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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첫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포함한 9편의
에세이가 담긴 책이다. 책 제목이 내용의 전부가 아니다. 즉, '남자'인 맨(Man)과 ‘설명하다’라는 뜻의 익스플레인(Explain)을 조합한
이 단어 자체의 사전적 의미만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책 내용의 전부가 아니다. 책의 첫 글은 파티에 간 저자가 저자자신이 쓴 책에 대해
읽지도 않고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책의 저자인 자신- 그러니까 파티에서 만난 낯선 여성 - 을 가르치며 남성다움을 뽐내려 드는 남성을 만난 웃긴
경험담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저자는 젠더, 인종, 경제, 식민지배 등등 전 지구적 차별, 억압과 지배의 문제를 고발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강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진다.
강간에 대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강간은 단지 남성이 여성에게 원치않는 성관계를 하는 문제가 아니라 폭력과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간은 남성과 여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녀의 이름은 여러 개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약자'인 것이다.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 45쪽
조사에 따르면, 많은 경우 강간의 동기는 남자가 여자의 욕망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그녀와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었다. 한마디로 남자의 권리가 여자의 권리에 앞선다는 생각, 혹은 여자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 193쪽
그녀의 이름은 아프리카였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였다. (중략)
그녀의 이름은 아시아였다. 그의 이름은 유럽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침묵이었다. 그의 이름은 권력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가난이었다. 그의 이름은 풍요였다.
- 67 ~ 68쪽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6.2분마다 한 건의 강간이 발생하고,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인생에 한 번 이상 강간을 당하며, 매일 약 세 명의 여자가 배우자나 옛
배우자에게 살해당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는 3일에 한 명 꼴로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 등에게 살해당하고 있다. 강제 성기결합까지는 아닌 수위의
성폭력이나 성추행, 성희롱성 발언은 너무나도 빈번하게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은 힘들다.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위로받기도 힘들다. 오히려 2차 가해를 받기 일쑤다. 여성인 피해자의
증언과 고통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외치는 '맨스플레인'의 의미가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간 등 여성/약자에 대한
여성/피해자의 경험과 증언이 무시되는 현상, 그래서 피해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저항의 싹을 자르고, 그로인해 가해자가 속한 성, 인종, 계급,
국가가 이익을 보는 전체적인 현상이 '맨스플레인'인 것이다. 이는 일부 남성들만의 잘못된 예도 아니다. 남성은 아무 나쁜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이미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길거리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젊은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여자들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확신을 키운다.
- 15쪽
결국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가오잡고 잘난척 조금 해서 짜증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여성들의 삶의 경험과 발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차별과 폭력을 당한 경험을 이야기해도 여성의 증언이므로
무시하거나 피해를 축소하거나 성폭력 사건을 접할 때 피해자 탓으로 돌리거나 꽃뱀인가부터 의심하는 사례는, 생활 속에서 남성 입장에서의 반응부터
먼저하고 여성을 계도하려고 하는 소소한 '맨스플레인'과 일맥상통한다. ,,, 그래서
나는 '맨스플레인? 말도 안돼. 여자들도 얼마나 남자들을 가르치려 드는데?'라는 반응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책의 제목만을 그대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엄마나 할머니, 아내의 지겨운 잔소리, 정도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