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도모르(우크라이나 대기근)에 대한 기록을 찾다가 만난 책이다. 편자 마샤 스크리푸치는 캐나다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의 후손이다. 그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캐나다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의 경험과 역사를 담은 수기, 소설 등의 기록을 모아 이 책을 냈다. 책에는 총 12편의
실화와 실화에 근거한 소설이 실려 있다. 일단 강추!부터 쓴다.
책에 실린 이야기를 각각 소개하자면, 이민 1세대들이 집을 짓고 정착하는 이야기인〈어머니의 집>,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의 풍습과 일상이
잘 담겨 있는〈빨간 부츠>와〈거래>는 따뜻하고 정답다. <초원의 집>이나 <빨간머리 앤>을 읽는 느낌이다.
<초컬릿 바>와 <묘지 옮기기>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 웃게 만드는 놀라운 유머감각을 보여준다. 위니펙 총파업 경험을
회상하는〈나예요, 타탸>와 〈카타리나를 위한 노래>는 역사가 어떻게 한 여성의 개인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1차대전 당시 우크라이나가 독일에 점령당했기때문에, 캐나다에 있는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이 적국민으로 몰려 수용소에 갇혀 부당대우 받은 사실을
고발한〈안드리의 휴식>과 스탈린의 기아학살인 홀로도모르를 생생하게 기록한〈살아남은 자의 슬픔>,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수기인〈아우슈비츠, 지옥의 끝>은 읽기 끔찍하다. 가슴 먹먹해지고 눈물이 고여서 쉬었다가 책장을 넘겨야했다. 이 세 이야기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을 배경으로한〈키예프의 촛불들〉이다. 해외동포들이 고국의 민주 항쟁과 정권 교체를
응원하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오렌지혁명 이후 우크라이나 정치 현실에 대한 후일담이 없어서 이후 우크라이나 현대사를 모르는 독자에게는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겠다는 기우가 든다. 뭔가, 서구 선진국 해외 동포가 모국에 대해 갖는 시혜의식 같은? 나는 좀 불편한 감정이 읽힌다.
근래 읽은 책들 중에 제일 좋았다. 역사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지만 책상머리 글쟁이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실제로 겪어낸 역사와 삶의
이야기. 식민지인이고 힘없고 가진 것 없고 어리고,,, 게다가 여성이어서 부당하게 감수해야하는 폭력,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난 이런 역사가 담긴 이야기가 끌린다. 기억해주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와 삶을. 나는 다른 시공간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읽고 쓰는
방식으로 지금 내가 있는 이 현실의 부당함에 조금이나마 저항하고 싶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우크라이나로 여행가요. " 그 과수원에 가봐야겠다. 카타리나 고모를 위해 추모의 노래를
불러야겠다. 그러면 내 영혼도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