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낭의 그리스 신화 - 우주.신.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장 피에르 베르낭 지음, 문신원 옮김 / 도서출판성우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주, 신,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독특한 그리스신화  해설이다. 신화학자인 저자는 카오스에서 시작되는 우주의 탄생부터 가이아에서 비롯된 신들의 탄생과 아버지와 아들 세대간의 전쟁,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속고 속이는 가운데 탄생한 최초의 여인 판도라, 오디세우스와 페르세우스의 모험, 트로이 전쟁,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의미를 밝힌다. 각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다양한 판본의 이야기를 다 인용하며, 늘 듣던 해석이 아닌 이면의 이야기, 뒷날의 사건과 얽히는 또다른 의미를 들려 주어 읽기 즐겁다. 말하자면, 저자는 시종일관 아래에 인용한 자세로 시간과 공간과 신들과 영웅의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듯.

 

그러니 모든 것이 단순히 흑과 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우주는 언제나 상반된 것들의 혼합에서 비롯한다.

- 80쪽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는 모두 겉과 안의 대비, 겉모양과 실제 속 내용물의 차이를 갖고 벌어지는 유희다.  프로메테우스에게 속아서 내장으로 감싼 살코기 대신에 지방으로 감싼 뼈를 고르는 제우스, 그러나 뼈는 불멸, 고기는 곧 썩을 죽은 짐승, 속은 듯한 제우스가 옳은 선택을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속이 빈 회향목 안에 불씨를 훔쳐 오는 것도 마찬가지 겉과 안의 대비. 이에 보복하는 제우스 역시 속에 불을 숨기고 있는 선물을 인간에게 보내나니, 바로 판도라!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치는 계략을 꾸몄다면, 제우스는 남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훔친 불과도 같은 여성을 창조해 응수했다. 실제로 여성이자 아내는 남편을 허구한 날 불살라 말라 비틀어지게 하고 실제 나이보다 늙게 만드는 불이었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인간들의 집에 들여보내 굳이 불꽃을 피우지 않고도 인간들을 불사르는 불이다. 훔친 불과 쌍을 이루는 훔치는 불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112쪽

 

판도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부분은 '여성은 인간의 음탕함과 신적인 부분을 결합시킨다. 여성은 신들과 짐승들 사이를 오가고, 이는 인간의 속성이다.'라는 본문 서술처럼 1910년대에 태어난 저자의 여성관을 살짝 반영하는 듯, 참으로 기묘한 문장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앞뒤 맥락이 있고 책 한권 전체에 일관되게 서술된 방식이 있기에 그리 여성혐오로 불쾌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펜테우스의 자화상이자 분신인 디오니소스' 그리고 '그러니까 스핑크스가 말했던 그 괴물, 동시에 두 발과 세 발 그리고 네 발을 갖는 괴물은 바로 오이디푸스인 것이다.'이런 대목 역시 그랬다. 상반된 것, 감춰진 속성, 자신과 타자, 신성과 마성, 질서와 혼돈,,, 저자는 모든 세상 만물의 대립된 신화를 하나로 합친다. 그래서 매혹당하면서도 슬프다. 나같은 무식한 독자는 읽다보면 다시 태초의 카오스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상태를 아마 전문 용어로 '멘붕'이라고 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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