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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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족, 관계, 심리에 대한 책들 여러 권을 후다닥 검색하고 카트 담아 주문하다 실수로 산 책이다. 난 이 책이 심리상담 전문가의 대중 이론서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배송 받아서 박스 열어 살펴보니 그냥 에세이였다. 하지만 잘 실수한 듯! 책 내용이 마음에 든다.

 

저자는 어린 시절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실망해서 가족과 연을 끊는다. 결혼했지만 남편을 반려자라고 부르고 어디 나가서 결혼 여부를 밝히거나 남편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아이도 낳지 않기로 합의하고 각자 수입으로 독립적인 동거생활을 한다. 나중에 아버지 어머니 숙모 오빠와 사별한 후에, 가족의 의미를 물으며 이 책을 쓴다. 우리의 편견이겠지만, 일반적인 일본의 나이든 여성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기엔 좀 신선하고 센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다 맞는 소리다. 내가 평소에 하던 말을 이분이 먼저 써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래 같은 대목. ㅋㅋ

 

과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낳은 자식이니 피로 이어진 관계이기는 해도, 엄연히 독립된 인격이다.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대로 옭아매서는 안 된다. 남편에게, 혹은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면 심하게 낙담하고 불평불만이 볼거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낙담과 불평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이다. 기대는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 47 ~ 48쪽에서 인용

 

위와 같은 본문 글도 속 시원하지만, 그냥 목차에서 각 장들의 제목만 봐도 속시원하다.  인상적인 꼭지명일부를 옮겨 놓겠다.

 

어른에게 착하기만 한 아이는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가족의 ‘기대’는 최악의 스트레스

부부라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화젯거리가 가족밖에 없는 사람은 재미없다

다른 가족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결혼만큼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도 없다
여자는 아이를 꼭 낳아야 하나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잔인함

고독사는 불행이 아니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타인과의 생활은 중요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복을 강매하다

 

위의 꼭지명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내가 보기에는 다 평범한 진술이고 다 맞는 말인데 예스와 알라딘에서 리뷰를 찾아보니 이 정도 내용이 충격이라는 평이 있어서 의외였다. ( 그렇다면 난 어디 가서 입 닥치고 있어야할까? )

저자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이유를 서술한 뒷부분이 굉장히 흥미롭다.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군장교였던 아버지가 패전 후 실의에 빠졌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 주치의에게 비난 편지를 받아도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임종 때까지 찾아가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면 자신도 살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던 당신이 전쟁에 패한 후에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너무도 이상했습니다.

- 194 ~ 195쪽에서 인용

 

전후의 생활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가운데, 저는 당신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패전 후 한동안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운운했지만, 언사와 행동이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더니 군인 시절의 동료와도 친분을 회복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또한 용서할 수 없었어요. 한번 반성하고 후회한 일을 제자리로 돌려 놓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었나요.

- 204쪽에서 인용

 

난  박정희를 찬양하고 그 딸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일부 어르신들이 싫다. 분명 내 기억으로 1970년대말 내 주변 어른들은 전부 박정희를 반대하고 있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 어르신들은 벌써 과거 18년 세월을 다 잊어버린 것일까? 난 그렇게 개인적 역사 왜곡을 일삼는 사람들을 존경할 수 없다. 그 외에도, 나는 기회만 있으면 주구장창 윤리 도덕 정의 효성 등 정신적 가치에 대해 잔소리하면서 자신들은 막상 그 사항들을 지키고 있지 않는 일부 친척 어르신들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결국 그런 인간들에게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치란 궁극적으로 '내게 잘하라'는 말 아닌가? 가족의 소중함, 가족의 사랑이란 허울로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추구하는 건 딱 질색이다. 어르신이든 매체든 국가든.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의견이 이런 내 생각과 비슷하고, 내 유년의 경험과도 비슷해서 읽는 내내 기시감이 들었다. 여튼,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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