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십 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요즘 신경숙 작가 표절건으로 생각나서 다시 읽어 보았다. 덕분에 10년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해보며 내 나름의 자세와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는 1968년에서 1991년까지,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자신의 작가로서의 삶과 자세에 대해 쓴 에세이가 묶여 있다. 마루야마 겐지는 고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타개책으로 소설을 쓴다. 생애 첫 소설인 <여름의 흐름>이다. 그게 아쿠다카와 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선다. 23세의 일이다. 작가는 고향 근처 시골로 이사하여 최소한의 생활비로 오직 소설만 쓰는 생활을 계속한다. 문단의 사교 모임이나 문학상 수상도 거부한다. 열혈독자가 찾아오면 '내 책이 좋으면 책이나 읽을 일이지 왜 찾아 왔느냐'며 상대도 안 해 준다. 새벽에 일어나 소설을 쓰고 오후에는 셰퍼드와 야산을 뛰어다닌다. 그런 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여전히. 자신이 절필할 때는 자신이 엄격하게 심사해서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마루야마 문학상'을 받을 때라고 하며. 아놔!

 

이 분, 참 뭐랄까,,, 젊은 시절의 패기(어떻게 보면 괴팍함, 꼴통, 또라이,,,, -_- )와 목표를 거의 반 세기 동안 유지하고 계시지 않은가. 놀랍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래도 나이가 들면 좀 유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게다가 '여자나 게이에게 인기가 있으면 끝장이다'하는 식의 마초적 성격도 여과없이 드러낸다. 독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즉 판매량에 신경쓰지 않고. 이 저자는 자신을 걍 내보이는 성격이다. 앞서의 문제적 발언도, 일본 사소설의 전통에 의거하여, 나약하거나 입에 달게 술술 읽히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그닥 여성이나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맥락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뭐, 그럭저럭 이해할만 하다.

 

책에는, 소설 쓰기에 관련한 팁은 없다. 소설 쓰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그리고 다른 작가나 평론가, 일본 문단을 욕하는 내용이 한가득이다.  아들의 수상 소식을 듣고 '표절이 아니냐'는 아버지에게 '자식이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도 모른 주제에 무슨 말이냐'며 대드는 등, 마루야마 겐지의 사적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듣는 것도 재미나지만, 이시하라 신타로(망언 일삼는 도쿄도 지사로 더 유명하지만 젊은 시절 <태양의 계절>로 유명한 소설가였음)나 다자이 오사무 등 내가 아는 일본 작가를 비웃는 내용도 있어 더욱 재미있다. (실명을 써서 비판하지는 않는다. 깨알같이 숨어 있다.)

 

인생의 최대의 감동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컨대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예전에는 결코 할 수 없다며 포기했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있다니, 이만한 감동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 208쪽

 

이런 감동적 대목도 있지만,

 

현재의 생활을 계속해 앞으로 몇 년 뒤, 자신이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까를 상상하면 몸이 떨린다.

- 68쪽에서 인용

 

그러나 그렇게 거침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위와 같은 고민을 하던 초보 작가의 시절이 있었다. 아아, 너무 와 닿는다. 아무래도 이 책, 또 한 10년 있다가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때, 나는 어떻게 되어 있으려나. 마루야마 겐지의 세월, 그의 각오. 나의 앞으로의 세월, 나의 각오.

 

나도 몸이 떨린다.

 

 

 

- 이 책 뒷표지에는 신경숙 작가가 쓴 추천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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