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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여성을 말하다
미셸 페로 외 지음, 강금희 옮김 / 이숲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각각 다른 세 분야의 전문가에게 한 대담자가 질문하는 방식으로 서구 여성사를 조망한다.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대담자 니콜 바샤랑은
인류학자 프랑수아즈 에리티에에게 여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 얻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듣는다. 다음으로 바샤랑은 철학자 실비안 아가생스키와 대담한다. 철학이란 것이 객관적이지 않고 남성적 관점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 철학이
여성에 대한 어떤 개념을 형성해 왔는지를 듣는다. 세번째,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미셸 페로와의 대담이 이어진다. 서양 중세사, 여성사의
권위자인 페로는 여성의 일생과 세게사를 함께 논한다. 특히 내게는 여성의 노동 분야를 많이 언급한 것이 좋았다. 아이쿠, 알고보니 이 분은
여성사 쪽으로 뛰어들기 전에 원래 노동사 전공이셨구나.
이렇게 인류학, 철학, 여성사 세 분야를 다룬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겠다. 각 분야별 전문적 정보를 원했다면 이 책은 별로다.
하지만 세 분야를 한꺼번에 훑어봄으로서 전반적인 여성 차별의 역사, 시스템, 현실까지 이어지는 억압의 근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장점이 더 많다. 게다가 각주가 정말 잘 달렸다. 뒤쪽을 넘겨서 찾아볼 필요 없이 관련 페이지에 바로 달려 있으며 해설이 친절하다. 인물이나
지도 관련해서는 각주에 작지만 도판까지 바로 실려 있다. 편집팀이 굉장히 수고해서 만들었다는 티가 팍팍 나는 책이다. 좋은 책을 편하게 읽게 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다.
두껍고 너무 전문적인 여성사, 좀 공격적이고 날선 어투가 읽기 불편했던 페미니즘 서적이 부담스러운 분, 모르는 서양 인물들 주루룩 나와서
책 진도가 안 나가 기존 서구 여성사 읽기 힘들었던 분들께 입문서로 강추한다. 대담 식이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고, 핵심을 대담자 바샤랑이 계속
찍어주고 정리해주기에 그리 이론 공부하는 자세로 긴장하고 읽지 않아도 되어 좋다. 서양 여성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책 이후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동녘><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동녘><여성의 역사/새물결> 순서로 스텝 밟아 읽어나가는 방식을
추천한다.
페로 :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상했던 시에예스는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때 여성을 제외했죠. 그는 대부분
문맹자였던 빈민 역시 공적인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으리라고 판단하여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정신병자, 외국인 역시
제외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은 이들처럼 '피동적인 시민'에 속했고 공공 영역에 참여한 활동적인 시민보다 열등한 존재였던 거죠. 하지만 이
'피동적 시민'은 대부분 그 위상이 변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고, 빈민은 재산을 축적하면 글을 배울 수 있죠. 중증
환자는 병이 치유될 수 있고, 외국인은 프랑스에 귀화하면 프랑스 시민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여성은? 한번 여성이면 영원히 여성으로 남죠.
그러니까 영원히 정치적 권리가 박탈되는 것입니다.
바샤랑 : 이런 부조리에 대해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나요?
페로 : 1790년 <여성의 시민권 부여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쓴 콩도르세를 제외하고는 남자 중에서 항의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 본문 344쪽에서 인용
위의 인용부분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역사 사실과 논평이 잘 어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