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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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지로 책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서 찾아 읽었다. 원하는 내용을 찾았다. 한 양에서는 양피지 넉 장이 나온다. 그래서 보통 성서 한 권 만드는데 200마리의 양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재료비도 비쌌을뿐더러 필경사 혼자 작업하려면 18개월이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기에 책값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도시 주택 한 채를 팔아도 겨우 6,7권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종이책과 인쇄술 보급 이전까지는.

 

이정도 알아냈으니 발췌독으로 끝내도 되는데, 햐~ 이 책, 무지무지 재미있다. 내가 관심있는 서양 중세 문화가 이렇게 종횡으로 얽혀 있다니. 다른 자료 찾아 읽어야하는데 시간 없는데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한달음에 다 읽었다.

 

이 책은 서양 중세의 주된 책인 양피지로 만든 수서본을 다룬다. 서양 중세 예술사 전공자가 썼다. 초기의 책은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였다. 양피지 두루마리를 거쳐 양피지를 접어 잘라(당시에도 4절, 8절 개념이 있었다) 현재 책의 모습과 같은 코덱스 형태가 발명된다. 책의 가장자리에는 삽화가 들어간다. 현재 우리에게 서양 중세의 모습을 알게 해주는 그림들은 거의 다 이 수서본의 삽화에서 인용되고 있다. <베리 공의 호화로운 기도서>등등 말이다. (이 책은 '시도서'로 번역)

 

책은 크게 보면 서양 중세 문화사, 예술사를 담고 있지만 통사식이 아니다. 책, 수집가, 독자, 채식사 등등 챕터 별로 서술되기에 한번 나온 내용이 반복된다. 게다가 기본 중세사 지식이 없으면 인물과 지명 나열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역사에 접근하는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보겠다. 146쪽 '어느 왕녀의 독서 인생' 꼭지에서는 막스밀리안 황제의 딸인 마르그리트 도트리슈가 소장한 책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다른 역사서에서는 그녀가 네덜란드에서 훌륭한 섭정 역할을 했고 매우 지적인 여성이었다, 정도로 소개된다. 건조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녀의 수서본 소장 목록들을 보니, 과연 그녀가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며 어느 정도 지적 갈증을 느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런 식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것, 참 재미있다. 중세인들이 정령들의 존재를 믿었던 것은 그들의 신화적 사고 때문이 아니라 책에 그렇게 씌여 있었기 때문이라니,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창조한 세계 자체가 한 권의 책이라고 설교했다니, 그래서 책에 대한 중세인의 믿음을 반영해서 이 책의 제목을 지었나보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수서본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믿고 읽을만한 최애리 번역자이시다.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 보시라. 강추.

 

*** 사족 : 요새는 책이 아닌 인터넷으로 글을 읽고,  분절된 노트로 쪽 넘겨가며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죽 내려가며 글을 쓴다. 이제 코덱스의 시대가 가고 다시 두루마리의 시대가 온 듯. 스크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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