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김양기 지음, 박광순 옮김 / 넥서스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어라? 책 제목이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이고 목차에 단군신화도 있고, 저자는 김씨인데 역자가 있다. 자세히 다시 보니 재일 한국인 사학자가 쓴 책이다. 그러니까, 우리 신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일본인 독자들을 위해 쓴 책인 것이다.

 

그래서 좋은 점은,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자세하다는 점. 우리 저자가 쓴 신화 서적에서는 생략하고 지나가는 부분도 일일이 서술해준다. 관련 신화를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등등 1차 사료에서 정확히 인용해 주어서 좋다. 반면, 저자의 지나친 감상이나 주관적 소견은 거의 없다. 그래서 더 좋다. 우리 신화에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책에 실린 내용은 창세신화, 건국신화(단군,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국, 탐라)와 김알지등 시조신화, 해와 달의 신, 불교 설화, 이종 결혼과 신녀, 맹수 변신 설화. 특히 우리 신화와 일본 신화의 논쟁점이나 비슷한 점을 비교해준 부분이 재미있다.

교토 제국 대학과 경성 제국 대학의 조선사 교수였던 이마니시 류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할 무렵부터 단군신화를 연구하고, 그것을 고쳐 초기의 민족 이식의 고양에 의해 창제된 신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전(戰前)의 황국사관에 바탕을 둔 조선사 연구의 일인자이며, <단군고>는 그가 학위를 취득한 주요 논문이었다. 그런 만큼 영향력이 커서,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신화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조선 신화 연구의 선구자 역할을 한 미시나 아키히데가 단군 신화를 부기한 것으로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미시나는 이마니시의 제자이므로 스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그것은 또 미시나의 제자로 조선 고대사의 권위자인 이노우에 히데오씨에게까지 계승되었다.(중략)

이마니시는 한국 신화 중에서 단군 신화만 부정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단군 신화를 인정하면 일제 강점의 논거가 벗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단군이 BC 660년에 즉위한 일본의 진무천황보다 1700년 정도 일찍 즉위했기 때문이다. 설사 신화라 해도 그것을 인정하면, 일제 강점의 이른바 '일선동조로'의 논거를 잃어버리기 되기 때문에 큰일이 난다.

- 본문 35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이야 뭐 워낙 유명한 쟁점이다. 그외 천손강림형 설화에서 우리 신화와 일본을 비교하여 설명하다가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임신 부분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살짝 웃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창세 설화가 없고 건국신화만 있다는 견해에 대해, 서사 무가의 창세 설화를 제시한 점은 멋지다. 지금이야 그런 입장이 많이 보이지만, 2000년 당시는 그런 견해가 흔하지 않았다.

 

태양신은 원래 여신이지 않은가, 하는 점에 관심있는 내 입장에서, '해와 달의 신'부분은 매우 유익했다. 나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알면서도 그동안 당연히 연오랑이 해의 신, 세오녀가 달의 신인줄 알았다. 그런데, <삼국유사>를 보면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간 해와 달의 신으로, 남편 연오는 왕이 되고 세오는 왕비가 되었다고만 적혀 있고 누가 태양인지 확실하게 적혀 있지는 않다는 점을 저자는 찍어 내 보인다. 멋지다!  저자는 말한다. 이 신화의 주역은 남편 연오이므로 그것으로 유추하면 연오가 태양이고 아내 세오는 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신라 사신에게 준, 세오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빛을 부활시키는 신구, 신기인 점을 고려하면, 세오를 태양으로 생각해도 이상스럽지 않다라고. 즉, 이 설화가 남신이 태양신이라는 논거는 되지 않는 것이다. 또 저자는 손진태가 1947년에 채록한 <해와 달과 별>이라는 설화에, 세 자매가 하늘에 올라가 언니부터 순서대로 각기 해 달 별이 되었다고 적힌 부분을 주목한다. 유레카! 사실 나는 만주 지방에서 채록된 신화를 보고 우리 신화의 원류를 짐작해서 태양신이 여신일 가능성을 추측했는데, 이렇게 국내에 남은 자료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그 자료를 알면서도 그런 각도로 볼 생각도 못했다.

 

책에도, 인터넷 서점의 상품 관련 페이지에도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 찾아보니 김양기 저자는 일본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였다. 자이니치로 공립대 교수 임용은 처음 사례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강상중 선생님 조금 이전 세대인 것이다. 저자분은 한일 통신사 관련 학회, 행사에 성함이 자주 보인다. 이 부분 대가이신가 보다. 더 검색해보니 <가면 속의 일본인>의 저자로 나온다. 그런데 그 책,,, 이름이 낯익다. 아, 나 그 책 읽은 적이 있다. 1993,4년 경 <일본은 없다>의 무식한 일본 폄하 비판 이후 일본 문화를 제대로 알리자는 의도로 나온 책이었다. 이래저래, 내게 반가워 저자 사진까지 찾아 보았다. 좀 스토커 같지만, 사진을 보며 저자분께 인사했다. 덕분에 태양여신 궁금증을 해결할 힌트를 얻어서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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