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유기>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소설의 모태가 되는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가 궁금해졌다.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완역본이 아닌 것 같다. 상품 상세 페이지에는 '권덕녀 옮김'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책에는 '권덕녀 엮어 옮김'이라 표시되어 있다. 즉,
'편역'이란 말이다. 어느 정도 축약을 했는지 원전의 어떤 내용을 어떻게 편집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인터넷 서점 측은 제발 책 관련 정보를
정확히 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모르는 분야를 처음 읽을 때에는 대중서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책 뒤편의 참고 문헌 목록을 보고 전문서적 쪽으로 슬슬 옮겨가
읽는다. 원전이 목침 대여섯 개 수준인 고전 소설의 경우에는 아동 청소년용 축약본으로 먼저 읽어 워밍업을 하고 나서 원전으로 읽는다. 이번
<대당서역기>도 검색해보니 단 두 권밖에 없어서 먼저 좀더 쉬워보이는 이 책으로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짜증이 난다.
번역본이므로 원래 기본 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원저자인 현장이 살던 7세기, 당나라 때 불경은 오역이 많았다. 왜냐하면 인도의
원전을 중국어로 바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불교가 전해지던 실크로드 노선의 국가들의 언어로 일차 번역되었다가 다시 중국어로 2차 번역되었기
떄문이다. 즉, 중역 본으로 불교 사상 토론을 하다보니 문제가 많았다. 용어 역시 원 의미를 제대로 밝혀 번역되지 못했다. (인도에 다녀온 후
현장은 관음보살을 관자재보살로, 천축을 인도로 바로잡아 번역했다) 그래서 627년, 27세의 현장은 국가의 금지령을 어기고 홀로 국경을 넘어
인도로 향한다. 불경 원전을 구하기위해. 고생끝에 도착한 인도 마가다국 날란다 사원에서 15개월동안 유학한다. 645년 현장은 불경 640질과
사리, 불상 등 귀중한 자료를 가지고 당나라로 돌아온다. 환속하여 높은 벼슬을 하라는 당태종의 명령을 거절하고 이후 19년간 불경 번역에
힘쓴다. 당태종의 명령으로 <대당서역기>, 바로 이 책을 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술, 제자가 받아 적어 기록했다) 그러기에
<대당서역기>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정보제공이란 목적에 투철하다. 여정 견문 감상을 담은 흥미진진 여행기가 아니라 자신이 지나가거나
들은 중앙아시아와 인도의140여개국에 대한 지리문화 정보를 담고 있는 드라이한 보고서이다. 소설<서유기>의 모태이지만, 소설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이 책은 현재 사라진 국가들, 자국인이 자국어로 기록한 문헌이 없는 중앙아시아, 인도에 대해 당시 7세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값진 자료이다. 그러니 기본 원전의 가치야 내가 이 리뷰에서 논할 필요가 없다. 전세계의 구전설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책에 실린
불교 설화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관심있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 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 서해클래식판 <대당서역기>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이 책은 대중역사서의 목적에 충실하지 않다. 나는
도대체 출판사에서 예상 독자층을 어떻게 잡고 이 책을 기획했는지가 궁금하다. 편역서이고 시각자료 많이 쓴 편집으로 보아, 대중서를 지향한 것
같은데, 전혀 친절하고 대중적인 설명이 없다. 책 페이지 양쪽에 본문 관련 용어 풀이가 있지만 그냥 사전적 풀이 수준이다.
게다가 도판! 문제가 심각하다. 출전을 밝히지 않았다. 둔황 석굴 벽화 정도야 나도 아니까 그런갑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너무 설명이
불충분하다. 그냥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는 모습이다'이 정도 설명만 그림 아래 달아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몇 년도
제작된, 어디에 있었던, 누가 그린, 현재는 어느 박물관에 있는,,,, 이런 설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 마디로 이 책은, 원전은 가치가 있지만 번역본 책은 가치가 떨어지는, 그런 책이라고 하겠다.

- 본문 77쪽에서.
도판 중 최악은 이 것. 나는 본문에 실린 이 그림 보고 경악했다. 이 사진에는'인도의 작은 나라들 사이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는
설명만이 달려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라. 이 그림이 인도의 전투 장면인가? 아니다, 중세 유럽의 전투 장면이다. 내가 노란 동그라미를 친
오른쪽 파란 망토를 보라. 프랑스 왕가의 상징인 백합이 있다. 왼쪽 위 상대 진영을 표시하는 깃발을 보라. 빨간 바탕에 금빛 사자가 있다. 이는
사자왕 리차드 등 영국의 상징이다. 즉, 이 사진은 프랑스와 영국의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란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그림이 여기
<대당서역기>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