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와 피노키오
이나미 지음 / 생활성서사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친가는 기독교 집안, 외가는 불교 집안이다. 덕분에 나는 종교에 대한 편견이 없다. 어느 종교의 경전이든 풍부한 설화를 집대성한 인류 문화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성경과 삼국유사, 자타카를 읽으며 성장한 것을 뽐내고 싶다.

 

그중 성경, 특히 구약에 등장하는 방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영웅과 아버지와 왕과 예언자들, 용감한 여성들,,,, 다들 나름 인간적 약점과 매력을 가진 생생한 인물들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인물은 드물다. 자신의 잘못된 신념 체계를 되물림한다거나 늙어서 그릇된 욕망을 좇다가 자신은 물론 후손, 국가까지 그릇되게 이끄는 아버지와 왕들!

 

어려서는 목사님이나 주일학교 선생님, 주변 남자 어른들의 해석이 싫었지만 이제 좀 읽고 나니 내 시각으로 성경의 인물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어 좋다. 성경에 나오는 남성우월적 후진 견해들은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당시 유대 가부장 사회를 반영한 것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이 책의 저자분도 그랬나보다. 나처럼 성서 속 인물들의 삶에 매력을 느꼈나보다. 아니다. 저자는 설화로 읽는 나와는 달리 신앙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고 인물 분석글을 쓰고 있다. 모세, 요셉, 유다, 다윗, 솔로몬, 유디트, 요한, 마르타와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유다,,,,, 하지만 우리나라 민담과 비교한다던가, 전공의로서 인물의 정신, 심리 분석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재미있게 글을 쓰고 있다. 솔직히 어떤 글은 밋밋하지만 전체적으로 비 신자가 읽기에 지루하고 뻔한 신자용 책은 아니다. 분명 모세 이야기를 읽으면 신자든 아니든 누구나 각자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될 것이다.

 

게다가 언뜻 언뜻 마흔 근처 여성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고됨과 고뇌가 느껴져서 읽으면서 뭉클했다. 어차피 글을 쓰려면 저자는 성경 속 인물들의 삶과 입장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아아, 나보다 조금 앞서 살아가는 인생 선배격 언니들이 지금 내 나이 즈음에 쓴 글을 읽으면 막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중에 어떤 보상이 기다리든, 어떤 의미를 부여받게 되든, 나는 절대 욥 같은 경우에 처하기 싫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을 비롯한 약자들은 현실의 부당함을 영혼 단련을 위한 시련으로 여기고 순종, 정신 승리하는 방법으로 욥의 삶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는 것 같다.

 

요나서는 신학적인 독법으로 읽어도 물론 보람이 있지만, 이렇게 하나의 성장 체험이 들어 있는 민담으로 이해하면, 배울 바가 참으로 많다. 나는 요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어릴 적 의미심장하게 읽었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떠올린다. (중략)

큰 바다에서 위험하고도 엄청난 힘을 가진 물고기에게 잡아먹힌다는 비유는, 바로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의 상징이리라.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큰 힘(권력이나 돈일 수도 있고 또는 제도와 구조일 수도 있다)에 통째로 먹힌 후 죽음과 다름없는 임사 체험을 하지만,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 마침내 진정한 자기를 찾는 과정 말이다. 요나와 피노키오 이야기는 이렇게 누구나 거쳐야 하는 성인식(initiationrite)의 힘든 여정을 묘사하는 재미있는 우화이기도 하다.

- 163쪽에서 인용

 

요새 미로/연꽃/자궁/고래 이미지에 몰두해 있으면서 요나와 피노키오를 생각했다. 시련, 어른됨, 성장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 나 이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이미 책을 쓴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검색해보니 이 책이 있었다. 절판이어서 집에서 먼 도서관에 가서 읽었는데 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자분이 위의 인용 부분처럼 먼저 써 놓으셨다. 헐헐헐! 이렇게 되면 내 글은 나중에 표절 소리 듣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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