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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인 러브
로지 술탄 지음, 황소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헬렌 켈러를 다룬 전기, 자서전, 여성 인물이나 사회주의자 열전 속 이야기들을 다 찾아 읽다가 이제 헬렌 켈러를 다룬 소설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헬렌이 장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전기가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의 장애 극복담 위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의아해 시작한
작업이었다. 성년 이후 업적도 장애인 관련 복지 봉사 쪽으로만 서술되고 사회주의자로서의 그녀의 활동은 제대로 다뤄주지 않는 점 역시 의아했다.
그런데 찾아 읽다보니 그녀가 그녀의 임시 비서였던 피터 페이건과 사랑에 빠져 몰래 도망쳐 결혼하려고 했던 사실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헬렌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은 그녀가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있는 성녀 -어쩜 순결한 성처녀의 - 이미지로만 남기를 원했던 것이다.
가족 역시 남의 눈을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헬렌이라는 기업의 수입에 생계를 의존했기에 그녀의 사랑을 축복하기는커녕 방해했다. 평생 애정결핍증에
시달린듯한 앤 설리반 선생도 헬렌의 배신을 원치 않았다. 헬렌, 그녀에게 넘어야할 벽은 장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헬렌의 생애 중 피터와 사랑에 빠졌던 몇 달만을 다룬다. 도로시 허먼의 전기 <헬렌 켈러 A Life> 에서 같은
시기를 다룬 부분과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물론 소설적으로 상상하여 재구성한 장면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등장 인물들이 주고 받은 편지 등은
실제 문서보관소에서 찾아 인용하였다니, 소설이지만 헬렌과 주변 인들의 실제 모습을 알아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저자의 입장에 따라 어떤 역사소설은
역사책보다 더 진실을 말하고 있기도 하지 않은가. 이 책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소설 자체로도 아름답다. 주인공 헬렌 입장에서 1인칭으로 서술되기에, 시각 청각보다 촉각과 후각에 의존하여 연인에 대한 사랑을
그려내기때문이다. 당연히,,, 몹시도 관능적이다. 일반적인 연애 소설로 생각하고 읽어도 충분히 마음을 울린다. 끝이 뻔한,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절절히 와 닿을 소설이다.
책을 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났어도 현관 앞에 홀로 있는 헬렌의 이미지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아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인이 더듬더듬
싼 여행 가방을 옆에 놓고, 오지 않는 연인을 밤새 기다리다니,,,, 장애극복이니 봉사니 성녀니 다 떠나서,,,, 사랑을 갈구했던 한 여자의
삶에 대해 나는 더이상 이 리뷰에 쓸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맹목적인 사랑을 후회하지 않는다.
글에서도 밝힌 바처럼 나는 뭐든 손가락 끝으로 기억한다. 언제든 피터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 나는 손가락 끝을 모은다. 그러면 그의
짜릿한 손길이 내 안에서 파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른다.
- 본문 434쪽에서 인용