
살펴서 지금 이 시점에 계승할만한 가치를
반영하지
않은채 흥미위주나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형태를 저본으로 삼아 이야기를 재구
성하는 것도 경계한다. 예를 들어 <콩쥐 팥쥐>의 경우, 콩쥐의
결혼으로 끝나게 동화책을
구성하면 신데렐라 흉내내느라 이야기의 반만 한 것이며 올바른 주제를 전달하지도 못
하는 것이라고.
이는 <선녀와 나무꾼>도 마찬가지다.
글작가가 다른 각편도 두루 살펴보고
조금 더 보편적이고 진취적인 화소를 끌어다 이야
기를 재구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118 ~ 119쪽에서 인용
옛이야기 원전은 너무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며 때로 잔인해서 아이들에게 읽히지 않는다
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옛이야기에 담긴
초자연적, 비현실적, 엽기적 장면보다 현
대 버전 동화책에 담긴 가부장적 가치관, 군국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오리엔탈즘,
외모지상주의, 배금주의
등등이 교육적으로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이른바 서구 명
작 동화가 들어오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보급되면서 위에 예로 든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급격히 우리 전통 옛이야기까지 오염시킨 점을 저자는
심각하게 지적한다. 이는 그냥 그
림책 읽고 애니메이션 한
번
보는 정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현재 아이들은 영어 공
부의 한 방법으로 영어로 녹음된 디즈니판 동화를 듣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 그런데
외
국어 공부란 무조건 반복학습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영어 문장을 반복해서 외우려
다가 그만 정서와 사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디즈니식 미국식 그릇된 가치관
과 사고방식에 세뇌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이 보이는 여성주의 시각도 좋다. 서양 명작동화들의 여성 주인공들은 거의 다 나약
하며
'백마 탄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어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저자는 그건
오해라고
말한다.<해의
동쪽과 달의 서쪽>
<헨젤과
그레텔><백조
왕자>처럼
여성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 오빠나 남편 등
남성을 구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단지 널리 알
려지지 않았을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각 외로 원전을
읽어보면 그리 가부장적 가치
관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 물론 가부장적 현실에 고통받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의 연대
로 이겨나가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엣이야기 속 여성들이
‘백마
탄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존재처럼 느
껴지는 것은
모험심을 지닌 강인한 소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그림책으로 꾸며져 널리
읽히지 않았기 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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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그림책 볼
연령대의 아이를 두고 있지 않더라도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구전
설화 공부 입문용으로
읽기 좋은 책이다. 베텔하임이라든가 자이프스 등 서구 이론가 소개
며 국내 구비 전승 각편 소재
서적과 논문 소개가
알차다. 책 말미에 주석과 참고 문헌목록
만 봐도 다음 단계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튼, 구비설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
게, 여러면으로 유용한 책이었다. 어릴적 읽고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깊이 남아
인생의
고비고비 마다 떠오르던 이야기, 저자의 해석을 읽고 이제야 깨닫고 여러번 가슴
뭉클했다. 좋은 책을 써 주신 저자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